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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사법 제정 이후 한의사의 역할 정립이 더욱 중요”[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최근 대한한의학회 예비회원학회로 등록된 대한문신학회 이승철 회장으로부터 등록된 소감 및 학회의 창립 계기 및 향후 활동계획, 문신사법 제정 이후 한의사의 역할 등에 대해 들어봤다. Q. 대한한의학회 예비회원학회로 등록된 소감은? “문신 영역에서 한의사의 학술적 역할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 그동안 문신은 주로 미용이나 예술의 관점에서만 논의돼 왔고, 의학적·학술적 접근은 상대적으로 부족했었다. 이번 예비회원학회 등록으로 대한한의학회라는 학술적 울타리 안에서 문신과 관련된 안전성, 부작용 관리, 문신사 교육과정 등의 주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발표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앞으로 예비회원학회에서 회원학회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학술적 성과를 꾸준히 축적해 나가겠다.” Q. 대한문신학회 창립 계기는? “대한문신학회의 전신인 ‘대한한의문신학회’는 한의사에 의해 시행되는 문신 시술 및 제거에 관한 학술적 연구를 위해 만들어졌다. 한의사는 피부 침습 행위에 대한 오랜 임상 경험과 이론적 기반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문신사법이 통과돼 합법적으로 문신 시술이 가능한 직역이 신설된 만큼, 더욱 활발한 학술 연구와 상호 교류를 위해 직역의 제한을 풀고자 ‘대한문신학회’를 창립하게 됐다. 문신사법의 시행과 함께 문신 시술의 위생·안전 관리 기준, 문신사의 교육, 부작용 발생 시 대처 방법 등에 대한 학술적 근거가 필요해진 만큼 앞으로의 이러한 시대적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계획이다.” Q. 문신학회에서 진행했던 주요 활동은? “먼저 지난해와 올해 반영구문신 제거에 관한 논문과 문신 연구 동향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고, 지난해 문신사법 국회 본회의 통과에 앞서 한의사의 문신시술 사례나 문신의 역사적 근거가 담긴 기고문을 발표한 바 있다. 또한 현재 문신 시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의 유형, 원인, 예방 및 대처에 관한 체계적인 내용을 담은 교육 교재를 준비 중에 있으며, 여기에는 문신 잉크의 안전성, 감염 관리, 알레르기 반응, 피부 손상 및 반흔 형성 등을 포괄하고 있는 것은 물론 향후 문신사 교육과정에 활용될 수 있도록 근거 기반의 내용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임상특강, 웨비나 등을 개최해 문신 관련 임상사례 발표, 레이저를 활용한 문신 제거 기술, 두피 문신(SMP) 등 세부 분야의 학술적 논의를 진행하는 한편 문신사법 시행령·시행규칙 제정 과정에서 정책 의견을 개진하고, 문신 시술의 안전 관리 체계 구축에 한의사가 기여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Q. 문신 영역에서 한의사의 역할 정립 및 이를 위한 사업 계획은? “문신사법이 오는 2027년 10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남아있는 기간은 법 제도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며, 한의사의 역할 정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할 때다. 먼저 문신사법에 따라 문신사는 매년 위생·안전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데, 한의사는 피부 해부학을 바탕으로 한 시술 부위 이해, 침습 시술 시 감염 예방과 상황 발생시 대처, 시술 후 회복 과정에서의 나타나는 다양한 피부 반응의 이해와 올바른 관리 방법 등의 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만큼 반드시 교육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또한 문신 부작용 관리·치료 체계 구축을 위해 문신 시술 후 발생할 수 있는 알레르기 반응, 육아종, 켈로이드 등의 부작용에 대한 예방과 표준 치료 프로토콜을 개발하고 임상 근거를 축적해 나가는 한편 문신 제거 영역에서의 한의사 역할도 강화돼야 한다. 문신사법에선 문신사의 문신 제거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문신 제거가 의료행위로서 의료인의 영역에 해당함을 법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에 한의사가 실시하는 레이저 및 다양한 방식의 문신 제거 방법과 제거 시술 이후의 회복 프로토콜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한문신학회에서는 현재 편찬 중인 문신 안전성 교재를 문신사 국가시험 대비 표준 교과서 수준으로 발전시켜, 문신 시술의 위생·안전·부작용 관리에 관한 공인된 학술 교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문신사 국가시험의 출제 영역에는 피부 해부학, 감염 관리, 시술 부작용 대처 등 의학적 전문지식이 필수적으로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영역에서 오랜 임상 경험과 학술적 역량을 갖춘 한의사가 국가고시 출제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관계 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의해 나가려고 한다. 이는 곧 문신사 제도의 전문성·신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Q. 문신 시술, 문신사 교육 등에 있어 한의학의 장점은? “한의사는 모든 의료 직역 중에서 피부 침습 시술에 가장 많은 임상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직군이다. 즉 한의사는 매일 진료 현장에서 환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직접 피부를 촉진하고, 다양한 부위에 침을 놓으며, 시술 전후의 피부 반응을 관찰하고 관리하고 있다. 이는 교과서적 지식이 아니라 수십만 회에 달하는 실제 침습 시술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피부의 두께와 저항감, 부위별 출혈 경향, 개인별 통증 반응과 회복 속도 등 시술자만이 체득할 수 있는 감각적·임상적 역량을 포함하고 있다. 문신 시술은 본질적으로 피부 표층에 대한 반복적 침습 행위이며, 이 과정에서 요구되는 위생 관리, 적절한 시술 깊이 판단, 부작용 발생 시 즉각적 대처 능력은 한의사가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업무와 직결된다. 즉 문신의 안전한 시술과 교육에 필요한 학술적 기반과 임상 현장 경험을 동시에 갖춘 의료 직군이 바로 한의사라 할 수 있다.” Q. 그 외 하고 싶은 말은? “문신사법 제정은 오랜 기간 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문신 산업이 제도권으로 들어오는 역사적 전환점이다다. 그러나 법의 제정은 시작일 뿐, 진정한 과제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세부 제도를 얼마나 잘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문신사법 국회 통과 당시 의사단체에서는 법안 반대 의견을 피력했지만, 외부의 시선에서는 문신을 다루는 의료기관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무조건적인 법안 반대가 대안 없는 반대로 비쳐 설득력을 얻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다. 이처럼 세부 제도의 설계에서 여러 단체들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대한문신학회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제도가 정착되도록 학술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문신 시술의 안전성 향상과 부작용 관리 체계 구축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
“한의진료가 장애인 동반자 되도록 실천모델 되고파”[편집자주]경희태창한의원 김영선 원장(전 대한여한의사회 회장)이 지난 2월2일 서울시립영등포장애인복지관과 ‘찾아가는 한의진료’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봉사진료에 나섰다. 지역사회의 일원이자 한의사로서 김 원장이 되새기는 마음가짐과 봉사진료를 통해 체감한 진료 철학을 들어봤다. Q. 영등포장애인복지관과 한의 진료봉사 협약을 맺게 된 계기는? 영등포구 지역에서 30년 넘게 환자들을 마주하며 지역사회의 따뜻한 배려 속에 성장해 왔다. 그동안 대한여한의사회 활동을 통해 꾸준히 의료봉사를 실천해 왔지만, 여한의사회 회무를 마무리한 뒤, 오래 몸담고 도움 받아온 우리 지역사회에 나눔을 실천하고 보답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그러던 중 영등포구 내 등급판정위원장 활동을 하며 영등포장애인복지관 관장님과 장애인을 위한 한의치료의 접근성과 만성질환 관리의 장점에 대해 공감했고, 이를 계기로 복지관 측의 요청을 받아 공식적인 협약을 맺게 됐다. 30년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이웃들의 건강한 일상을 돕는 것이 내 소명이자 지역사회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남은 나의 진료시간 동안 보람 있는 일을 하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Q. 어떤 한의진료 서비스가 제공되는지?의료상담, 침치료, 한약치료, 약침치료 등을 한 달에 한 번 제공한다. 오랫동안 불편함을 이기며 관리해온 분들인 만큼, 개개인의 신체적 특성과 만성질환의 진행 정도, 그리고 생활환경을 고려해 가능한 모든 치료를 하려 한다. 장애인분들은 주 질환 외에 활동량 저하로 인한 순환장애나 소화기 문제 등 2차 질환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의학의 특성인 전체적인 관점에서 질병을 바라보고 통합적으로 관리해 불편함을 도와드리려 한다. 무엇보다 그분들에게 익숙한 복지관이라는 공간에서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 제공을 통해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은 환자들에게 큰 장점이 돼 좋아하시는 것 같다. 이는 일상과 의료를 통합해 살던 곳에서 치료받고 생을 영위하는 통합돌봄의 의미를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 보호자들도 긴 간병에 힘들어 하시는데 상담과 대화로 심리적 안정감을 드리고, 꾸준한 치료 의지를 북돋우는 '마음 치유'도 진료의 중요한 일부인 것 같다. Q. 장애인 대상 치료 시 더 신경을 쓰게되는 부분은?일반 진료는 질병의 소실인 반면,장애인 진료는 ‘기능의 보존’과 ‘삶의 질 유지’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임상적으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첫째, 신체적 비대칭으로 인한 2차적 보상작용을 관리하는 것이다. 장애 유형에 따라 특정 근육군을 과사용하거나 반대로 위축되는 경우가 많아 단순히 통증 부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근골격계의 균형을 맞추는 데 주력한다. 둘째, 정서적 교감을 통한 신뢰 형성이다. 