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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를 품은 우토로, 한의학으로 전한 기억과 연대의 온기”[한의신문] 우토로 마을, 아픈 역사의 현장을 찾다 지난달 2일부터 5일까지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위치한 우토로 마을을 다녀왔다. 그곳은 일제강점기 일본 정부가 추진한 군 비행장 건설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함바 터에 형성된 마을이다. 당시 재일조선인들은 징용과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행장 건설의 가혹한 노동에 종사하였으나 일본의 패전으로 공사가 중단되자 그 자리에 방치된 노동자와 가족들은 스스로의 손으로 불모의 땅을 개척하여 살아왔다. 해방 후 가혹한 차별과 빈곤 속에서도 민족학교를 개설하여 빼앗긴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되찾기 위한 교육도 했다. 재일조선인들의 슬럼으로 멸시되었던 우토로 마을은 상하수도 등의 생활 인프라가 정비되지 않아 큰비가 오면 심각한 수해에 고통받았으며 지하수를 끌어올려 사용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일본 시민들이 우토로 사람들과 힘을 합쳐 마을의 생활 개선을 요구하는 운동이 1986년부터 시작되었으며 1988년에 상수도가 설치됐다. 그러나 토지를 인수한 회사에 의해 강제 철거 위기에 몰리고 되고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식민지 지배와 전쟁에 기인하는 우토로 문제의 본질은 고려되지 않은 채 명도소송에서 패소하여 불법 점거자가 됐다. 수도 문제 때부터 지원해 온 일본인 시민단체의 국내외 홍보활동으로 2001년에는 유엔 권고를 이끌어냈으며 우토로의 호소가 한국에 전달된 2005년에는 지구촌동포연대(KIN)를 중심으로 ‘우토로 국제대책회의’가 결성돼 우토로의 토지 구매를 위한 시민 모금 운동이 대대적으로 시작되었다. 우토로 마을은 어려움에 직면하면서도 곁을 지켜 온 일본 시민들, 재일동포, 한국 시민들이 협력하고 힘을 합쳐 거주권을 지켜낸 역사적 공간으로 지역 사회에서 ‘작은 통일’을 만듦으로써 새로운 사회와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 건립된 우토로평화기념관은 역사를 계승할 뿐만 아니라 우토로 주민들을 비롯한 지역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는 커뮤니티의 거점으로서 일본과 한반도의 미래를 짊어진 사람들의 만남과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기억과 연대를 전한 한의 의료봉사 투쟁의 역사 끝에 쟁취한 시영주택에 정착한 동포들이 살고 있는 그곳에 미로한의원 의료봉사단원인 금손한의원 박수진 원장, 장문기 실장과 함께 기억과 위로와 연대의 마음을 전하고자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다큐멘터리 ‘차별’의 김도희 감독이 이 여정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위해 동행했다. 과거 MBC ‘무한도전’을 통해 알려졌던 1세대 어르신들은 이제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후손인 2세대 동포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 동포들과 우토로평화기념관의 자원봉사자들을 대상으로 한의진료를 펼쳤다. 한국 한의학의 힘을 보여준 진료 현장 이번 진료 현장에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일본 현지 침구사 두 분도 참관했다. 그들은 환자가 허리가 아프면 허리에, 어깨가 아프면 어깨에 침을 놓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오른쪽이 아프면 왼쪽에, 왼쪽이 아프면 오른쪽에 침을 놓았습니다.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 그 자체가 아니라 통증의 근본 원인을 오장육부 기운의 성쇠에서 찾아내어 한국 한의학의 정수인 사암침법으로 약해진 장부의 기운을 보강하는 원인 치료에 집중하였으며 대증치료는 동씨침법으로 하였다. 아픈 곳이 아닌 반대편 혈 자리에 침을 놓는 것을 의아해하던 환자들과 일본 침구사들은 침을 놓자마자 통증이 즉각적으로 호전되는 모습에 감탄했다. 이것이 바로 동의보감을 기본으로 한의학의 원형을 보존하고 발전시켜 온 한국 한의학의 힘이라는 설명에 그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토로 사람들이 건넨 따뜻한 환대 우토로 마을은 식당 하나 찾기 힘든 외진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한 대접을 받았다. 우토로평화기념관의 김수환 부관장이 정성껏 차려준 점심과 저녁 식사는 봉사단의 기운을 북돋워 주었다. 숙소 또한 마을 동포 자매 중 언니분이 동생 집으로 거처를 옮기면서까지 자신의 집을 통째로 내어주신 덕분에 편안히 쉴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념관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단 3명의 사무국 직원 외에도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있었다. 우리 동포뿐만 아니라 일본인들까지 가세해 기념관 운영을 돕고 있었으며 진료 중에도 사무국 직원과 자원봉사자가 통역을 맡아 환자와의 소통을 완벽하게 지원해 주었다. 치유의 온기가 이어지기를 바라며 척박한 땅에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우토로 동포들의 삶은 그 자체로 눈물겨운 역사이다. 이번 의료봉사는 단순한 진료를 넘어 소외된 곳에서 역사를 이어가는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한국 한의학의 우수성을 현지에 각인시킨 귀한 시간이었다. 비록 몸은 고됐지만 환하게 웃으며 배웅해 주던 동포들의 눈빛과 한의학의 신비에 놀라던 일본 침구사들의 표정이 여전히 선하다. 우토로에 피어난 치유의 온기가 앞으로도 우리 동포들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를 소망한다. -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565)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1990년 5월30일 수요일 부산광역시의 동의대학교에서 제14회 杏林祭가 전국 한의대생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東義大 韓醫大 학생회 주최로 열린 행림제에서 5월29일에는 주제 논문 발표회, 전한련 발대식, 문화제, 대동제 등이 열렸고, 30일에는 오전 9시부터 학술논문 발표회가 있었으며, 하오에는 체육대회가 열렸다. 첫날 주제 논문 발표회에서는 「북한의 보건의료」(경희대 한의대 김상언), 「한의학계의 의료운동 실태와 방향」(동의대 한의대 김종훈) 등의 발표와 문화제로는 사물놀이 마당극 등이 열렸다. 당시 한의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체육대회에서 배구, 농구, 씨름, 야구 등 각 종목 경기가 벌어진 끝에 원광대가 1위로 종합 우승, 대전대가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30일 학술논문 발표회에서 발표된 논문은 경희대 故홍원식 교수께서 기증해주신 ‘제14회 杏林祭 학술논문 초록집’을 통해 발표된 논문들을 파악할 수 있다. 학술논문 초록집에 등재된 논문들은 아래와 같다. ◯ 「五行盛衰關係를 通해 살펴본 四象人 臟腑虛實과 臨床的 活用」. 발표자 김영진(동국대 본과 3년). 지도교수 박현국: 이 논문은 동국대 원전연구회 6기인 본과 3학년 김영진, 배승완, 이현숙, 황성윤 4인의 공동 연구로서 각종 도표로 사상인의 장부허실의 문제를 오행의 생극 관계로 풀어내고 있다. ◯ 「津液의 生成과 轉化에 對한 考察」. 발표자 최시열(동의대 본과 2년). 지도교수 이용태: 이 논문은 동의대 최시열과 黃之道硏塾과 공동연구한 결과물로서, 津液의 生成과 轉化를 진액의 정의, 생성, 작용, 전화와 수포과정(특히 오장육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으로 정리하고 있다. 특히 진액대사의 과정, 宗氣의 생성 순행작용, 衛氣의 생성 순행 작용, 영혈의 생성 순행 작용 등의 제목으로 구성한 도표는 매우 값진 결과물이다. ◯ 「五味에 對한 文獻的 考察」. 발표자 장인수(우석대 본과 1년). 지도교수 이남구: 이 논문은 五味에 대해 논의되고 있는 문헌인 『황제내경』, 『신농본초경』, 『본초강목』, 『경악전서』, 『본초문답』 등을 바탕으로 오미의 개념, 오미의 특성, 오미의 오행, 오장 배속, 五味苦欲補瀉 등으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다. ◯ 「沙蔘과 羊乳의 식물 조직학적 比較」. 발표자 송범룡(우석대 본과 1년). 지도교수 이창현: 이 논문은 송범룡, 최금호 2인의 공동 연구로 진행된 것으로서 사삼과 양유의 차이를 명칭, 본초학적 응용면, 식물형태학적 비교, 구조적 차이의 해부학적 고찰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 「自然觀을 通해 본 東西醫學의 比較考察」. 발표자 류창형(대구한의대 예과 2년). 지도교수 김광중: 동서의학의 차이를 자연관의 차이를 중심으로 살펴본 논문으로서 강을 중심으로 한 농경문화와 사막을 중심으로 한 유목문화로부터 나누어져 환경에 영향을 받은 자연관이 형성되었다는 관점에서 한의학적 생명관과 서양의학의 질병관을 비교했다. ◯ 「韓國産 藥用植物의 採取時期 考察」. 발표자 안점우(우석대 예과 2년). 지도교수 노진구: 예2 안점우와 본1 방규상이 공동으로 연구한 논문으로서 한국산 약용식물의 채취시기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조사 정리한 논문이다. ◯ 「東醫寶鑑에 收錄된 韓藥物에 對한 分類 調査」. 발표자 한상균(우석대 예과 2년). 지도교수 주영승: 예과 2년 김진, 한상균의 공동 연구로서 『동의보감』에 수록된 한약물을 분류 조사한 논문이다. 수록 약물이 760종이며, 동일 약물로서 약용 부위가 다른 것이 다수이며 식물류 435종, 동물류 183종, 광물류 52종, 기타 90종이라는 것을 밝혔다. ◯ 「韓醫學에 있어 三의 意味와 有關 槪念에 對한 小考」. 발표자 繼明學會(대전대 예과 2년). 지도교수 김성훈: 三의 의미가 인체의 구성, 생리, 병리, 진단, 방제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정리한 논문이다. -
