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교수
경희대 기후-몸연구소, 한의대 의사학교실
모순의 여름
여름이다. 이 글이 신문에 게재되는 8월은 한여름의 시기이다. 예년과 같이 여름이 되었지만, “여름이다”라는 말에 배어있는 어감이 전과 같지 않다. “여름이다”에 흔히 동반되어 있던 환성, 기대, 설레임은 퇴색한 느낌이 분명하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한여름은 방학이고 휴가철의 기간이지만, “여름이다”라고 하면 이제 어떤 부정적 감정이 뒤섞인다. 가수 조용필이 불렀고, 이승기가 다시 부른 “여행을 떠나요” 같은, 여름을 찬미하는 곡도 느낌이 전과 같지 않다.
여전히 여름철에 휴가를 가고 여행을 떠나지만, 그곳에서도 재난문자는 어김없이 날아든다. “폭염,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무더운 시간 야외활동(작업) 자제, 그늘지고 시원한 곳에서 정기적인 휴식, 충분한 물 섭취로 온열질환 예방바랍니다.1)” 최고기온 기록이 수시로 갱신되고, 열대야(최저기온 25도 이상), 초열대야(최저기온 30도 이상)의 행진이 기록적으로 이어지는 여름은, 두렵고, 피해야할 어떤 기간이 되어가고 있다. 올해 여름에는 폭염으로 프로야구 경기가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 8월2일에 계획되어 있던 엘지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트의 울산 경기는 폭염으로 인한 최초의 경기 취소 기록으로 남았고, 8월4일에도 두 경기가 폭염으로 열리지 못했다. 높은 기온에도 강행한 8월3일 잠실 경기에서는 온열질환으로 관중이 응급차로 병원으로 후송되기도 했다.
“호우주의보 발효... 논밭 물꼬, 배수로 작업자제, 하천, 계곡 출입금지 및 야영금지, 산사태, 급경사지, 인명피해 우려지역 접근금지.” 급속하게 만들어지는 비구름과 집중호우로 한반도의 강우 방식이 바뀐 상황에서, 휴가지는 대피해야 할 “인명피해 우려지역”으로 갑자기 전환되기도 한다. 이제 “일기예보”는 지금의 날씨 패턴에 맞지 않게 되었다. 하루의[日] 기후[氣]를 예측하는 일기(日氣)예보가 아니라, 반나절 단위, 혹은 4시간 단위의 (반나절기예보, 네시간기예보와 같은) 날씨 예보 방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여름이 예전 같지 않다. 여름은 이제 모순적이다. 여름은 여전히, 도시를 떠나 휴가 가는 때인데, 그 휴가지가 너무 뜨겁다. 휴가 기간 중 날 잡아 야구장 표를 예매했는데, 야구장의 지면 온도는 50도가 넘어간다(경기가 취소된 울산의 야구장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즐거운 휴가의 때인데 마음이 편치 않다. 이렇게 여름을 즐겨도 되는가? 과연 즐길 수 있는 여름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위험스러운 고온의 시기를 휴가 여행으로 즐기려는 모순이 지금의 여름을 과거의 여름과 차별화시킨 ‘꺼림칙한 휴가,’ ‘의문스러운 휴가’와 같은 형용모순이 말이 되는 시기가 지금의 여름이다. 이 모순은 기후위기 시대에 문화와 기후가 충돌하는 현상 중 하나다. 문화는 지속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기후위기 시대의 기후는 예상을 벗어나는 변화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모순이 드러난다.
호주에서는 기존의 휴가문화를 수정하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타즈메니아대학의 데이비드 보우맨(David Bowman) 교수가 호주사회가 실천하는 12월과 1월 휴가철이 산불 시즌과 겹친다는 이유를 들어 그러한 제안을 하였다2). 매년 산불이 만연하는 남반구 호주의 여름철인 12월과 1월 대신에, 가을에 해당하는 3월과 4월로 휴가 기간을 바꾸자는 제안은 호주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2019년 2020년 사이 여름에 발생한 호주 최악의 산불은 휴가철을 바꾸자는 제안을 크게 회자되게 하였다.
