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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를 통해 발견한 사랑과 희망[한의신문] 이번 KOMSTA 186차 라오스 의료봉사는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라오스 비엔티안 미타팝 병원에서 이루어졌다. 총 13명의 단원이 봉사에 참여했으며, 3일 동안 총 1,399명의 현지 주민들이 방문했다. 5개의 진료실에서 원장님들이 힘써 주셨고 학생단원들은 진료 보조, 동선, 약재실의 업무를 돌아가면서 골고루 맡았다. 봉사의 의미를 생각해보다 항상 하루 봉사를 끝내고 나면 다같이 모여서 소감을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모든 일정을 다 끝내고 돌아오면 몸은 지치고 피곤하였지만 나는 이 시간이 정말 좋았다. 그 중 단장님이 하신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봉사는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이 마음이 전해지고 전해져서 베풀고 나누는 마음들이 퍼지고 퍼질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해외의료 봉사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 있었지만, ‘왜 봉사를 해야 할까?’ 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여기 라오스에 와서 찾았다. 한의학도의 마음을 다지다 본과 1학년은 임상에 대한 경험이 아주 많지는 않은 학년이다. 그만큼 아직은 한의학의 위상에 대해서 몸소 깨닫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다. 이번 라오스에서는 그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진료 보조를 맡았던 첫째 날 만났던 한 여성 환자분이 기억에 남는다. 침과 부항이 너무 무서워서 시트가 땀으로 다 젖었던 그 분은 낯선 치료가 무서워 재진은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치료가 다 끝나고 걸어가던 도중 다시 돌아오셔서 다리가 안 아프고 시원하다며 재진을 하겠다고 마음을 바꾸셨다. 환자분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시는 순간, 한의학을 공부하게 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를 바라보는 마음을 배우다 동선 업무를 맡았을 때의 일이다. 처음 환자들을 진료실에 배정할 때는 환자 수가 고르게 분포되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 그러나 곧 다리가 아픈 환자들이 복도 끝에 있는 진료실로 갈 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다. 또 허리가 아픈데 오랫동안 서서 대기를 하느라 고통스러워 우시는 분도 볼 수 있었다. 무언가 깨닫고 난 뒤로는 오래 서 있거나 걷기가 불편한 분들은 가까운 진료실로 배정하고 앉아 있을 수 있는 대기 공간을 안내해 드렸다. 의료진의 따뜻한 시선 하나하나가 환자에게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환자를 위한 진정한 배려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혼자보다는 ‘같이’가 좋다 이번 봉사는 정말 모두의 노력이 모여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콤스타 근 6년 중 가장 많은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주었고, 그 분들을 최대한 끝까지 치료해 드리기 위해 현장의 그 누구 하나 게을리하지 않고 열심히 봉사에 임했다. 특히 통역을 맡아 주신 분들과 오랜 시간 고군분투하며 많이 가까워졌다. 마지막 식사 날 단원 중 한 명은 울음을 터트릴 정도로 정이 많이 들었다. 많은 업무를 도맡아 해 주신 사무국 선생님들의 도움도 정말 컸다. 함께했던 마음이 잊히지 않도록 먼 훗날까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라오스 봉사를 통해 한의사의 마음가짐에 대해 정말 많이 배웠다. 환자들에게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알려주기 위해 뛰어서 인쇄하고 오신 원장님, 바쁜 와중에도 정성스럽게 문진하고 약과 치료를 고민하던 원장님, 빠른 손놀림으로 쏟아지는 환자들을 완벽하게 돌보시던 원장님, 따뜻한 상담과 추나 치료까지 진행하시던 원장님, 중증 환자들을 도맡아 보시면서도 힘든 내색 하나 없으시던 원장님, 엑스레이 사진까지 들고 찾아온 환자들의 절박함을 절대 외면하지 않던 원장님. 그들의 열정을 결코 잊을 수 없다. 한 원장님께서 마지막에 ‘나는 이 봉사가 매년 오고 싶어요. 매년 봄이 되면 생각이 납니다.’라고 말씀해 주신 순간이 자꾸 떠오른다.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한의대 학생으로서 그리고 언젠가 한의사로서도 참여할 수 있다면 지금 원장님들께 배운 것들을 반드시 나누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라오스 봉사의 장면들은 생생하게 계속 살아있을 것만 같다. 웃으면서 ‘컵짜이, 싸바이디’ 인사해 주시던 라오스 주민들의 얼굴도 아른거린다. 짧게나마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
라오스에서 만난 환자들, 그리고 다시 깨닫게 된 것들[한의신문] 이번 제186차 WFK-LKC KOMSTA 봉사단(한의사 5명, 일반 단원 8명)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 위치한 미타팝 병원에서 4일간 총 1,399명의 환자에게 한의 진료를 시행했습니다.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오갔던 말 - "컵짜이 라이 더(정말 감사합니다)" 라오스 전역에서 KOMSTA 봉사 소식을 듣고 찾아오신 환자분들께 최선의 치료를 해드리기 위해 모든 단원이 힘을 모았습니다. 비록 언어는 달랐지만, 통역사분들의 도움과 어설프게나마 직접 건넨 라오스어, 그리고 몸짓과 눈빛으로 진심을 담아 진료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1년 전 KOMSTA의 진료를 받았던 분들이 그 경험을 믿고 더 많은 분들과 함께 다시 찾아주시기도 했고, 먼 곳에서부터 오랜 시간 기다려 진료를 받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저 역시 라오스 현지에서 저희에게 보내주시는 기대와 신뢰를 잘 알고 있었기에, 간절함과 긍정적인 긴장감을 안고 환자분들을 마주했습니다. 라오스는 의료인력과 의료기관 등 전반적인 의료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아 의료 접근성이 높지 않은 편입니다.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보니 치료 시기를 놓쳐 증상이 만성화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욱 안타까웠던 점은 대부분의 환자분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의료나 건강에 대한 관심과 정보 접근성이 높지 않고, 참고할 만한 자국 내 건강 콘텐츠 역시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침과 부항 치료 후, 혼자서도 꾸준히 이어 나갈 수 있는 간단한 운동이나 생활 습관 교정을 안내해 드렸을 때 환자분들이 무척 흥미롭게 들어주셨습니다. 