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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4일 (일)

[시선나누기-36] 나의 가수

[시선나누기-36] 나의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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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 (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대여, 그 무엇을 찾아 바삐 걸어가는가? 세월은 그대 뒤를 따라서 째깍째깍 가는데.’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무슨 생각이 떠오를까?

‘아무리 아름다운 날도 다시 오지 않는걸, 아무리 빛나는 청춘도 다시 오지 않는걸.’

이런 말을 들으면 내 안에서는 어떤 마음이 일어날까? 녹슨 쇳조각이거나 탁하게 고인 웅덩이같이 ‘마음’이란 것이 거기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청춘 시절에 이 말을 들었다. 정확하게는 이 노래를 들었다. 아아, 나는 그 시절보다 나이 먹고, 이 글을 쓰느라 오래 잊고 있었던 노래를 읊조린다. ‘그대여, 그 무엇을 찾아’ 노랫말을 떠올리느라 두 번 세 번 읊조린다. 읊조리는 내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번지는 것을 나는 느낀다. 오랜만이다. 얼마나 오래 이 노래를 잊고 살았나. 노래는 뒤이어 말한다. 

‘꿈을 안고 살아가는 삶이 때론 바보같이 보여도,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뜻대로 가질 수 있지.’


그대여, 그 무엇을 찾아 바삐 걸어가는가?


무대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이 부분을 노래할 때 가수는 왼손에 마이크를 붙잡고 오른손을 하늘로 뻗어 올린다. 집게손가락을 곧게 펴서 어딘가를 가리키면서, 마치 높은 어딘가에 꿈이란 게 있다는 듯이, 나는 지금 꿈꾸고 있다고 말하는 듯이,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으면서, 사람들을 향해 우리 함께 꿈꾸자는 듯이.


마지막엔 선율이 사라지고, 드럼 소리와 손뼉 소리가 박을 짚으며 가수의 목소리를 데리고 허공으로 뻗어간다.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발밑만 보며 걷던 무렵이었다. 출근과 퇴근과 수입과 지출과 어제와 오늘에 급급하던 날들이었다. 첫 소절을 들으며 나는 나를 향해 묻는 것이다. ‘그대여, 그 무엇을 찾아 바삐 걸어가는가?’ 


<직녀에게>를 부른 가수였다. 풋풋하고 치기 어린, 그러면서도 한없이 어리숙하던 이십 대의 내가 좌충우돌 비척거리며 듣던 노래였다. 멋모르고 서럽던, 그래도 알 수 없는 힘이 생겨나던 노래였다. 세상을 배우느라 머릿속은 뒤죽박죽이고,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진리는 무엇인지 헤맬 때였다. 역사와 개인은 무엇인지, 인간은 무엇이고 산다는 건 무엇인지, 허방에 발이 빠지면서도 당장 오늘을 살아야 하던 때였다. 그런 때에도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는 노래는 나를 잠시 사람이게 했다. 그 가수를 만난 것이다. 가수는 여전히 세상과 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책을 출간하고 가수에게 시집을 보냈다. 가수는 먼데 살고, 소소한 인연으로 가끔 소식을 전하고, 축하공연 무대에 초청하기도 하며 세월이 흘렀다. 책을 받았다는 답도 없이 일 년이 지났다. 내 글이 그다지 마음에 닿지 않았나 보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드문드문 있었다. 그리고 새봄에 연락이 왔다. 내가 사는 곳에서 콘서트를 한다고 했다. 시간이 있으면 보러 오라고 했는데, 그 말끝에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이렇게 덧붙였다. 


“보내준 시로 노래를 만들어 봤어요. 괜찮다면, 오늘 처음 무대에서 부를 건데, 본인 노래니까 와서 한번 들어봐도 좋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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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운영위원이라면서요? 


잠시 말을 잃었다. 시집 보낸 것도 잊은 무렵이었다. 내가 쓴 시에 곡을 붙인 것도 놀랍고 고마운데, 그걸 공연에서 부른다고 한다. 그것도 내가 사는 곳에서, 처음으로. 그걸 사흘 앞두고 연락을 해서는, ‘괜찮다면’ 불러도 되겠냐고 묻는 것이다. 


부랴부랴 표를 예매하려는데 매진이었다. 코로나 시절이었다. 금지되었던 예술 공연들이 객석을 한 칸씩 띄우는 조건으로 다시 열리던 즈음이었다. 대공연장을 한 칸씩을 비우느라 표가 일찌감치 동났다. 내 시로 만든 노래 공연에 가수에게 직접 초대받았는데 정작 표가 없어서 못 가게 생겼다. 허탈하게 웃었다. 


얘기를 들은 가수는 스태프 명단에 나를 올려놓겠다고 배려해 주었다. 결국 나는 추가된 스태프 인원으로 입장해서 공연을 볼 수 있었을까? 가수가 전화했다. “아니, 운영위원이라면서요? 참, 나. 알아서 들어오쇼!”


내가 운영위원이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대관을 투표하는 한시적인 자격인 데다, 운영위원이면 표 한 장쯤 구할 수 있다는 생각도 못 해 본 숙맥이었다. 나는 웃었다.

‘날개가 붙어 있던 자리, 가려워 긁으면, 늘 손가락 한 마디가, 한 마디가 모자란 그곳’ 


노래를 들은 친구가 어땠을 것 같아요?


가수는 <견갑>을 노래했다. 가슴을 후비듯 파고드는 목소리였다. 나는 날았던 적이 있었지... 그 아래 계단처럼 숨어 있는 날개를 상상해, 상상해... 가수의 말로 들려오는 또 다른 <견갑>을 나는 벅차게 감상했다. 마임이스트가 절박하게 숨죽이며 날갯짓하던, 툭 꺾어 내리던 야윈 팔이 떠올랐다.


그리고 한참 뒤 그가 매달 벌이는 공연 무대에 나를 초대했다. 나는 내가 쓴 시를 읽고 얘기를 나누었다. <바위섬>의 가수는 여전히 그가 사는 지역과 사람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노래하고 있었다.


시집을 받고 나서 그저 잘 받았다 인사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오래오래 시집을 읽고 밑줄을 긋고, 그러다가 밑줄 그은 말들이 노래가 되었다고 했다. 노래를 만든 뒤에야 연락한다고 했다. 그저 고마웠다. 


 

연극 하는 친구가 있는데, 오래 고생하다 드디어 조그만 극장을 열게 되었는데, 개관식에 못 가보고 뒤늦게 찾아가 친구를 위해 <견갑>을 불러주었다고 했다. “노래를 들은 친구가 어땠을 것 같아요?” 친구는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시가, 노래가 한없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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