‘방문진료’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만약 우리가 다시, 동네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집으로 찾아가 진료를 할 수 있다면 어떤 치료를 할 수 있을까. 병원에 갈 ‘여력이 없다’ 말하는 어르신들에게, 우리는 어떤 치료를 해드릴 수 있을까. 병원에 갈 만한 이렇다 할 이유는 없지만, 그럼에도 군데군데가 쑤시는 어르신들에게는 어떤 치료를 해드릴 수 있을까. 병원에 딱히 갈 이유는 없지만 보호자들이 옆에서 보기에 혼자 두기에는 불안 불안한 어르신들에게는, 우리가 무엇을 묻고 무엇을 치료해야 될까. 시범사업이기는 하나, 방문진료가 가능하게 된 지 수 년이 흘렀다. 방문진료라 함은, 말 그대로 환자가 계신 댁으로 한의사가 찾아가 진료를 하는 것을 말한다. 아무래도 이 진료의 특성상 건강하게 잘 걸어 다녀 대학병원부터 한의원까지 필요한 경우마다 딱딱 골라 다니는 남녀노소보다는, 주로 댁에 있으시며 꼭 약을 타 먹어야 하는 경우 말고는 병원에 가는 것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어르신들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에는 병원에 갈 육체적, 감정적, 경제적 여력이 안 되는 분들 또한 포함될 것이다. 오히려 이런 분들께는 과거에 가방 하나 들고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왕진을 하는 의사들의 모습도 꽤 익숙하실 세대이기에, ‘방문진료’라는 단어를 의료진보다도 도리어 더 쉽게 받아들이시는 경향도 있는 듯하다. ”글쎄, 크게 불편한 곳은 없는데요?” 방문진료 사업 덕분인지 보건소나 지자체에서도 자체적으로 왕진(방문진료) 사업을 추진하는 추세이다. 덕분에 대학병원에 근무하고 있음에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시간 가량 차를 몰고 왕진을 나갔다. 어떤 물건이든 찾으면 다 구할 수 있는 병원을 벗어나서, 할 수 있는 치료의 종류와 범위 또한 제한되어 있을 게 분명한 누군가의 집에서 진료를 보는 장면들이 막연하게 상상만 되었다. 그럼에도, ‘그간의 경험’이 어떻게든 임기응변은 해주겠지라는 믿음으로 이런저런 도구들을 적절한 수준에서 챙겨갔다. 한의원에 걸어 들어오는 환자들은 니즈가 분명하다. ‘어디가 불편하세요?’라고 하면, 아픈 곳이 너무 많은 환자는 있어도 내가 여기를 왜 왔는지 잘 모르는 환자는 드물다. 한방병원에 들어오는 환자들은, 설사 본인이 잘 몰라도 우리가 찾아내면 된다. 한·양방 협진이 되는 구조니 일단 검사를 돌리면 그들도 잘 몰랐던 불편한 지점들을 우리가 찾아내서 환자를 끌고 갈 수 있다. 이게 내 ‘그간의 경험’이었다. 한 내외분이 계시는 자택으로 들어갔다. ‘아휴 선생님들 오셨네. 감사해요~ 여기 앉으세요’라고 말씀하시며 두 어르신이 바삐 움직이셨다. 가벼운 안부를 묻고, ‘아버님, 어디가 불편하세요?’라고 여쭈었다. 그랬더니 ‘글쎄. 크게 불편한 곳은 없는데요? 이미 병원도 다 다니고 있고, 약도 다 먹고 있는데 뭘...’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대답이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알아서 걸어 들어와 주신 환자를 마주하는 것과, 내가 걸어 들어가서 마주한 환자를 대하는 것에 차이가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만, 어르신이라는 특성상 여기저기 삭신이 쑤시는 증상은 기본적으로 있을 것이며, 한의사를 보면 알아서 구구절절 말씀해주실 거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있었구나 싶었다. “아휴,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꽤 흠칫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에 그간의 경험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무슨 약 드시고 계세요? 약 보면 어디가 불편하셨는지 알 수 있겠네.’라는 대답이었고, 그렇게 진료가 시작되었다. 막상 처방전들을 보니 수면제, 전립선약, 통증약, 고혈압약, 당뇨약 등 복용하고 계신 약들이 많은 편이었다. ‘수면제 드시네? 수면제 드시면 잠 좀 잘 주무세요? 언제부터 드셨어요?’라고 묻자, ‘먹은 지 꽤 됐는데, 효과가 없어. 어떻게 해야 돼요?’라는 대답이 왔다. ‘전립선약 드시고 계시네요? 밤에 소변은 어떠세요?’라고 묻자, ‘아, 이 약 먹어도 밤에 꼭 소변보려고 2~번씩 깬다.’라는 대답이 왔다. ‘요즘 혈압, 혈당은 잘 조절 되세요? 댁에서도 재시죠.’라고 묻자 ‘그건 괜찮은 것 같다. 근데 먹는 약이 너무 많다.’라는 대답이 왔다. ‘통증약은 왜 드세요. 어디 불편하세요.’라고 묻자 ‘좌골신경통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거기서 약 받아왔다. 근데 밭일 하고 나면 아픈 건 똑같다’라는 마지막 대답이 돌아왔다. 이 대화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병원 안에서 이루어졌던 익숙한 진료 패턴과 주소증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진료는 약봉지 너머에 숨어있던 어르신의 진짜 증상들을 하나씩 짚어드리고서야 제대로 궤도에 올랐다. 병원 약을 먹어도 여전하다던 좌골신경통에는 침을 놓았고, 오랜 밭일로 굳어버린 등줄기를 따라 추나 치료를 정성껏 해드렸다. 처음엔 손사래를 치시던 어르신도 치료가 끝나자 “아휴, 이제야 좀 살 것 같다”며 환한 미소로 고마움을 전하셨다. 치료의 끝에는 현재 드시는 약들 중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지, 각기 다른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들임을 고려해 다음 진료 때 의사에게 어떤 불편함을 구체적으로 말해야 하는지도 꼼꼼히 일러드렸다. 다음 진료 전까지 댁에서 할 수 있는 관리법과 주의해야 할 증상까지 곁들였다. 옆에 딱 달라붙어 재잘재잘 설명해드리는 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얼굴을 마주하며, 나는 방문진료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금 확인했다. 한의계의 더 큰 기회이자 따뜻한 경쟁력 결국 방문진료 현장에서 한의사는 때로 ‘약물’을 기반으로 진료의 실마리를 풀어내야 한다. 침을 놓고 뜸을 뜨는 우리의 훌륭한 기술만큼이나, 어르신들의 약봉지 사이에서 증상의 원인과 미충족 수요를 읽어내는 역량이 중요해진 것이다. 소위 ‘다제약물 복용’ 상태인 어르신들에게 한의학적 치료가 가장 유의미한 대안이자 보완책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대중에게 익숙한 표준 치료와 그 약물 체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환자가 이미 복용 중인 약의 효능과 한계를 명확히 알 때, 비로소 우리가 무엇을 더해주고 무엇을 관리해드려야 할지 더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느 한 사람의 숙제가 아니라, 방문진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한의사들이 함께 어깨를 맞대고 키워나가야 할 역량이다. 우리가 표준 치료의 흐름을 더 정교하게 읽어낼수록, 한의 치료라는 도구는 더 넓고 확실하게 쓰일 수 있다. 