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몇 달 전부터 오른쪽 어깨가 영 불편한데… 어디 괜찮은 한의사 추천 가능해?” 한 까다로움 하는 친구의 메시지. “너가 봐 주면 제일 좋은데, 너 근무하는 곳이 일반 한의원이 아니니까 내가 드나들긴 어렵기도 하고 여의도가 멀기도 하고 편하게 외래치료 받을 만한 곳이면 되는데… 대신 한약 복용이나 불필요한 패키지 치료를 강매하는 마케팅 안 하는 곳이면 좋겠어.”
아는 의사들이 주변에 많을 친구라서 정형외과나 통증클리닉으로 먼저 가 보는 건 어떻겠냐는 내 제안에 대해서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양방도 가봤지. 효과가 고만고만해. 약 먹고 속만 쓰리고 주사 맞으면 하루이틀 더 아프고.. 병원이 이렇게나 많은데 양방은 맘에 안 들고 한방은 믿음이 안 가고” 하핫. 그랬구나. 일반적인 환자들의 그 흔한 푸념을 내 절친에게서 들을 줄이야… 죽마고우인 내가 하필 한의사라 선을 넘을 듯, 말 듯… 아니 이미 선을 넘은 건지 혼동되는 멘션들이 오가며 결국, 친구 직장 근처의 광고를 과하게 하지 않는 나름 성실한 그리고 상술에 덜 찌들어 있을 것으로 확신이 드는 후배 한의원 한 군데를 추천하는 것으로 우리의 카톡대화는 마무리되었다. 부디 그 친구가 추천받은 한의원에서의 치료에 만족하고 무엇보다 어깨가 많이 좋아졌다는 소식을 전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후배 원장에게는 주의사항 몇 가지를 미리 일러두었으니 적어도 무리수는 두지 않을 것이고 친절이라는 양념을 얹을 터라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본다.
선현경 작가의 ‘잠시멈춤’ 칼럼 모은 ‘하와이하다’
별다른 일정이 없는 토요일의 루틴 중 하나는 가까운 카페에서 아이스라테를 마시며 경향신문 토요판에 실린 신간소개란과 몇 개의 고정칼럼을 읽는 일이다. 선현경 작가의 ‘잠시멈춤’이라는 코너가 좋았다. 선 작가의 글에는 이국적인 하와이의 한적한 삶을 그린 삽화가 늘 배경처럼 실리곤 했었는데 바로 선 작가의 남편인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이우일님의 그림이다. 2017년 10월부터 2019년 1월까지 경향신문에 실린 그녀의 글들은 『하와이하다』라는 단행본으로 완성되어 2019년 9월에 출간되었다.
COVID-19 덕분에 당분간은 하와이는 커녕 사람들 많이 모이는 맛집탐방 마저도 언감생심(焉敢生心)이지만 책제목과 책의 몇 페이지를 들추는 것만으로도 “끼룩끼룩” 갈매기 소리를 환청으로나마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년만에 다시 이 책을 집어들었다. 비키니를 입을 형편이 못 되는 관계로 ‘나는 바다보다는 산 취향이야…’라고 고집 피웠지만 부산대 시절 시간만 되면 어떻게든 경남 양산을 벗어나 해운대나 광안리에 나가려고 애를 썼던 날들을 회상하니 난 바다를, 정확하게는 오션뷰의 산책길들을 더 사랑하고 있었다. 각설하고 이 『하와이하다』라는 책의 한 챕터는 한의사인 나의 시선을 끄는 페이지가 있었으니 아래에 옮겨보는 바이다(p.235∼239).