한편, 발달장애나 정신과 질환, 노인성 질환처럼 의료뿐 아니라 교육, 상담, 사회복지가 동반되어야 하는 분야에서는 전반적인 인프라 부족으로 당장 도움을 드리기 어려운 현실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의학을 경험하고 낫길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침, 추나, 한약 등 한의학이 가진 다양한 치료적 접근은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특히 제게 오셨던 급성기 안면마비 환자분은 매일 내원하며 눈 감김 증상이 눈에 띄게 호전되었는데, 이번 진료를 하며 가장 뿌듯했던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미타팝 병원의 현지 의사들 역시 저희의 진료 모습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특히 침과 부항 치료의 효과에 주목하며 이를 활용한 치료를 더 적극적으로 확장하려는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이를 보며 라오스 현지에서도 한의학적 치료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성을 가지고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내가 마주한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헤아리고 싶다.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 속에서, '내가 더 실력이 있었다면 짧은 순간에도 더 좋은 치료를 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습니다. 환자분들을 낫게 해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그 마음을 책임질 수 있는 실력을 함께 갖춰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앞으로의 진료 인생에서도 저를 믿고 찾아와 주시는 환자분들의 몸과 마음의 불편함을 헤아리고, 그분들께 가장 필요한 치료를 정확하게 해드릴 수 있는 한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치료해 드린 분들이,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가 그분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진심으로 함께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봉사는 한 번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고, 많이 할수록 더 좋다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더 다양한 곳으로 가서, 더 많은 분께 진료를 해드리면 좋겠습니다. 한의학의 도움이 필요한 곳, 우리의 지식과 손길과 마음이 필요한 곳에 가능한 한 더 자주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KOMSTA 의료봉사에 직접 참여해 그 의미를 느끼며, KOMSTA의 봉사 정신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한의원을 운영하는 임상의로서도 꾸준히 봉사에 나서시는 선배 한의사분들의 모습을 보며, 저 역시 생업을 하는 와중에도 물질적 후원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참여를 지속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애정하는 팀원들에게 7일간의 일정 동안 제 곁에는 늘 든든한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휴진하면서까지 봉사에 참여해 KOMSTA 활동의 참된 의미를 몸소 보여주신 김주영 단장님, 그리고 단원들이 건강하게 일정을 소화하고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긴장 속에서도 모든 업무를 세심하고 매끄럽게 처리해 주신 KOMSTA 사무국의 이승하, 천세정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함께 고민하며 더 나은 진료를 위해 이끌어주신 박종수, 김범수, 김세진, 강지영 원장님, 그리고 진료 보조는 물론 궂은일을 모두 도맡아 주신 김수진, 김지원, 문지원, 심유민, 이세욱, 이윤석, 전나경, 홍정인 선생님께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발 벗고 나서 한마음으로 움직이는 우리 팀원들 덕분에 참으로 든든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혼자였다면 닿을 수 없었겠지만, 함께였기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좁은 진료실을 벗어나 제가 닿을 수 있는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해준 이번 봉사의 모든 순간과 인연에 마음 깊이 감사합니다. -
낯선 땅에서 마주한 통증의 얼굴들[한의신문] 낯선 라오스어로 첫 인사를 건네며 진료실 문을 열었던 날이 떠오른다. 짧은 봉사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현장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환자들의 눈빛과 온기는 떠올릴수록 더 그리워지는 기억이다. 봉사 기간 동안 총 1,399명의 환자분들이 진료소를 찾았고, 저는 그중 286명의 환자를 직접 만나며 그들의 아픔을 듣고 한의진료를 했다. 이번 봉사는 저에게 단순히 의료를 베푸는 시간을 넘어, 한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자세와 진정한 치료의 의미를 다시금 고민하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먼 곳에서 찾아온 환자들, 진료실에서 마주한 현실 진료소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더 먼 곳에서 온 이들의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비엔티안 현지 주민들뿐만 아니라, 저 멀리 방비엥에서 기차를 타고 달려온 분들, 심지어 태국에서 국경을 넘어 찾아온 분들도 계셨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내원한 환자들의 질환군은 한국에서 접하던 패턴과 조금 달랐다. 추간판탈출증이나 퇴행성 관절염, 협착증 같은 근골격계 질환도 당연히 많았지만, 지간근이 굳어 손 전체가 뻐근하게 아프다고 호소하는 시장의 할머니들, 뇌졸중이나 파킨슨병 같은 신경계 질환 환자들도 유독 많았다. 특히 뇌졸중 환자 한 분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몸 한쪽이 마비되었지만, 당장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일을 멈출 수 없어 제대로 된 검사나 치료 없이 5년을 버텨왔다는 분이었다. "5년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도 나아지지 않나요?"라고 묻는 그분의 눈빛 앞에서 저는 깊은 먹먹함을 느꼈다.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뇌졸중 원인 평가(Stroke source work-up)나 예방을 위한 약물 복용, 체계적인 재활 치료의 기회조차 그들에겐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의료의 빈자리에서 마주한 환자들의 삶 발달 지연과 자폐증을 앓고 있는 어린 아기를 안고 찾아온 부모를 만났을 때는 속상한 마음에 "왜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두셨냐"며 다그치듯 묻기도 했다. 하지만 진료를 이어가며 이내 제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다. 그들에게는 하루하루 삶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이미 버거운 투쟁이었고, 병원에 가는 것보다 그저 살아가는 것이 더 우선이었을지도 모른다. 환자의 처지를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 조급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며 나지막이 미안한 마음을 삼켰다. 한 편으로는 엑스레이나 MRI 필름을 소중하게 봉투에 넣어 들고 다니면서도, 정작 자신의 병명이 무엇인지, 왜 아픈지조차 전혀 듣지 못해 답답해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그들이 가져온 필름을 하나씩 햇빛에 비춰보며 한국어학과 통역사를 통해 차근차근 설명해 드렸다. "척추가 탑처럼 차곡차곡 쌓여있고, 그 사이에 디스크라는 쿠션이 있는데 그것이 눌려서 다리가 저린 것입니다" 언어의 장벽이 있었기에 오히려 쉽고 직관적인 표현을 고민하게 되었고, 내 몸의 상태를 드디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밝아지는 환자들의 표정에서 깊은 보람을 느꼈다. 