그렇게 적극적인 소통과 공부를 통해 우리만의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면, 방문진료는 한의계의 더 큰 기회이자 따뜻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 15김호철 교수 경희대 한의대 본초학교실 교수 (주)뉴메드 대표이사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김호철 교수(경희대 한의대 본초학교실)의 ‘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를 통해 임상 현장에서 자주 제기되는 한약의 궁금증과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최신 연구 결과와 한의학적 해석을 결합해 쉽게 설명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이 기존의 한약 지식을 새롭게 바라보고, 실제 진료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의사라면 본초학 교재에서 계지의 효능을 이렇게 외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발한해기(發汗解肌), 온경통맥(溫經通脈), 통양화기(通陽化氣).” 너무 익숙한 문장이라 굳이 의문을 품지 않고 지나가기 쉽다. 그런데 본초 전체를 가로로 펼쳐놓고 보면, 이 가운데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표현이 하나 있다. 바로 “온경통맥”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효능 표현이 본초 전체에서 계지에 거의 독특하게 부여된 자리라는 사실이다. 다른 약재에서 “통맥”이나 “온경”이라는 표현이 일부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발산풍한약(發散風寒藥)이라는 분류 안에서, “산한해표”와 함께 “온경통맥”이 동시에 핵심 효능으로 자리 잡은 약재는 사실상 계지가 거의 유일하다. 왜 그럴까. 이 질문은 단순히 계지 한 약재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본초학이 약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또 실제 임상에서 그 인식이 어디에서 흔들리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단면에 가깝다. 계지는 어디에 분류된 약인가 본초학은 기본적으로 약재를 작용 방향에 따라 나눈다. 발산풍한약, 청열약, 온리약, 활혈거어약, 보익약, 이수삼습약 등으로 구분하는 체계가 그것이다. 그리고 각 분류 안에서 효능을 비교적 일정한 언어로 정리한다. 발산풍한약은 발산풍한·해표·산한, 온리약은 온중산한·회양구역·온신장양, 활혈약은 활혈거어·행기활혈과 같은 표현이 중심이 된다. 계지는 이 체계 안에서 분명 발산풍한약으로 분류된다. 마황, 자소엽, 형개와 함께 표(表)의 풍한사를 흩는 약으로 배운다. 실제로 계지탕, 갈근탕, 소청룡탕 같은 처방에서 계지는 분명 표를 푸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임상에서 계지를 오래 써 본 사람이라면, 계지가 단순히 “표를 푸는 약”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당귀사역탕에서 계지는 사지궐랭을 풀고, 황기계지오물탕에서는 혈비(血痺)를 다스린다. 온경탕에서는 자궁의 허한과 한응(寒凝)을 따뜻하게 풀어주고, 계지복령환에서는 하복부의 어혈과 종괴를 다루는 자리에 들어간다. 이런 운용에서 계지는 더 이상 단순한 발산풍한약이 아니다. 오히려 안을 따뜻하게 하고, 막힌 흐름을 열어주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약재를 하나의 본성으로 보려는 사유 사실 이 문제는 단순히 분류 체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아래에는 더 깊은 사유의 층이 있다. 본초학에는 약재를 하나의 속성·본성을 가진 존재로 보는 사유가 깊이 깔려 있다. 약재끼리의 관계를 단행(單行)·상수(相須)·상사(相使)·상외(相畏)·상오(相惡)·상반(相反)·상살(相殺)의 칠정(七情)으로 나누어, 마치 사람처럼 서로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도와준다고 본 것. 한 처방 안에서 약재의 자리를 군신좌사(君臣佐使)로 배치한 것. 약재의 본성을 사기오미(四氣五味)로 규정한 것. 이 모두는 약재를 사람처럼 하나의 본성을 가진 존재로 보는 사유의 연장이다. 사물이 아니라 인격적 존재로 약재를 보는 시선이 본초학의 근저에 흐른다. 그런데 사람의 성품이 한 가지 색깔로 규정되지 않듯, 약재도 한 가지 방향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계지가 바로 그런 자리에 선 약재다. 표를 푸는 가벼움, 리를 덥히는 따뜻함, 혈맥을 통하게 하는 활달함이 한 약재 안에 함께 들어 있다. 약재를 하나의 본성으로 규정하려는 본초학의 사유 자체가 시험대에 오르는 자리가 바로 여기다. 경맥(經脈), 표와 리의 사이에 놓은 다리 바로 여기에서 “온경통맥”이라는 표현의 의미가 드러난다. 만약 계지의 작용을 직접적으로 적는다면 “산한(散寒), 온리(溫裏), 활혈(活血)” 같은 표현이 함께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적는 순간 발산풍한약 항목에 속한 약재가 온리약과 활혈약의 영역까지 동시에 침범하게 되고, 약재의 정체성 자체가 흐려진다. 본초학자들은 이 문제를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해결했다. 바로 “경맥(經脈)”이라는 통로 개념을 끌어온 것이다. 생각해 보면 경맥이라는 개념 자체가 흥미롭다. 경맥은 표에도 있고 리에도 있다. 피부와 사지를 지나 장부 안으로 들어가며, 혈맥과 함께 몸 전체를 연결한다. 즉 경맥은 본초학에서 표와 리의 단단한 이분법을 부드럽게 흐리는 중간 공간이다. 표·리 어느 한쪽으로 환원되지 않는 약재를 설명하기 위해 본초학이 끌어온 중간 공간 — 이것이 “경맥”이다. 그래서 “경맥을 따뜻하게 통하게 한다”고 적으면, 어디를 직접 덥힌다고 단정하지 않으면서도 따뜻하게 하여 흐름을 열어준다는 계지의 복합적 작용을 자연스럽게 담아낼 수 있다. 온(溫)과 통맥(通脈), 두 작용의 결합 다시 말해 “온경통맥”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계지라는 약재가 가진 독특한 위치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매우 정교한 효능 언어에 가깝다. 흥미로운 점은, 이 표현 안에 사실상 두 가지 작용이 동시에 들어 있다는 점이다. “온(溫)”은 안을 따뜻하게 한다는 뜻이며, 본질적으로 온리(溫裏)의 작용이다. “통맥(通脈)”은 막힌 혈맥을 통하게 한다는 뜻이며, 본질적으로 활혈(活血)의 작용이다. 즉 온경통맥은 사실상 온리와 활혈의 결합이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온리”와 “활혈”이라 적으면 약재의 단일한 본성이 흐트러지므로, “온”과 “통맥”이라는 표현으로 그 결합을 효능 언어 안에 담아낸 것이다. 그래서 계지복령환 같은 처방이 있는 것이다. 이 처방은 하복부의 어혈과 종괴를 다루는 활혈거어 처방이다. 여기서 계지는 더 이상 표를 푸는 자리에 있지 않다. 오히려 안을 따뜻하게 하면서 막힌 혈맥을 열어주는 자리, 즉 한응(寒凝)으로 굳어진 혈행을 다시 소통시키는 자리에 들어간다. 만약 계지가 정말 표만 푸는 약이었다면 이런 처방의 자리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계지가 활혈거어 처방의 군약 자리에 들어간다는 사실 자체가, 계지의 효능 안에 혈맥을 통하게 하는 작용이 본래 깃들어 있었음을 임상으로 증명하는 자리다. 천 년의 임상이 빚어낸 효능 언어 물론 이것을 단순히 “한의학의 모순”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반대로, 본초학이 약재의 실제 작용을 매우 오래전부터 복합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에 가깝다. 본초학은 약재를 단순한 기능 조각들의 집합으로 보지 않았다. 약재를 살아 있는 작용의 흐름으로, 표와 리를 가로질러 움직이는 하나의 인격적 존재로 이해하려 했다. 현대 약리학에서도 하나의 성분이 여러 조직과 여러 표적에 동시에 작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계지의 주요 성분인 cinnamaldehyde 역시 혈관, 감각신경, 말초순환에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연구들이 축적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용이 부위 특이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표·리를 가로지르며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작용이라는 점에서, “경맥을 따뜻하게 통하게 한다”는 본초학의 표현과 자연스럽게 호응한다. 천 년 전 본초학자들은 분자 표적의 차원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임상 속에서 계지가 단순히 표만 푸는 약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복합성을 “온경통맥”이라는 한 줄의 효능 안에 담아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 않게 외우는 효능 표기 한 줄 한 줄은 단순한 암기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임상가들이 약재의 실제 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오랜 시간 다듬어 온 언어의 흔적이다. 계지의 “온경통맥” 역시 마찬가지다. 그 한 줄 안에는, 약재를 하나의 본성으로 규정하려 하면서도 그 본성이 단일하게 환원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려 했던 본초학자들의 오래된 고민이 남아 있다. 어쩌면 본초학의 깊이는 바로 그런 긴장 속에서 만들어져 온 것인지도 모른다. -
