공인된 RUCAM 척도 변형…공인된 척도 아닐뿐더러 연구결과에 커다란 영향 줄 수 있어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가 지난 1일 방송된 KBS-1TV 소비자 리포트 ‘속 모르는 한약, 속 타는 소비자’와 관련 엉터리 논문을 이용한 부분을 문제 삼으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키로 하는 등 강력한 대응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이날 방송에서 한약 간독성 문제를 지적하며 인용한 논문은 이미 학계에서 수차례 문제가 지적된 ‘Modified RUCAM’이라는 진단 툴을 이용한 자료라는 점에서 더욱 반감을 사고 있다.
특히 양의사들이 한약 간독성과 관련해 가장 많은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내용 중 하나가 바로 지난 2004년 배포된 국립독성연구원의 ‘식이유래 독성간염의 진단 및 보고체계 구축을 위한 다기관 예비인구’라는 보고서인데, 이 역시 이번에 문제가 된 Modified RUCAM이 사용됐다.
이에 대해 장인수 우석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는 대한한의학회지에 해당 보고서에 대한 내용을 분석해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논문을 게재, 이 보고서에 정면으로 비판을 가했다.
장 교수는 이 논문을 통해 보고서의 문제점으로 △증례의 부족 △증례의 지역적 편중성 △발생원인의 편중성 △평가방법의 잘못된 적용 △연구시작 이전의 증례 수집 △기초자료의 부족 △설문지의 생략 △제목 선정의 오류 등을 지적하는 한편 Modified RUCAM이라는 평가방법의 대한 신뢰성이 부족한 면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장 교수는 “독성간염을 평가하기 위해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척도의 사용이 필수적이며, 약인성 독성간염을 평가하기 위해 사용되는 공인된 국제적인 척도로는 프랑스, 독일, 미국, 영국, 이탈리아, 덴마크 등 6개국에서 전문가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RUCAM scale’과 ‘M&V scale’이 있다”며 “그러나 이 보고서에서는 독성간염의 원인 산정을 위해 독성간염을 판정하는 공인된 척도인 RUCAM 척도를 변경한 Modified RUCAM 척도를 사용했으며, 사용된 Modified RUCAM 척도는 공인된 척도가 아닐뿐더러 변경된 3개 항목은 결과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항목으로 평가방법의 객관성과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장 교수는 논문을 통해 변경된 3개 항목에 대한 명확한 문제점을 제시했다.
논문에 따르면 변경된 Modified RUCAM 척도 1번 항목의 경우 원본인 RUCAM 척도의 1번 항목은 증상 발현까지의 시간을 분류해 간독성 여부를 판정하는 항목으로, 간세포형의 경우에는 투여 종료 15일 후, 담즙정체형과 혼합형의 경우 투여 종료 후 30일 후 증상이 발현되면 복용 약물과의 연관성이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는 반면 Modified RUCAM 척도에서는 투여 시작으로부터 증상 발현까지의 시간이 90일 이상이며, 투여 종료로부터 증상 발현까지의 시간은 30일 이후인 경우로 변경했다.
즉 한약을 복용하고 90일이 지나고 나서 복용을 중단한 다음 30일이 지나서 독성간염의 증후를 보인 경우만 한약이 원인이 아니라고 판정하는 것으로, 원본인 RUCAM 척도에서는 탈락돼야 할 적지 않은 수의 환자들이 포함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해당 보고서에서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식물제제의 복용 시기에 대한 정확한 기억이 없다는 점 때문에 추정값을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약물의 복용시기는 독성간염의 원인을 판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변수인 만큼 RUCAM 척도의 개발자들도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다는 척도를 사용할 수 없다고 언급하고 있는 만큼 정확한 복용시기를 알 수 없다면 자료에서 배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변경된 6번 항목의 경우 RUCAM 척도에서는 약물제제가 간독성에 대해 알려진 약물인 경우 그 정도에 대해 △간독성이 명확히 규명된 경우 +2점 △간독성에 대한 문헌보고가 있는 경우 +1점 △독성이 알려지지 않은 경우에는 0점을 부여하게 돼 있다. 그러나 Modi-fied RUCAM 척도에서는 한약제제 중 간독성이 보고된 식물이 있는 경우 +2점, 없는 경우 +1점, 포함된 식물은 모두 확인됐지만 간독성에 대한 문헌보고는 없는 경우 0점을 부여토록 변경했다.
그러나 이 항목 역시 간독성이 알려진 원인식물이 ‘동정되지 않은 경우’에도 +1점이 부여되는, 즉 복용한 원인물질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에도 오히려 점수를 부여하는 이상한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Modified RUCAM 척도 자체가 +4점이 넘기만 하면 ‘간독성의 가능성이 있음’으로 판정하게 되어있음을 고려할 때 이 항목은 간독성으로 판정되기 쉬운 경향성을 강하게 만들어 연구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지적이다.
이와 더불어 Modified RUCAM 척도에서는 RUCAM 척도에는 없는 조직학적 소견을 8번 항목으로 추가했다. 이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급성 간손상의 조직학적 소견이 발견될 대 +1점, 급성 간손상의 소견이 없을 때에 -1점을 부여하고, 검사를 실시하지 않았거나 결정할 수 없을 때 0점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 항목은 얼핏 보면 조직학적 소견을 추가해 진단의 정확성을 좀 더 높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독성 간손상을 특이적으로 진단하는 병리학적 진단소견이 현재까지 없는 상황에서는 모순이 발생한다.
즉 RUCAM 척도는 급성 간손상의 원인을 판정하기 위한 진단 척도이기 때문에 그 대상 환자들은 모두 이미 조직학적으로 급성 간손상이 발생한 환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경된 Modified RUCAM 척도를 적용한다면 모든 환자들은 +1점을 받을 수밖에 없어 간 손상의 조직학적 소견을 보이면 무조건 점수를 얻게 되는 8번 항목은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해당 보고서의 문제점을 분석한 장 교수는 “이 보고서는 연구방법의 설계에서부터 문제가 있고, 수집한 증례가 결론을 도출하기에 너무 적고 편향돼 있으며, 증례의 수집에 심각한 선택비뚤림이 있는 것은 물론 평가 척도의 신뢰도와 척도의 사용방법에도 문제가 있고, 증례의 수집 방법이나 절차에도 부적절한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해당 보고서는 타당도를 저해하는 여러 요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연구 결과 자체를 신뢰하기 어렵고, 이 결과를 일반화하기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국가 정책 결정에 이용하기에는 부적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