오랜 투병과 장애로 심리적 위축을 겪는 분들이 많기에 한의학의 심신일여(心身一如) 원칙에 입각해 환자의 마음을 살피고 그분들의 생애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진료를 하려한다. 셋째, 시술의 안전성이다. 불수의적인 움직임이나 감각 저하가 동반된 경우가 많아, 유침(留針) 시간이나 안전한 자침기법 선택에 일반 환자보다 더 세밀한 주의를 기울인다.결국 장애인 진료는 질병 그 자체보다 장애로 인한 환자의 전체적인 삶의 궤적을 통찰하고 결여를 읽어내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보완해줘야 하는 고도의 맞춤진료라 생각한다. Q. 한의진료가 장애인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장애인 치료의 핵심은 ‘신체 자생력 확보’와 ‘이차적 합병증 예방’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의약은 다각적인 기전을 통해 이를 뒷받침한다. 첫째, 만성통증의 악순환을 끊는 신경학적 조절이다. 침치료는 하행성 통증 조절계(Descending Pain Modulatory System)를 활성화하고 엔도르핀 등 내성 마약성 물질 분비를 촉진해 통증을 경감시킨다. 이러한 침치료의 통증 제어 기전은 이미 세계 석학들의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규명됐다. 그러므로 침치료는 장기적 약물 복용으로 내성이 생기거나 소화기 부작용을 겪는 장애인 환자들에게 매우 안전하고 효과적인 통증 관리 수단이다. 둘째, 근육의 경직 이완과 관절 가동범위의 확보다. 마비나 비정상적인 근긴장으로 인해 발생하는 관절 구축은 장애인의 일상을 가장 위협하는 요소다. 침과 약침요법은 해당 부위의 염증을 제어함하고 경결된 근육을 물리적으로 해소해 신체의 유연성을 높이고 추가적인 골격 변형을 예방하는 데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 셋째, 전신 대사 및 기혈 순환의 정상화다. 활동량이 극히 제한적인 장애인분들은 만성적인 순환 장애와 소화기계의 기능 저하를 겪기 쉽다. 한약 처방은 기혈(氣血)을 보하고 순환을 도와 전신 컨디션을 끌어올림으로써, 환자가 재활 훈련에 참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체력적 토대’를 마련해 준다. 이는 한의학적 치료만의 큰 특장점이다. 결국 한의진료는 단순히 특정 부위의 통증을 지우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가 자신의 몸을 다시 통제할 수 있는 힘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통합적 재활의학으로서 큰 가치를 지닌다. Q. 진료현장에서 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건강 문제는?발달 장애 아동 진료와 장애인성폭력센터의 피해자를 돌본 경험이 있다. 먼저 이러한 경우 일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호소’라는 말은 사치다. 주로 보호자를 통해 병증을 파악하는데 이럴 때 한의학적 불문 진단은 큰 장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환자를 대하고 보고 듣고 맥을 살피는 망문문절(望聞問切)은 그 과정을 통해 환자와의 교감도 밀접하게 형성되고 심신의 질병을 파악하게 한다. 이해받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충분히 피력하지 못한 장애인 환자들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억눌리고 피폐돼 있다. 때문에 그들을 어루만지며 치료하는 침치료는 상상 이상으로 큰 힘이 되고 효과를 나타낸다. 이곳 복지관에서 접한 환자들은 거의 10년 이상 편마비로 살아왔다. 언어중추까지 손상돼 표현을 못하거나 오랜 마비와 구축으로 인해 보행부터 모든 일상에 도움이 필요하고 거기에 노화로 인한 퇴행과 보호자들의 노화도 두려움으로 엄습하고 있다. 통합돌봄이 잘 자리 잡아 사회적 커뮤니티로서 삶의 불안을 완충해주는 좋은 제도로 완성되길 간절히 바란다. Q. 봉사진료 중 보람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면?작은 손길은 소외된 이웃들의 삶에 생각보다 크게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주민 여성 진료 시 가족 내 학대로 힘들어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에게 심신 치료와 함께 꿈을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생기있게 반짝이는 눈을 봤다. 치유는 결국 그들의 자존감의 회복으로 연결되고, 장애인 진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또 성폭력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여학생이 한의 침과 한약 치료를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을 때보다 힘이 빠지지 않아 신기하다며 몸으로 느낀 정확한 부분을 묘사한 말에 무척 기뻤던 기억이 난다. 한의사로서 자존감이 회복되며 나도 치료가 됐다. 내가 받은 것이 더 많다. Q. 이번 봉사 활동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이번 봉사활동의 목표는 내 삶의 마무리다. 봉사를 시작하며 복지관장님께 웃으며 “일단 10년 목표입니다”라고 했는데, 이제 나도 삶의 후반기로 접어들며 내 진료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의 한 장면이 기억에 있다. 오랫동안 근무한 수간호사가 그곳 병실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가족 같은 동료들이 그녀를 보내주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장애인 환자분들을 위한 의료 접근성 확보’, ‘보건 환경의 개선’ 등 그런 큰 뜻도 중요하지만, 사실 환자분들과 가족같이 삶을 나누며 같이 고민하고 돌봄을 주고받는 그런 모습을 만들며 내 삶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나누는 과정 또한 나를 치유해준다. 가능하면 이 길의 끝에서 환자분들과 웃으며 손잡을 수 있는 '동행'의 시간을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다. Q. 향후 장애인 한의진료가 어떻게 이어져야 할지?“장애인 건강권 보장을 위해 ‘장애인 한의 주치의 제도’의 전면 시행과 정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며, 세 가지 방향으로 확대와 지속이 필요하다. 첫째, 의료 접근성의 물리적·경제적 문턱을 낮춰야 한다. 장애인분들은 이동의 제약으로 인해 정기적 내원이 어렵다. 현재 시범사업 단계의 주치의 제도를 통해 ‘찾아가는 방문진료’를 활성화하고, 수가체계를 현실화해 더 많은 한의사가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둘째, 한의약의 ‘예방의학적 관리’가 제도에 녹아들어야 한다. 장애인은 상대적으로 만성질환 유병률이 높고 합병증에 취약하다. 단순한 일회성 통증치료를 넘어, 한의약의 강점인 미병(未病) 관리와 전신적 기혈 순환 개선을 주치의 제도의 핵심 관리 항목으로 설정해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높여야 한다. 셋째, 지역사회 중심의 민관 협력 거버넌스 구축이다. 내가 이번에 영등포장애인복지관과 협약을 맺은 것처럼, 개별 의료기관의 봉사를 넘어 복지관·보건소·한의원이 연계한 촘촘한 의료 안전망이 필요하다. 의료는 진료실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생활 터전인 지역사회와 맞닿아 있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30년 전 처음 진료를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의료인의 사명은 소외된 이 없이 모두가 건강한 일상을 누리게 하는 데 있다. 한의 주치의제가 장애인분들에게 든든한 건강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나 또한 현장에서 실천적 모델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 -
세계 수기의학 발전에 일조하는 것이 추나학회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미시간주립대학교의 명예교수인 Lisa DeStefano 교수님과> 척추신경추나의학회(이하 추나학회)에서는 매년 세계 수기의학의 최신 지견을 접할 수 있는 미국오스테오패시의학회(American Academy of Osteopathy, AAO) 학술대회에 일정 인원을 파견해 참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최신 지견에 대한 지식의 습득을 통한 학회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본 행사에 해당하는 ‘2026 AAO Convocation’은 3월 19일부터 22일까지 콜로라도 주의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개최됐다. 필자는 2023년부터 4년 연속 참가를 하고 있는데, 올해는 사전 행사인 Pre-convocation에 듣고 싶은 강의가 있어 나머지 참가자들보다 조금 빠르게 참가를 하게 됐다. 3월 14일 진료를 마치고 공항에서 김원식 원장(추나학회 교육위원, 국제분과위원)을 만나 같이 출국하게 됐다. 사전행사인 ‘Pre-convocation’에 참석 긴 여정 끝에 본 행사장인 Broadmoor Hotel에 도착하니 어느덧 밤이 됐고,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강의 및 워크숍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에 ‘Silent Waves’의 저자인 프랑스 의사(MD)이면서 오스테오패시의사(DO)인 Bruno Chikly의 ‘Paradigm Shifts in Embryology’ 강의가 3일 동안 진행됐다. 필자는 미국 Maine주에서 임상을 하고 있는 부드러운 인상의 Gage라는 DO와 파트너가 되어 3일 동안 실습을 같이 진행했다. <팔찌 색깔에 따른 접촉의 편함 정도를 알려주는 표지판> 올해부터는 지난해와 다르게 강의 전에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의 팔목에 착용하는 밴드를 나누어줬는데 각각의 색깔에 따라서 접촉 정도에 따른 개인적 허용도를 누구나 직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얼마 전에 세계수기근골의학연합회(FIMM)에서도 수기의학과 관련해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 이전과 다르게 의료인의 윤리적인 부분들이 별도의 챕터로 추가됐다. 수기의학이라는 특성상 부득이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접촉과 관련해서 항상 환자에게 사전 고지를 하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충분히 설명하는 부분을 수기의학을 하는 의료인이라면 항상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다. 추나학회는 실제로 이러한 세계적인 변화 이전부터 정규워크숍에서 의료인의 윤리적인 부분과 관련해 선도적으로 교육을 하고 있었다. “Mastering Technique Precision & Perception”주제 본 행사 시작 정신 없었던 사전 워크숍의 3일이 지나고, 어느덧 본 행사 참가자들을 맞으러 콜로라도 스프링스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서 픽업을 하고 호텔로 복귀했다. 19일부터는 “Mastering Technique Precision & Perception”이라는 주제로 올해의 본 행사가 시작됐다. 