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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의 한의학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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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의 한의학 <8>

자연(自然)과 자연(Nature)

김태우 .jpeg

김태우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의원의 인류학 :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저자

 

닥쳐올 생명들의 고통과 죽음을 한목소리로 우려하는 위기 상황에서, 치료하고 살리는 것을 그 존재 이유로 하는 의학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인류세의 한의학>은, 기후위기라는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에, 의학의 소임을 생각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 글 시리즈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한의학이 가진 포괄적 연결의 관점이다. 의학으로서, 한의학은 몸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지만, 몸만이 한의학의 관심사인 것은 아니다. 인간의 몸과 몸 밖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몸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동의보감』과 『동의수세보원』이 공히, 그 본문의 논의를 ‘천(天)’이라는 글자로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동의보감』이 신형장부도와 함께 기재된 글에서 천(天)과 인(人)의 관계로 논의를 시작하고, 첫 문(門)인 신형(身形)을 논하기 위해 천형(天形)을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다.1) 『동의수세보원』이 하늘[天]의 기틀로 그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동아시아 의서의 마땅한 순서일 것이다. 『동의보감』에서 천형과의 관계 속에서 신형을 논하듯, 『동의수세보원』에서 천기(天機)에 이어서 인사(人事)를 논하는 것은2) 포괄적 관계망 속에서 몸을 바라보는 한의학의 관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천형-신형, 천기-인사와 같이 몸 안팎에 대한 관심은, 기후위기 시대 한의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 중요한 부분을 말하고 있다. 

 

한의학의 연결의 관점은, 분절의 위기 시대에 치유의 관점이 될 수 있다. 기후위기의 시대는 분절의 관점이 강조되어 있는 시대다. 탄소를 태워 에너지를 만드는 것은, 인간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저기 멀리 떨어져 있는 자원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었다. 자원이 저장된 자연과 인간이 기거하는 사회는, 분리된 공간을 점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이것은 관계 속에서 하늘과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과 차이가 난다. 이러한 차이는 자연(自然)과 자연(Nature)을 살펴보면 보다 분명해 진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자연’은 번역어다. 자연(自然)은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지만, 또한 Nature를 번역하기 위해 차용된 말이기도 하다. 서양 지식의 번역에 근대화의 명운을 걸었다고 할 정도로, 개항기 일본은 번역에 열을 올린다. 이때 우리가 지금 일상으로 사용하는 다수의 말들이 번역된다. ‘사회,’ ‘개인,’ ‘연애,’ ‘존재,’ ‘자유’ 등은 그때 번역된 단어들의 일부 예시다.3) 이 말들을 사용하지 않고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들 번역어들은 지금 우리 언어생활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을 이룬다. ‘자연’도 이때 번역된 단어 중 하나다. 당시 일본의 번역자들은, 외래어의 의미에 맞게 한자를 구성하기도 하고(‘환경(環境)’이 여기에 해당), 번역을 위해 동아시아에 없는 개념을 조어하기도 했으며(‘객관(客觀)’이 여기에 해당), 동아시아 고전에서 비슷한 말들을 차용하기도(‘위생(衛生)’이 여기에 해당) 했다. 자연은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다. 

 

세 번째 번역방식의 경우에 있어 흥미로운 것은, 똑같이 발음되지만 (위생과 위생, 자연과 자연 같이) 원래 의미와 번역된 말의 의미의 차이는 작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차용된 말의 원래 의미는 희석되고, 번역하려고 한 말의 의미가 차용된 말의 의미를 대체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연(Nature)이 번역되면서 자연(自然)은 변방으로 밀려났다. 위생(衛生)이 『장자』에서 차용되었지만, 본래의 의미는 가물가물해지고 위생(Hygiene)의 의미만 부각되는 경우와 비슷하다. 하지만 원래의 의미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관계, 연결의 관점이 요구되는 기후위기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자연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러한 설명이 먼저 나온다. 사람과 떨어져 있는 것을 자연이라고 한다. 인위, 인공, 그리고 인간과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자연이다. 말의 힘은 강력하다. 우리가 번역어 자연을 사용하고부터, 자연은 인간과 분리된 무엇으로 존재한다. ‘자연’이라고 말할 때 이미 자연은 ‘저기 멀리’ 떨어져 있게 된다. 동시에, 자연과 동떨어진 인간이 ‘여기’에 위치하게 된다. 자연(自然)에서 자연(Nature)으로의 전이는, 연결된 세계의 이해에서 분절된 세계의 이해로의 전이라고 할 수 있다. 