세계인들은 한의약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⑦조익준 한의사 •한의신문 인턴기자 •침구의학과 전공의 일본 1874년, 메이지(明治) 정부가 ‘의제(醫制)’를 시행한 이후 일본 한방의학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법령에 따르면, 새로 개업하려는 의사는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약제학, 내외과, 병상처방 및 수술 시험을 통과해야만 면허를 받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나 독일에서 유래한 서양의학을 공부한 의사만 인정하겠다는 의도였다.1) 침구의학이나 방제학 등은 의료 영역에서 제외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1947년엔, 전후(戰後) 일본 정부가 침구사에 대한 규제를 시행했다.2) 1967년에는 국민개보험 보장 목록에 6가지 한약을 추가했다. 이후 2000년까지, 그 수는 148개 처방, 848개 제품으로 늘어났다.3) 메이지 정부는 한방의약을 도태시키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우리와 비슷하게, 전국민 의무 가입 국민건강보험을 운영하고 있다.4) 침구술은, 만성화한 △신경통 △류머티스성 질환 △경완(頸腕)증후군 △오십견 △요통 △경추염좌후유증 총 6개 질환에 의사가 동의서를 발급한 경우 보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후생노동성은 이 외 상병에도 담당의가 동의서를 작성한다면 심사를 거쳐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5) 의사와 침구사만 침구 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 침구사가 되려면 후생노동성이 인정한 침술학교(3년제), 문부과학성이 인정한 대학교나 전문대학을 졸업한 뒤 후생노동성에서 주관하는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일반의료, 위생, 공중보건, 관련 법규,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임상의학개론, 재활의학, 동양의학 일반이론, 경혈 일반이론, 동양의학 임상이론, 침술 이론, 뜸 이론 등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다.6) 한방제제뿐 아니라, 생약과 첩약도 공적 보험을 통해 보장 받을 수 있다. 상병이나 이에 따른 처방에 제한을 두는 규정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7)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 일본동양의학회에서 제시한 수련 과정을 3년 이상 이수하고, 총 6년 이상 임상 경력을 갖추면 한방전문의로 인정하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8) 대만 전국민이 의무 가입하는 전민(全民)건강보험을 운영하고 있다. 총액예산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9) 중국처럼 중의사 제도를 갖추고 있다. 중의사 교육 과정에는 학사 학위 취득 후 5년제, 고등학교 졸업 후 7년제, 중서의 복수전공 8년제 총 3가지가 있다. 5년제나 7년제를 졸업하더라도 2~3년간 소정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중서결합의 면허시험을 볼 수 있는데, 7년제를 졸업한 서의사도 마찬가지다.10)11) 중의 급여 항목에는 진찰, 약, 약품조제, 침구치료, 상과(傷科)치료, 탈구정복, 검사, 침구(합병상과) 치료, 특정 질병 외래 강화 관리가 포함되어 있다. 공적 보험이 인정하는 중약은 두 가지로 나뉜다. 중약신약과 복방농축중약(한약제제)이다. 2015년 기준, 농축 중약 325개 처방과 6783개 품목이 보장 대상에 들어갔다. 일반 처방은 1회에 7일분을 초과해선 안 되고, 만성병 환자에 한해 1회 최대 30일분까지 제공할 수 있다는 부가 규정도 있다. 침구 치료는 공단에서 제시한 ICD 근거 진단명에 해당해야 공적 보험 적용이 가능하다. 구체적인 치료법이 아닌, 상병에 따라 행위와 수가가 정해진다. 상과 치료는 침구를 이용하지 않는 외과 질환 대상 수기요법이다. 급만성 염좌(족관절 염좌, 요추 염좌, 경추 염좌 등), 건염(주관절외측상과염, 견관절 건염, 완부요측건초염 등), 관절병변(풍습성 관절염, 퇴행성 관절염, 강직성 척추염, 통풍, 동결견 등) 소견이 있다면, 치료비 보장을 받을 수 있다.12) ♣ 마무리 지난 7회에 걸쳐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브라질, UAE, 베트남, 뉴질랜드, 중국, 몽골, 일본, 대만 총 19개국 공적 의료 보험이 한의약을 어떻게 보장하는지 조사했다. 세계에서 한의약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되길 바라며, 마무리한다. 참고문헌 1) 김옥주, 미야가와 타쿠야, 의사학, 2011.12, 에도 말 메이지 초 일본 서양의사의 형성에 대하여 2) WHO, WHO GLOBAL REPORT ON TRADITIONAL AND COMPLEMENTARY MEDICINE 2019 3) Tetsuo Akiba, Kampo Med, 2010, History of Kampo Extracts for Medical Use 4)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2026, 국민건강보험 가이드북 5) 일본 후생노동성 보도자료, 2025.04, はり、きゅう及びあん摩マッサージ指圧の同意書の取扱いを改めてお知らせします 6) 일본침구사회(JSAM) 홈페이지(https://jsam.jp/en/acupuncture/education/) 7) 현은혜, 임병묵, 대한예방한의학회지, 2022.04, 일본 건강보험의 한약 급여제도 현황 8) 일본동양의학회, 전문의제도기본규정(https://www.jsom.or.jp/universally/doctor/nintei.html) 9) 국민건강보험 건강보험연구원, 서수라 외 3인, 2022년도 주요국의 건강보장제도 현황과 정책동향 10)대외경제정책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윤강재 등,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중국종합연구 협동연구총서 16-49-01, 중국과 대만의 중의학(中醫學)-서의학(西醫學) 관계 설정 현황과 시사점 : 인력양성과 보장성을 중심으로 11) 서울Pn, 이현정, “한국 의료 이원화 체제 유일… 中 복수면허·대만 복수전공 양성”(https://go.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410013001) 12) 김동수 외 4인, 대한예방한의학회지, 2016.08, 대만 중의 건강보험의 체계와 서비스 질 향상 정책 -
“한의약, 자가면역 반응 조절과 질환 진행 억제 측면 잠재성 높아”임동우 연구초빙교수(동국대 한의과대학 한의학연구소 및 진단학교실) <편집자주>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연구소 및 진단학교실 임동우 연구초빙교수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2026 세종과학펠로우십’에 선정됐다. 본란에서는 임동우 교수에게 향후 진행하게 되는 연구 내용과 함께 갑상선 질환에서 한의약이 가질 수 있는 역할 등을 들어봤다. 임동우 교수는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진단학교실에서 한의진단학 강의와 기초·임상 중개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2018년 모교에서 한의학 박사(병리학) 학위를 취득한 후 공중보건의로 복무하며 COVID-19 팬데믹 초기 경기도 역학조사관으로 근무한 바 있다. 소집 해재 후 2021년 상반기부터 다시 모교 진단학교실로 돌아와 현재까지 연구와 강의를 이어오고 있으며, 초기에는 천연물의 효능을 탐색하는 실험연구로 연구에 입문했으나, 현재는 생물정보학, 임상 관찰연구를 결합해 한의진단학의 객관적 지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연구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Q. ‘2026 세종과학펠로우십’에 선정된 소감은? 이전부터 여러 연구자분들의 세종과학펠로우십 선정 소식을 접하며, 나 역시 수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연구과제 수주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이번에 선정된 것을 매우 뜻깊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이번 선정을 계기로 한의학 분야의 학술 및 연구 발전에 더욱 힘쓰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연구에 매진하겠다. Q. ‘세종과학펠로우십’은 어떤 사업인가? ‘세종과학펠로우십’은 과거 ‘대통령 포스트닥 펠로우십(President Postdoctoral Fellowship)’으로 알려졌던 제도의 취지를 잇는 사업으로, 우수한 박사후연구원 및 비전임 교원의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보장하고 이들이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대표적인 인재 양성 사업이다. 