올해 행사는 이전부터 광범위하게 행해졌던 각종 오스테오패시수기요법(OMT)에 대해서 조금 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다양한 최신 지견들과 함께 기존의 기법들이 발전했던 역사를 살펴보는 시간들이 많았다. 일례로 이전부터 광범위하게 행해지던 OA decompression 기법과 관련해서 이것이 현대의학적으로 가지는 의미에 대해 해부학적 실체를 토대로 최신 지견들을 소개하는 이론강의를 오전에 하고, 오후에는 심박변이도 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측정 기구와 함께 결과를 직접 실습을 하면서 살펴보는 워크숍이 개최되기도 했다. <Bruno Chikly 와 그가 사인해준 그의 저서 사진> 수기의학 발전 위한 AAO학회 구성원의 문제의식 느껴 이러한 의학적인 지식과 관련된 강연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DO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는 강의들도 있었다. 실제로 DO의 발전역사를 살펴보면 의료 낙후 지역 등에서 1차 의료를 주로 담당하면서 그 안에서 수기요법을 다양한 환자 군에게 적용하며 발전 시켜왔다. 최근에 미국에서는 오스테오패시대학이 점차적으로 늘어나면서 현재는 배출되는 DO의 수가 1년에 8000여명에 육박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점차적으로 수기의학을 하는 DO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수기의학의 특성상 환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는데, 최근의 흐름은 시간 대비 돈을 더 빠르게 벌 수 있는 다른 의료분야로의 진출이 공공연하게 늘어나면서 수기의학을 하는 DO의 수는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에 본인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선배 세대 등의 기존의 DO들처럼 수기의학을 발전시키려는 AAO학회 구성원이 가지는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세계수기근골의학연합회(FIMM) 모임에 가더라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국가보험 체계 내에 제도화된 부분이 있는 독일을 제외하고는 상당수의 나라가 세대교체에 실패한 모습을 볼 수 있다. 2019년도부터 대한민국 건강보험체계에 추나요법이 편입되면서 대한민국의 한의사들의 많은 수가 현재 추나요법을 시행하고 있고 다른 나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의 유입이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실제로 외국의 다른 나라에서는 추나학회의 이러한 역동적인 모습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환자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극대화해 치료에 도움을 주는 수기의학의 근본적인 환자 중심의 세계관이 훼손되지 않고 잘 발전할 수 있도록, 나아가서는 수기의학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는 한의학의 침치료, 약침치료와 같은 치료법을 통합해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세계 다른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해 세계 수기의학의 발전에 일조하는 것이 추나학회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MSU 동문행사에서의 반가운 소식 추나학회에서 매년 교류를 이어가고 있는 미시간주립대학교(Michigan State University, MSU)의 동문행사에 참여했더니 반가운 소식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학회를 위해서 항상 애정어린 강의를 해주는 Lisa DeStefano 교수님이 AAO의 President-elect로 당선이 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축하의 인사를 나누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또한 이날 MSU의 여러 학생들이 한국에 가서 추나의학도 배우고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는 인사와 함께 추나학회 구성원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려는 모습을 보면서 세계에서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길었던 여정을 마무리하고 올해도 무탈하게 별도의 낙오자 없이 귀국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필자는 귀국 전 마지막 워크숍에서 콜로라도 DO 2인들에게 받았던 2인 기법 덕분인지 귀국길 비행기에서 편안히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면을 빌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마무리하고자 한다. 항상 넓은 통찰력으로 학회를 잘 이끌어 주시는 양회천 회장님,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항상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남항우 부회장님, 적재적소에서 올바른 결단력으로 이번 여정도 잘 이끌어 주신 송경송 부회장님, 박학다식한 지식으로 새로운 세대의 주역으로 거듭나고 있는 기성훈 이사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운전 파트너 김원식 위원님 덕분에 힘든 일정 속에서도 올해의 AAO 참가도 잘 마무리 됐다고 생각한다. 한의계, 나아가 대한민국,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 속에서 발전하는 추나학회가 될 수 있도록 올해 얻은 성과들도 잘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
“76년 전 숭고한 희생을 한의학으로 보답하다”한국전쟁 당시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한 지상군 파병 국가, 에티오피아 지난 2월15일, 머나먼 대륙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 열린의사회 소속으로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왜 하필 에티오피아였을까. 최근에도 국세 정세는 조용하지 않지만, 우리의 역사에 잊을 수 없는 연도를 정하자면 1950년 한국전쟁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인연이 깊지 않았어도 대한민국에 지상군을 파병해 줬고, 황실 근위대 소속 강뉴부대는 250여 회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며 포로가 1명도 없었을 정도로 용맹한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전쟁 이후의 삶은 정치적 상황에 의해 명예롭지 못했고 참전 용사들은 오히려 사회 최빈곤층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번 의료봉사는 남은 60여 명의 참전용사들과 그의 가족들을 위해 진행됐고, 우리는 아디스아바바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 보건소’로 향했다. 76년을 거슬러 돌려드린 온기, 한의학 진료 시작 전, 제복을 차려입고 우리를 맞아주신 참전용사께서는 90세가 넘는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며 정정하셨기에 전쟁 당시의 기개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나의 앞에 서 계신 참전용사 할아버지와 그의 전우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떠올리며,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의 자유가 우리 국민을 포함해 셀 수 없는 이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겨우 얻어낸 것임을 상기하며 진료에 감사한 마음을 꼭 담겠노라고 다짐했다. 구비된 물품은 한의학 치료를 위해 부족함이 없었으며, 특히 개인적으로 구비하기 어려웠던 상황에 필자의 다소 무리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의료기기 제공 등 직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부산 동의의료원의 결정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총 7개의 진료과에서 매일 350명 가량의 환자를 보았고, 내가 단독으로 맡아 운영한 한의과도 하루마다 50~60명 정도의 초진 진료를 보았다. 문화적인 차이에 의해 침, 주사와 같은 치료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환자분들도 다수 계셨지만, 최대한 안심하실 수 있게 다방면으로 설명해 드렸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입소문이 났는지 점차 거리낌 없이 침을 포함한 한의학적 치료에 아프신 몸을 맡겨주셨다. 환자의 상황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치료를 도와드렸고, 현지 보건소에서 근무하시는 에티오피아 의료진들도 호기심이 생기셨는지 삼삼오오 모여 진료 과정을 참관하며 관련 내용들을 질문하시곤 했다. 당연히 쉴 틈 없이 바쁘게 진행된 진료 속에서도, 환자를 처음에 모시고 또 마지막으로 배웅해 드릴 때 가능한 눈을 맞추며 감사함을 표하려 애썼다. 그들에게서 내가 받은 원대한 것들에 비해 사소한 인사일지 몰라도 진심이 전해졌기를 바란다. 아프리카 사람으로서 76년 전 낯선 땅 강원도에서 처음 겪으신 추위와 공포에 대해 나는 이제라도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진료 마지막 날은 질서 유지를 위해 현지 경찰 10명도 출동했으니 대단히 많은 인파로 붐볐던 당시 현장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 마감이 다가오는 만큼 봉사단원 모두가 진심을 다해 진료에 임했고 최종적으로 구호품까지 전달하며 공식적인 진료 일정은 끝이 났다. 이후 시간을 내어 우리는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용사회에 방문해 기념 공원에 높게 세워진 참전용사 기념탑 앞에서 과거의 헌신에 대해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곳에서 뵐 수 있었던 94세, 96세 참전용사 어르신의 총명한 눈빛을 잊을 수 있을까. 이후 일정을 마치고 22일 귀국했으며, 3월 중순에는 강원도 춘천에 방문했다. 에티오피아의 참전용사 기념탑과 같은 모양을 한 쌍둥이 탑이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방문한 춘천의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기념관을 끝으로 이번 의료봉사는 매듭을 지었다. 에티오피아에서 두 눈으로 마주할 수 있었던 참전용사를 포함한 그의 가족들, 그리고 또 현지 주민들.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이 짧게나마 접속했지만 다시 만나기 쉽지 않음을 안다. 이어지는 삶 속에서 우리가 전한 감사의 향이 은은하게 맺혀있기를 바란다. 또한 나 개인으로서도 본업에 집중해 앞으로 나와 접속하는 수많은 이들의 삶에 도움을 드릴 수 있길 소망한다. 나아가며 에티오피아에서의 의료봉사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개인적으로 나의 열린의사회 활동은 3월 전북 진안, 4월 경남 의령, 경북 울진 등 국내의료 봉사에 참가할 예정이며 4월의 라오스 의료봉사에도 참가하기에 각지의 환자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길 바라고 있다. -