“이상하게 계속 오른팔이 아파서 팔을 등 뒤로 넘기지 못하고 있다. 혹시 파도를 타다가 부딪힌 적은 없는지, 언제 넘어진 적은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봐도 기억할 만한 게 없었다. 통증은 진통소염제를 먹으면 좀 가라앉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통증 완화에 좋다는 리도카인이 함유된 연고를 발라도 나아지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다 아침에 손 끝이 저린 채로 잠에서 깬 후론 겁이 났다. 미국 병원은 가고 싶지 않았다. 이곳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치료비용을 생각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나았다. 서울에서는 늘 한방병원을 찾았는데 하와이에서도 이런 증상을 치료할 수 있을까? 하와이 친구들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니 역시나 병원은 아무도 권장하지 않는다. 줄라이가 ‘나나’를 소개해줬다. 구십이 넘은 하와이 할머니인데 영험한 능력으로 통증을 치료하는 마사지 전문가라고 했다. 자신도 이 년 전쯤 심한 허리 통증 때문에 만났는데, 몇 번의 마사지로 괴롭도록 아팠던 허리가 말끔히 나아 지금까지 멀쩡하다고 했다. 당장 나나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올 초에 돌아가셨다. 친구들이 다른 마사지사를 알아보자고 해서 그만두자고 했다. 차이나타운에 가서 침이라도 맞아보면 나을지도 모른다. 한국 마트에서 집어온 <2018년 하와이 교차로 블루북> 광고 안내 책자를 뒤적였다. 한국인이 많은 곳이니 한의사가 서너 명 쯤은 나와 있을 것이다. 그 중 ‘느낌’이 오는 한 명을 고를 생각으로 책을 펼치니 너댓 페이지가 모두 한의사의 전화번호다. 종합한방병원도 있고 작은 침술원도 있다. 심지어 하느님의 이름으로 치료하는 한의사도 있고, 氣와 神을 이용하는 한의사도 있다. 하와이에서 칠 년째, 아이까지 키우며 살고있는 친구 희정에게 문자를 했다. 그녀는 보험이 적용되는 곳과 안 되는 곳이 있는데, 보험이 안 되는 곳의 하와이안 의사가 그녀 엄마의 이십 년 된 통증을 두 달 만에 완치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완치된 쪽이지, 병원 이름은 mind and body solution, 진료 과목은 카이로프랙틱. 진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팔다리가 쑤시는 통증은 결국 다 스스로가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일반 통증환자의 흔한 진료 프로세스 엿볼 수 있는 대목
선 작가의 투병기를 읽으며 들었던 몇 가지 생각. 진통소염제 복용–엑스레이를 포함한 영상촬영–그리고 심각하지 않다면 일단은 침이라도 맞아보자는 3단계가 현실적으로도 많은 통증 환자들의 가장 흔한 진료 프로세스라는 점. 또한 아프면 근처 가까운 사람들에게 치료받을 만한 곳을 물어보는 지인찬스를 가장 먼저 고민한다는 것. 그런 면에서 아무리 포털에 유료광고를 하고 지하철과 건물 외벽에 플래카드를 걸어도 입소문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한의원 초밀집지역 아닌 곳이 없다지만 하와이까지 초만원일 줄이야!!! 게다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치료한다는 광고는 무엇이며 氣나 神을 이용한다는 한의사들의 치료는 또 무엇일까!!! 물론 국내 한의대 출신이 아닌 미국, 중국의 중의사 출신도 여럿 섞여 있겠지만 암튼 퉁쳐서 한의사라 불리우는 사람들이니…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의느님들에게 ‘한방사’로 대차게 까이고 있는 건 아닐까?!
일부 한방병원의 일탈…모든 한의사의 명예 실추
훌라훌라스러운 『하와이하다』라는 책으로 북캉스를 하려던 나의 마음은 갑자기 서늘해졌고 지난 7월 칼럼을 막 탈고한 뒤(7월 22일) 내 눈에 들어온 7월 26일자 노컷뉴스(광주CBS 김한영 기자)가 보도한 광주광역시의 한방병원들의 추문에 관한 뉴스는 심계항진(palpitations)을 동반한 심화항염(心火亢炎)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 뉴스의 제목은 ‘네일아트에 찜질방까지… 한방병원의 수상한 영업’이었다. 