느린 진료 속에서 다시 배운 한의사의 역할 현장의 여건상 진단 기기는 없었지만, 그것은 도리어 한의학의 기본인 망문문절(望聞問切)에 집중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질의응답 하나를 주고받는 데 통역을 거치며 두세 배의 시간이 걸렸고, 때로는 질문과 다른 답이 돌아와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느린 기다림의 시간 동안 저는 환자의 얼굴빛을 유심히 살피고, 맥을 잡고, 혀의 상태를 보고, 체형과 걸음걸이를 관찰했다. 때로는 청진기를 대고 진찰하며 환자의 몸이 보내는 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다. 치료 반응은 정직했다. 허리가 덜 아파서 오늘은 걸어왔다는 할머니, 운전할 때 어깨가 아프지 않다는 아저씨부터, 어제보다는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간다는 벨마비 환자분까지, 양손을 맞대며 연신 "콥짜이(고맙습니다)"를 외치던 환자분들이 떠오른다. 침 치료와 함께 증상에 맞춰 처방해 드린 귀비탕을 복용하고 "처음으로 밤에 잠을 편안하게 잤다"며 환하게 웃으시던 환자분, 보중익기탕을 드시고 "입맛이 돌아 밥을 한 숟가락 더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고마워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진료실에서의 피로를 씻은 듯 날려주었다. 현지의 물리치료사들과 의사들 역시 한의학적 치료에 큰 관심을 보였다. 제가 놓는 침 자리나 부항 치료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사진을 찍어가는가 하면, 왜 이곳을 치료하는지 열정적으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단기 봉사의 특성상 침 치료 한 두 번만으로는 만성 질환을 완전히 뿌리 뽑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치료 효과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생활 속 자가 관리'에 공을 들였다. 한국에서 챙겨간 필라테스 밴드를 활용해 진료 보조 선생님들과 함께 치료가 끝난 환자들에게 스트레칭과 운동법을 하나하나 가르쳐 드렸다. 벽면에 붙여둔 라오스어 운동 포스터는 어느새 현지 주민들이 줄을 서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가는 진료소 최고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스스로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자그마한 씨앗을 심어주고 온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마음을 나눈 의료봉사, 지속가능한 연대를 꿈꾸며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진료소 문을 나설 때, "콥짜이(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던 환자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며칠만 더 머물렀다면 이분들의 통증을 조금 더 덜어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마지막 날 단장님께서 말씀해주신 "마음을 전하는 것이 봉사의 본질"이라는 구절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의료봉사는 단순히 약을 주고 침을 놓아주는 일방적인 도움이 아니라, 서로의 체온과 마음을 주고받는 따뜻한 교감이라는 것을 깊이 배웠다. 라오스에 두고 온 마음의 온기가 쉽게 식지 않기를, 그리고 이 작은 동행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더 길고 지속가능한 연대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라오스에서의 날들은 앞으로 제가 한의사로서 걸어갈 길에 오래도록 따뜻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572)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1967년 『醫林』 제61호에는 의림사 주최로 서울 五福亭 3층에서 열린 ‘小兒靑便에 대한 진료좌담회’의 기록이 실렸다. 배원식 의림사 사장의 주재와 조기동 기자의 정리로 진행된 이 모임은 당시 활발히 전개되었던 근대 한의학 학술교류와 임상 치험 공유의 생생한 현장을 보여준다. 좌담회에는 主 발제자인 이병행(선화당한의원) 원장을 비롯하여 이창빈(오성한의원)·장중신(중신한의원)·이종형(보인당한의원)·이구협(동서한의원)·김종대(을척한의원) 원장 등 당대 한의사 명의들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고전의 병리 체계를 재해석하고 양의학적 지식을 접목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각 인물의 핵심 발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이병행: 원리 없는 임상이 있을 수 없듯 소아청변은 국소적 증상이지만 자연의 섭리를 함축한다. 소아의 정의는 문헌마다 다르나 장부가 연약한 2세 이하 乳兒에서 청변이 다발하므로 이 시기로 규정해야 한다. 청변의 원인은 유모의 푸른 채소 과식, 한랭 손상(形寒飮冷), 熱, 風 등 네 가지다. 유모의 식습관에 따른 청변은 섭취만 금하면 절로 낫는다. 형한음랭으로 인한 冷泄은 脈沈無力하고 腹鳴이 수반되는데 溫中止瀉하는 益黃散을 主方으로 쓰고 심하면 理中湯을 투여한다. 熱이나 急驚風으로 인한 경우는 肝脾의 熱을 瀉하는 瀉靑丸을 탕약 형태로 변용해 투여하는 것이 간편하고 효과적이다. 질환의 비방 찾기에 얽매이기보다 ‘症自我知하면 方自我立’한다는 자세로 본초와 병리를 깊이 연구해야 한다. ○ 배원식: 主 발제에 이어 활발한 질의를 던졌다. 소아청변이 어째서 주로 2세 이하의 영유아에게만 호발하고 2세 이상에서는 드문지, 그리고 熱이 肝에 침범하여 청변을 일으킨다면 간에 冷이 들어갈 수도 있는지 병리적 인과관계를 물으며 토론을 유도하였다. ○ 김종대: 熱은 상승하고 冷은 하강하는 생리적 성질상 冷이 肝으로 바로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한 소아 구분의 기준으로 이가 나기 전을 유아, 치아가 난 3〜4세를 소아로 보아야 한다는 보충 의견을 냈다. 임상 치험으로는 소아 설사와 토사증에 ‘항해단(沆瀣丹)’을 활용하면 청변에 널리 유효하며, 소아 허증 부종에는 인삼을 달여 차게 복용시켜 즉효를 보았음을 소개했다. ○ 이종형: 이병행 원장의 원리 탐구에 공감하면서도 임상 고전과의 연계성을 질문했다. 특히 『醫學入門』에 부스럼을 앓는 瘡家兒가 청변을 누면 피부 질환이 풀리고 낫는다고 한 기록이 있는데, 이는 어떠한 병리적 기전에서 기인한 것인지 물었다. ○ 장중신: 청변의 형성을 두고 현대 생리학적 지식을 접목하여 담즙 색소가 산화되어 변색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아울러 좌담회가 옛 고전의 틀에만 얽매이지 않고 한 걸음 나아가 임상 응용의 새 발판을 마련하고 후학들이 귀담아들을 수 있는 참신한 지식을 창출하는 자리로 거듭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1967년 의림사의 좌담회는 병증에 대한 고전적 원리주의, 경험적 방약 운용, 신의학 지식을 결합한 생리학적 해석이 공존하던 근현대 한의학자들의 진지한 학문적 고민과 지적 모색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
