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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정보학 분야의 최전선에서 한의학의 가능성을 생각하다”[편집자주] 정민준 학생은 동국대 한의과대학 본과 2학년에 재학 중으로, 현재는 동의대 CIM Lab에서 학부생 인턴으로 참여하며 장동엽 교수의 지도를 받아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달 미국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ISMB(Intelligent Systems for Molecular Biology)’에 참가했다. ISMB는 국제계산생물학회(International Society for Computational Biology, ISCB)가 주최하는 생명정보학 분야의 대표적인 국제학술대회로 네트워크 생물학, 인공지능·머신러닝, 유전체학, 마이크로바이옴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생명과학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한 최신 방법론과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다. 필자는 한의학의 복합적인 치료 원리와 변증 체계를 보다 정밀하게 설명하기 위해 생명정보학 분야의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번 학회에 참가하게 됐다. 예컨데 한약의 여러 성분이 체내에서 어떤 변화를 거쳐 어느 표적과 경로에 작용하는지, 한의학적 변증과 같이 동일 질환으로 진단된 환자들이 서로 다른 증상과 경과를 보이고 각기 다른 치료 전략을 필요로 하는지 등을 연구하기 위해선 결국 데이터로 접근하여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연구자들은 어떤 임상 및 생체 데이터를 다루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배우고 싶었고, 임상적 질문들을 어떻게 연구 가능한 형태로 구체화하여 실제 분석과 검증으로 이어가는지를 학회에서 배우고자 했다. 학회는 분야별 튜토리얼과 학생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기조강연, 주제별 구두발표와 포스터 세션 등으로 구성됐으며, 참가자들은 관심 분야에 따라 각 세션을 선택해 들을 수 있었다. 생명정보학 분야의 최신 연구 방법론, 한의약에서의 활용은? 필자가 ISMB에 참가한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교수님의 지도 아래 수행해 온 연구를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과 공유하고, 발표 과정에서 얻은 의견을 연구의 보완과 후속 연구에 반영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생명정보학 분야의 최신 연구 방법론을 직접 접하고, 이를 한의학 연구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이었다. 필자는 한약재 원성분과 장내미생물 유래 대사체의 예측 표적 및 생물학적 경로를 비교하는 인실리코(in silico) 연구를 주제로 NetBio 트랙에서 포스터 발표를 진행했다. 포스터를 설치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세계 각국 연구자들의 최신 연구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고, 그 수준에 자연스럽게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발표가 시작되자 다양한 연구자들이 연구의 의의와 한계,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을 던졌고, 연구는 논문을 발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질문과 토론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발표 과정에서는 연구 방법뿐 아니라 예측 결과를 실제 생물학적 현상과 어떻게 연결하고 검증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이러한 질의를 통해 연구 결과를 제시하는 것만큼이나 연구의 가정과 한계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후속 검증 계획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한약 관련 지식, 인공지능 모델이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구조화 학회 첫날 튜토리얼 세션에서는 평소 연구에 활용해 온 네트워크 분석 도구인 Cytoscape의 개발에 참여한 연구진으로부터 네트워크 시각화와 분석, 자동화 방법을 직접 배울 수 있었다. 기존에는 완성된 프로그램을 연구에 활용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튜토리얼을 통해 연구 목적에 맞게 분석 과정을 설계하고 자동화하는 방법까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본 학회에서는 게놈 분석과 단일세포 전사체 분석(Single-cell RNA sequencing) 등 기초생명과학 연구가 주를 이뤘다. 처음에는 이러한 연구들이 한의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기술들이 질병의 발생 과정과 환자 간 생물학적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연구 방법이며, 앞으로 한의학 연구에서도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는 새로운 분석 기술 자체를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방법이 어떤 연구 질문에 답할 수 있으며 한의학의 임상적 문제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발표를 듣게 됐다. 한약재와 천연물, 임상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 등 한의학과의 접점을 생각해볼 수 있는 발표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천연물에 관한 생물학적 지식을 인공지능 모델에 사전학습시킨 뒤 한약과 질병의 연관성을 예측한 연구가 인상 깊었다. 한약 관련 지식을 단순히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공지능 모델이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구조화 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연구 방향을 생각해보게 했다. 인공지능, 연구 과정 자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발전 또 하나 인상 깊었던 흐름은 인공지능이 단순한 문헌 검색이나 데이터 정리를 넘어 연구 과정 자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부 연구에서는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생체 데이터의 특성에 맞는 머신러닝 전략을 설계하고, 코드를 실행·수정하며 예측 모델을 개발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다른 연구에서는 실제 단일세포 전사체 데이터를 이용해 AI Scientist의 분석능력을 평가했다. 연구 내용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표준화된 분석과 반복적인 모델 개발에서는 상당한 가능성을 보였지만, 생물학적 맥락을 세밀하게 해석하고 결과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은 연구자를 완전히 대체하는 존재라기보다, 반복적인 분석과 가설 생성을 지원하는 도구에 가깝다고 느꼈다. 결국 인공지능이 제시한 결과가 생물학적으로 타당한지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검증하는 일은 연구자의 역할로 남아 있다고 느꼈다. 