최근 광주에 난립하고 있는 한방병원들이 병원 안에 찜질방, 마사지샵, 네일샵까지 설치해서 석고마사지, 경락마사지, 네일아트까지 무료로 서비스하며 실비 보험으로 입원할 환자들을 경쟁적으로 유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24일 국민건강보험공단 호남제주지역본부 등에 따르면 광주의 한방병원 수는 현재 86곳(지난 4월 기준)으로 전국 370곳의 한방병원 중 무려 23.2%에 해당하는 숫자이고 광주의 한방병원 입원율은 전국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으며, 진료를 받은 광주 시민 10명 중 3명은 입원을 권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병원마다 불법과 탈법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환자들을 유인하고 있는 바람에 광주의 한방병원들은 ‘나이롱 환자’들이 ‘공짜로’ 놀고 먹으며 ‘쉬어가는’ 야놀자 병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보험사기의 온상으로 손가락질 받고 있는 이러한 한방병원들의 추악한 욕망은 이 기사를 접한 전국의 모든 한의사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왜 부끄러움은 양심을 가진 자들의 몫이어야 하는가. 갓 졸업한 신규 한의사들을 환영하는 곳이 저런 곳들 뿐이라는 게 더없이 안타깝고 그 소굴에서 겨우 탈출하고 나와서는, ‘나는 저들과는 다른 병원을 경영해 볼거야’라는 포부로 결국은 ‘내가 최고 한방병원’만 우후죽순 개원하는 끝없는 경쟁로드에 발을 담그게 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8·15 광화문집회를 분기점으로 대한민국의 코로나19는 다시 한 번 대유행의 고비를 향하고 있다. 이번 고비는 의사들의 파업까지 더해져서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을 더없이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날 총리와 의협의 면담이 잡혀있었지만 마감뉴스를 보니 정부를 신뢰 못 하겠고 예정된 파업을 강행하겠다는 것이 의협의 입장인 것 같다. 의사들은 공공의대 신설, 의대 정원 확대,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원격의료를 4대 악법으로 규정하고 전격적인 철회를 요구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의 한의약정책관실과 한의약육성법 폐지도 아울러 주장하고 있다.
한의학과 한의사를 ‘한방개소주’ 수준으로 보는 의사협회에게 통합의사니 첩약의보가 합리적인 토론 소재가 될 리 만무하다. 그네들이 보기에 한의사들마다 천차만별인 한의학은 객관성, 표준성이 결여된 민간요법 뭉뚱그리 전통문화 정도로 여겨지고 있을 게 뻔하다. 전지구적 코로나 역병의 시국에 우리마저 그들과 핏대를 세우며 여야처럼 대립만 일삼는다면 국민들의 피로감은 가중될 것이다. 단체행동에 나선 의사들도 분명히 이기적이든 공익적이든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국일수록 지혜롭고 차분한 마음으로 내가 속한 공간에서 내 기본적인 소임을 다해야 할 것 같은 다짐은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노컷뉴스에서 고발한 광주 한방병원들의 낯부끄러운 마케팅이 휘몰아치는 가운데에서도 광주에 개원하여 지속적으로 한의원을 잘 성장시키고 있는 한 후배에게 정신승리의 비결을 물은 적 있었다. 한의학적 치료는 개나 줘 버리고 무조건 입원부터 시키고 보자는 한방병원들의 장삿속에 질린 그래서 더욱 합리적인 치료를 찾는 환자분들이 많아 그들에게 질환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본인 치료에 대한 대강의 계획을 설명드리면 오히려 잘 수긍하고 치료 결과도 좋았다는 것이다.
네이버에 환자들이 스스로 치료비 영수증을 첨부해서 병원추천을 하는 코너가 있는데 환자셨던 분이 수십만원짜리 통증클리닉 주사를 수회 맞고도 별 효과가 없었는데 이 한의원 와서 두세번 치료받고 말끔히 나았다고 글을 올려주었고 그걸 본 다른 환자가 그 추천글을 보고 신환으로 내원하게 되어 후배도 알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매너리즘에 빠질 무렵 가끔 이런 고마운 환자들로부터 받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진짜 힘이 되더라는 말도 보태주었다.
네일아트에 찜질방이라는 얄팍한 무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순수한 한의학적 치료로 크고 작은 호전의 임상증례들을 지속적으로 축적할 수 있었기에 오늘날의 한의사들이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먼 훗날 시대적 소명을 다 했다는 이유로 한의사 면허를 반납해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우리가 해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는 내게 치료를 받고자 나를 찾아와 내 앞에 앉아있는 한 환자에게 최고의 치료효과로 보답하는 일일 것이다.
선현경 작가의 하와이 친구 줄라이가 소개시켜 주었다는, 지금은 하늘나라로 떠나신 ‘구십이 넘은 하와이 할머니 나나’처럼 나도 영험한 능력으로 통증을 치료하는 할머니 한의사로 90을 넘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44년을 더 진료해야 한다는 말인가!!! 흠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