미세먼지는 어떻게 질병을 악화시키는가?[한의신문] 평소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오늘은 초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이라서 마스크를 써야 했다. 오랜만에 마스크를 쓰고 급하게 페달을 밟으니 말 그대로 숨막히는 출근길이었다. 최근 대기질 전망에 따르면, 3월 서울 초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이상인 날이 절반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3년간 국내 보도에서 고농도 초미세먼지는 봄철마다 수도권과 충청·호남을 중심으로 반복적으로 발생했으며, 일부 시기에는 ‘매우 나쁨’ 수준이 수일 이상 이어지기도 했다. 2025년 1월에는 수도권과 충남을 중심으로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됐고, 2023년 4월에는 잠실구장 프로야구 경기가 미세먼지로 취소됐는데, 당시 경기장 농도는 300㎍/㎥를 훌쩍 넘었다. 학교에서는 고농도 미세먼지 시 실외수업과 체육활동이 제한되고, 지하철역과 공항, 학교 교실 등 다중이용시설의 공기질 관리 기준도 강화되고 있다. 이처럼 미세먼지는 출퇴근 방식과 학교생활, 여가와 생활 리듬까지 바꾸고 있다. 미세먼지는 기후위기와 맞물려 반복적으로 일상을 교란하는 환경재난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세먼지, 전신 염증을 유발하는 ‘보이지 않는 위험’ 미세먼지는 단순한 호흡기만 자극하지 않는다. 초미세먼지(PM2.5)는 기도 깊숙이 침투하고, 일부 성분 및 그에 의해 유발된 산화스트레스와 면역·염증 반응이 전신에 영향을 미친다. 초미세먼지에 포함된 다양한 성분은 활성산소 생성을 증가시키고 면역세포를 자극해 염증성 사이토카인 분비를 촉진한다. 이 과정은 기관지와 폐 조직 손상뿐 아니라 혈관 내피 기능 이상과 자율신경계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호흡기 질환뿐 아니라 심혈관계에서 고혈압, 심근경색, 뇌졸중, 심부전 악화 위험이 증가한다. 또한 최근 연구에서 미세먼지가 간기능 이상, 지방간, 만성 신장질환, 골대사 이상 등 다양한 장기로 확장된다는 점이 보고되고 있다. 최근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 대기오염 노출이 중·고령 성인에서 만성 통증의 발생 및 지속과 유의한 연관성을 보였다(Zeng et al., 2025). 특히 장기간 노출에서는 만성 염증 상태가 지속되면서 기존 만성질환을 악화시키고, 취약집단에서 그 악영향이 더 크게 나타난다. 이처럼 미세먼지는 여러 질환의 발생과 악화 위험을 높이는 전신적 위험 요인이다. 정신건강까지 위협…우울·인지기능 저하와 연관 미세먼지는 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 및 인지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메타분석에서 초미세먼지 노출이 증가할수록 우울 증상과 불안의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경향이 보고됐다(Borroni et al., 2022). 미세먼지 노출은 전신 염증 반응을 유발하고, 뇌에서는 신경염증을 촉진한다. 이는 정서 조절과 관련된 신경계 기능 변화로 이어진다. 대기오염은 인지기능 저하와도 연관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Chandra et al., 2022). 또한 고농도 미세먼지 시기에는 외출 감소와 활동 제한, 사회적 고립이 동반되면서 심리적 부담이 더욱 커진다. 특히 고령자, 기존 정신질환 환자, 만성질환으로 활동이 제한된 집단에서는 이러한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난다. 즉 미세먼지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정신건강과 인지기능까지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 위험 요인이다. 한의임상, 환경까지 고려하는 ‘확장된 진료’ 필요 미세먼지로 인한 건강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의임상 현장의 접근도 달라져야 한다. 먼저 노인, 임산부, 소아와 같이 생리적 취약성이 높은 집단뿐 아니라, 기존의 내과적·정신과적 질환을 가진 환자를 진료할 때에는 미세먼지의 영향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하는 평가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기존 질환의 전형적인 양상에서 벗어난 비특이적 증상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환경적 요인을 포함한 보다 포괄적이고 스펙트럼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또한 고농도 미세먼지 시기에는 환자의 외출 자체가 제한되면서 대면 진료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한의계에서도 비대면 진료나 방문 진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대한 제도적·임상적 준비가 필요하다. 취약계층 환자를 진료할 때에는 기존 질환의 악화와 미세먼지 노출 간의 연관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마스크 착용과 외출 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 특히 독거노인이나 1인 가구처럼 사회적 고립을 경험할 수 있는 환자들은 미세먼지 시기에 신체적·정신적 부담이 동시에 증가할 수 있으므로,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 기후위기 시대의 한의임상은 질병 자체를 넘어, 환자가 놓여 있는 환경과 생활 조건까지 함께 평가하고 개입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
“권익·학술·복지 강화로 한의과 공보의 유입 확대…지역의료 해법”[편집자 주] 제40대 대한공중보건한의사협의회(이하 대공한협) 유지환 회장이 3월부터 본격적인 임기에 돌입했다. 유지환 회장은 회원의 권익·학술·복지 강화를 핵심 기조로 내세우는 한편 지역 공공의료의 심각한 현실을 짚으며 공중보건한의사의 역할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본란에서는 유지환 회장으로부터 대공한협 운영계획과 지역의료 공백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Q. 제40대 회장에 당선됐다. 처음에는 실감나지 않았지만 임기를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대공한협 이사로 합류하고자 마음먹었던 그 초심을 간직한 채 앞으로 회원을 향해 어떤 메시지를 제시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무엇보다 공중보건한의사로서의 3년이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무엇이든 얻어가는 시간’으로 회고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현재 일차 공공보건의료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정부 방침을 준수하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중보건한의사로서의 역할을 지켜나가겠다. 회원의 목소리에는 항상 귀를 열고, 관계부처 및 기관과는 적극 협조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자 한다. Q. 비전 및 중점 추진 계획은? 회원 권익·학술·복지 역량 강화라는 3대 비전을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 권익 측면에서는 단순히 무엇인가를 더 누리겠다는 차원을 넘어 최소한의 생활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회원들을 찾아내고, 명시된 권익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이러한 여건이 개선된다면 공중보건한의사 지원 인원이 늘어나고, 지역 공공의료 공백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번째는 학술이다. 공보의 3년이 단순히 타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기간이 아닌 한의사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여러 학회와 협력해 회원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복지다. 공중보건의 생활 속에서도 일상의 만족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기존에 호응이 높았던 프로그램은 횟수와 규모를 확대하고, 의무를 마친 이후의 미래까지 함께 그려볼 수 있는 정보 교류의 장도 넓혀가고자 한다. Q. 특히 교육 분야와 관련해 차별성이나 세부적인 계획안은? 회원의 수요를 반영한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전 회원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여러 학회와 협력해 공중보건한의사로 근무하면서도 관심 분야에 대한 학습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다. 학술 협약에 관심 있는 학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함께하고 싶다. Q. 공중보건한의사가 본 전국 지역의료현장의 실태는? 매우 심각하다. 특히 군 단위 지역에서는 읍내를 제외하면 의료기관이 보건지소뿐인 경우가 많고, 그마저도 폐소 예정인 곳이 적지 않다. 소외된 지역에 남겨진 국민을 누가 돌볼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진다. 방문진료가 시행되고 있으나 공중보건한의사에 대한 수가 문제 등 제도적 한계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중보건한의사들은 국가와 국민의 요청에 따라 현장을 지키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 만나는 환자들 중에는 방치에 가까운 상황에 놓인 분들도 많다. 보건진료소를 확대한다고 해도 접근성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서는 의료기관이 어디에 있든 환자가 이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순한 시설 확대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Q. 지역의료 공백 및 의과 공보의 공백 대응을 위한 해법이 있다면? 지역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한 공중보건한의사 활용 방안 여론 확대와 논의가 이뤄졌으나 정부는 이를 부인했고, 관계부처 역시 ‘면허 범위 문제’라는 입장만 반복했다. 현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의료법’ 개정이 아닌 예외 적용을 위한 ‘농어촌 의료법’이다. 제19조에 명시된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은 ‘의료법’ 제27조에도 불구하고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의료취약지의 공백 해소를 위해 가능한 인력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그럼에도 환자에 대한 독자적 판단이 가능한 한의사를 배제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보건진료소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의 요구는 ‘농어촌 의료법’과 같은 예외 조항을 공중보건한의사에 한정해 적용하자는 것이다. 