연구책임자는 5년간 최대 연 1억3000만원 내외 규모로 총 6억5000만원 내외의 연구비를 지원받게 된다. Q. 어떤 연구를 진행하게 되는지 궁금하다. 본 연구에 앞서 2023년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창의도전연구에 선정돼 갑상선암 환자 유래 갑상선 조직을 이용한 자가면역성 갑상선염의 전사체 프로파일 분석 연구를 진행하며 환자 조직의 특성과 신규 병태생리 기전을 규명하고자 했다. 또한 다기관 공동연구팀과 함께 자가면역성 갑상선염 환자의 마이크로바이옴 분석, 생물정보학 기반 치료 후보 천연물 탐색, 실험모델 구축 및 천연물 생리활성 검증 등 기초와 임상을 연결하는 중개연구를 지속적으로 확장해왔다. 이번 연구에서는 선행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경부 피부를 통한 약물전달로 경부 림프절의 면역반응 조절을 통해 갑상선 자가면역 반응을 제어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가설을 세웠다. 갑상선과 경부 림프절의 해부학적 인접성, 자가면역성 질환의 면역학적 기전, 그리고 효율적·지속적인 약물 전달 방식을 통합해 자가면역성 갑상선염의 새로운 중재 전략을 제안했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5년간의 연구기간 동안 환자 조직 분석, 후보 천연물을 활용한 세포실험, 동물모델 기반 전임상연구를 단계적으로 수행할 계획이다. 나아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컨소시움을 구성해 후속과제로 연계하고, 임상 적용 가능성까지 탐색하고자 한다. Q. 꾸준히 자가면역성 갑상선염에 대해 연구하게 된 계기는? 자가면역성 갑상선염은 만성적인 경과를 거쳐 갑상선 기능저하증(Hypothyroidism)으로 진행할 수 있으며, 갑상선 기능이 상당 부분 소실된 후에는 회복이 어렵다. 갑상선기능저하증의 가장 흔한 원인은 자가면역성인 하시모토 갑상선염이라는 점에서 이 질환의 이해와 조기 중재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의임상에서 자주 접하는 만성피로, 추위를 탐(cold intolerance), 대사기능저하의 양허증(陽虛證)과 관련이 깊은 증상을 호소하는 다수 환자의 기저에 갑상선이 관련돼 있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예방의학·기능의학적 관점에서는 불현성 갑상선기능저하증을 구조적 이상(질환)으로 넘어가기 전 기능적 이상(불건강)으로 보고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의료 중재 연구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미충족 수요에 대해 연구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고, 관심을 가지게 됐다. 아울러 조직 기반 갑상선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외부의 큰 도움이 있었으며, 이 자리를 빌려 귀중한 임상 조직 기반 연구의 기회를 주신 강남 세브란스 병원 갑상선내분비외과 김석모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Q. 갑상선 질환에 있어 한의약의 역할은? 자가면역성 갑상선염은 장기적으로 진행·악화되는 질환으로, 앞으로는 보다 적극적인 의료중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의약은 예방의학적 측면에서 강점이 있어, 자가면역 반응의 조절과 질환 진행 억제 측면에서 잠재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특히 초기 단계의 개입을 통해 갑상선염이 갑상선기능저하증으로 진행하는 과정을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전략이 개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향후 환자의 전사체 프로파일링 데이터·생화학 바이오마커와 한의학의 변증(辨證)을 결합한다면, 환자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한의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 모델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Q. 한의약 발전을 위해 연구에 매진 중인 젊은 한의과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낯설고도 쉽지 않은 연구자의 길을 선택한 젊은 한의과학자 분들게 깊은 존경을 드린다. 연구자마다 관심 분야와 처한 상황, 그리고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현재를 남과 비교하기보다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자신만의 페이스로 묵묵히 걸어가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동료 연구자분들의 건승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
“베트남 호치민에서 ‘K-메디컬’의 미래를 그려”[한의신문] 베트남 상류층과 타국의 외국인 거주자들이 모여 드는 곳, 호치민의 ‘강남’이라 불리는 타오디엔(Thao Dien)에서 자연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최성주 원장이 한의 진료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대한민국의 우수 과학기술 인재들이 모이는 KAIST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 최성주 원장은 복잡한 시스템을 분석하는 공학적 사고방식을 한의학에 접목 중이다. 최성주 원장은 “항공우주공학이 정밀한 계산을 통해 우주로 길을 낸다면, 한의학은 우리 몸의 균형을 정밀하게 분석해 건강으로 가는 길을 찾아낸다”고 밝혔다. 2023년 베트남에 첫 선을 보인 자연한의원(NATURE CLINIC)은 지난해 말 타오디엔의 현 위치로 이전 개원하면서 통증 재활, 내과 만성질환, 면역 체질 개선에 이르기까지 데이터와 원리에 기반한 진료를 선보이며 현지인과 외국인 사회에서 논리적이고 믿을 수 있는 한의원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최 원장은 “가족과 함께 해외살이를 계획하다가 베트남을 찾게 됐다”면서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의료 분야의 성장 가능성을 체감하게 됐으며, 특히 한의학의 장점을 잘 알린다면 베트남 시장에서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개원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진료에 머물지 않고, 현지 내과 및 약국과의 협진 시스템을 구축을 통해 베트남 의료 시장의 중심부로 파고들었다. 까다로운 안목을 가진 유럽계 외국인과 베트남 신흥 부유층이 밀집해 있는 만큼 그들의 특성에 따른 개인 맞춤형 한의진료를 브랜드화했다. 현재 자연한의원은 최 원장을 비롯 현지 한의사 1명, 내과 전문의 1명, 약사 1명, 접수 3명, 간호 2명, 회계 1명, 마케팅 1명 등 모두 11명이 근무 중이다. 최 원장은 “베트남 현지인들이 많이 앓고 있는 근골격계 질환 및 스트레스성 내과 질환에 있어 한의 치료의 즉각적인 효과에 크게 놀라워한다”면서 “한국의 선진 의료서비스와 베트남 현지의 정서가 결합된 K-의료의 미래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최 원장은 또 “베트남은 기회의 땅이지만, 철저한 현지 법규 준수와 차별화된 브랜딩 없이는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베트남에서 외국인이 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베트남 의사면허를 별도로 취득해야 한다. 외국 의사면허를 기반으로 현지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언어시험과 각종 서류 제출 등 복잡한 과정을 밟아야 한다. 최 원장은 “개원하기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제도 변화도 잦아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고, 여러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다행히 현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개원에 이르게 됐다. 최 원장은 현재 스레드, 틱톡, 블로그 등 SNS를 활용해 한의 의료의 우수성을 베트남의 현지 언어로 전파하는 등 디지털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 원장은 “베트남에도 전통의학이 있어 우리의 한의학과 유사한 개념에 대한 이해도가 좋은 편이고, 이러한 배경 덕분에 침, 뜸, 한약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아 진료하는데 수월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진료하는데 있어 어려운 점으로는 의사소통의 문제를 꼽았다. 