신미숙 여의도 책방-80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선물받은 기프티콘을 쓸 때에만 어쩔 수 없이 찾던 집 앞 프랜차이즈 빵집이 있다.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구석 자리 노트북 앞에 앉아 늘 뭔가를 타이핑하고 계시던 할배 한 분, 바로 그 집 사장님이다. 성의 없이 진열된 몇 개 안 남은 빵과 얇게 먼지가 내려앉은 식빵 비닐은 ‘장사할 마음은 없지만 버티는 중입니다’ 혹은 ‘곧 폐업 예정입니다’라는 신호를 노골적으로 보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 그 앞을 지나다 보니 건물 전체를 덮을 만한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사장님이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사은품을 준다는 재개장날, 가족들과 모닝커피를 마시러 들렀다. 입구부터 “1인 1메뉴, 어르신과 어린이 제외”라는 다정한 안내문이 반가웠고, 따스한 웜톤의 조명과 깔끔한 동선, 셀프 포장 코너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럽게 바뀌어 있었다. ‘사람 하나 바뀌었다고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을까?’ 맞다! 공간의 분위기, 나아가 조직 전체를 바꾸는 힘은 그 시작도 끝도 제대로 제 역할을 다하는 한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최근 대통령 지지율을 두고 여도 야도 말이 많다. 소폭이든 중폭이든 개각을 단행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다. 정부는 2030세대의 의견을 더 잘 반영할 요량으로 비례로만 두 번째 국회의원직을 수행 중인 90년생 여성 의원을 성평등가족부 장관으로 추천했다. 후보 지명 직후 의원직 사퇴 없이 장관직을 겸할 수 있다는 합법성을 주장하며 양손에 떡을 움켜쥔 채 고집부리기를 개시하려는 찰라, 비합리적인 당 운영 방식과 과거의 발언, 행적까지 한꺼번에 파묘되며 갑자기 국민 밉상으로 등극했다. 결국 후보로 지명된 지 2주만에 장관은 하지 않겠다며 후보자 사퇴의 뜻을 밝혔고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 의원직은 용케 지켜냈다. 내로남불로 시작하여 용두사미로 끝나는 도돌이표 인사청문회가 지난주까지도 국회의 주요 일정이었다. 청문회는 대개 후보자의 과거 일거수일투족이 낱낱이 해부되어 도마 위에 올려진 채 잘근잘근 씹히는, 전국민 대상의 생중계 형식을 띤다. 한 사람의 인생 전반을 평가하기엔 시간이 늘 부족하여 험난한 밤샘으로 이어지기 일쑤고, 요즘은 과격한 장면만 따로 잘라낸 쇼츠로 재생산되어 유튜브에 영원히 박제되기도 한다. 낙마든 임명이든 정치적 한판승부를 치르고 나면 상처뿐인 영광, 혹은 독이 든 성배라는 냉혹한 비평 속에 한동안 씁쓸한 유명세도 견뎌내야 한다. 이 혹독한 청문회를 거치고 살아남아 과거 혹은 현직으로 장관과 국회의원을 겸해온 수많은 분들의 이름 옆에는, 마치 아호나 별명처럼 늘 이 세 글자가 따라다닌다. 강! 심! 장! 『심장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빌 슈트, 아날로그, 2023년 3월) - 우울증의 원인이 심장질환일 경우에는 두세명 중 한 명꼴로 기분장애를 겪게 된다. - 항생제의 등장으로 거머리 치료법은 20세기 초에 자취를 감추었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 다시 등장했다. - 무엇이 옳고 무엇이 위험한지 정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거의 모든 것이 새로운 치료법으로 떠올랐던 시절이 있었다. - 통합의학은 각 개인이 처한 독특한 상황의 조합이 그 사람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리고 여러 분야의 종합적인 접근으로 각 환자에게 맞는 치유 방법을 설계한다. 『자궁이야기』(리어 해저드, 김영사, 2024년 2월) - 제약회사들은 여성들에게 피임약은 자연스러운 것인 동시에 여성을 해방시켜준다는 생각을 판매하고 싶어 했다. - 자궁을 가진 사람이 통증에 시달리거나 심한 출혈을 겪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내가 그랬듯이 모든 사람이 “나쁜 건가요?”라고 묻는데, 실제로 궁금한 것은 ‘암인가?’이다. 우리 마음은 재빠르게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린다. - 자궁근종과 마찬가지로 자궁내막증과 정신건강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증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다. 『이토록 위대한 장』(줄리아 앤더스, 북라이프, 2025년 1월) - 장은 면역 체계의 3분의 2를 훈련시키고 음식물로 에너지를 만들며, 20개 이상의 호르몬을 생산한다. - 소화 문제는 우리 사회를 두 집단으로 나눈다. 한 집단은 건강에 주의하며 음식을 꼼꼼히 신경 쓰고, 다른 집단은 각종 건강 보조제를 챙겨 먹는 깐깐한 친구 때문에 짜증을 낸다. - 충분한 휴식으로 건강을 되찾으면 예민한 장도 즉시 정상으로 돌아온다. - 중국 의학에 따르면 P6(내관) 혈자리는 팔을 거쳐 심장을 관통하고 횡격막을 이완하며 위나 골반까지 이어지는 맥을 깨운다고 한다. - 기분은 신경계의 여러 영역에서 생긴다. 스트레스는 신경계의 상태이다. 장은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 일단 자신의 에너지를 뇌에게 빌려준다. 『목 이야기』(켄트 던랩, 시공사, 2025년 10월) - 거북목text neck이라고 부르는 목뼈 질환은 척추 지압사(DC) 딘 피시먼Dean Fishman이 2008년 명명한 뒤 상표로도 등록됐다. - 현대 의학 기술이 끔찍한 자동차 사고 후에 따르는 부상, 통증, 믿음으로 뒤얽힌 복잡한 문제를 완전히 해소할지는 불분명하다. - 만성적인 스트레스 유발 요인으로 긴장이 지속되면 우리는 불행하다고 느낀다. 이 보호 본능은 말 그대로 목에 통증을 만든다. - 머리는 앞으로 기울어지면 곧게 서 있을 때보다 2∼6배 더 무거워진다. 『불안해지기 전에 읽는 유방 이야기』(지혜, 정지정, 바이북스, 2026년 3월) -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면역 시스템을 약화시켜 유방 통증이나 유방염 같은 질환의 위험도 높일 수 있다. - 유방암 예방을 위해 가장 기본이면서도 중요한 원칙은 건강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다. - 유방암은 모든 연령대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40대 50대일수록 위험성은 증가한다. - 유방암은 흔히 완치의 기준으로 5년을 이야기하지만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은 치료 후 10년,15년이 지나서도 재발할 수 있다. 국내 대형 병원들은 초세분화, 전문화를 통해 한 부위에 연구와 임상을 집중시켜 극도의 숙달에 도달하고 종국에는 난치 질환의 해결로 치료의 성공률과 생존률의 극대화를 이룬다는 거대한 목표를 가진 집단이다. A증상으로 대학병원을 방문한 환자가 치료 과정에서 B증상이 병발하면 각각의 담당의들이 다 따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바로 그 때부터 네버엔딩 타과 의뢰가 시작된다. 웬만해서는 빠져나오기 힘든 무한루프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되는 과정이다. 그 사이 의료비 및 대기 시간 증가로 인해 환자에게 새로 발병한 화병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보다 거시적으로는 신체 통합적 관점이 부재하다는 근본적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부위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현대 의학의 대안으로 질병보다 인간을, 부분보다 전체를, 한 사람이 살아온 삶 전체를 그가 경험해 온 증상들을 통해 체질 진단이라는 스캐너로 들여다보는 한의학의 관점은 충분히 매력적인데 왜 갈수록 장점을 잃어가고 있을까? 『심장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에 등장하는 예방심장학 분야의 권위자인 패트릭 맥브라이드(Dr. Patrick E. McBride) 교수는 통합의학이라는 넓은 카테고리의 일부로서 중국 전통의학도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하며 실제로 그가 이끄는 치료팀은 25년 동안이나 통합 의학을 심장 재활 프로그램의 일부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척 보면 안당께”의 섣부른 판단이 아닌 하나의 증상에서 아홉 개의 미병적 단서들을 찾아내는 한의학의 장점으로도 해석될 수도 있다. 