이는 직역 갈등이 아닌 장기화된 의료 공백 속에서 국민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대공한협의 결의다. 변화에 대한 부담이 있음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유지환 회장은 최근 열린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복무 현장 고충을 토로했다. Q. 제도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점은? 우선 공중보건한의사의 기본적인 생활 여건이 최소한은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방비 지원이 없어 적은 급여로 이를 감당하지 못해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사례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또한 함께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공보의에 대한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대부분은 소통으로 해결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견디기 어려운 수준의 강압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 대비한 최소한의 제도적 보호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교통비 지원 역시 중요한 문제다. 대부분의 공보의가 연고 없는 지역에서 근무하며, 휴일 이동에 드는 비용이 급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공중보건한의사는 국가의 명령으로 장기간 의료취약지에 배치되는 만큼, 최소한의 생활 기반은 보장돼야 한다고 본다. 일부 지역에서는 가장 가까운 상점에 가기 위해서도 차량으로 수십 분을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왼쪽부터) 유지환 회장·권혁진 부회장 Q. 대공한협 회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정부의 방침을 준수하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중보건한의사다. 협의회는 이 두 가지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회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관계부처와의 협력을 통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고자 한다. 최근 공중보건의사를 둘러싼 여러 이슈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협의회는 회원 보호를 위해 대응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 있다면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해주기 바란다. 권익 침해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제보해주기를 바라며, 갈등 조정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 시 추가 대응도 이어갈 계획이다. 또한 회원들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 공지사항이나 건의사항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보내주기 바란다. 지금 비록 어려운 환경 속에 있지만 지역주민들에게 우리의 존재는 누군가에게는 희망이자 일상의 안녕이다. 회원들 덕분에 안심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가슴에 새기며, 늘 그래왔듯 그들의 일상을 지켜나가자. -
“통합의료 해법은 병원 임상 현장에”…대만서 본 중의·양의 협진 모델[한의신문] 상지대 한의대는 최근 대만 화련 자제대학병원(Taipei Tzu Chi Hospital)에서 글로벌 인턴십을 진행, 학생들이 통합의학 환경 속에서 전통의학의 임상과 교육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자제대학병원은 자제공덕회 산하의 대표적 통합의학 병원으로,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을 아우르는 진료·교육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학생들은 진료 참관, TCM Gynecology 강의, 전통 침술 교육, 입원환자 증례 토의 등에 참여하며 실제 임상 과정을 폭넓게 경험했다. ■ 이론→임상으로…현장서 확인한 한의학의 실제-송우혁 학생(본과 2학년) 이번 프로그램은 학교에서 배운 이론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외래 진료와 병동, 의료 시스템 전반을 보며 대만 중의학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료 현장에서는 환자의 과거 양방 처방 이력을 확인한 뒤 중의학 처방을 결정하는 과정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는 환자의 전체 치료 이력을 고려하는 통합적 진료 방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또한 침 치료 시 사용한 침의 개수까지 기록으로 남긴다는 점도 주목할 만했다. 이러한 기록은 진료의 객관성과 재현성을 높이려는 시도로 볼 수 있었다. 환자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진료 태도 역시 인상 깊었다. 외래 진료 특성상 시간이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이야기를 최대한 경청하고 치료 방향을 충분히 설명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증상을 빠르게 파악하고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고 치료에 대한 신뢰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이론적인 측면에서는 대만 중의학이 한국 한의학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이해하기가 비교적 수월했다. 장부 이론이나 변증 체계, 치료 원칙 등 기본적인 틀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아, 진료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기존 지식을 복습하는 느낌도 들었다. 이러한 공통점 덕분에 대만 중의학이 낯설게 느껴지기보다는 같은 뿌리를 가진 의학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다만 경외기혈에 대한 관점에서는 한국과 차이가 있어 특히 인상 깊었다. 동일한 혈자리를 사용하더라도 해석하거나 활용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었으며, 이러한 차이는 각 나라의 임상 전통과 경험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한의학이 단일한 정답을 가진 학문이 아니라, 임상 경험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해 온 의학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앞으로 한의학을 공부하고 임상에 적용하는 데 있어 보다 유연한 사고를 갖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장기 입원 병동의 운영 방식은 한국의 한방병원과 비교했을 때 전반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았다. 장기 입원 환자들을 중심으로 생활 관리와 재활, 지속적인 치료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병동의 분위기 역시 크게 낯설지 않았다. 이번 참관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병원이 불교 관련 재단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로 인해 한약 처방 시 동물성 약재가 포함된 경우 이를 배제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평소 약재를 공부할 때는 주로 효능과 이론에만 집중해 왔는데, 종교적 가치관과 윤리적 기준이 실제 임상 처방에까지 반영된다는 점은 한의학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느껴졌다. 이는 한의학이 단순한 치료 기술을 넘어 철학과 가치관을 함께 담고 있는 의학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한의학이 단순한 이론에 머무르는 학문이 아니라, 실제 의료 환경과 제도, 그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구현되는 학문이라는 점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한국 한의학과 대만 중의학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앞으로 한의사로서 임상을 바라볼 때 보다 넓은 시각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경험은 향후 임상 실습과 진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기준점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 현장에서 현대 한의학 임상 모델을 마주하다-이동규 학생(본과 1학년) 이번 실습은 한의학의 현대적 임상 모델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2주 동안 다양한 분과의 외래와 병동 회진을 참관하며 대만 중의학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접할 수 있었다. 대만 의료 현장에서 중의학은 일상 질환 치료에서도 높은 활용도를 보였으며, 한약 제제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 접근성이 높았다. 특히 대형 병원 내에서 서양의학과 협진이 이루어지는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학업적인 측면에서도 자극을 받았다. 현지 중의대생들과 함께 자침 원리와 진단 근거를 토론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대만의 혈자리 명칭과 위치가 동일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자를 통해 임상 지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점도 의미 있었다. 또한 침 치료에 공포를 느끼는 환자들에게 레이저 침과 같은 현대적 기기를 활용하는 모습은 전통의 현대적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다가왔다. 이번 경험은 예비 한의사로서 나의 학습 방향에 대한 확신을 더욱 공고히 해주었다. 특히 한국과 대만, 중국 등 동양의학을 공유하는 국가 간 지속적인 교류의 필요성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각국의 풍부한 임상 데이터와 술기를 공유하고 공동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언어적 장벽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기존의 한자 실력을 바탕으로 중국어 학습을 더욱 심화하고, 영어 능력 또한 강화하여 우리 한의학의 우수성을 세계 학계에 객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자 한다. 