통역 직원들의 도움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보다 더 정확한 진료를 위해 영어 및 베트남어 공부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최 원장은 “최근 K-컬처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의료 의 신뢰와 관심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면서 “발전된 한국의 의료 기술과 체계적인 진료 시스템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인식이 형성돼 있어 한의약을 향한 호기심도 지속해서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베트남으로 진출하고 싶은 동료 한의사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인내심을 갖고 준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한국과 베트남은 행정 시스템과 업무 처리 방식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지 환경과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시간을 여유 있게 잡고 준비하는 것을 추천드린다.” 최 원장은 “한국 한의학은 단순한 전통의학을 넘어 신뢰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한의학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충분한 만큼 호치민에서 일궈낸 작은 성과들이 한국 한의학의 세계화에 작은 밀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베트남은 경제 성장과 함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만큼 이 같은 흐름에 맞춰 보다 체계적인 한의 진료 시스템을 구축하고, 현지인들에게 한의학의 장점을 널리 알려 나가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점진적으로 진료 분야를 확대하고, 예방의학 및 건강관리 중심의 프로그램을 도입해 보다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현지인들의 생활습관 및 체질에 맞춘 한의약 제품의 개발을 통해 일상 속 건강관리까지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피카디 인턴십 통해 미래 의료인으로서의 AI 활용방향 고민”학교 수업에서 출발한 피카디 인턴십 본과 진입을 앞둔 지난 예과 2학년 겨울방학, 나는 조금 특별한 도전에 나섰다. 배효진 교수님의 한의임상생리학 과목의 외부 전문가 특강에서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어, 1월5일부터 2월13일까지 6주간 ‘피카디(fika.d)’라는 회사의 인턴십에 참여하게 됐다. 피카디(fika.d)는 생성형 AI 기술을 기반으로 숏폼 영상 제작 솔루션인 ‘피카클립(ficaclip)’을 운영하는 유망한 테크 스타트업이다. 롱폼 영상을 단 몇 분 만에 퀄리티 높은 숏폼으로 자동 변환해 주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기부 팁스(TIPS) 선정과 구글 AI 퍼스트 프로그램 선발 등 여러 방면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회사를 이끄는 정원모 대표님이 경희대 한의대를 졸업한 ‘한의대 출신 창업가’라는 사실이다. 학부생 시절 스마트폰이 막 상용화되기 시작했을 때, 앱 개발에 흥미를 갖고 IT 기술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는 대표님의 이력은 대단히 놀라웠다. 인턴십에 지원한 초기에는 “AI가 트렌드라고 하니 관심은 가고, 대표님께서 한의대 출신이신데 어떻게 AI스타트업을 창업하셨을까?”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인턴십은 단순히 AI를 사용해 경제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에 참여해 보았다는 단순 경험을 넘어, 미래의료인으로서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 특별한 계기가 되었다. AI, 단순한 도구 넘어 실무의 파트너임을 체감 이번 인턴십은 오프라인 근무와 온라인 비정기 근무가 혼합된 형태로 운영됐다. 주된 업무는 숏폼(Short-form) 콘텐츠의 기획부터 대본 생성, 영상 편집에 활용될 자료들을 제작하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Google AI Studio, HeyGen, Veo 3, n8n 등 평소 이름만 들어봤던 최신 AI 툴들을 직접 구독하고 실무에 사용해보는 경험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EBS ‘지식채널 e’ 스타일의 교육용 콘텐츠 제작과 수원 영통 ‘윤빛한의원’의 홍보 숏폼을 제작한 일이다. 초기 기획 단계부터 AI는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했다. 수많은 레퍼런스 영상을 AI로 분석해 대중의 관심이 높은 영상의 포인트를 찾아내고, 주제에 맞는 대본을 생성한 뒤, 이를 다시 시각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디자인에 대한 감각과 지식이 전무한 내가, 이렇게 높은 퀄리티로 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놀랍게 느껴졌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중요성이었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은 빠르고 정교하지만, 때로는 내가 요청한 사항과 다르게 결과물이 출력되거나,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지는 결과물이 생성될 때도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다. 사용자가 AI에 입력하는 명령을 ‘프롬프트’라고 하는데, AI가 사용자가 원하는 의도에 적합하게 결과물을 생성할 수 있도록 명령을 구성하고 다듬는 작업을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고 한다.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상사분께 직접 피드백을 듣고, 몸소 이 작업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AI시대, 한의사는 어떻게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가? 이번 활동은 한의원 경영과 임상 현장에 대해서도 깊은 통찰을 주었다. 인턴십을 통해 만난 수원영통 윤빛한의원 이재현 대표원장님과의 협업은 한의사가 단순히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을 넘어, 하나의 사업체를 이끄는 경영자(CEO)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전국 한의원의 대부분이 원장 1인이 운영하는 구조라는 현실 속에서, 대표원장인 한의사의 시간은 가장 귀한 자원이다. 나는 여기서 AI의 진정한 가치를 볼 수 있었다. 한의사가 직접 해야 할 핵심 역량(인소싱)과 AI나 외부 시스템에 맡길 수 있는 부분(아웃소싱)을 명확히 구분하고, 이 전략을 바탕으로 남들과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강점을 강화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기게 된다. AI를 경쟁자로 생각하고, 배우지 않는다면 대체되겠지만 AI에 대해 공부하고, 그 특성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활용만 할 수 있다면 나의 업무를 굉장히 전문적인 수준에서 보조해 줄 수 있는 아주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미래를 향한 네 가지 다짐 6주간의 여정을 마치며, 나는 앞으로의 학창 시절 동안 집중해야 할 네 가지 우선순위를 세웠다. 첫째, 흔들리지 않는 의학적 기초다. 기술과 언변이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본질은 환자를 고치는 실력에 있다. 편향되지 않은 탄탄한 이론과 술기 공부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둘째, 사람을 향한 공감 능력이다. AI가 흉내낼 수 없는 환자와의 정서적 교감은 의료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것이야 말로 AI시대에 의료인이 가져야 할 필수덕목일 것이다. 셋째, 기술의 능동적 활용이다. AI를 경계의 대상이 아닌, 내 진료와 외주 영역의 업무를 보조해 줄 직원으로 길들이는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할 것이다. Chat gpt, Gemini와 같은 접근성 좋은 AI뿐 아니라, 다양한 AI 툴들을 사용해보며, 경험의 폭을 넓힐 것이다. 넷째, 거시적 안목의 경영학적 학습이다. 홍보 전략과 보건의료체계를 이해하여, 더 많은 환자에게 한의학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것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앞으로 시대적 변화에 의료인으로서 어떠한 태도로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심도있게 해볼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이 글을 빌려, 이런 기회를 제공해주신 동국대 한의대 생리학교실 배효진 교수님, 피카디 CEO 정원모 대표님, 흔쾌히 한의원 참관 및 고견을 나누어주신 수원영통 윤빛한의원 이재현 대표원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
