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의 한의학 <26>

기사입력 2024.01.0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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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의 기후위기V:
    인류세의 기후는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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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우교수

    경희대 기후-몸연구소, 한의대 의사학교실


    <인류세의 한의학>은 기후위기를 다른 시선으로 읽어보려는 시도이다. 인간의 활동이 지질학적 시대명까지 규정하는 “인류세”는, 그 인간 활동의 토대가 된 생각의 방식과 차별화되는 관점을 요구하고 있다. 인류세의 기후문제를 논하는 학자들은 비근대적 사유를 적극 인용하며, 기후위기 너머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논리도 이에 동참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한의학과 같은 동아시아의학에 녹아 있는 동아시아의 논리는 특히 인류세에 재발견될 내용들이 적지 않다. 여타의 비근대적 관점들과의 연결 속에서 인류세의 기후문제를 달리 읽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여름, 팽창, 인플레이션

     

    근대 이후 인간 활동의 경향성을 짚어서 사회학자 김상준은 팽창근대라고 명명한다.1)  근대에 이르러 자원과 인력의 무한 공급에 대한 욕망이 팽창문명을 가능하게 했다. 근현대의 시대는 특히 팽창문명이 전 지구화되는 시대다. “팽창”은 근현대문명사를 지시하는 언어로서 적절한 선택이다. 팽창은 산업화 이후, 급격하게 부풀어오른 물질적, 경제적 변화의 상황을 훌륭하게 지시한다. 김상준은 기후위기의 문제의 근본으로 인간과 자연의 차별화를 지적한다. 마음껏 가져다 쓸 수 있는 외부화, 타자화된 자연, 즉 자원화된 자연이 근대 이후의 팽창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팽창은 부풀 팽(膨)과 부을 창(脹)으로 되어 있는 말이다. 말 그대로 과도한 상황을 말한다. 창만이라는 병명이 지시하고 있듯이, 한의학에서 창(脹)은 질병에 해당할 정도의 상황이다.2) 이러한 문제적 상황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 팽창문명의 정황이다. 

     

    팽창은 폭발, 성장과 일맥상통하다. 뻗치고, 펼치는 모양새를 공유한다. 폭발-팽창-성장은 연결되어 있다. 산업화 이후의 시대는 연료를 폭발시켜서(혹은 태워서) 단시간에 높은 에너지를 얻는 것으로 대표되는 시대다. 이 높은 에너지는 높은 팽창의 힘을 갖는다. 그 팽창의 힘으로 터빈을 돌리고, 엔진을 돌리고, 기계를 돌려서 생산하는 것이 근대 이후의 인류문명이다. 폭발-팽창하여 만들어진 에너지는 경제를 돌아가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 경제 뉴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표인 성장률은 팽창 없이 불가능하다. 성장을 기본으로 하는 지금의 경제 체계는 “인플레이션”을 동반한다. 이 경제학 용어의 동사형(inflate)이 부풀다는 의미를 가진다. 팽창의 의미가 있다. 화석연료를 폭발하고 태워서 돌린 시장은 경제를 팽창(성장)하게도 하고, 통화도 팽창[inflation]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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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여름-여름-여름

     

    화석연료의 폭발과 태움은 열을 동반한다. 열은 팽창한다. 뻗치는 모양새를 가진다.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사시(四時)로 말하면, 화석연료의 시대는 장(長)하는 기운이 주된 기운의 양태가 된 시대를 말한다. 이 시대의 모티브가 한껏 펼치고, 성장하는 것이다. 여름 하루에도 나무와 풀들이 놀랍게 성장(成長)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여름의 경향성을 끝없이 추구하려고 한다. 가을, 겨울 없이 지속하려고 한다. 팽창만 하려고 하니 수렴하고 저장하는 경향성이 존재하기 힘들다. 나뭇잎들이 단풍 들지 못하고, 겨울에도 가지에 붙어서 떨어지지 못한다.3) 

    팽창은 펼치는 모양새를 가진다. 그 모양새를 위해서는 여름과 같은 높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인류세는 “팽창문명”과의 연결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기후위기도 마찬가지다. 팽창시키고 태우고 폭발시킨 것이 과하다. 성장하기 위해 태우고 폭발하고 팽창하고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쓰는 것에만 온 주의를 집중하다보니, 폭발, 팽창, 생산 이후를 생각 못하게 된 상황이다. 인류세는 가을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 시대다. 경제성장률도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고 간주한다. 성장만을 계속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여름에 머무르려고 하는 이 문명의 경향성이 인류세를 낳았다. 