정보학적 기술뿐 아니라 생물학적 배경지식과 연구 질문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능력도 함께 갖춰야 한다는 점을 실감했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강연 중 하나는 단일 질환을 환자마다 서로 다른 임상 증상과 생물학적 특성을 세분화하여 이해하려는 연구였다. 발표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예로 들어 사회성, 의사소통, 감각 특성, 인지 기능, 동반질환 등 다양한 임상표현형과 생물학적 데이터를 함께 분석해 질환의 이질성을 규명하려는 접근을 소개했다. 또한 이러한 다양한 데이터를 인공지능 기반의 네트워크 분석과 예측 모델을 활용해 통합적으로 분석하고, 환자별 특성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최근 생명정보학은 환자 간의 다양성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분석하여 정밀의학으로 연결하려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의학과 최근 정밀의학 연구와의 접점 모색 이러한 연구들을 접하며 한의학 임상에서 관찰되는 환자별 증상과 소견, 치료 반응의 차이를 객관적인 데이터와 연결하는 연구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진단과 치료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한의학은 최근의 정밀의학 연구와 접점을 모색할 수 있다. 임상에서 관찰되는 표현형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생물학적 지표 및 치료 반응과의 관계를 단계적으로 검증하게 된다면, 생명정보학과 인공지능은 가설을 구체화하고 복잡한 데이터를 해석하기 위한 유용한 연구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 학회 기간 동안 국내외 여러 대학의 교수님들과 연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박사과정 연구자들과 연구와 진로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며 생명정보학 연구가 다양한 분야와 사람들의 협력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는 점도 느낄 수 있었다. 학회가 끝나고도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연구와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함께 월드컵 경기를 보며 자연스럽게 교류를 이어갔다. 발표장 밖에서도 학문적 교류가 계속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번 ISMB 참가는 생명정보학의 최신 연구를 접한 경험을 넘어, 한의학에서 제기되는 임상적 질문을 어떻게 객관적 데이터와 생명정보학의 방법으로 탐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도 생명정보학의 다양한 방법론을 꾸준히 익히며, 한의학의 임상적 관찰과 객관적 데이터를 연결할 수 있는 연구를 이어가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학회 포스터 발표기회 및 참가를 재정적으로 지원해주신 지도교수님이신 장동엽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한편 이번 학회 참석 및 발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재원으로 정보통신기획평가원-지역지능화혁신인재양성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했다(IITP-2026-RS-2020-II201791). -
‘K-Medi’ 1인 한의원, 세계 속으로!인도네시아 북수마트라 섬의 북서쪽 니아스섬, 19시간 비행 끝에 비행기를 3번이나 갈아 타고 도착한 곳. 이번 해외 한의재택의료는 지인 의사 병원장의 부탁으로 진행됐다. 인천 공항에서 쿠알라룸푸르 공항,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메단 쿠알라나무 공항, 메단 쿠알라나무 공항에서 니아스 구눙시톨리 공항으로 이어진 일정이었다. 대상 환자는 현지 선교사 한분이 얼마 전 오토바이를 타다가 낙상해 급성기 교통사고 통증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현지 병원 의사는 이런 큰 사고에 골절 없이 낙상한 것은 마치 천사가 와서 떨어지는 환자를 받아준 것 같다면서 신의 도움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내게 다급히 부탁해온 의사 병원장은 한의사, 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및 보건직능단체 등 82개의 기독의료봉사, NGO 산하단체로 구성된 기독교의료연합단체에서 알고 지낸 지인이다. 하지만 아무리 알고 지냈다 한들 이런 부탁을 선뜻 내게 제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선뜻 그러겠노라고 답변한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생면부지의 응급 환자를 위해서라니. 게다가 먼 이역만리, 국가에서 보조해주는 진료수가나 지원보조금도 없는 실정이다. 첩첩산중은 이 뿐만이 아니다. 삼복더위에 냉방시설이 여의치 않은 환경에서 7월 26일부터 8월 3일까지 일주일간 환자를 집중 케어해야 한다. 환자는 열악한 현지 의료시설 및 인력으로 인해 사고가 난지 한 달이 다 돼가도록 방치된 상태이기에 교통사고 후유증은 불 보듯 뻔했다. 짧은 시간 내에 기대되는 효과가 있어야 했기에 현지에 도착하기 전 환자와 카톡 메신저를 통해 기왕력을 살피니 요추추간판탈출증, 요추협착증, 유방암, 스트레스성 소화기질환, 30년 된 산후풍으로 발이 차가워 양말을 제대로 벗지 못하는 환자였다. 급성기 교통사고 뿐 만 아니라 복합질환까지 고려해야 하는 난치성 환자이다. 특히 한국 청년교회팀과 조인해서 1주일 안에 결정하고 출발해야 함으로 준비할 시간도 매우 촉박했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곳인지가 막막했고 진료를 요청한 기간에도 당황했다. 더군다나 응급 콜 요청이 온 기간은 이미 다른 선약이 돼 있는 상태였다. 선약은 올해 초에 다녀온 방글라데시 의료봉사 후속케어를 위해 내가 주선했던 모임으로 빠지면 안 되는 자리였다. 한 팀에게는 기쁜 소식이겠지만 또 한 팀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임이 분명했다. “건강하고 행복한 웃음을 함께 웃을 수 있게 돼” 무거운 마음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방글라데시 팀에게 양해를 구했다. 감사하게도 내가 없어도 모임을 잘 진행하겠다고 해주셨지만 그래도 내내 미안한 마음에 편치가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 인도네시아 일정은 미리 준비된, 왠지 꼭 필요한 나의 소임인 것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현지에 도착해서 환자의 동작과 얼굴 모양, 몇 마디 말을 섞어보며 평소 생활습관을 관찰해보니 관리가 쉽지 않는 환자임을 직감했다. 온 몸을 던져 일하는 것은 물론 말보다는 행동이 먼저인 스타일이었다. 교통사고 급성기를 지나 아급성기에는 안정을 취하고 일상의 생활도 최대한 절제하면서 치료에 전념해야 교통사고후유증은 최소화될 수 있다. 그동안 한의원을 십 수년 간 운영하면서 급성기 교통사고 환자를 경험해 본 바로는 최소한 그러했다. 그런데 이 환자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우리 팀의 짐을 도와준답시고 무거운 가방도 서슴지 않고 훅훅 집어 들었다. 환자의 삶의 궤적부터 조사하기 시작했다. 마침 대학시절부터 오랜 기간 이 환자를 지켜봐왔던 동생들이 같은 팀으로 함께 동행했다. 그들에게 환자에 대해 물어보니 온 몸을 던져서 일하는 스타일이라는 직감이 맞았다. 쉽게 말하자면 지독히도 말 안 듣는 환자인 셈이다. 도착한 첫 날부터 친분도 없는 분들에게 친해지기도 전에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친해진 다음 주의사항을 전한다면 정해진 일주일이 금방 다 지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큰 일 났네요. 치료가 쉽지 않겠어요.” 