침도요법 도입 22년, 세계화를 향한 도약과 정규 교과과정 편입을 위한 제언전 대한침도학회 창립회장 양현모 [한의신문] 2008년 민족의학신문 제654호에 “침도요법을 아시나요?(3)”라는 기고문을 통해 한국에 침도요법을 본격적으로 알린 지 어느덧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침도의학과 임상(2011년)’과 ‘침도의학 실용편(총론)(2019년)’ 출간을 거쳐, 2026년 5월 ‘Codex Acupuncture: 침도/호침/약침의 통합적 임상 매뉴얼’의 출간을 앞두고, 지난 22년 동안의 임상 및 침도 전파 여정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초기 한국 한의학계에 ‘침도요법’이라는 낯선 치료법을 전파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음으로 ‘대한소침도학회(준)’와 ‘대한침도학회(준)’를 창립하였고, 이영우 원장님과 중국의 중서의(中西醫) 결합 의사인 강철수 원장님과 연계하여 수 많은 한의사 선후배님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약 10여년 임상강의 및 해부실습을 진행했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새로운 학술적 시도와 진료가 의료법 체계 내에서 안전한 범위에서 이어질 수 있도록 동분서주했습니다. 침구제작회사 우전침구와 협력하여 중국과는 다른 크기와 모양을 갖춘 한국형 침도를 개발해 마침내 우리나라의 정식 의료기기로 편입시켰습니다. 또한 침도요법 관련한 책 출판, 임상강의 및 임상사례를 통한 임상검증을 통해 진료 현장에서 널리 사용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현재 ‘대한침도학회(준)’, ‘대한침도의학회’, ‘원리침학회’ 등 여러 학회가 활동하고 있으며, 전국 수 많은 한의원에서는 합법적인 의료기구인 침도(도침)를 사용해 다양한 질환이 치료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성과의 배경에는 초기 침도요법의 전파과정에서 쏟았던 많은 분들의 땀방울과 열정이 깊게 베어 있습니다. 영문판 ‘Acupuncture with Acupotomy’ 출간의 의미 한국의 임상 현실에 맞추어 독자적으로 진화하고 발전한 침도(도침) 요법은 이제 세계 무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2026년 5월 한국판 ‘Codex Acupuncture’ 출간에 앞서, 동일한 내용을 2권의 분량으로 나눈 영문판 ‘Acupuncture with Acupotomy’를 2026년 4월 9일, 21일에 각각 아마존을 통해 출간했습니다. 이 책의 출간은 단순히 개인적인 임상경험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고도화된 침도(도침) 임상 및 약침의 응용방법과 그 학문적 토대(병리 및 해부)를 영어권 국가에 직접 전파한다는 데 깊은 의의가 있습니다. 해부학적 지식, 연부조직의 병리 및 움직임에 기반하여 “어떻게 하면 더욱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효율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를 치열하게 고민해 온 한의사의 노하우를 세계화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침술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주변국들 사이에서, 우리 한의학이 탁월한 임상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전통의학을 선도할 수 있는 확고한 학술적 근거이자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 희망합니다. 세계의 변화, 의료급여의 도입 및 한국 정규 교과과정 편입의 시급성 연부조직의 질환에 대한 침도요법의 발전과 임상의 응용에 있어서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에 안주하기에는 외부 세계의 변화가 빠릅니다. 침도요법의 발원지인 중국은 이미 이를 단순한 치료법이 아닌 ‘침도의학’으로 승격시켰으며, 과거 일부 학교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던 교과목(소침도요법)을 넘어, 2026년부터는 중의대 정규 교과과정에 ‘침도의학’ 교재를 정식으로 채택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하나의 의학으로 승격하고 국가의 집중적인 연구와 지원을 하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 침도의학을 공격적으로 전파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 우리의 현실을 냉정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침도(도침)을 응용한 치료방법, 응용범위 및 학술적 연구가 훌륭하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우리는 여전히 개인 간의 임상경험 전수와 학회 중심의 교육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또한 의료보험 체계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한의대를 졸업한 이후 22년간 침도(도침) 위주로 진료를 시행하며 수많은 난치성 통증 환자분들을 효율적으로 치료해 온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토록 효과적인 치료법이 아직까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문제나 한의대 정규 교과과정에 체계적으로 편입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학계의 크나큰 손실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고도의 치료법에 필수적인 ‘침도를 위한 전문 해부과정’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은 우리 임상의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진료를 시작하고 있는지를 방증합니다. 따라서 침도를 위한 해부학 정규과정 도입과, 정규 교과과정 내 침도요법 교육이 매우 시급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최근 10년여간 한적한 시골에서 임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현 시점에서 한의학의 미래에 대한 또 다른 발전 방향을 생각해봅니다. 척박했던 초기 전파의 시기를 지나 한의학의 세계화를 향해가고 있는 지금, 침도에 대한 내용은 마땅히 한의과대학 정규과정에 임상적인 내용을 토대로 학술적이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수록되어야 합니다. 후학들에게 제도권 내에서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교육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한의학은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춘 미래의학으로 힘차게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벽이 아닌 문! 문이 아닌 길!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장애인들이 체육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처음에는 벽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벽을 넘는 게 어렵지 않다. 한 번 넘으면 다른 벽을 넘는 건 더 쉬워진다. 스포츠가 자신의 세상을 깨부수고 나올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지난 3월26일 밀라노 동계 패럴림픽에서 5개의 메달을 목에 건 장애인 노르딕스키 국가대표 김윤지 선수(2006년생)의 웃는 얼굴도 인상적이었는데 인터뷰도 똑소리가 난다. 비장애인 선수들의 성공 서사와는 결이 다른 김 선수의 당당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시각장애를 가진 의원님 한 분이 가끔 내원하신다. 