기후위기 시대에 지금까지 자연스러웠던 것들이 상충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계절에 맞게 해오던 일들을 예전과 같이 할 수 없다. 농사일도 마찬가지다. 열매가 열리고 맺힌다는 의미에서 왔다는 “여름”이라는 계절은 그만큼 농사일이 바쁜 기간이다. 『내경』의 표현으로 하면, “번수(蕃秀)”의 하삼월(夏三月)은 하늘 땅의 기운이 다른 어느 계절보다 더 열심히 교감하는 시기이다3). 그만큼 식물들도 “번수”하게 변화하니, 잡아주고, 뽑아주고, 거둬들이는 농사일이 바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온이 고공행진하는 지금의 여름은 농사일을 위험에 노출시킨다. 들에 나가지 말라는 문자가 수시로 쏟아지는 여름이다.
중첩된 모순
키리바스는 여름의 나라다. 적도 부근에 위치해 있어서, 여름이 아닐 때가 없다. 하지만 키리바스도 이전의 여름과 다른 여름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항상 여름이지만 나름의 계절 변화가 있었던 키리바스에 그 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고 있다. 건조한 시기인 아우 미앙과 습한 시기인 아우 마이아키의 순환이 없어지고, 아우 마이아키만 계속되는 힘든 여름이 이어진다. 거기에 최고기온 마저 올라간다. 이미 더운 적도 부근도 기록 갱신하는 기후변화의 고온을 피할 수 없다. 적도 부근도, 고위도 지역도 모두 기온이 상승하지만, 문제는 저위도에서 더 심각하다.
무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기온은 기록을 갱신하고 있지만, 그래도 키리바스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야 한다. 어업을 위해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고, 코코넛 열매를 작업하기 위해 밖에서 일을 해야 한다. 코코넛 열매껍질을 깎아내고, 햇볕에 말리는 코프라(copra) 작업은 키리바스 사람들의 주요 수입원이다.
많은 키리바스 사람들이, 특히 수도 타라와 밖의 외섬 사람들에게 코프라 작업은 필수적인 경제활동이다. 작업한 코프라를 정부에서 수매하고 그 대가로 현금을 지불하는 방식은 지금의 키리바스 사회를 지탱하는 경제활동이면서 또한 사회복지의 형식이다. 하지만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코프라 작업은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 되고 있다(첨부한 사진은 햇볕에 말리고 있는 코프라를 보여준다. 이를 위해 코코넛 열매를 따고, 모으고, 이동시키고, 껍질을 벗기는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여름은 모순적이다. 예전의 그 계절이 아니므로 모순이 된다. 모순은 남쪽으로 갈수록 더 심각하다. 최근 사회과학에서 국제 지역 간 차이를 말할 때 사용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와 글로벌 노스(global north) 사이의 격차는 기후문제에서도 분명하다. 글로벌 노스에서도 여름은 심각하지만, 그 심각성의 정도가 글로벌 사우스에서 가중된다.
특히 사우스의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문제는 심화된다. 고온 갱신의 여름 햇볕 아래에서라도 일을 해야만, 그나마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온열병으로 인한 건강 문제와 먹을 것을 먹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연결된 모순
남쪽에 모순이 중첩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온실가스 배출자와 그에 의한 피해자가 일치하지 않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노스에서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사우스에 더 심각한 피해가 집중된다. 키리바스의 온실가스 배출 기여도는 0%이지만, 해수면은 높아지고, 섬에서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또한, 상승하는 고온에도 밖에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지금 한국에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키리바스가 그렇게 멀지 않은 느낌이다. 비행기를 네 번 갈아타고 이동한 한국과 키리바스의 거리는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모두 멀지만, 키리바스의 문제가 딴 나라만의 문제인 것은 아니다. 키리바스의 해수면 상승은 남의 일이 아니다.
기후위기의 문제를 키리바스는 먼저 경험하고 있지만, 또한 모순이 중첩되어 있어서 더 가시적이지만, 그 위기의 문제들은 노스의 국가들에도 재연되고 있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여름의 모순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여름이 모순된 것은 이전의 여름 기후와 다르기 때문이다. 여름의 모순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또한 모두 모순을 경험하고 있다. 그 여름의 모순으로 키리바스와 한국은 연결되어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지구는 모순으로 연결된 세계로 드러나고 있다.
1) 이 글에서 예시로 든 재난문자는 국민재난안전포털에 제시된 실제 재난문자를 참고로 하였다. 다음의 웹사이트 참조. https://www.safekorea.go.kr/idsiSFK/neo/main/main.html
2) 다음 참조. David Bowman(2020) “As Bushfire and Holiday Seasons Converge, It May Be Time to Say Goodbye to the Typical Australian Summer Hodiday,” The Conversation.
3) 『내경內經』 「사기조신대론四氣調神大論」 중 “夏三月 此謂番秀 天地氣交 萬物華實”를 참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