움직임을 통제하려는 자와 움직이려는 자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복합질환의 경중과 병의 상태를 볼 때 하루에 두 번씩 치료하기로 했다. 환자가 편한 시간을 정해주면 그에 맞춰서 치료하자고 했다. 오전과 오후, 두 번에 나눠 치료에 들어갔다. 치료가 진행되면서 다행히 환자는 치료에 집중했다. 감사한 일은 지도대로 자신이 해야 할 업무들을 최대한 줄이고 안정을 취하면서 치료에 전념한 것이다. 평소 자기 삶의 습관대로라면 치료효과가 없거나 치료가 조금 호전되다가 금세 다시 원상으로 아프기를 반복하며, 나중에는 효과가 없거나 미비한 만성 상태로 귀착됐을 것이다. 멀리서 자기를 위해 찾아온 한의사에 대한 성의는 최대한 자기가 건강해지는 것이라는 것을 인지한 듯 했다. 그때부터 환자는 많은 일을 멈추고 대부분의 일들을 남편인 선교사에게 맡겼다. 일보다 건강해지는 것! 이것이 지금 환자 자신의 최대 사명이었다. 처음에는 침, 부항, 약침, 도침 등으로 치료하니 1~3일간의 기력저하, 졸림 등 호전반응이 있었다. 맥진을 해보니 척맥이 거의 잡히지 않을 정도로 하초가 약해져 있었다. 한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 속에서 약침으로 하초 보강치료를 하면서 통증치료를 하니 3일 이후는 치료효과가 선순환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회복 속도는 빨라졌으며, 컨디션도 좋아졌다. 교통사고로 인한 통증뿐만 아니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골반다리 통증과 소화기질환, 산후풍으로 인한 30년간 발이 시렸던 것도 나았다고 좋아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거둔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처음에는 급성기교통사고 환자 한 분을 치료하기 위해 현지에 간 것이었다. 하지만 환자 분이 치료를 받아보니 자신의 건강 상태가 호전되는 것을 느낀 이후 남편도 챙기고 싶고, 현지의 지인들에도 의료서비스를 해줄 수 없느냐고 간청했다.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여러분들을 진료했다. 환자 자신의 건강이 많이 호전된 것은 물론 함께 치료받은 남편까지 건강이 회복되니 그의 만족도는 급상승했다. 또한 여러 환자들까지 한의치료로 건강하고 행복한 웃음을 함께 웃을 수 있게 됐다. “한 사람의 사랑이 무너지면 그 지역 전체가 무너져” 선교라는 것이 그렇다. 현지 선교사 한 사람이 무너지면 그 선교사를 바라보고 있는 현지에 있는 많은 사람과 지역이 무너진다. 그것은 오지일수록 더욱 더 그렇다. 선교사나 NGO 단체의 멤버 대부분은 현지 나라에서 경제적 지원, 낙후시설 보강, 필요한 교육 전개 등 민간대사로써의 가교 역할은 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결손은 현지의 수혜 대상자 뿐 아니라 소속 지역사회와 국가에도 적지 않은 손실이다. 사랑을 심을 때 누군가는 살아난다. 작은 날개 짓이 꿈쩍 않던 산도 움직인다. 나와 연결된 가족, 집단, 국가를 풍요롭게 만드는 나비효과가 아닐 수 없다. 침, 부항, 뜸, 약침, 추나도구, 도침, 알콜솜 및 곡반 등 위생세트 등 간단한 한의진료 도구를 챙긴 1인 한의원의 이동진료로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은 한의사의 최고 특권이다. 초음파유도하약침 치료를 위한 핸즈온 초음파와 추나진단 도구도 챙겨가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한방재택의료의 진단 고도화를 시도했다. 한의진료 대국민 환자 만족도는 약 86%로 대체로 높은 편인데, 적응증과 부작용에 유의하면서 한의재택진료 서비스에서 진단 치료 장비를 과학화하니 신뢰도와 만족도가 한층 더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 선교사나 NGO단체들이 활동하는 지역의 대부분은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낙후된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선교사나 NGO단체의 멤버가 해외에서 부상이나 질병을 당하면 우리나라로 입국해 치료를 받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국내 의사의 요청을 받아 한의사가 해외로 찾아간 특이 케이스다. 환자뿐 아니라 환자 가족 및 친지들도 대부분 선교사인데, 그들은 선교사로 30년 간 재직하면서 이번처럼 단 한명의 선교사를 치료하기 위해서 의료인이 직접 방문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재난, 기근, 응급질환 등 국가나 지역사회의 재난에 KOMSTA와 NGO나 기독교단체 등이 긴급하게 의료 및 구호로 나눔을 실천하는 경우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한 개인이 자신의 질병 치료를 위해 현지에서 응급케어를 받기란 쉽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NGO 멤버나 선교사들의 경우, 자신의 질병 케어에 속수무책인 경우가 즐비하다. 그냥 고통을 참아 내거나 자가 치료로 고통을 조금 덜거나 질 낮은 현지 의료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것이 전부일 수 있다. 그렇다보니 몸과 마음이 엉망일 때가 많다. 그들이 스스로 헌신하는삶의 몫이겠거니 치부하기에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의사의 가성비, 최소 인원 이동으로 최대 효과 가능 K-Medi! 세계 속으로 한의사가 움직이는 것, 그 가성비의 크기는 질병의 종류와 경중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인원의 이동으로 최대의 효과가 가능하다. 특히 재택의료 및 일차진료에서 만큼은 최고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물리치료사, 영양사, 사회복지사 등과 타 직능을 존중하는 가운데 어느 직군과도 능동적으로 협력이 가능하다. 현장에서 피드백을 받아본 바로는 근골격계, 내과, 호흡기, 비뇨생식기, 부인과, 정신과심신증 등 각종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일차케어에서 한의진료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무엇보다 한의학은 몸과 마음을 하나의 유기체로 접근해 근본적인 치료와 생활의 섭생을 중시하는 통합진료에 나서기 때문에 그 효과가 매우 크다. 인도네시아에서의 급작스런 현지 의료 봉사는 쉽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한국기독한의사회 김동하 회장(참조은한의원)을 비롯한 기독한의사회 회원들과 기독교의료연합단체 임원들의 응원과 격려 덕분에 따뜻한 동행의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 한의사는 결코 미운오리새끼가 아닌 백조이다. 누군가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우리끼리라도 서로 격려하며 함께 걸어가다 보면 하늘이 감동하고, 땅이 응답해줄 날이 오리라 믿는다. -
