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약의 역사는 숱한 고난과 끝없는 위기로 점철돼 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생존하며 국민의 건강지킴이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는 그때마다 모든 한의인들이 한 마음으로 뭉쳐 슬기롭게 난국을 극복해 왔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의학에 대한 극악한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전통의학의 명맥을 이어왔으며, 약사들의 한약 침탈 기도에서 야기된 한약분쟁에서도 한의사들이 너나할 것 없이 삭발 및 가두 투쟁을 벌이며 한의약을 수호해왔다.
그럼에도 위기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의계를 둘러싼 녹록치 않은 의료 환경이 위기의 본질이다. 무엇보다 한의약 보장성이 턱없이 빈약하다 보니 양질의 한의의료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고 있고, 이는 곧바로 국민의 한의약 외면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7월 발표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잘 나타났듯 한의사의 연평균 보수는 의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반면에 한의사 수의 연평균 증가율은 의사, 치과의사 등 여타 의료인력 중 가장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1년 진료비 통계지표’에 따르면 2021년 건강보험 진료비는 총 93조4984억 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7.67% 증가했으나 한의원의 경우는 2조5371억 원으로 2.88% 증가하는데 그쳤고, 내원일수는 90,374천일에 89,301천일로 1.19% 감소했다.
이전의 위기가 외부 세력의 공격에 따른 위기라면 최근의 위기는 제도와 정책의 소외로부터 불거져 나왔기에 단기간에 해결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같은 때에 지난달 24, 25일 개최된 ‘대한한의사협회 중앙·지부 임원 역량 강화 대회’는 현재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놓고 전국의 임원들이 머리를 맞댄 자리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날 토론 주제로 제기됐던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안전관리를 위한 ‘의료법’ 개정 △보건소장 임용차별을 위한 ‘지역보건법’ 개정 △실질적 한의약 육성을 위한 ‘한의약육성법’ 개정 △치료목적 한의비급여에 대한 실손의료보험 적용 △한의사 사용이 가능한 ‘혈액검사’ 급여 적용 △한의약 난임치료 지원사업 제도화 △한의자동차보험 제도 개선 △한의과대학 정원 감축 △감염병 창궐 시 한의약의 역할 확대 등은 한의계의 위기 극복을 위해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한의계의 주요 문제점들을 모두 끄집어내어 상세한 설명과 질의응답을 통해 상당한 공감대를 이뤄낸 만큼 앞으로의 과제는 어떤 구체적인 실천 전략으로 위기를 넘어 지속가능한 한의약의 발전을 이끌어 낼 것인가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