나아가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다시 중의학을 배우는 대만의 교육 제도를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는 학제 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구조로 이해되었으며, 필자 역시 한의학을 폐쇄적인 학문으로 한정하지 않고 현대 과학의 언어로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겠다고 느꼈다. 한의학의 치료 효과를 객관적으로 수치화하고 체계적인 근거를 구축하는 ‘한의학의 현대화’는 더 많은 환자에게 신뢰를 제공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실습은 한의학이 단순한 전통 의학을 넘어 현대 의료 체계 속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준 경험이었다. 앞으로 동양의학 국가 간 교류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지속적인 연구와 학습을 통해 더 많은 환자들이 한의학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563)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2009년 7월29일 바베이도스 브리지타운에서 열린 제9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는 허준의 『동의보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것을 유네스코에 권고했고, 유네스코 사무국(사무총장 마쯔우라)은 국제자문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최종 승인했다. 당시 국가유산청에서는 “이번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유네스코가 동의보감이 가지는 역사적 진정성, 세계사적 중요성, 독창성, 기록정보의 중요성, 관련 인물의 업적 및 문화적 영향력 등을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수년 전 김인범 학형이 연구실에 찾아와서 당시 바베이도스에서 열린 이 국제자문위원회에 한국 참가단과 함께 참석했을 때 OPENING CEREMONY 프로그램과 자신이 직접 작성한 ‘취재수첩’을 필자에게 선물해주었다. 대학동기 김인범 학형은 이 시기에 대한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대한한의사협회장은 김현수)으로 활동했다. 아래에 그의 취재수첩과 이 무렵 김인범 부회장이 한의신문에 2회에 걸쳐 투고한 원고를 바탕으로 날짜순으로 정리해본다. ◦ 2009년 7월20일 출국 전 최종 전략 수립: 서울 모처에서 김인범 부회장을 포함한 등재를 위한 참가단이 마지막 전략 회의를 가졌다. 유네스코 회의의 엄격한 규칙과 제한적인 홍보 여건을 전달받으며, 김인범 부회장은 등재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국제기구 회의의 생소함과 막막함을 체감했다. 하지만 한의학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현지 대응 방안을 점검했다. ◦ 7월 27〜28일 바베이도스로의 긴 여정: 27일 오후, 김인범 부회장은 인천공항에서 참가단과 합류해 32시간에 걸친 대장정을 시작했다. 뉴욕을 거쳐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바베이도스에 도착한 것은 28일 오후였다. 숙소 체크인 직후, 휴식도 없이 곧장 회의장인 아크라 비치 호텔로 향해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며 일대일 접촉 등 마지막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 7월 29일 국제자문위원회(IAC) 개회와 행운: 회의 첫날, 김인범 부회장은 옵저버 자격으로 참석했으나, 의장의 배려로 위원석 빈자리에 앉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이를 기회로 위원들과 나란히 앉아 자연스럽게 『동의보감』의 가치를 설명하는 등 밀착 홍보를 펼쳤다. 오후 비공개회의가 시작되자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고, 마침내 등재소위의 ‘등재 추천’ 통과 소식을 접하며 환호했다. ◦ 7월 30일 인내의 시간과 최종 승인: 사무총장의 최종 결재를 기다리는 동안 회의장엔 엄격한 보안과 정적이 흐렀다. 김인범 부회장은 언론 보도 통제 등 유네스코의 경고 속에 침묵을 지키며 노심초사했다. 마침내 낮 12시 40분경, 휴가 중이던 사무총장의 서명이 완료되었다는 공식 발표가 나오자, 그는 한국의 각 기관과 언론사에 이 기쁜 소식을 타전하며 긴급 인터뷰와 기사 작성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 7월 31일 등재의 감격과 여정의 마무리: 성공적인 등재 후, 김인범 부회장은 현지 방송 인터뷰를 통해 등재 소식을 국내에 생생히 전했다. 모든 공식 일정을 마치고 바베이도스 시내를 돌아보며, 맥도날드조차 없는 이 낯선 섬나라가 한국 한의학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성지가 되었음을 되새기며 여정을 마무리했다. -
천연물 의약품, 한약인가? 양약인가?강민정 약무/보험이사 (대한한의사협회) 천연물 의약품의 새로운 도약과 과제 지난해 12월17일 부산대 양산캠퍼스 첨단산학단지에 (재)천연물안전관리연구원의 준공식이 개최됐다. 이 기관은 식약처 산하 전문 연구기관으로 천연물 유래 의약품의 R&D, 품질검사, 위해물질 모니터링 등을 통해 품질과 안전성을 확보하고 전문인력 양성, 제품화 지원 컨설팅 등 천연물 의약품1)의 산업 경쟁력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됐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천연물안전관리연구원 준공식 다음날인 12월18일 제4차 보건의료기술정책심의위원회을 열어 ’25년부터 ’29년까지 시행될 ‘제5차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계획’을 심의·확정하여 정책적으로 K-medi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천연물 의약품 개발 연구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편성해 적극 지원할 것임을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적 지원 속에서 정작 한약재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한의사들은 불합리한 규제에 묶여 있다. 현행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신고에 관한 규정에서의 ‘생약제제’ 정의가 모호하여, 한약재를 주원료로 한 (구)천연물신약을 한의사가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사법 하위고시에 불과한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신고에 관한 규정에서 생약제제는 “서양의학적 입장에서 본 천연물 제제로서 한의학적 치료 목적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제제”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서양의학적 입장’, ‘한의학적 치료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된 바가 없다. 우리가 쓰고 있는 한방 보험제제들도 현대 기술을 이용하여 배합·가공되어 복용 편의성이 증대된 다양한 제형(연조엑스·정제 등)으로 개발·사용되고 있는 만큼, 같은 천연물을 원료로 하여 현대 과학 기술로 개발된 생약제제 혹은 (구)천연물신약 등도 한방원리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전통적인 뜸(직접구) 방식에서 전자식으로 개발된 뜸(간접기기구)도 한의학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하여 그 시술이 인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천연물이 현대적 기술로 제형과 제조 방식이 바뀌었다고 해서 한약제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생약제제 역시 한약제제와 별개인 것처럼 정의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시중에 유통되는 생약제제 대부분은 한의학적 원리에 기반한 처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천연물안전관리연구원 설립을 위한 약사법 법률개정안에서 연구원 명칭을 ‘생약안전연구원’으로 발의되었을 때 한의협에서는 해당 기관이 한약재 안전성을 관리하는 기관이므로 연구원 사업에 포함된 ‘생약’제제 정의의 불합리함과 현행 약사법 상의 정의 등을 근거로 ‘생약안전연구원’을 ‘한약안전연구원’으로 변경하고 사업 내용에서 생약제제에 대한 사항을 삭제 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앞선 생약제제의 정의에 근거하면 ‘생약’이라는 용어 사용이 한의사의 천연물 사용에 대한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천연물신약의 역사와 구성 천연물은 인류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의약품의 형태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일본 등에서 임상적으로 사용해 온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으며 이에 관련된 체계적인 기록과 전통적인 이론이 잘 정립된 만큼 경험적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어 있다. 천연물인 한약의 다중성분이 약효의 상승효과 및 생체 내 상호작용을 일으켜 치료 효과를 강화하고 독성은 줄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순수 천연물신약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에는 특정 양약 성분에 한약 처방을 혼합한 형태의 의약품이 있었다. 두드러기약인 ‘알레스탑에스정’과 진해거담제인 ‘자모(연조엑스)’가 그 대표적인 제품으로 성분 구성은 다음과 같다. 국내에서는 천연물 성분을 이용한 신약 개발과 산업화를 촉진하기 위해 2000년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법’을 제정하고, 2002년 식약처 허가 규정이 신설되면서 본격적인 천연물신약 개발이 이뤄졌다. 이 시기에는 자료제출의약품 수준의 허가로 기존 한약 서적(본초강목, 동의보감 등)에 기재된 처방이거나, 오랫동안 사용되어 식용이나 약용으로서의 안전성이 입증되었다고 판단되는 경우, 비임상 독성 시험 자료의 상당 부분이 면제되었고, 임상 1상 시험을 건너뛰고 바로 환자 대상의 2상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완화된 승인 과정은 국내 제약사의 빠른 신약 출시를 도왔다. 이 시기에 국내 승인 천연물신약의 종류는 아래 표와 같다. 표를 보면 대부분 한약재 혹은 한의처방을 이용해 만든 신약들이다. 2008년 식약처 고시에서 천연물신약에 대한 범주가 확대되어 생약·한약제제의 자료제출의약품 중 일부가 천연물신약으로 규정되면서 한·양방의 갈등이 발생했다. 생약제제가 서양의학적 원리에 의한 약이라면 이에 합당한 의약품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실제 의약품 허가 과정에서는 한약제제로 사용될 때 기성한약서를 근거로 의약품 허가 규정을 면제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게 되다 보니 생약제제가 천연물신약으로 손쉽게 바뀔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스피린(버드나무껍질 속 살리신 성분), 탁솔(태평양 주목 나무껍질의 파클리탁셀 성분) 같은 천연물 유래 합성의약품 등이 천연물신약으로 생각되었던 것이, 한약 전체 추출물 등이 천연물신약이 되면서 한의서나 한의사 임상에 근거한 한약제제임에도 불구하고 생약제제나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어 한의사의 처방권은 제한되었다. 