뇌파와 한의학, 어디서 만나는가?김정태 원장(제주 더아이맘한의원) 지난 글에선 뇌파검사의 역사와 원리, 정량화 뇌파(QEEG)의 개념, 한의원에서의 임상 활용 가능성 등을 살펴봤다. 이번 시간에는 뇌파를 한의학의 허실·음양 이론과 어떻게 연결해 해석할 수 있는지, 그리고 실제 임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소개하고자한다. ◆ 뇌파와 한의학의 연결고리…‘허증’과 ‘실증’ 뇌파를 시각화한 3차원(3D) 영상에선 정상군 평균을 기준으로 각 뇌 영역의 활성도를 확인할 수 있다. 색이 없는 상태는 정상 범위의 뇌파를 의미하며, 파란색은 해당 영역의 활동이 평균보다 낮은 상태, 붉은색은 평균보다 높은 상태를 나타낸다. 정상인의 뇌파에선 전반적으로 균형 잡힌 활성도가 관찰되는 반면 최근 극심한 스트레스와 두통을 호소한 환자의 경우에는 뇌 전반의 과각성 및 과활성화 양상이 나타났는데, 이는 한의학적으로 실증(實證)의 특성과 유사한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틱과 ADHD 증상이 있는 한 환자의 뇌파에서는 전반적인 기능 저하 양상이 관찰되며, 이는 한의학에서 말하는 허증(虛證)의 특성과 연관 지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하나의 임상적 접근이며, 뇌파만으로 허실을 단정할 수는 없다. ◆ 주파수 속에 담긴 음과 양의 균형 뇌파는 주파수에 따라 △델타파(δ) △세타파(θ) △알파파(α) △베타파(β) △감마파(γ) 등으로 구분된다. 주파수(Hz)는 뇌파가 1초 동안 진동하는 횟수를 의미한다. 중간 주파수인 알파파를 기준으로 보면 델타파와 세타파는 비교적 느린 서파(徐波)로 음(陰)의 특성과, 베타파와 감마파는 빠른 속파(速波)로 양(陽)의 특성과 연결해 이해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세타파가 상대적으로 증가한 환자는 음적인 상태와 유사한 특성을, 베타파가 증가한 환자는 양적인 특성을 보일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참고 지표일 뿐이다. 한의학에서도 망·문·문·절(望聞問切)의 사진(四診)을 종합해 변증하는 것처럼, 뇌파 역시 환자의 증상과 병력, 체질 등을 함께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 ◆ 한의원에서의 뇌파 활용…환자가 이해하는 치료의 시작 임상에서는 뇌파검사(뇌기능검사)가 다양한 측면에서 활용될 수 있다. 최근에는 뇌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검사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을 뿐 아니라, 환자가 먼저 검사를 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검사 결과는 환자에게 현재의 뇌 기능 상태를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치료 계획을 공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난치성 질환이나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경우에는 치료 전후의 변화를 객관적인 자료로 확인할 수 있어 치료 순응도와 신뢰도를 높이는 데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스트레스가 일상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자신의 뇌 기능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려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뉴로피드백을 비롯한 뇌파 기반 치료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 검사보다 중요한 것은 한의사의 임상적 판단 뇌파검사는 유용한 검사이지만 몇 가지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정상 범위의 뇌파가 항상 정상적인 뇌 기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급성의 심한 뇌 손상이 있더라도 일정 기간 정상 뇌파가 유지되는 경우가 있으며, 치매처럼 뇌 위축과 인지기능 저하가 서서히 진행되는 질환에서도 초기에는 정상 뇌파가 나타날 수 있다. 둘째, 반대로 이상 뇌파가 반드시 질환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이상 뇌파는 비정상적인 뇌 기능을 반영하지만, 일부 정상인에서도 특정 서파가 다소 증가하거나 드물게 저진폭 뇌파가 관찰될 수 있다. 이러한 소견은 20세 이후 정상인의 약 5~15%에서도 보고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의사의 임상적 판단이 중요하다. 뇌파는 뇌 기능의 일부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검사이지만, 환자의 체질과 기혈 상태, 전신 증상을 함께 고려하는 것은 한의학이 가진 중요한 강점이라 할 수 있다. ◆ 균형을 되찾는 뇌, 균형을 추구하는 한의학 뉴로피드백은 비정상적인 뇌파를 정상 범위에 가깝게 조절해 뇌 기능의 균형을 회복하도록 돕는 두뇌훈련 방법이다. 이러한 접근은 균형과 조화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한의학의 치료 원리와 닮아 있다. 또한 외부에서 강제로 변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뇌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스스로 조절 능력을 키워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도 인체의 자생적 회복력을 중시하는 한의학의 철학과 접점을 찾을 수 있다. 과거에는 자율신경계나 뇌파는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졌지만, 동양의 수행 문화에서는 오래전부터 호흡과 명상을 통해 이러한 기능을 조절하려는 시도가 이어져 왔다. 뉴로피드백은 이러한 원리를 현대 기술로 구현한 훈련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일종의 '기계를 활용한 현대적 명상 훈련'으로도 볼 수 있다. 한의진료와 적절히 병행할 경우 상호 보완적인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임상적으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다음 편에선 실제 임상에서 뇌파검사(뇌기능검사)를 어떤 방식으로 시행하는지, 어떤 지표를 중점적으로 확인하는지, 그리고 뉴로피드백 치료는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한의 임상에서 만나는 뇌파 이야기 上편 보기(클릭) 뇌파, 한의 임상을 읽는 새 언어가 되다 -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322)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洪淳用 先生(1909∼1992)은 號가 懷山으로서, 충북 충주 출신의 한의학자이다. 1970년 3월19일 대한사상의학회가 창립될 때 초대 회장이 되었다. 1964년 홍순용은 『醫林』 제47호, 제48호 등 2회에 걸쳐 「상한론의 사상의학적 비판」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홍순용 선생의 두 논문은 1960년대 한국 한의학계가 고전 의학인 『상한론』의 권위에서 벗어나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주체적으로 재해석해 나가는 학술적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래에 이 논문을 홍순용의 목소리로 정리한다. 평생 한의학을 탐구하고 환자를 돌보며 다다른 확신은 장중경의 『상한론』이 한의학의 금과옥조이자 훌륭한 병리 체계임에는 틀림없으나 사람의 체질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方證相對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장중경이 말한 六經은 病證에 불과하다. 이제마 선생이 밝혀내었듯 사람에게는 각기 다른 臟腑性理에 따른 사상 체질이 존재한다. 『상한론』의 三陰病證과 섭생 중 태반은 사실 少陰人의 병증에 해당한다. 장중경의 치법대로 소음인의 태양병이나 양명병에 무분별하게 發汗, 利小便, 攻下의 三法을 쓸 경우 진액이 고갈되어 亡陽證이나 胃家實의 위급한 변증으로 빠지게 된다. 예컨대 양명병 대승기탕증에서 “맥이 강한 자는 살고 약한 자는 죽는다”고 한 장중경의 논법은 심각한 모순이다. 맥이 약한 소음인에게 대승기탕을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해놓고 맥 탓을 하는 격이니, 이는 살아있는 사람을 살리는 약이 아니라 다치게 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소음인에게는 巴豆로 통변한 후 升陽益氣하고 溫補해야 마땅하다. 체질 진단과 사상방의 우수성은 실전 임상에서 명백히 증명된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이천에서 피란하던 중, 열병에 쓰러진 82명의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다. 