이는 개별 입자(부분)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전체 체계 및 관측자와의 관계(전체)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는 양자역학의 패러다임과도 닮아있다. 한의학이라는 조각이 한국 의료라는 전체에 의미있는 부분으로 존재할 수 있는 비결은 과연 존재하는가? -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28한상윤 원광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의학교육학회 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원광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에게 예과 2년이 어떤 시간이냐고 물어본다면 꽤 다양한 대답이 나올 것이다. 본격적인 한의학 공부를 시작하기 전 기초를 다지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고, 본과에 올라가기 전 잠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을 것 같다. 한의예과 과정은 어떤 학생에게는 대학 생활을 처음 경험하는 시간이면서, 또 어떤 학생에게는 앞으로 해야 할 본과 공부를 미리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그만큼 한의예과의 정체성은 오래전부터 다소 모호한 측면이 있다. 최근 이러한 예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2024년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의과대학뿐 아니라 한의과대학, 치과대학, 수의과대학의 학사과정 수업연한이 6년으로 규정되면서 기존의 ‘예과 2년+본과 4년’이라는 틀을 넘어 통합 6년제 교육과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예과, 의료인이 되기 전 인간과 사회를 배우는 시간 물론 행정적으로 6년제가 되었다고 교육이 저절로 통합되는 것은 아니다. 예과와 본과라는 이름만 없애고 기존 과목의 순서를 조금 바꾸어 놓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통합교육이라 하기 어렵다. 해부학을 조금 빨리 배우고, 생리학을 앞당기고, 한의학 전공과목을 1학년부터 더 많이 배치한다고 해서 6년의 교육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변화는 ‘예과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동안 예과는 본과 공부를 위한 준비 단계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화학이나 생물학 같은 기초과학을 배우고, 교양과목을 이수하며, 일부 한의학 입문 과목을 접한 뒤 본과로 진입하는 구조다. 그러나 예과를 단순히 본과의 선행 단계라고 정의하면 통합 6년제의 결론은 쉽게 ‘본과 공부를 조금 더 일찍 시작하자’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통합 6년제가 될수록 예과가 가지고 있던 교육적 기능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우선 예과는 의료인이 되기 전에 인간과 사회를 배우는 시간이어야 한다.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 학생들이 접해야 할 전문 지식은 급격하게 늘어난다. ‘나는 어떤 의료인이 될 것인가’ 고민하는 시간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에서 시작해 한의학의 기초이론과 진단, 본초, 방제, 임상과목까지 이어지는 촘촘한 교육과정 속에서 문학과 역사, 철학과 사회를 깊이 들여다볼 여유는 점차 줄어든다. 하지만 의료인이 만나는 것은 질병이 아니라 질병을 가진 사람이다.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능력은 전공서적만으로 길러지지 않으며, 특히 인간을 몸과 마음, 환경의 관계 속에서 이해해 온 한의학이라면 인문학적 소양은 전공교육 바깥의 장식이 아니라 한의학적 진료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예과는 ‘전공을 배우기 위한 기초’뿐 아니라 ‘전공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는 시기여야 한다. 앞으로의 의료인은 기존의 지식을 많이 기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쏟아지는 정보를 검증하고, 근거의 수준을 판단하며, 서로 다른 지식을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방법론, 통계와 데이터 리터러시, AI 활용 능력, 비판적 사고와 의사소통 능력도 이제 의료인의 기초 역량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교육은 어느 특정 과목 하나를 추가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6년 전체의 교육과정에서 반복되고 심화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예과에서 기초적인 질문을 던지고, 본과에서 전문지식과 연결하며, 임상실습에서 다시 환자의 문제를 통해 확인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끝으로, 예과는 ‘나는 어떤 의료인이 될 것인가’를 처음 고민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학생이 한의과대학에 입학하고도 실제 환자를 만나거나 한의사의 다양한 활동을 접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하지만 전문직의 정체성은 국가시험을 앞두고 갑자기 형성되지 않는다. 입학 초기부터 환자의 목소리를 듣고, 지역사회를 경험하고, 임상 현장을 관찰하며, 다른 보건의료 직종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 조금씩 축적되어야 한다. 통합 6년제를 먼저 고민하고 있는 의학교육에서도 교육의 연속성은 중요한 기대 효과로 제시되고 있다. 한 의과대학에서 실시한 연구에서도 교수와 학생 모두 교육이 보다 연속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동시에 학생들은 전공교육이 빨라지면서 다른 학문을 접할 기회가 줄거나 경쟁이 더 일찍 시작될 가능성을 걱정했다. 이러한 우려는 한의과대학도 충분히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전공교육을 앞당기는 데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오히려 예과가 가지고 있던 가장 중요한 여백을 잃을 수도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과목의 위치를 옮기는 수준을 넘어, 입학에서 졸업까지 학생이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를 6년이라는 하나의 시간축 위에 다시 그려 보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합 6년제의 핵심은 단순히 예과를 없애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과와 본과 사이에 놓여 있던 벽을 없애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의대 6년의 과정을 다시 바라볼 수 있어야” 본과에서 하던 공부를 당겨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예과에서 해야 했지만 충분히 하지 못했던 것은 무엇인지, 본과에서 너무 늦게 시작했던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6년 동안 반복하며 깊어져야 할 역량은 무엇인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2년의 예과와 4년의 본과’를 잠시 내려놓고, 한 명의 학생이 입학해서 한의사가 되어 나가기까지의 6년을 처음부터 다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한의예과라는 이름은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히고, 자신의 전문직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교육까지 함께 사라져서는 안 된다. 통합 6년제의 성패는 결국 ‘예과를 없앴는가’가 아니라, 그 자리에 어떤 교육을 남겼는가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