이후 국내의 천연물신약 허가 기준이 낮아 미국 FDA나 유럽 EMA의 엄격한 승인 기준을 통과하기 어려웠고, 2015년 감사원 감사에서 “실제로는 자료제출의약품 수준인데 ‘신약’ 명칭을 부여하여 과도한 혜택을 주었다”는 지적을 받은 후, 2016년 식약처는 ‘천연물신약’이라는 별도 분류를 삭제하고, 천연물의약품의 품질 관리 수준을 높이며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종전보다 엄격한 허가 요건을 도입했다. 이로 인해 천연물 의약품 개발이 주춤하게 되었다. 레일라정 이후 10년 만인 2022년에 육계(계피)를 주성분으로 한 위염 치료제인 ‘지텍정’이 허가되며 천연물의약품 시장에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미 출시된 (구)천연물신약과 천연물의약품 등에 대한 한의사의 처방권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구)천연물신약의 국내 시장은 주요 블록버스터 제품들의 안정적인 실적을 바탕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 2025년에는 약 3000억원대 규모로 성장했다. 세계 천연물 의약품 시장은 약 300조 원(약 2300억 달러) 규모로 급성장하고 있으며, 이에 발맞춰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제5차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계획’을 통해 국내 천연물 신약이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신약으로 인정받도록 표준화된 품질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연구·개발부터 산업화까지 전주기 지원 시스템을 강화할 방침이다. 나아가야 할 방향 천연물인 한약은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해 온 경험적인 검증을 통해 양약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안전하다고 여겨지고 있으며, 실제 한약-간독성 연구에서도 양약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연구결과가 국내외에 존재한다. 물론 자연 유래 천연물이 무조건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약의 일부 성분도 간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한약을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전문가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한약 관련 사고의 대부분은 한의사의 처방과 지시 없이 민간에서 무분별하게 약초를 남용할 때 발생하는 것을 고려할 때, 한의사의 진단·처방·지시 하에 방제학적 원리에 따라 구성된 천연물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성 확보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최근 개소된 ‘천연물안전관리연구원’과의 협력을 통해 한의사는 천연물 안전 관리 및 규제, R&D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여 신뢰성 있는 안전 관리 기반 마련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천연물에 대한 깊은 이해는 단순한 성분 분석이 아닌, 생태적 기원과 인체 반응에 대한 통합적 통찰에서 나온다. 한의사는 이러한 통찰력과 더불어 한약을 치료를 위해 오랫동안 사용해 온 경험과 전문지식을 보유하고 있어, 다중 성분의 복합 작용을 규명하고 현대 과학 기술과 접목하여 표준화된 천연물신약 후보 물질 발굴 및 효능 검증에 기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천연물 전문가인 한의사의 지도 감독 하에 축적된 한의계의 임상 데이터가 신약 개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가져올 수도 있고, 신약의 적극적인 활용 및 사용 확대로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천연물의약품을 탄생시키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미 중국에서는 중의사들에 의해 다양한 한약제제들이 개발되고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중국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승인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예로 NeuroAiD란 상품명의 한약제제인 단기편탄교낭(황기, 단삼, 천궁 적작약, 수질, 토별충, 전갈, 원지, 석창포, 인공우황 등 14개 한약재)은 다국가 임상연구를 통해 뇌졸중 후유증 개선효과를 보여 전 세계적으로 판매·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한약제제가 다수 개발되는 상황에서 정작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지 못하는 국내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를 종합하면, (구)천연물신약·천연물의약품은 전통 한의약 지식과 한의학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한약을 현대화시킨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볼 수 있다.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한약 유래 천연물의약품이 지속적으로 개발되는 현실에서, 한약 전문가인 한의사가 천연물 의약품 개발에 참여하고 실제 임상에서 반드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초음파, 뇌파계, X선 방식의 골밀도 측정기 등의 현대 진단기기도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만큼 법적·제도적 정비를 통해 ‘(구)천연물신약’과 ‘한약제제’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허물고, 직능 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천연물의 새로운 분류 체계가 필요하다. 나아가 의학-한의학-제약업계의 다학제적 협력을 통해 K-메디를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키우기 위한 ‘통합적 거버넌스’ 구축 역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1) 천연물을 원료로 제조된 의약품을 말한다. -
신미숙 여의도 책방-74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진료실에 가장 많이 내원하는 연령대가 30대 중반부터 40대 후반까지인 것 같다. 젊다는 이유로 야근과 출장을 도맡으며 24시간 일꾼 모드로 살다보니 조직의 중추이자 허리 역할로 엄지척 평가를 받고는 있지만 상담을 시작하면 다들 이고지고 다녔던 통증 한다발씩의 역사를 고백하곤 한다. 자주 얼굴을 보면서 친분이 생긴 30대 중반의 성격 좋고 귀여운 직원 한 분이 “연애는 여자가 마음 먹어야 시작되고, 결혼은 남자가 마음 먹어야 시작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시냐고 묻는다. “캬! 듣고보니 명언이네! 여자가 마음만 먹으면 연애가 바로 시작된다? 그게 가능하면 좋은 일 아닌가?”라고 답했다. “그게 또 좋은 게 아닌게요. 일단 연애가 개시는 되는데 대부분이 어정쩡한 상태에서 금방 끝나기를 무한 반복 중이랍니다. 남자로 하여금 결혼 결심을 할 마음까지 만들어주는 것도 결국은 여자 몫인 것 같아서 갑자기 손해보는 마음이 확 들어요. 이러다가 마흔 넘길 것 같아요!” “정신차려보니 결혼식장에 드레스 입고 서 있는 것이 결혼이라는 말이 있소. 아직 젊으니까 최 선생도 곧 그 날이 올 겁니다. 너무 고민하지 말고 75점 정도의 남자가 나타나면 결혼하는 마음까지 들도록 한 번 밀어붙여봐요!” 배우자의 기준과 조건에 점수를 매기는 결정사 욕을 끊임없이 해온 나였으면서 75점을 거론하다니... 인생 선배랍시고 하나마나한 조언을 하고 나니 괜히 멋쩍어진다. 세상일에 마음이 가닿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냐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그것도 일단은 평생을 함께할 것이라는 가정과 상상을 기반으로 사람 하나를 내 편으로 만든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임은 분명하다. 마음 먹기란 자유의지의 다른 표현일까? 마음은 감정, 사랑, 열정 등의 감정적인 측면을 강조할 때는 ‘heart’, 존재의 본질이나 깊은 내면을 지칭할 때는 ‘soul’, 이성·사고·의식·판단 등을 포함한 정신적 기능을 강조할 때에는 ‘mind’이다. 인간의 마음을 의식이라고 정의하기도 하지만 의식은 주관적인 경험과 인식을 포함하는 마음의 한 부분일 뿐 마음은 의식적 요소에 무의식적 요소까지 포함된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렇다면 마음 먹기란 자유의지의 다른 표현일까? 『자유의지는 없다』의 저자 샘 해리스는 “마음은 생각을 만들어내지만, 그 생각을 선택할 자유의지는 인간에게 없다”라고 했다. 우리의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과 욕망은 우리가 선택해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자유의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자유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우리는 타인의 마음과 행동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분노보다는 연민과 책임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20년 전 한 입원환자가 퇴원하면서 정성스런 장문의 편지와 함께 건네준 책이 한 권 있었다. 그 책을 펼치면 거칠었던 장맛비가 병실 창문을 때리는 소리와 4인실 병실 특유의 냄새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유독 기억에 남는 환자였기 때문이다. 30대 초반의 미숙한 임상의였던 나는 ‘실력이 부족하니 체력으로라도 그 간극을 메워보자’라는 심산으로 하루 두세번씩 회진을 다니며 특히 입원환자들에게 정성을 기울였었다. 비구니가 되려고 머리깎고 경상도 어느 절에 들어가서 생활하던 과정에서 알 수 없는 다발성 통증으로 고생하던 차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 우리 병원으로 입원을 하러 오셨던 분, 다시 절로 돌아갈지 말지 내적 갈등까지 더해져서 유독 변덕이 심하셨던 분, 그 덕분에 꽤 길게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며 그녀가 호소하는 모든 증상에 대해서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던 그 분! 정성이었든 휴식의 효과였든 시간이 보약이었든 복합적인 효과의 총합으로 나을 것 같지 않았던 여러 증상들이 차츰 약해지기 시작했고 꽤 만족스럽게 호전되어 퇴원했던 그녀가 건넸던 이 책을 나는 늘 진료실 책장 한 켠에 제목이 잘 보이도록 꽂아두었고 가끔씩 손을 뻗어 어느 페이지든 펴서 읽곤 한다. 영원한 화두! 마음이란 무엇일까? 