주변 마을에서는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으나, 내가 거주하던 마을의 환자 80여 명 중에서는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중 80%는 소음인이었고 10%는 태음인이었다. 72세 소음인 노부에게 독삼탕을 투여해 즉시 쾌유시킨 경험 등은 사상의학의 임상적 가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체질별 상한 병리의 차이는 매우 엄격하다. 태음인은 無汗이 문제가 되므로 마황발표탕이나 갈근해기탕으로 발한, 해기시켜야 하며, 구슬 같은 땀이 전신에서 자연스럽게 나야 정기가 회복된다. 만약 태음인의 寒厥에 무한이 지속되면 熊膽과 같은 급제를 써야 한다. 반면 소양인은 열이 많아 변증이 매우 빠르다. 소양인의 결흉증에는 십조탕이나 대함흉탕보다 甘遂末을 온수로 복용시켜 토증을 가라앉힌 뒤 형방도적산이나 지황백호탕을 쓰는 것이 신효하다. 나 역시 젊은 시절 소양인 體質로서 극심한 熱病과 대변비폐를 겪을 때, 찬물을 갈구함에도 억지로 열탕을 마셔 사경을 헤매다 냉수와 백초림을 마시고 살아난 아찔한 체험을 한 바 있다. 출혈증(구혈, 토혈, 각혈)의 치료 역시 체질에 따라 명확히 갈린다. 영등포의 한 병원에서 코피가 멈추지 않아 의식을 잃어가던 20세 태음인 청년에게 補肺元湯 세 첩을 투여하여 첫 첩에 즉시 지혈시키고 완쾌시킨 임상례가 있다. 소음인의 출혈에는 독삼팔물탕, 소양인에게는 서각지황탕이나 열두미지황탕, 태음인에게는 보폐원탕이 확실한 正方이다. 동무 이제마 선생이 창제한 사상방은 비록 67방에 불과하여 잡병 치료의 변통에 미흡한 점이 있을지언정, 체질을 확정하고 투약할 때의 간단하고도 묘한 이치는 古方이나 後世方이 넘볼 수 없는 경지이다. 동무의 말대로 소음인, 소양인론은 비교적 상세하나 태음인, 태양인론은 아직 개척해야 할 처녀지로 남아있다. 사상의학의 미래는 이 미진한 영역을 넓혀나갈 후학들의 손에 달려있다. -
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 18김호철 교수 경희대 한의대 본초학교실 교수 (주)뉴메드 대표이사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김호철 교수(경희대 한의대 본초학교실)의 ‘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를 통해 임상 현장에서 자주 제기되는 한약의 궁금증과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최신 연구 결과와 한의학적 해석을 결합해 쉽게 설명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이 기존의 한약 지식을 새롭게 바라보고, 실제 진료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회로 계지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 네 번째 글이니, 두 가지를 함께 정리하려 한다. 하나는 계피류 약재의 현대 임상근거다. 과학적 연구를 기준으로 실제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어디까지인지 보려 한다. 다른 하나는 본초 효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문제다. 월경통을 예로 보면, 처방에서 쓰인 경험이 어떻게 후대 본초 효능으로 정리되었는지 잘 보인다. 계피류의 임상효과는 어디까지인가? 현대 임상연구에서 말하는 cinnamon은 대부분 어린 가지 계지 하나가 아니다. 대개 계피류의 분말, 추출물, 정유, 또는 계피류가 들어간 복합처방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계지 단독 효과가 아니라 계피류의 현대 임상효과로 보는 것이 맞다. 계피류에서 사람 대상 연구가 가장 많은 영역은 혈당과 대사다. 결론부터 말하면 효과는 있다. 그러나 치료제 수준은 아니다. 당뇨병이나 전당뇨 환자에게 계피 분말이나 추출물을 복용시킨 연구들을 보면, 공복혈당이나 인슐린 저항성이 좋아지는 결과가 종종 나온다. 일부 메타분석에서는 식후혈당이나 HbA1c도 낮아지는 방향의 결과를 보고했다. 계피류가 혈당 대사에 아무 작용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뇨 치료 효과라고 확정하기는 어렵다. 연구마다 계피의 종류, 용량, 기간, 대상자가 다르고 결과도 일정하지 않다. 임상적으로는 전당뇨, 식후혈당이 잘 오르는 사람, 인슐린 저항성이 있는 사람에게 보조적으로 조금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도로 보는 것이 맞다. 당뇨약을 대신할 수는 없고, 당뇨 진행이나 합병증을 막는 근거도 아직 부족하다. 특히 cassia 계피를 장기간 고용량으로 먹을 때는 coumarin에 의한 간 독성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월경통도 효과가 있다. 다만 강한 진통제 수준은 아니다. 원발성 월경통 연구에서 계피 분말 420mg을 하루 세 번 복용한 군은 위약군보다 통증 강도와 지속 시간이 줄었다. 그러나 ibuprofen보다는 약했다. 그러므로 월경통에서 계피류는 가벼운 보조 진통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한의학적으로는 차가우면 더 아프고, 따뜻하게 하면 편해지는 월경통, 아랫배가 차고 월경색이 어둡거나 덩어리가 있는 경우와 잘 맞는다. 이는 계피류의 온경산한, 온통경맥, 산한지통 효능과 연결된다. 항균·항진균 작용도 자주 언급되지만, 대부분 cinnamaldehyde나 계피 정유를 미생물에 직접 접촉시킨 실험실 결과다. 계피나 계지를 복용해서 감염증을 치료한다는 임상근거로 보기는 어렵다. 계지복령환 연구도 있지만, 이것은 계지 단독 효과가 아니라 복령, 목단피, 도인, 작약이 함께 들어간 처방 전체의 효과로 보아야 한다. 정리하면 계피류는 혈당·대사에서 작은 보조 효과가 있고, 월경통에서는 통증 완화 효과가 있다. 항균·항진균은 실험실 효과에 가깝고, 계지복령환은 처방 효과다. 이것이 현재 임상근거에서 읽을 수 있는 현실적인 결론이다. 월경통 효능은 어디에서 왔나? 월경통은 계피류의 현대 임상근거와 한의학적 설명이 만나는 좋은 자리다. 그런데 『신농본초경』의 계 주치에는 월경통이 나오지 않는다. 상기해역, 결기, 후비, 이관절, 보중익기 등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계지에서 말하는 발한해기, 온경통맥, 조양화기, 평충강기 같은 효능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같은 한대의 『상한론』과 『금궤요략』 처방을 보면 계지의 자리는 훨씬 넓다. 계지탕은 표를 풀고 영위를 조화시킨다. 계지가부자탕은 양기를 도와 냉증과 통증을 풀어준다. 오령산은 기화를 도와 수습을 움직인다. 계지복령환은 어혈을 움직이고 혈맥을 통하게 한다. 온경탕은 충임허한과 하복부 냉증을 따뜻하게 풀어준다. 이때만 해도 본초경의 짧은 주치와 처방 속 계지의 역할은 일치하지 않았다. 『신농본초경』의 주치는 오래된 단방 사용 경험을 짧게 정리한 것이다. 반면 『상한론』과 『금궤요략』의 계지는 여러 약재와 배합된 복방 안에서 훨씬 정교한 역할을 맡는다. 단방 관찰의 자리와 복방 안의 자리는 같지 않다. 본초와 처방이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것은 송대 이후다. 성무기의 『주해상한론』은 『상한론』 처방을 약물의 성미와 효능으로 해석하려 한 대표적인 저작이다. 이후 금원시대에 방제학이 발전하면서 처방 안에서 각 약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따지는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청대에 이르러 『본초비요』, 『본경소증』 같은 책들에서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외우는 계지의 효능이 비교적 분명한 형태로 정리되었다. 이 효능들이 어디서 왔는지 다시 보면 어렵지 않다. 발한해기는 계지탕과 갈근탕에서, 온경통맥은 온경탕·당귀사역탕·계지복령환에서, 조양화기는 오령산·영계출감탕에서, 평충강기는 계지가계탕에서 계지가 맡은 자리다. 결국 처방에서 계지가 한 일을 후대 본초학이 이름 붙인 것이다. 계지탕의 조화영위도 마찬가지다. 조화영위는 계지 하나의 단독 효능이라기보다 처방 전체의 효과다. 계지는 밖으로 열고, 작약은 안으로 거두며, 생강·대조·감초가 위기를 조절한다. 이 배합 속에서 영위가 조화된다. 그런데 후대 본초학은 이런 처방 속 역할을 다시 계지의 효능으로 설명해 왔다. 본초 효능은 크게 두 갈래로 만들어졌다. 