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만드는 것은 ‘선배 몫’
경희한의대 기초학 교실 연구지원금 2억원 기탁
“기초가 튼튼한 학문이라야 미래 발전도 약속할 수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거센 바람이나 어려운 시련에도 자생력을 갖고 굳건하게 생존해 가듯 견고해야 할 한의대 기초교실이 자금사정으로 운영이 어렵다는 학교 관계자의 말을 전해 듣고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지난 23일 경희대 총장실에서 김병묵 총장에게 1억원의 한의대 기초교실 연구자금을 기탁하고 문을 나서는 김연수 원장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모교인 경희한의대의 기초학교실 육성지원은 곱씹을수록 잘 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 원장의 한의학육성자금 기탁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경희한의대 동문회장 임기를 끝내면서 1억원을 기초한의학연구에 사용해 달라며 기탁한데 이어 올해 또 다시 기초학 교실 지원을 위해 써달라며 1억원을 기탁한 것이다.
세상인심이 그렇듯 사람들은 취임과 함께 기금을 내는 관례와 달리 오히려 물러나면서 거금을 쾌척한 점은 그래서 빛을 발한다.
그의 한의약육성자금 기탁 행보는 수 천년의 경험들이 응집된 한의학임에도 비과학적으로 폄하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던 차에 한의학도 이제 현대화, 세계화, 보편화의 길로 나가야 한다는 평소 생각 때문이다.
“한의대를 졸업하고 대부분 개원을 선호하는 현실에서 별 매력이 없는 기초학을 자진해서 전공하겠다는 후배들에게 최소한의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은 선배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후학에 대한 돈독한 애정은 오래전부터 관악구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 전달이나 한의대 총동문회장 시절 매년 10여명에게 혜택을 준 장학사업 실천에서도 엿볼 수 있다. 결국 오래 전부터 해왔던 사업을 한의학기초교실 지원으로 실천에 옮겨온 것이다.
한 때 법관을 꿈꾸며 때 법학을 전공했던 그가 ‘한의학의 묘한(?)매력’에 반해 한의학을 천직으로 삼게 된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며 짓는 웃음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녹아있는 듯 했다.
“한방무료진료실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봐요. 몸이 아파도 찾아갈 곳이 마땅치 않았을 뿐 아니라 한방무료진료실은 찾아볼 수 없던 현실에서 한방무료진료소 설치요구는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죠.”
진료실 개소와 함께 다녀간 환자들 간에 입소문이 나고 방송국에 알려지면서 대한뉴스 1220호에 소개되는 등 한 때 세간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힘이 있을 동안 김 원장은 한의원을 직접 찾아오지 못하는 긴급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는 왕진가방을 들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기도 하고 한겨울에도 환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게다가 살림집이 붙어있는 한의원 벨은 저녁이든 새벽이든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고 힘들여 찾아간 환자는 가난으로 진료비 한 푼 낼 수 없었지만 내색 한 번 않고 돌아서던 기억도 많다.
“되돌아 보면 우여곡절도 많았어요. 하지만 37년 전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환자들이 인사차 방문하고, 20년만 외상진료를 받은 환자가 잊지 않고 진료비를 들고 왔을 땐 가슴이 찡한게 헛되게 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의 뇌리에는 아직도 생활고에다 질병으로 고생하며 눈물짓던 사람들이 무료진료를 받고난 후 싱싱한 웃음을 지어보이던 따뜻한 정경이 잔영으로 남아있다.
한의원 진료실 벽에 걸린 국민훈장 목련장, 동백장, 대통령 표창 등 훈장과 상패들이 그의 행적을 조용히 말해주는 듯 했다.
한의학을 전공해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기에 더욱 감사하고 소중하다는 김 원장.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사랑으로 감싸는 한의학이 발전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는다.
“한의학을 통해 모은 재산은 한의학문 발전을 위해 환원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겠지만 지속적 발전과 저변확대를 위해서는 우선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때문에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평소 생각을 얼마 전 가족회의에서 선언해버렸다.
‘한 점 부끄럼 없는 의료인이자 신앙인으로의 삶을 꾸려가고 싶다’는 김 원장은 한의학에 대한 지원은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