몸과 마음의 성장은 腸에서 시작된다…‘膽’의 새로운 해석윤지연 원장(장충한의원 원장·동서비교한의학회 학술이사) [한의신문] 최근 면역학에서 주목받는 개념 가운데 하나가 ‘공통점막면역계(Common Mucosal Immune System, CMIS)’다. 과거에는 장·호흡기·비뇨생식기·침샘·눈물샘 등의 점막이 각각 독립적으로 면역반응을 수행한다고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이들이 하나의 통합된 면역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몸 곳곳에 흩어진 점막이 서로 면역 정보를 공유하며 하나의 방어체계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점막면역 네트워크에서 장간막림프절(Mesenteric Lymph Node, MLN)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장에서 유입된 항원을 분석하고 면역세포를 활성화·교육한 뒤 이들의 이동 방향을 결정하는 면역 조절의 핵심 거점이다. ◆ 면역세포의 목적지를 정하는 장간막림프절 소장의 파이어판(Peyer's patch)에서는 M세포(microfold cell)가 장내 항원과 미생물을 포획해 점막 아래의 수지상세포(dendritic cell)에 전달한다. 항원을 넘겨받은 수지상세포는 CCR7 발현을 증가시키고 구심성 림프관을 따라 장간막림프절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항원을 경험하지 않은 순진(naive) T세포와 B세포가 처음으로 항원을 인식하면서 항원 특이적 면역반응이 시작된다. 장간막림프절의 역할은 항원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수지상세포와 기질세포가 비타민 A 대사산물인 레티노산(retinoic acid)을 생성해 활성화된 림프구에 특정 점막으로 이동하도록 하는 ‘조직 특이적 귀소 프로그램(tissue-specific homing program)’을 부여한다. 이 과정에서 인테그린 α4β7과 케모카인 수용체 CCR9·CCR10 등의 발현이 증가하고, 이들은 혈관 내피의 MAdCAM-1과 CCL25·CCL28 등의 신호를 따라 림프구가 필요한 조직으로 이동하도록 유도한다. 장간막림프절이 면역세포의 목적지를 정하는 일종의 ‘면역 내비게이션 센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 장에서 시작해 온몸으로…IgA가 만드는 점막 방어선 교육을 마친 림프구는 수출림프관과 흉관을 거쳐 혈액순환에 합류한 뒤 각 점막 조직으로 이동한다. 특히 장에서 활성화된 림프구 가운데 일부는 장뿐만 아니라 호흡기·비뇨생식기·유선·침샘·눈물샘 등 다른 점막 조직에도 자리 잡아 면역반응에 관여한다. 한 점막에서 시작된 면역반응이 다른 점막과 연계될 수 있는 공통점막면역계의 기본 원리다. 특히 B세포는 파이어판과 장간막림프절 등에서 TGF-β·IL-10·레티노산 등의 영향을 받아 IgA를 생성하는 방향으로 동종형 전환(class-switch recombination)을 거친다. 이후 IgA 생성 형질세포가 여러 점막 조직으로 이동하고, 만들어진 IgA는 상피세포의 폴리머면역글로불린수용체(pIgR)를 통해 분비형 IgA(secretory IgA)로 점막 표면에 방출된다. 분비형 IgA는 병원체가 점막에 부착하는 것을 막고 독소를 중화하는 한편, 공생미생물과의 균형 유지에도 관여하는 점막면역의 핵심 방어수단이다. 이러한 점막 간 연계는 장의 면역환경 변화가 다른 점막의 면역반응과 연결될 수 있는 생물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또한 경구백신처럼 특정 점막을 통해 유도한 면역반응이 다른 점막 부위의 면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반대로 장내미생물의 균형이 무너지거나 장 장벽이 손상되면 점막면역의 항상성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영향은 장-폐 축(gut-lung axis), 장-뇌 축(gut-brain axis), 장과 비뇨생식계 간 상호작용 등 원거리 장기 네트워크로 확장될 수 있으며, 알레르기·자가면역질환·만성 호흡기질환 등 다양한 질환과의 연관성도 연구되고 있다. ◆ 장-간-면역-뇌 축, 그리고 한의학의 담(膽) 최근 시스템 생물학은 이러한 현상을 개별 분자의 작용보다 ‘생체 네트워크의 항상성’이라는 큰 틀에서 바라본다. 하나의 신호전달 경로만으로 질병을 설명하기보다 여러 장기와 세포가 주고받는 정보의 균형 속에서 건강과 질병을 이해하려는 접근이다. 이러한 시각은 장-간 축을 넘어 장·간·면역·뇌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합적으로 살피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담즙산 역시 이들 장기와 대사·면역 신호를 연결하는 주요 매개체로 주목받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담즙산 연구는 한의학에도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한의학에서 담(膽)의 ‘결단(決斷)’은 정신적 작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간(肝)의 소설(疏泄)을 비롯한 장부 간 기능적 관계 속에서 담의 역할을 이해해 왔으며, 이는 장부를 서로 분리된 기관이 아닌 상호 연계된 기능체계로 바라보는 한의학적 관점과 연결된다. 최근 현대의학에서도 장-간 축(Gut-Liver Axis), 장-폐 축(Gut-Lung Axis), 장-뇌 축(Gut-Brain Axis), 공통점막면역계 등 장기 간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인체의 항상성을 설명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이를 한의학의 장부 이론과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인체를 유기적 시스템으로 이해하려는 현대 생명과학의 흐름과 한의학의 통합적 생명관 사이에서 의미 있는 학문적 접점을 모색할 수 있다. 결국 담즙산 연구는 하나의 대사물질을 규명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장과 간, 면역계와 내분비계, 장내미생물을 연결하는 생명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성장 역시 성장판이나 성장호르몬이라는 단일 요소만으로 설명하기보다 소화·대사·면역·내분비와 장기 간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성장의 환경’을 함께 살펴야 한다. 환원주의를 넘어 통합적 관점에서 성장과 건강을 다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학생에서 한의사로 다시 찾은 KOMSTA[한의신문] 콤스타((사)대한한의약해외의료봉사단) 제186차 봉사단은 한의사 5명과 학생 단원 8명, 총 13명으로 구성되어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미타팝 병원 등에서 4일간 진료를 진행했다. 3년 전 학생 단원으로 해외 봉사에 처음 참여했던 인연을 시작으로 한의사가 된 이후에도 해외 봉사를 꿈꿔왔고, 이번 라오스 파견을 통해 그 꿈을 다시 이어갈 수 있었다. 첫날부터 대기실을 가득 채운 환자들 작년에 이어 이번에는 라오스의 라디오 방송으로도 홍보가 되었고, 봉사 기간 중 현지 공영 방송에도 방영될 만큼 콤스타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첫날부터 대기 환자가 병원 앞을 가득 메웠고, 먼 지방에서 몇 시간씩 이동해 온 환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 모습을 마주하며 멀리서 찾아온 환자 한 분 한 분을 소홀함 없이 진료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앞섰다. 재진증을 나눠줄 수 없는 진료 여건이었음에도 많은 환자들이 매번 초진으로 등록하며 진료를 받으러 왔다. 