 

김태우(교체사진).jpg

 

‘자연보호’는 기후위기 시대에 특히 필요한 언어이고 활동이지만, 여기에도 분절의 관점은 녹아 있다. 동떨어져 저기 존재하는 자연은, 여기에 있는 인간이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구도가 ‘자연보호’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말에는 인간과 분리되어 있는 자연과, 수동적인 자연이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이해는 “인간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자연 이해와 차이가 난다. 이 『도덕경』 문장에 대한 왕필(王弼)의 주석을 보면, 존재들의 연결되어 있음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람은 땅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아야만 그가 온전하고 안전해질 수가 있다...땅은 하늘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아야만 생명을 온전하게 생성해낼 수 있다...하늘은 도에 어긋하는 짓을 하지 않아야만 생성을 온전히 관장할 수 있다...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어기지 않아야만 비로소 그 최종적 본성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4)

 

이 주석의 문장은 기후위기 시대에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동안 인류는 얼마나 땅에 어긋나는 일들을 해왔는가? 하늘에 어긋나는 짓을 해왔는가? 기후위기를 초래한 어긋나는 일들이, 안전하지 못한 인간과, 온전하게 생성하지 못하는 생명들의 어려움을 초래했다.

 

‘자연보호’에서의 자연과 본래 자연의 의미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자연보호는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추구해야할 일이지만, 보호의 대상으로 저기 있는 자연의 관점으로는 이 초유의 위기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자연은 인간이라는 만물의 영장이 시혜를 통해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연결되어 있으므로 본받지 않을 수 없고, 어긋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인간과 땅, 하늘 그리고 자연의 관계다. 인간이 자연에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땅, 하늘, 자연은 본받아야할 관계로 이어져 있다. 연결되어 있으므로 서로 본받음을 통해 안전하고, 온전하고, 생성할 수 있다.

 

『동의보감』과 『동의수세보원』이 함께 ‘천(天)’으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연결의 관점 때문이다. 인간-땅-하늘-자연의 연결의 관점과 같이 한의학은 몸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건강과 질병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몸과 몸 밖 자연의 관계를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의 시대는, 천(天)과 인(人)의 관계가 고리타분한 클리셰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닥쳐올 질병들은 이러한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의학적 대처에 대한 적극적 논의를 시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몸을 이야기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신형(身形)’을 말하기 위해 ‘천형(天形)’을 이야기하고, ‘인사(人事)’와 ‘천기(天機)’가 연결한 논의가 필요하다. 기후위기의 시대는 몸 안만을 바라보지 않는 의학을 요구한다. 그 시선에서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포괄적 연결의 관점이 요구되고 있다. 몸만을 바라보는 의학은 기후위기 시대에 지속가능한 관점과 돌봄을 제공하지 못한다. 인간과 자연을 떨어뜨려 보는 관점도 이제 과거의 것이 되어야 한다.

 

앞에서 인용한 『도덕경』의 문장에서 ‘본받는다’라고 한 것은, 원문의 ‘法’을 표현한 것이다. 본디의 순리에 거한다는 말이다. 인간-땅-하늘-자연은 본디의 순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 순리에 거하는 것을 통해 사람도 건강하고 하늘땅도 온전한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순리에 법함에 의해 인간과 자연도, 의학과 환경도 연결되어 있다.


1) 인용 출처를 밝히는 작업에 충실한 『동의보감』에서 그 출처를 밝히는 부분[“孫眞人曰,” “乾鑿度云”]을 제외하면, 신형장부도[“天地之內以人爲貴”]도 신형문[“天形出乎乾”]도 모두 “천(天)”으로 시작한다.

2) 『동의수세보원』은 천기[“天機有四”]와 인사[“人事有四”]를 말하는 것으로 본문을 시작한다.

3) 여기에 나열한 단어들은, 근대 일본에서 번역어가 새롭게 자리를 잡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 『번역어의 성립』(야나부 아키라 저, 김옥희 역 (2011))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번역어들이다. 

4) 여기서 왕필주 번역은 도올 김용옥(2020) 『노자가 옳았다』를 따랐다.

김태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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