    근대팽창문명은 또한 라투르가 대표적 근대적 현상으로 지목한 하이브리드들의 양산과 연결되어 있다.4)  인간과 자연의 차별화를 통해 자원화된 자연을 마음껏 남용한 것은 수많은 하이브리드를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근대라는 시대는 하이브리드를 무시해왔고, 그러한 무시가 한계 상황에 이른 것이 기후위기로 드러난다. 인간은 석유를 순수화(purification)해서 항공유, 휘발유, 경유 등을 만들어냈지만 이들은 연료로 사용된 후 바로 온실가스라는 하이브리드가 된다. 인간이 사용하기 좋게 순수화 했지만, 그 인간의 순수화는 바로 하이브리드가 될 수 있는 전제가 된다. 근대인들은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에 도취되어 이들 하이브리드들을 무시해왔다. 지구온난화를 경험할 때까지. 

    지금의 상황을 (기후위기와 같이) 위기라고 명명하고, (파리 협정 같은) 협정을 맺고, (IPCC 같은) 국가 간 협의체를 만들어 활동을 하고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지만, 기후에 악영향을 미치는 인간의 팽창 활동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 많은 논의와 용어와 협정 속에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해서 증가 일로에 있다는 것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폭발-팽창-성장 문명을 말하고 있다.5)

    팽창을 멈추지 않으려고 하는, 계속해서 여름이기를 바라는 것이 지금의 시대다. 하지만 폭발-팽창-성장의 시대도 수렴과 줄임의 시간을 맞을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인플레이션 이후에 디플레이션이 따라오듯이, 끝없는 폭발-팽창-성장은 불가능하다. 탄소 “저감,” 온실가스 “감축,” (1.5도 이하로) 기온 상승 “제한” 등 지금 회자 되는 언어들은 팽창한 것을 모으고, 수렴하는 방향성이 이 인류세에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끝모를 팽창의 추구 끝에, 넷 “제로,” “저”탄소, “탈”성장,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등 인류세의 여러 논의들이 이와 같은 방향성을 취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처방식들은 이제 좀 가을을 맞이하자고 말한다. 김상준이 주장하는 “내장(內張)문명”도 가을의 모양새를 가진다. 안으로 채우는 문명이다.6) 가을을 맞기 위해서는 가을에 맞는 차림새와 행동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줄이고, 천천히 하고, 축소하고, 모으고, 수렴시키는 차림새와 행동이 필요하다. 에너지도 그에 걸맞게, 폭발과 태움 없는, 있는 햇볕과 부는 바람을 이용하는 생산 방식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의 이유

    인류세의 기후는 여름이다. 이 시대의 기의 상황[즉, 기후(氣候)]은 여름이다. 여름만 추구한다. 가을이 올 거라고 생각 못한다. 기후위기는 관계의 맥락을 무시하는 데 있다. 

    사시의 흐름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장(長)하는 기운 뒤에는 반드시 수렴하고 모으는 기운(收)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무시하는 데서 기원한다. 

    기후는 흐름이고 연결이다. 기후위기는 연결이 단절되는 위기다. 여름 다음에 가을이 연결되지 못하는 위기다. 여름에만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망각한 것이 기후위기의 이유다. 여름 다음에 가을이 온다는 평범한 이치를 폭발-팽창-성장의 근현대문명을 돌리느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여름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지금의 기후위기는 말하고 있다. “사시음양은 만물의 근본(四時陰陽者萬物之根本)”이라는 『내경』의 문장이 뼈아프게 다가오는 지금이다. 인류세에 계속되는 여름은 만물의 근본이 뒤틀리는 일임을 사시의 이치는 말하고 있다. 


    1) 김상준(2021)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참조.

    2) 김상준은 2023년 9월에 열린 경희대학교 기후-몸연구소 설립기념 학술대회에서 팽창문명을 논의하며 창(脹)이 동아시아에서는 병적인 상태라는 것을 직접 언급하기도 하였다. 

    3) 아래 사진은 필자가 2023년 12월 중순에 경희대 캠퍼스에서 찍은 사진이다. 작년은 11월까지 20도가 넘는 고온을 기록한 해다. 단풍이 들지 않은 단풍잎들이 말라서 단풍나무에 붙어 있다. 일부 단풍색이 든 잎들도 있지만, 그 입들도 12월 중순까지 떨어지지 못하고 있다. 평소 겨울나무와는 다른 단풍나무의 모습을 하고 있다.

    4) 브뤼노 라투르(2009)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참조.

    5) 기후학자들의 단체인 Global Carbon Budget은 2023년 한 해 동안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22년에 비해 1.1% 증가하여 연간 배출량의 기록을 다시 갱신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다음의 웹사이트 참조. https://globalcarbonbudget.org/

    6) 만약 내장문명이 가능하다면(현재의 지구비등화(global boiling)를 멈추지 못한다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인류문명의 성숙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생장수장에서 수(收)와 장(藏)의 여물게 하고, 정밀하게 하는 방향성이 실현되는 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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