원래 가지고 있던 우측 무릎 통증이 12·3 계엄 때 월담하는 과정에서 더 악화되었다고 하셨다. 누워서 치료받는 그 짧은 시간에도 귀에는 이어폰, 손에는 노트북을 지참하시고 시각장애인용 음성 프로그램으로 발표 자료를 확인하는 열정을 이어가신다. 어디서도 들어볼 수 없는 찰진 유머와 구수한 입담을 보유하신 의원님께 그 비결을 여쭈었더니 친정 아버지께서 성대모사를 기가 막히게 잘 하시는 밝은 성격의 분이었다고 하시며 그게 재능이라면 아마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다고 하신다. 중2 때 발병한 망막색소변성증으로 1급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으셨지만 그 벽을 넘고 넘어 오늘이라는 당신 자리에 우뚝 도달하신 분! 본인이 가진 장애를 벽이 아닌 문으로, 문이 아닌 길로 만들어낸 분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불편이 불편이 아니었다. 이날까지 살아보니 이 불편이 내 삶에는 축복이었다!” 『찬란한 불편』(하오밍이, 섬드레, 2025년 6월) - 나는 목발을 짚고 다니며 세계를 탐험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탐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도 배웠다. 그 덕분에 나는 지금도 호기심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 어머니는 나를 위해 따뜻한 보온병 같은 세계를 만들어주었다. 밖에서 다칠까 봐 걱정했던 어머니는 내가 집에 머무는 걸 더 좋아하게 만들었다. - 인생이란 한 사람이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사물에 대한 조합 능력을 개발하는 과정이다. - 자신을 인식하고 정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신의 한계를 찾아내고 그것을 돌파하는 것이며, 자신의 파편을 직면하고 그 속에서 완전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장애, 이해하고 있다는 오해』 (에밀리 라다우,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2025년 6월) - 장애인으로서 자신을 설명하고 정의하는 방식에는 개인적인 선택지들이 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핸디캡(handicapped)이란 용어는 이제 정말 그만 써야 한다는 것이다. - 장애인 커뮤니티의 역사는 고통스러운 억압부터 힘겹게 쟁취한 시민권의 승리까지 꽤 파란만장하다. - 신경다양성은 치료가 필요한 무언가가 아니다. 없어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을 그들이게끔 하는 정체성의 일부분이다. - 모든 장애인은 자신의 삶에 관한 전문가이다. 그러니 장애인을 대신에 장애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말라. 『재활의 밤』(구마가야 신이치로, 동녘, 2025년 10월) - 애초에 몸의 긴장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운동에 불필요한 요소일까? 몸의 긴장이 없을 때만 사람은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일까? - 뇌성마비를 지닌 몸에서는 어떤 목표를 갖고 운동하려 할 때 목표에 반하는 긴장이 필연적으로 온몸에 넘쳐난다. 그러므로 운동을 할 때 그런 긴장, 즉 과도한 신체 내 협응 구조를 풀기 위해 자신의 몸에 어떤 암시를 준다. - ‘회복접근’의 재활에서 드러나는 한계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클라이언트의 불만을 ‘장애수용’이라는 말로 억압하려는 현장의 독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 나의 삶은 쇠퇴를 향해 서서히 형태를 바꾸어 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주변의 지원이 점점 더 필요할 것이다. 『발달장애 당사자연구』 (아야야 사츠키, EM실천, 2025년 10월) - 대량으로 자극을 너무 많이 받아들여 많은 감각에 머리가 파묻혀있는 상태를 나는 감각포화라고 부르고 있다. - 누른 부분에서 누르지 않은 부분을 제어할 수 있다는 이러한 감각은 나 또한 기분 탓인가 하고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침을 맞으러 가게 되었을 때도 ‘동양의학이라니, 정말로 효과가 있는 걸까? 비싸기만 한 거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 “거기를 누르니 위가 움직이기 시작하네요” “역시 그곳은 목이랑 이어져 있었군요” “온열요법은 피 순환을 좋게 하거나 림프액의 흐름을 촉진시키는 거로군요” ‘이렇게 동양의학에 익숙해져 가는 나는 또 뭘까?’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권용덕, 김영사, 2026년 4월) - 장애는 그저 하나의 특징이고,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람에게서 하나의 다름일 뿐이다. 이 다름은 옳고 그름의 기준에서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차이일 뿐이다. - 많은 사람이 장애는 태어날 때부터 발생한다고 생각하는데, 국내 전체 장애인의 88.1%는 후천적으로 발생한다. -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은 권리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애인의 권리로만 보여졌던 것이다. - 통합교육을 통해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고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게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서 통합교육이 필요하고 존재하는 것이다. 4월 말 모교 학술위 초청으로 특강을 앞두고 있다. 2026년에 한의대생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더 이상 핫하지 않은 한의대에 진학하여 5∼6년차에 접어든 본3∼4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복지부보다 문체부랑 더 가깝고 『EBS명의』보다는 『동치미』에 주로 초대되는 게 한의사랍니다. 의사, 약사와 상의하라는 TV광고의 글귀는 있어도 한의사와 상의하라는 권고를 공중파에서 접한 적은 없죠?” 이런 대사로 강의를 시작했다간 괜히 분위기만 싸해지는 건 아닐까? 간만에 학부생 대상 강의를 하러 간다고 하니 딸냄이 당부하며 건넨 말 “어머니, 강의하시다가 상처받지 마세요. 아무도 안 들을 거예요. 딴짓하고 질문 없고 모두 폰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저희 세대 특징이니 그러려니 하세요. 광주까지 먼 걸음 하시는데 기왕 가시는 길, 맛집 탐방 많이 하고 오셔요!” 이 팩폭은 위로인가? 응원인가? 조롱인가? 사랑인가? 2006년 산티아고 순례길 800km 도보여행을 다녀온 후 고향 제주에 올레길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셨던 서명숙 이사장께서 지난 4월7일 별세(향년 68세)하셨다. 2007년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발족된 이래 올레길은 현재 27개 코스(437km)가 완성된 상태다. “걷는 길은 우리 국토 곳곳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걷지 않았고 잊어버렸고 상실한 것일 뿐이다”라고 생전에 말씀하신 바 있다. 지금은 높은 벽으로 느껴지지만 개발된다면 올레길이 될 수도 있는 한의학에도 아직 발견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25년 12월19일 이형훈 제2차관 주재로 ‘제5차 한의약 육성발전 종합계획(2026∼2030)’을 확정했다. 2026년부터 어르신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살피는 ‘한의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고 한의약을 돌봄 중심 의료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의 건강주치의 시범사업도 동시에 검토된다. 2018년 5월부터 시행되어온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이 홍보 부족으로 장애인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임에도 의협은 위 발표 닷새만에 한방 난임사업도, 한의사 주치의 돌봄 확대도 즉각 중단하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한의계의 모든 사업에 절대반대를 외치는 의협이라는 철벽이 무너질 날이 오기는 할까? 이번에 강의를 마칠 무렵 학생들 중 그 벽을 한 번 넘어볼 학생이 있는지 한 번 물어봐야 겠다. 물론 아무도 손 들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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