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우수성 설명할 수 있는 통로 절실
한의학 지식과 경험 세계속에 널리 전파
“현재 우리는 세계 각 국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능력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분명 풍부한 한의학 지식과 기술을 보여주고 이해시킬 수 있다면 그들보다도 월등히 뛰어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지난 2001년부터 몽골 한·몽 친선한방병원에서 국제협력의로 활동하다 최근 귀국한 김중길 국제협력의(원대 순천한방병원 제3내과). 그는 한의학이란 뛰어난 치료기술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를 효과적으로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방법의 부재가 가슴아프다고 지적한다.
2001년 한·몽 친선한방병원 개원
김 원장은 “그동안 우리는 우리를 세상에 알리는데 너무나 소홀히 했다”며 “몽골에서 다양한 나라의 의사들과 환자들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한의사 스스로 다른 외국인들에게 한의학의 우수성을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만 제대로 된다면 세상 어디에서 누구와 경쟁을 한다손 치더라도 충분히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이 근무한 한·몽 친선 한방병원은 한의협과 KOMSTA의 협력 지원과 함께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의 몽골 방문 기간 중 한·몽 정상회담을 통한 몽골 원조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졌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2001년 10월5일 문을 연 한·몽 친선한방병원은 진료실 3개, 방사선실, 임상병리실, 물리치료실 등을 갖추고 있다. 의료인력은 한국 한의사 2명(정부파견의 1명, 국제협력의 1명), 몽골 전통의사 3명, 몽골 의사 2명(방사선, 임상병리) 등이 근무하고 있다.
특히 90년대 사회주의 체계가 붕괴되면서 몽골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동안에 병원을 새로 짓거나 의료인 교육에 투자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나마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의 지원이 몽골의 보건의료 환경 개선에 도움을 주고 있다.
김 원장은 “몽골 의사 월급이 약 40$ 정도다. 하지만 개인장사나 운전기사로 일하면 약 100~150$ 정도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 4인 기준 한 가족의 생활비인 약 300$ 정도에는 턱없이 부족해 의사 직분에 대한 자긍심보단 생활을 위해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서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몽골 생활에서 큰 보람을 느꼈던 것은 젊은 전통몽의사 2명과 같이 환자를 진료하며 함께 느끼고 배우면서, 전통의사로서의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고 했던 점이란다.
하지만 많은 보람만큼 아쉬움도 컸다는 그. 특히 최신 의료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없었다는 점이다. 몽골은 70여년 동안의 러시아 지배에 따른 영향이 크다. 최근 새롭게 도입되는 대부분의 의료지식이 영어화되어 있다. 이같은 환경에서 이를 터득할 수 있는 몽골내 지적 수준이 아직 미흡하다. 이에따라 새로운 의료정보에 목말라 할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이 있다.
외국인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영역화해야
또 몽골에는 한국 의약품 수입이 금지되어 있다. 이런 관계로 한약물 치료가 사실상 어렵다. 또한 한방의료기기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실상은 제대로된 한의학 효능 효과를 널리 전파할 수 있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는 이같은 환경에 좌절하지 않았다. 몽골의 전통몽의사들과 밤낮 부대끼며 열심히 공부했단다. 당시의 고생이 먼 훗날 아쉬움 이상의 더 큰 재산으로 다가올 것임을 확신하며.
특히 김 원장은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해선 큰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 못지않게 작고 사소한 것들부터 꼼꼼한 챙겨야 한다고 말한다.
“몽골에서 생활하는 동안 외국인들이 한국 한의학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알고 싶어했다. 그러나 협회 및 여타 한의학 관련 홈페이지의 자료들이 대개 영역화되어 있지 못해 안타까왔다”고 지적하는 김 원장.
김 원장은 “협회, 한의학연구원, 콤스타 등은 한국 한의학을 대표하는 곳”이라며 “이들 싸이트는 외국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든 자료 및 서적들을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번역해 놓는 작업을 해야 한다. 또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 한의사들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네트웍의 구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