그 모습에서 라오스의 열악한 의료 접근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의 진료가 환자에게는 일 년 중 유일한 치료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무게를 실감하고 나니 예진 차트에 적힌 경미한 증상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몸은 고단해도 마음은 채워지던 진료 현장 국내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환자 수로 체력은 빠르게 소진됐지만, 진료를 마칠 때마다 환자들이 맑은 눈빛과 미소로 건네는 감사 인사가 그 이상의 충만함으로 돌아왔다. 학생 단원 시절에는 접수와 안내, 진료 보조, 약재 제공 등 지원 업무에 집중하느라 환자를 가까이서 대할 여유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의사로서 환자의 증상을 직접 듣고 촉진하며 라오스 환자들의 때묻지 않은 선한 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짧은 임상 경력으로 해외 봉사 진료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봉사는 임상 실력을 떠나 마음을 전하는 것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단장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일정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졸업 후 학생 시절 함께 해외 봉사를 다녔던 원장님 밑에서 첫 진료를 시작하며 임상 실력을 쌓았기에, 이번 라오스 봉사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때 원장님들은 바쁜 진료 중에도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 애쓰셨는데, 이번에 나 역시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질환의 환자가 오면 진료 보조 학생과 함께 살펴보고 설명해주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콤스타의 선한 영향력이 이렇게 세대를 거쳐, 국경을 넘어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음을 몸소 확인한 순간이었다. 국경을 넘어 이어지는 콤스타의 마음 이번 봉사는 현지 환자들과 의료진에게 한의학에 대한 신뢰를 쌓는 계기였고, 개인적으로는 학생 단원에서 한의사로 성장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준비해 온 차트를 모두 써서 두 번이나 복사를 할 만큼 예상을 웃도는 환자분들을 진료할 수 있었던 건, 모든 단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준 덕분이었다. 함께 봉사해 준 단원들에게 깊이 감사하며, 좋은 사람들과 뜻깊은 봉사를 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준비해 주신 단장님과 사무국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도 이 소중한 인연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
대상포진·대상포진후신경통, 한의 표준진료의 근거를 세우다이승훈 경희대학교 교수 <편집자주> 한국한의약진흥원 한의약혁신기술개발사업단(단장 이준혁)은 지속적으로 다양한 질환에 대한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을 발간하고 있으며, 각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의 전자파일 및 홍보용 리플릿, 인포그래픽 이미지 파일 등을 국가한의임상정보포털사이트(www.nikom.or.kr/nckm)를 통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에 본란에서는 각 지침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에 참여했던 연구원들의 기고문을 소개하고자 하며, 이번 주 소개작은 ‘대상포진·대상포진후신경통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에 참여한 이승훈 경희대학교 교수의 기고이다. 한국한의약진흥원 한의약혁신기술개발사업단의 지원으로 개발된 ‘대상포진·대상포진후신경통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이 발간됐다. 본 지침은 대상포진 및 대상포진후신경통 환자 진료 과정에서 한의사가 마주하는 다양한 임상 의사결정에 대해 근거기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개발된 진료 가이드라인이다.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 매뉴얼을 준용했으며, 국내외 문헌 고찰, 임상 현황 조사, 전문가 검토, GRADE 방법론을 통한 근거수준 및 권고등급 평가, 유관 학회 검토와 인증 절차를 거쳐 최종발간됐다.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의 재활성화로 발생하는 질환으로, 피부 분절을 따라 나타나는 일측성 수포성 발진과 심한 신경병성 통증을 특징으로 한다. 2023년 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대상포진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연간 약 75만 명에 이르며, 이 중 10~18%는 대상포진후신경통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고된다. 대상포진후신경통은 발진이 호전된 이후에도 통증이 지속되는 만성 신경병성 통증으로, 수면장애, 우울, 불안, 피로, 삶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어 조기 평가와 체계적 관리가 중요하다. 기존 대상포진 진료는 항바이러스제, 진통제, 스테로이드제 등 의과 치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특히 발진 후 72시간 이내 항바이러스제 투여는 급성 대상포진의 표준적 치료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임상에서는 급성기 통증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거나, 피부 병변이 호전된 뒤에도 통증이 지속되는 환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급성기 증상 완화, 대상포진후신경통 이환율 감소, 만성 통증 관리, 수면 및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한 한의 치료의 표준화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에 본 연구진은 2024년 5월 전국 한의사 1122명을 대상으로 대상포진 및 대상포진후신경통 한의 진료 현황을 조사했다. 응답자 중 934명, 즉 83.3%가 최근 1년 이내 대상포진 또는 대상포진후신경통 환자를 진료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환자의 내원시기는 급성 대상포진 단계와 대상포진후신경통 단계로 비교적 고르게 분포했다. 또한 대상포진 및 대상포진후신경통 환자 진료 경험이 있는 한의사 중 725명, 77.6%는 환자가 이미 항바이러스제, 진통제, 스테로이드제 등 의과 치료를 받은 뒤 한의의료기관에 내원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대상포진 진료에서 한의 단독치료뿐 아니라 통상적 의과 치료와 병행하는 한양방 복합치료 전략이 실제 임상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지침은 대상포진과 대상포진후신경통을 구분하여 총 32개의 권고안을 제시했다. 대상포진 영역에서는 침, 전침, 화침, 뜸, 자락관법, 한약 등 한의 단독치료와 침·뜸, 침·한약 등 한의 복합치료, 그리고 통상적 의과 치료와 병행하는 한양방 복합치료에 대한 권고를 포함했다. 대상포진후신경통 영역에서도 침, 전침, 화침, 뜸, 자락관법, 한약 및 이들의 복합치료와 의과 치료 병행 요법에 대한 권고를 제시했다. 