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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기사입력 2022.07.0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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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 환자 병동서 본 인간 군상, 외로운 싸움을 해 나가는 모습 담아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환자와 보호자의 이야기에 눈시울
    김은혜 교수, “생의 마지막, 이토록 치열하게 싸운 사람들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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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울하고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는 암환자와 환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가 간행됐다. 저자는 강동경희대한방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를 보듬는 김은혜 임상교수다.

     

    의료인들 사이에서 말기 암 환자를 진료하는 한의사는 한국 의료 시스템에 없는 ‘4차 병원’에서 근무하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암 환자들이 동네 병·의원과 대학병원까지 모두 찾은 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는 곳이라는 의미다.

     

    이들은 다른 의료기관에서 치료할 수 없거나 치료해도 큰 의미가 없다는 말을 듣고도 여기까지 온다.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뭐라도 해보려고 왔어요.” 저자가 환자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두꺼운 진료기록을 들춰 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다고 차마 말하기 어렵다.

     

    대신 저자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럴수록 환자들은 저자에게 마음을 열었고, 두려움을 감당해온 암 환자들의 절망감이 저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들의 노력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을 것 같았다. 이에 말기 암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마주한 절망, 삶의 끝자락에서 회고한 인생,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도 웃고 사랑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 수록했다. 환자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개인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각색을 거쳤다.

     

    이 책은 1장 ‘살려고 받는 치료가 맞나요’, 2장 ‘누가 무덤까지 못 들고 간다고 했나요’, 3장 ‘선생님이 제 선생님이어서 행복했어요’, 4장 ‘가족을 놓아준다는 것’, 5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마주한 암 환자와 환자 가족 이야기를 다룬다. 진료 기록에 ‘기대 여명 1개월 이하’라고 적힌 한 환자는 저자에게 “이제 저 좀 포기해 주세요.” 하고 말하며 절망한 기색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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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3주 동안 같은 상황 속에서 힘든 밤을 보내면서도 치료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한 달 뒤 암 환자는 세상을 달리한다. 환상통을 호소하는 아내에게 진통제 투여를 허락한 다른 환자의 배우자는 얼마 후 아내가 세상을 뜨자 망연자실한 채 저자에게 묻는다. “제가 와이프를 죽인 건가요?”

     

    2부에서는 암 환자의 유산, 가족 관계 등을 두고 환자의 지인이나 가족이 보인 해프닝을 그린다. 유산을 법적 가족에게 상속하지 않았다며 푸념하는 유족, 유명을 달리한 한 환자를 찾은 두 명의 남성 등의 군상이 등장한다.

     

    3부에서는 저자가 언니였으면 좋겠다고 하던 20대 여성 환자, 저자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주겠다고 한 뒤 약속을 지키지 못한 환자 등 저자와 인간적으로 교감했던 환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4부에서는 체육관장 출신 환자의 아들 돌봄, 알코올 중독으로 간암을 맞은 환자의 가족 등 암 환자와 환자 가족의 끈끈한 유대 관계를 그린다.

     

    5부에서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좇는 환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병원에서 인연을 맺고 연인이 된 환자, 치료 속도는 더디지만 암 세포의 크기가 작아져 긍정적인 예후를 보인 환자 등의 사례가 나온다.

     

    번외 편 ‘혼자였다면 버틸 수 없는 나날’에서는 저자 개인의 내력을 알 수 있다. 저자는 혈액종양내과 교수였던 자신의 아버지가 백혈병 환자를 살리기 위해 집에서까지 책과 씨름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찾아갔던 병실에는 대부분 난치병 환자들이 있었다. 저자의 진로 결정에 영향을 미쳤던 기억의 단면이다. 이 밖에도 힘들 때마다 자신의 편을 드는 어머니, 바쁜 순간에 든든하게 자신을 지지해 준 후배와 동료, 은사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았다.

     

    저자는 대한암한의학회 이사 및 대한통합암학회, 대한한방내과학회, 대한한의학회 등 여러 학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친의 영향으로 ‘암 환자를 보는 한의사’의 길을 택했다. 대한한의학회 학술대상 미래인재상, 대한한의학회 학술대상 우수논문상, 대한한의사협회장 우수졸업생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비록 제가 전하는 이야기이지만, 이 글을 읽는 동안에 암 환자들의 인생에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 생의 마지막에서 이토록 치열하게 싸운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누군가 기억해주길 바란다”라며 “이 기억으로 남은 가족들이 좀 더 평안해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밝혔다.

     

    홍주의 대한한의사협회장은 추천사에서 “이 책은 따스한 마음으로 말기 암 환자의 곁을 지키며 위로를 전한 한의사가 전하는 이야기”라며 “한의사가 썼지만 환자가 주인공이며,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환자와 보호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이 비슷한 처지의 환자와 가족 환자 분들에게 따스한 위로와 희망을 전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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