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오는 15일 ‘79주년 광복절’을 맞이하는 가운데 본란에서는 ‘한국의사학회지’에 게재된 ‘일제강점기 한의약계 독립운동 유형과 특징(박경목 충남대 국사학과 교수)’이란 제하의 논문을 통해 한의약계 독립운동의 전반적인 특징을 알아본다.
이 논문에서는 한의학을 익힌 한의사와 한약재를 취급하는 사람들이 삶의 현장에서 펼친 독립운동에 주목, 일제강점의 현실을 타개하려 했던 그들에 대해 각종 통계를 통해 객관화된 데이터를 도출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가기록원에 소장돼 있는 독립운동가 판결문을 활용, 판결문 내 직업 표기에 의생(한의사)을 비롯해 매약상·매약행상, 한약종상·약종상, 의업, 침술업, 침의 등 한의약계 종사자로 판단되는 인물을 검색했다. 판결문 이외에도 수형기록카드와 일제측 경무국 보고서 및 기타 인물 자료 등도 함께 참조했다.
이같은 자료를 기초로 이 글에서는 한의약계에서 독립운동 전선에 나섰던 인사들의 △직업별 △출신 지역별 △연령대별 △운동계열별 △죄명별 △형량별 통계를 추출해 데이터화해 분석해 참여군의 특징 및 독립운동 유형을 객관적으로 파악코자 했으며, 더불어 독립유공자 및 수형기록카드 데이터와의 비교·분석을 통해 한의약계 독립운동의 특징을 제시했다.
집단적 대중투쟁보단 개인투쟁 및 장기적·계획적 투쟁 진행
우선 한의약계 인사 중 판결문을 통해 세부 직업이 확인되는 인물은 112명으로, △약종상(36명·32.14%) △한의사(33명·29.46%) △매약상(30명·26.79%) 등의 순이었다. 한의약계 종사자의 경우 매일 매일 대중과 직면하는 사람들로, 한의사는 의술을 일반에게 직접 시술하고, 매약상과 약종상은 약재를 취급하면서 면·군 단위, 크게는 도·전국 단위, 해외와의 거래로 활동 폭이 넓은직업이다. 즉 삶의 현장과 맞닿아 있는 그들은 일제강점기 겪었던 한국민의 현실과 민족적 차별을 매일 매일 체감했으며, 이들이 나섰던 독립운동은 민족적 대의인 동시에 삶의 현장에서 펼친 생존투쟁이라 할 것이다.
또한 나이의 경우에는 10대가 3명으로 극소수인 반면 20∼60대에 걸쳐 고르게 분포하고 있는데, 이는 장기간 숙련이 필요한 한의사라는 직업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되며, 더불어 5, 60대의 독립운동 참여비율이 다른 직능에 비해 높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운동계열은 △국내 항일(61명) △3·1운동(45명) △만주 방면(23명) △의병(16명) 등의 순으로, 독립유공자 1만7748명의 운동계열과 유사한 분포율을 보인 가운데 국내 항일 계열이 19.98% 높아 상대적으로 국내에서의 독립운동 비율이 높았던 특징이 있다. 또한 의열투쟁의 경우에는 한의약계의 참여 수치는 적지만, 독립유공자 그룹과의 비교 비율에서 2.31% 높게 나타나, 투쟁 방법에 있어 직접적인 타격형 투쟁의 비율이 높고, 집단적 대중투쟁보다는 개인투쟁과 장기적·계획적 투쟁 방식을 선택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 글에서는 한의약계의 운동계열의 특징을 △국내 항일과 3·1운동, 만주 방면 계열에서의 참여 활발 △독립유공자와 비교시 국내 항일과 의열투쟁 분야에서의 참여율이 높음 △3·1운동과 같은 대중투쟁보다는 개별투쟁 및 장기적·계획적 투쟁의 참여 비율이 높음 등으로 분석했다.