『마음이란 무엇인가』(달라이 라마, 존 카밧진 외,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6년 6월) -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뇌의 활동 속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경험의 흐름이다. - 신경과학은 마음을 뇌의 기능으로 설명하지만 불교는 마음을 인식과 경험의 중심으로 바라본다. - 마음은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끊임없이 변하는 과정에 가깝다. -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세계는 사실 마음이 해석한 경험의 결과일 수 있다. -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자아도 마음이 만들어낸 하나의 이야기일 수 있다. - 마음을 관찰하는 능력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을 키운다. - 명상은 마음을 비우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연습이다. - 마음이 집착을 내려놓을 때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도 함께 달라진다. - 마음의 평온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마음을 이해하고 다루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 동양의 수행 전통과 현대 신경과학은 마음을 이해하려는 서로 다른 길이지만 같은 질문을 향한다. - 결국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근원을 이해하는 일이다. 『아픔은 치료했지만 흉터는 남았습니다』(김준혁, 계단, 2021년 2월) - 의학은 몸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에 남은 상처까지 모두 치유하지는 못한다. -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치료는 완치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흉터를 남길 수 있다. - 의료의 기술이 발전할수록 환자의 마음을 듣는 능력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 병을 고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은 아픈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갈등은 종종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 사회가 만든 차별과 낙인은 몸보다 마음에 더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 의료는 과학이지만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완전한 치유가 될 수 없다. - 의학의 발전은 인간의 생명을 살렸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의 고통을 충분히 바라보지 못한 순간들도 있었다. - 질병은 개인의 몸에서 시작되지만 그 고통은 가족과 사회의 마음 속으로까지 퍼져 나간다. - 의료가 진정으로 인간적이기 위해서는 몸의 치료와 함께 마음의 존엄을 지켜야 한다. - 사회가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들의 몸보다 마음에 더 깊은 흉터를 남기기도 한다. - 의학은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존중하는 태도가 있어야 진정한 치유가 된다. - 결국 좋은 의료란 몸을 치료하면서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 의료이다. 『뇌를 읽다, 마음을 읽다』(권준수, 21세기북스, 2021년 12월) - 마음 정진은 게으르지 않게 항상 마음의 끈을 적절히 조율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 인간의 마음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뇌의 작동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 우리가 느끼는 불안이나 우울은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 기능의 변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마음의 많은 부분이 생물학적으로 이해될 수 있게 되었다. - 마음을 이해하려면 뇌 구조와 신경 전달물질의 역할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 정신질환은 마음의 약함이 아니라 뇌 회로의 기능 이상으로 이해해야 할 질병이다. - 마음의 회복력은 뇌의 가소성(neuroplasticity) 덕분에 가능하다. - 환경, 경험, 인간관계는 뇌 구조와 마음의 형성에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 - 결국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뇌와 인간 경험을 함께 이해하는 과정이다. 『원효의 마음 공부』(강기진, 유노북스, 2025년 12월) - 원효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진리가 결국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통찰이다. - 우리가 겪는 고통의 대부분은 세상이 아니라 마음의 해석에서 생겨난다. - 마음이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 세상은 훨씬 자유롭고 넓게 보인다. - 깨달음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는 생각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다. - 마음이 만들어낸 경계가 사라질 때 나와 타인의 구분도 조금씩 희미해진다. - 마음이 고요해지면 세상에 대한 판단보다 이해가 먼저 생겨난다. - 마음이 욕망에 끌려갈 때 괴로움이 커지고 마음을 알아차릴 때 자유가 시작된다. - 수행은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바라보는 데서 이루어진다. - 마음을 밝히는 공부는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타인이라는 세계』(홍순범, 다산초당, 2026년 1월) - 인간은 혼자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는 존재이다. -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쉽게 판단하지만 그 행동 뒤에 있는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 인간관계의 갈등은 대부분 타인의 마음을 단순하게 해석하려는 습관에서 시작된다. - 마음은 혼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계속 만들어지고 변화한다. -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형성된 맥락을 이해하는 일이다. -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의 마음을 추측하며 살아간다. - 공감은 타인의 마음을 완전히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가까이 가려는 태도이다. - 마음은 사실보다 해석에 더 크게 영향을 받으며 관계의 방향을 결정한다. -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자신의 마음을 투사하고 있을 뿐이다. -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은 지능이 아니라 경험과 관계 속에서 길러진다. -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순간 우리 자신의 마음도 조금 더 깊어지기 시작한다. - 인간은 타인의 마음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협력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 -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타인의 행동보다 그 행동의 이유를 먼저 묻는다. - 결국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다른 마음의 세계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지선’이라 불리우는 6월3일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향한 일정이 각당 후보 확정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국회는 좀 조용해진다. 미움받을 용기와 정치하려는 마음을 동시에 가진 사람들만이 정치판에 들어올 수 있는 것 같다. 시대가 혹은 특정 세대가 적극적으로 호출했기에 선거에 나선 자들도 있지만 아무도 호출한 적 없고 본인의 능력도 부족함을 알지만 이건 운명이라며 돌발적으로 선거에 나서는 자들도 상당수다. 이 두 부류는 입장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맷집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정치하려는 마음, 선거에 나서는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 초심을 유지하겠다는 약속이나 초심을 돌아보겠다는 반성은 거리에 나뒹구는 ‘처음처럼’ 소주병처럼 흔하지만 첫 마음을 끝까지 지켜낸 자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치하려는 마음’은 점차 ‘갑질하는 마음’으로 발전하고 간혹 ‘뇌물을 받고 싶은 마음’에까지 도달하여 실행이라도 하게 되면 한번에 훅 간다. 정치야말로 사람 그것도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의 마음을 한꺼번에 얻어야 하는 일이니 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가? 지하철 환승통로 간이매점에서까지 7천원짜리 두쫀쿠를 팔길래 이제 두쫀쿠도 끝물이구나 싶다. 이번에는 난데없이 봄동비빔밥이 그 다음 유행템이란다. 아무리 다이나믹 코리아라지만 전국민적 유행의 변신에는 특별한 기준도 맥락도 없다. 매주 목요일 열리는 집앞 장터에 밤고구마를 사러 들렀더니 요즘 봄동 유행인거 모르냐며 야채코너 사장님이 내 허락도 맡지 않고 봄동이 담긴 봉다리 하나를 고구마 위에 강제로 올려놓으신다. ‘유행이라고 하니 그래도 한번은 먹어줘야겠지? 두쫀쿠에 비하면 이 얼마나 저렴하고 건강한 유행인가?’ 싶어서 흐뭇한 마음으로 계산하고 콧노래까지 부르며 귀가했다. 유행에 민감하지 않으면서도 또한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이 마음은 또 어디서 온 것인가? 『맘고쳐 한의원』(즐하, 봄마중, 2025년 5월)이라는 동화책에 “에구구, 얼굴을 보니, 고민이 가득하네! 자 털어놔 봐. 여기는 어떤 마음이라도 고쳐 주는 맘고쳐 한의원이라고!”라는 문장이 있다. 낮에는 사람들을 고치는 ‘다고쳐 한의원’이었다가 밤에는 물건들을 고치는 ‘맘고쳐 한의원’으로 변신한다는 이야기. AI가 인간의 모든 영역을 대체 가능할 것이라는 가까운 세상에 맘고쳐 한의원 혹은 다고쳐 한의원은 과연 어떤 미래를 마주할 것인가? 힙한 을지로 일명 힙지로 형성의 시발점이 되었던 카페 ‘커피한약방’과 디저트가게 ‘혜민당’이 재개발에 밀려 이번달 말로 영업을 종료한다. 커피한약방에 걸려있던 “이곳은 옛 허준 선생님이 병자를 치료하시던 혜민서 자리입니다”라는 나무 액자도 사라질 것이다. 허준 선생님의 흔적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온고지신의 마음으로 삼월을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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