특히 대상포진의 경우 통상적 의과 치료와 병행한 침 치료, 전침 치료, 한약 치료 등이 주요 치료 선택지로 제시됐으며, 대상포진후신경통에서는 만성 신경병성 통증완화와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한 다양한 한의 치료 전략을 정리했다. 진료 알고리즘 역시 실제 임상 활용성을 고려해서 구성했다. 대상포진 의심 환자가 내원하면 병력 청취와 신체 진찰을 통해 전형적 임상 증상 여부를 확인하고, 단순포진, 접촉피부염, 늑간신경통, 삼차신경통, 협심증, 담낭염, 신석증, 척수압박 등 감별이 필요한 질환을 고려하도록 했다. 또한 뇌염, 척수염, 중추신경계 혈관염, 눈대상포진 등 고위험 합병증이 의심되거나 비전형 발진이 관찰되는 경우에는 추가 평가를 위해 의과 협진 또는 전원을 고려하도록 명시했다. 통증 평가는 VAS, NRS 등을 활용하고, 수면, 불안·우울, 피로, 삶의 질 등 동반 증상 평가도 함께 고려하도록 했다. 본 지침의 의의는 대상포진 및 대상포진후신경통에 대한 한의 치료를 단순한 경험적 치료가 아니라, 문헌 근거와 임상 현황, 전문가 합의를 바탕으로 표준화했다는 데 있다. 임상 현장에서는 환자의 발병 시점, 피부 병변 상태, 통증 강도, 의과 치료 여부, 고위험 합병증 가능성, 만성 통증으로의 이행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지침을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한의사는 대상포진 급성기부터 대상포진후신경통으로 이어지는 만성 통증 단계까지 보다 일관된 진료 경로를 적용할 수 있으며, 환자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고려한 한의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대상포진 및 대상포진후신경통은 고령화와 함께 임상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질환으로, 특히 통증과 삶의 질 저하가 큰 문제로 남는 만큼, 이번 지침이 한의 임상 현장에서 근거 기반 진료를 확산시키고, 의과치료와의 합리적 병행을 통해 환자 중심의 통합적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길 기대한다. -
“마약류 예방·재활에 한의계 전문성 더해 나가겠다”[편집자주] 마약류 문제를 둘러싼 의료적·학술적 연구와 전문인력간 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의사와 관련 전문인력이 참여하는 학술 플랫폼 ‘대한마약의학회’가 공식 출범됐다. 본란에서는 김지영 회장과 전영수 부회장, 김승주 법제이사로부터 학회 창립 계기와 함께 향후 중점적으로 추진할 사업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Q. 초대 회장을 맡은 소감 및 학회 창립을 추진하게 된 이유는? 김지영 회장“최근 몇 년 사이 마약류 범죄와 중독의 연령층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마약 중독은 단순히 개인의 일탈을 넘어 사회적 재난이며, 치료와 회복을 위해 이용가능한 모든 의학적 자원을 동원해야 하는 영역이다. 한의계에서도 사회적 책무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학술적 연구와 전문가들의 협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해 대한마약의학회 창립을 추진하게 됐다. 중독 관련 임상 및 관련 활동을 하고 계신 원장님들과 모임을 갖고 지속적으로 교류해 나갈 수 있는 장을 만들어가는 것이 현재의 목표다.” Q. 마약류 문제 해결에 있어 한의사가 참여해야 하는 이유 및 담당해야 할 부분은? 김승주 법제이사“마약류 문제는 치료·재활·사회복귀까지 여러 전문인력의 협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한의계는 지역사회 의료현장에서 국민과 지속적으로 접촉할 뿐 아니라, 한방신경정신과를 비롯해 중독과 금단, 불안·수면장애·통증 등 회복과정의 정신·신체 증상을 함께 다루는 전문성과 임상경험을 갖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예방교육과 위험군 조기발견, 치료·재활, 전문기관 연계에 함께 참여할 수 있으며, 앞으로 관련 전문인력 양성과 연구데이터 축적을 통해 국가 마약류 예방·치료·재활체계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한의사가 마약류 문제 해결에 참여한다라는 것이 다소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전영수 부회장“이미 많은 한의사 회원들이 마약류 예방교육, 재활상담, 중독치료는 물론 마약류를 활용한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런 활동들을 대한마약의학회가 구심점이 되어 조직화하고 기록함으로써 학술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교육체계를 갖추는 것도 병행해 나갈 계획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쌓여간다면 한의계도 국민건강을 위해 마약류와 중독 문제를 책임감 있게 다루는 의료 주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Q. 최근 의료용 대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승주 법제이사“의료용 대마는 특정 직역의 문제가 아니라 효과와 안전성, 전문교육을 기준으로 어떤 의료인이 적절하게 활용할 것인가를 설계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의사는 현행법상 마약류취급의료업자에 포함돼 있으며, 통증과 신경정신질환 등 의료용 대마와 접점이 큰 진료영역도 담당하고 있다. 앞으로 한의계도 관련 연구와 전문인력 양성, 안전관리 체계를 갖추고 의료용 대마의 임상 활용과 제도화 과정에 전문성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갈 예정이다.” Q. 마약 문제는 치료는 물론 재활과 사회복귀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지역사회에서 한의사의 구체적인 역할은? 김승주 법제이사“한의사는 지역사회에서 환자와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의료인으로서, 마약류 위험군의 조기발견과 예방 교육, 전문기관 연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한방신경정신과를 비롯한 전문 진료영역을 바탕으로 금단과 회복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안·수면장애·통증·피로 등 정신·신체 증상을 치료하고 재활을 지원할 수 있다. 이러한 역할을 다른 의료·복지 인력과 연계해, 치료 이후의 일상복귀와 사회복귀까지 이어지는 지역사회 회복체계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 Q. 올해 진행될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무엇인지? 전영수 부회장“올해는 무엇보다 학회의 기본적인 틀을 만드는데 집중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구성원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세 개의 위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예방·재활위원회’는 마약류 예방교육 표준 교안 제작 및 교의사업과 연계한 마약류 예방교육 확대를, ‘마약류안전관리위원회’는 한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마약류 및 오남용 우려 의약품에 대한 교육체계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이와 함께 ‘특수의약품연구위원회’는 대마에 대한 학술적 기초 마련과 관련 정책 이슈 모니터링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올해는 의료용 대마를 둘러싼 제도적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는 만큼, 학술적·정책적 논의를 바탕으로 중앙회와 협조하여 의미 있는 흐름을 만들고 싶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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