한의약계 인사들, 민족주의 노선 ‘견지’
또한 운동노선에서는 총 19가지로 세분화한 가운데 3·1운동의 참여가 45명(27.44%)로 가장 높았고, 뒤를 이어 ‘독립운동단체에서 활동’ 33명(20.12%), ‘의병’ 16명(9.74%), ‘민족종교 운동’ 12명(7.32%) 등의 순이었다.
이중 독립운동단체의 참여율은 대한독립애국단과 노인동맹단, 대동청년당 등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대한독립애국단에는 나병규·문봉의·조종대·이연수·이기헌이, 노인동맹단에는 강우규·김치보·안태순이, 또 대동청년단에는 김관제·민강 등 한의약계 인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죄명은 △보안법(45명, 34.35%) △대정8년 제령 제7호(29명, 22.14%) △치안유지법(15명, 11.45%) △모살미수(8명, 6.11%) 등의 순으로 나타나 3·1운동 참여자 비율이 높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특징적인 부분으로 1925년 5월 치안유지법 공포 이후의 수감 비율이 낮았다는 점과 사회주의·공산주의 계열의 운동노선이 적었다는 점이다. 이는 한의약계 인물들 대부분이 민족주의 성향이라는 점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한의약계 인사들은 전통적 의학을 수학해 공산주의보다는 민족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형량의 경우에는 징역 5년형을 기준으로 그 이상의 형량이 수형기록카드 기록 인물보다 비율이 높고, 그 이하는 낮았다. 이는 비교대상에 비해 한의약계 인사들이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투쟁을 벌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조종대, 나병규, 강우규, 김병록 및 3·1운동에 참여한 고익진, 김보곤, 신선명, 이가순, 이윤석, 이중혁, 정광순 등 기독계열의 인사와 변태우 등 천주교 신자가 한의약계에 포진해 있었다.
더불어 한의약 종사자로 이동과 회합 및 한약방 운영이라는 이점을 활용, 독립운동을 전개한 경우도 있다. 실제 유경집·김치보는 자신이 경영하는 한약방을 연락 거점이나 자금 수합의 거점으로 활용했고, 민강·박성수·이원직 등은 한의사 또는 약종상이라는 직업의 이점을 활용해 문서 배포, 군자금 모집을 전개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다.
한의약 종사자라는 직업적 특성 적극 활용
이밖에도 민족종교 운동도 두드러지는데, 흠치교·청림교·태을교·무극대도·선도교·정도교·증산교·태극교 등의 종교에 입교해 12명의 인사가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들 인사들은 주로 ‘치성금’의 형태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고, 종교적 신념을 독립운동과 연계해 포교 활동에 주력했다. 이같은 사례는 한의약계가 사회주의·공산주의 노선보다 민족주의 노선에 치중된 양상을 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다.
“한의약계의 독립운동은 직업의 특성을 활용해 다양성, 직접적 타격, 민족주의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힌 박경목 교수는 “우선 일본군과 직접 교전하거나 고위 관리, 친일파 처단, 일제 주요 기관에 타격을 입히는 격렬한 투쟁 방략을 택했다”며 “또한 장기적·계획적 투쟁을 전개, 자신이 처한 상황에 상응하는 전략을 취하면서 독립운동 단체에 참여하거나 민족종교 운동 등 지속적인 투쟁을 해나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내·외에서 한약방이라는 거점을 통해, 그리고 한의사라는 직업적 특징을 적극 활용해 사람을 모으고, 독립운동의 연락 본부 및 자금 조달 역할에 주력할 수 있었다”며 “더불어 전통의학·기독교·민족종교 등 민족주의 노선의 흐름이 강하게 나타나며,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노선의 비중이 낮은 것도 특징이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박 교수는 “이번 논문에서 분석한 164명 가운데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은 인물은 총 93명(56.71%)으로, 나머지 약 43%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앞으로 적극적인 자료 발굴과 연구를 통해 한의약계의 독립운동이 한국 독립운동사의 한 분야로 조명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