하나는 약재를 단방으로 쓰거나 간단히 배합해 온 오랜 경험이 짧게 정리된 것이다. 『신농본초경』의 주치가 여기에 가깝다. 다른 하나는 복방 처방 안에서 그 약재가 반복적으로 맡은 역할이 후대 본초학으로 들어와 정리된 것이다. 오늘 우리가 계지에서 말하는 발한해기, 온경통맥, 조양화기, 평충강기 같은 효능은 대부분 이쪽에 가깝다. 계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황, 당귀, 황기 같은 주요 약재들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계지를 어떻게 쓸 것인가? 이제 네 번에 걸친 계지 이야기를 정리하려 한다. 계지와 육계를 완전히 같은 약으로 보아 아무렇게나 바꾸어 쓸 수는 없다. 肉桂는 두껍고 향이 강한 수피이고, 桂枝는 가는 가지나 어린 가지다. 같은 계피류이지만 농도와 작용 강도는 다르다. 그러나 두 약재를 전혀 다른 약처럼 절대적으로 나눌 필요도 없다. 현대 임상연구도 대부분 계지 하나가 아니라 계피류 전체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혈당·대사, 월경통, 일부 복합처방에서 확인된 효과도 분말, 추출물, 정유, 또는 처방 전체의 효과다. 따라서 임상에서는 이름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 약재의 성격을 보아야 한다. 계지가 필요한 자리에 육계를 쓴다면 용량을 줄이고, 육계가 필요한 자리에 계지를 쓴다면 용량이나 조제 방식을 조절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계지냐 육계냐의 이름이 아니라, 처방의 목적에 맞게 부위와 농도, 제형과 용량을 조절하는 일이다. 본초 효능은 책 속에서 갑자기 정해진 말이 아니라, 약재의 산물 차이, 약명의 정리, 처방 운용, 임상 경험이 겹치며 만들어진 말이다. 그 과정을 알면 이름에 묶이지 않고, 처방의 뜻에 맞게 약재를 쓸 수 있다. 계지와 육계의 구분도 그렇다. 버릴 것도 아니고 절대화할 것도 아니다. 계피류 안에서 부위와 농도, 제형과 용량, 처방 안의 역할을 보고 쓰면 된다. 그때 계지와 육계의 구분은 외워야 할 경계가 아니라, 임상에서 조절해 쓰는 기준이 된다. -
병을 배우는 교실에서, 사람을 다시 배우다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한의학이 인문학과 만나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암 환자를 진료하며 나는 자주 수치와 판단의 언어를 사용한다. 검사 결과를 살피고, 증상의 변화를 기록하며, 치료의 효과와 한계를 설명한다. 때로는 더 이상 적극적인 치료가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환자와 가족에게 조심스럽게 묻기도 한다. 생사의 경계에 가까이 선 환자들을 마주하는 일은 가끔은 익숙해진 듯한 일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진료가 익숙해진다고 해서 한 사람의 고통까지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병명과 비슷한 검사 결과를 가진 환자라도 각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달랐다. 누군가는 통증보다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고, 누군가는 치료를 멈추는 순간 자신이 포기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어떤 환자는 하루라도 더 살기를 바랐고, 또 어떤 환자는 더 이상의 치료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했다. 의학은 질병의 경과를 설명할 수 있었지만, 그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까지 모두 설명해주지는 못했다. 환자복 뒤에 가려진 한 사람의 관계와 기억, 책임과 후회, 끝까지 지키고 싶은 삶의 모양을 마주할 때면 의학의 언어만으로는 다 채울 수 없는 침묵이 진료실에 남았다. 그럴 때마다 한 가지 질문이 따라왔다. “우리가 만나는 환자는 치료해야 할 질환인가, 아니면 하나의 삶 전체인가.” 이 단순하지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에서 학교의 지원을 받아, 성과교류 세미나 「생애주기·돌봄 의료인문학 시즌 1」이라는 제목으로 의료, 인문학과 관련된 교수님들의 고견을 듣는 시간을 올해 상반기에 가졌다. 의료는 인간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 2026년 4월부터 6월까지 가천대학교의 지원 아래 진행된 이번 세미나는 인문학과 한의학, 생명과학과 돌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누군가는 의료의 역사를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진료실에서 마주한 몸과 문화를 이야기했다. 한의학의 고전과 철학, 유전자와 데이터, 양생과 돌봄도 하나의 자리에서 만났다. 서로 다른 언어로 출발한 강연들은 결국 하나의 물음으로 이어졌다. 의료는 인간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의료인이 되어야 하는가. 첫 강연은 경희대학교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 박윤재 교수님께 부탁드렸다. ‘의료가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라는 제목처럼 이번 세미나 전체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했다. 의료가 인간의 몸을 대상으로 한다면, 인문학은 그 몸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경험을 바라본다. 같은 질환을 가진 환자라도 질병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치료에 기대하는 바는 서로 다르다. 환자가 놓인 시대와 사회, 가족관계와 경제적 조건, 질병 이전의 삶까지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다. 인문학은 책 속이나 강의실에만 머무는 학문이 아니었다.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순간에도, 의사의 설명을 듣고도 침묵하는 보호자의 표정에도, 같은 질환을 두고 서로 다른 선택을 내리는 사람들의 삶에도 인문학은 존재했다. 환자의 생애주기와 삶의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 진료실에서 의료인은 끊임없이 질문을 받는다. 어떤 치료가 가장 효과적인가를 넘어, 이 환자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의료인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의학적으로 가능한 치료와 환자가 바라는 삶이 다를 때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를 묻게 된다. 치료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의료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의료의 역할은 질병을 제거하는 일에만 머물 수 없다. 환자가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선택하도록 돕는 일, 두려움을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일, 치료가 어려워진 뒤에도 환자의 곁을 지키는 일 역시 의료의 일부였다. 수 개월간 진행된 교수님들의 강연은 진료실이 단순히 의학 지식이 적용되는 공간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해석과 이해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장소임을 일깨워주었다. 마지막 강연까지 들으며 나는 ‘생애주기’와 ‘돌봄’이라는 두 단어를 다시 생각했다. 사람은 태어나 성장하고 늙으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질병을 만난다. 어떤 시기에는 누군가를 돌보고, 또 어떤 시기에는 다른 사람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의 경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바뀐다. 의료인은 그 변화의 순간을 가까이에서 목격한다.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는 사람을 만나고, 만성질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돌보며,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환자의 곁에도 선다. 같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가 생애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에 따라 필요한 의료와 돌봄은 달라진다. 의료인이 환자의 생애주기와 삶의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기에 의료인이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선택적인 교양이 아니라 임상 역량의 일부여야 한다. 검사 결과를 정확히 판독하고 적절한 치료를 제시하는 능력과 함께, 환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를 묻는 능력이 필요하다. 환자가 충분히 말하지 못했을 때 기다리는 능력, 의료인의 판단이 언제나 환자의 최선과 같지는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특히 치료 효과가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의료인의 시선이 더욱 중요하다. 병을 낫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의료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통증과 불편을 줄이고, 환자가 원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돕고, 자신의 삶에 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도록 지지하는 일은 치료 이후에도 계속되는 의료다. 우리는 어떤 의료인이 되어야 하는가? 이번 세미나가 모든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전에는 쉽게 지나쳤던 질문을 더욱 선명하게 남겼다. 우리는 환자를 얼마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의료인이 생각하는 최선과 환자가 바라는 최선이 다를 때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가. 과학적 데이터가 설명하지 못하는 한 사람의 경험을 의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치료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의료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좋은 돌봄이란 과연 무엇인가. 2026년 봄, 서로 다른 전공과 경험을 가진 여덟 명의 연자, 박윤재 교수님(경희대학교 HK+ 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 단장), 김태우 교수님(경희대학교 기후·몸 연구소 소장), 김현구 교수님(세명대학교 원전학의사학 교수), 이은영 박사님(경희대학교 철학과), 제소희 교수님(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 글로벌현상연구부 교수), 진희정 책임연구원님(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 부장), 최정균 교수님(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이상재 교수님(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예방한의학 교수) 등이 건넨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다. 우리는 어떤 의료인이 되어야 하는가. 다음 진료에서, 다음 강의에서, 그리고 누군가의 삶과 아픔을 마주하는 모든 순간에 이번 세미나에서 나눈 질문을 다시 꺼내보고자 한다. 병을 치료하는 의료인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수 있는 의료인이 되기 위해서. -
한의학이여, 여성의 부름에 답하라박향유 척추신경추나의학회 서포터즈(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본과 4학년) [한의신문] 이른 아침, SETEC 컨벤션홀에 도착했을 때는 설렘과 함께 조금 긴장되는 마음이 들었다. 이번 연합 세미나는 척추신경추나의학회 서포터즈로 활동하며 참여하게 된 자리였기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강의실에서 배우던 한의학이 실제 임상 현장과 학술 교류의 장에서 어떻게 논의되고 발전하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번 세미나는 대한스포츠한의학회, 대한침구의학회, 임상약침학회, 척추신경추나의학회가 15주년을 맞아 함께 개최한 연합 학술행사였다. 서포터즈이자 학생위원으로 참여하여 행사 안내를 해보며 학회세미나의 운영 과정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대한한의학회 이재동 회장님의 축사와 네 학회 회장님들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의학이여, 여성의 부름에 답하라」라는 주제 아래 오전과 오후 세션으로 나누어 진행되었으며, 각 세션마다 두 개의 강의가 마련되어 있었다. 행사 운영을 돕는 동시에 강의를 들으며, 여성 건강이라는 하나의 주제가 스포츠한의학, 침구의학, 약침, 추나요법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 안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적용되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오전 첫 강의는 대한스포츠한의학회 함유정 교육이사님의 「여성 운동선수 관리 — 상대적 에너지결핍(RED-S)」이었다. 강의를 통해 여성 운동선수의 건강을 단순히 운동 손상이나 경기력의 문제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RED-S는 낮은 에너지 가용성을 중심으로 생식 기능, 골 건강, 운동 수행 능력 등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개념이었다. 특히 환자를 평균적인 기준에 맞추어 평가하기보다 개인의 변화와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기억에 남았다. 여성 운동 선수에 있어 에너지 균형, 생식 건강, 근골격계 상태를 함께 고려하는 통합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전 두 번째 강의는 대한침구의학회 박연철 학술이사님이 해주셨다. 학부 과정에서 경혈과 경락을 주로 암기 중심으로 배웠다면, 이번 강의는 그 지식들이 실제 임상에서 어떻게 연결되고 활용되는지를 보여주었다. 특히 인체역학과 경락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부인과 질환 치료에서 요방형근, 내전근, 간경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과정이 기억에 남았다. 실제 임상에서는 개별 혈자리보다 인체 구조와 기능의 연결성을 통합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이 중요했다. 또한 안면 매선요법이 진피층에 머물며 지속적인 자극을 통해 장기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얼마 전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여러 한의학 학회지에서 근거수준이 높은 논문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번 강의를 들으며 매선요법 역시 다양한 임상연구를 통해 근거를 꾸준히 축적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세션의 첫 강의는 임상약침학회 성혜령 원장님의 「미용약침을 활용한 피부, 탈모, 다이어트 치료」였다. 이 강의에서는 미용약침이 실제 임상에서 어떤 기준으로 적용되고, 환자에게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시술 자체보다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평가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과정의 중요성이었다. 또한 리포컷 약침 사례를 통해 미용 치료가 단순한 외형 개선에 머무르지 않고 건강과 신체 기능을 함께 고려하는 접근이라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마지막 강의는 척추신경추나의학회 기성훈 학술이사님의 「부인과 추나요법」이었다. 이날 강의 가운데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시간이었다. 본과 3학년 때 이론으로만 접했던 내장기 추나를 실제 시연으로 보며, 추나요법은 단순한 술기를 넘어 해부학과 발생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치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의에서는 내장기 추나의 핵심 개념인 가동성(Mobility)과 고유운동성(Motility)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으며, 자궁 주위 인대와 골반저 구조에 대한 이해가 실제 임상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배꼽 이완 기법 시연에서 원장님께서는 손으로 ‘리스닝(Listening)’을 한다고 표현하셨다. 환자의 호흡을 따라가며 조직의 긴장을 느끼고 이완을 유도하는 과정, 그리고 방광 거상기법과 자궁·난소 고유운동성 기법 시연을 통해 추나요법은 환자의 몸을 이해하고 읽어내는 과정이라는 점을 엿볼 수 있었다. 척추신경추나의학회 서포터즈로 활동하며 추나요법이 어떤 이론과 임상적 사고를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는지 가까이에서 배울 수 있었고 이번 강의를 통해 강의실에서 배운 이론이 실제 임상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확인하며, 추나요법에 대한 이해를 한층 넓힐 수 있었다. 행사가 모두 끝난 뒤에는 부스 정리와 뒷정리를 도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침부터 분주했던 행사장이 하나둘 정리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학술대회가 많은 사람들의 준비와 협력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연합 세미나를 통해 여성 건강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바라보더라도 학회마다 서로 다른 관점과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활용하는 치료 도구와 임상적 접근은 달랐지만, 환자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목표는 같았다. 이번 연합 세미나는 척추신경추나의학회 서포터즈이자 학생위원으로서 학회를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다양한 임상 현장의 시각을 배울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귀한 배움의 자리를 마련해 주신 네 학회와 강연해주신 원장님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더 많은 경험과 배움을 쌓아 환자를 넓은 시각에서 이해하는 한의사로 성장해 나가고자 한다. -
공동이용탕전실은 한의약 및 한약 관련 산업의 필수 공공재다서영석 대한원외탕전협회장 [한의신문] 최근 공동이용탕전실 운영과 관련해 일부 단체가 직역의 이해관계를 앞세워 제도의 본질과 취지를 왜곡하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한의약 산업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공동이용탕전실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다. ‘공동이용탕전실’ 안전하고 균질한 한약 공급하는 공공적 기능 수행 공동이용탕전실은 「공동이용탕전실 설치·운영에 관한 지침」에 따라 한의사가 개설한 의료기관의 부속시설로 설치·운영된다. 여러 한의원과 한방병원이 진료 과정에서 필요한 다양한 한약 처방을 위탁받아 조제하는 전문시설로, 국민에게 보다 안전하고 균질한 한약을 공급하기 위한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한약은 양약과 달리 환자의 체질과 성별, 연령, 증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변증에 따라 처방되는 맞춤형 의약품이다. 공동이용탕전실은 보건복지부의 관리·감독 아래 위생적이고 안전한 시설에서 한약사가 한약을 조제하며, 한방의료기관이 발행한 환자 맞춤형 처방을 위탁조제하고 있다. 일부 처방은 여러 의료기관에서 발행한 처방전의 내용이 동일하고 조제 시간이 오래 걸리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사전조제 제도를 활용해 사전조제지시서에 따라 적법하고 안전하게 한약을 조제함으로써 환자의 치료 시점에 맞춰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는 치료의 적시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로, 환자 맞춤형 처방 원칙과도 배치되지 않는다. 한약 조제의 정의와 한약사의 조제행위 범위 등을 둘러싼 일부 논란은 제도의 미비에서 비롯된 것으로, 제도 개선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다. 현재 보건복지부와 한국한의약진흥원은 공동이용탕전실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있으며, 연구 과정에서 공동이용탕전실 운영자와 한의사, 한약사, 규격한약재 제조업체, 한약재 유통업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보다 합리적인 제도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제도 개선의 목적은 공동이용탕전실의 기능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민 건강 증진에 더욱 기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도화하는 데 있다. 보다 안전한 한약을 보다 효율적으로 조제하고 신속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관련 직역과 산업계가 상호 협력하며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동이용탕전실은 단순히 한약을 위탁조제하는 시설에 머물지 않는다. 개별 한방의료기관의 조제 기능을 넘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한약 관련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기반시설이다. 대규모 한약 조제를 위해서는 규격한약재 제조업체와 유통업체의 안정적인 공급체계가 필수적이다. 이는 원료한약재를 재배하는 국내 약용작물 재배농가의 소득과 직결될 뿐만 아니라, 국내 생산이 어려운 원료한약재의 수입·유통 산업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결국 공동이용탕전실은 한약 조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산·제조·유통·의료서비스를 연결하는 산업 생태계의 중심축으로서 한의약 산업 전반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이자 필수 공공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한의약 산업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체계적인 정책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관 소속 한의약정책과와 한의약산업과, 식품의약품안전처 한약정책과 등 관계 부서의 긴밀한 협력과 정책적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한의약진흥원 역할 중요…전문기관으로의 기능 더욱 강화해야 이 과정에서 한국한의약진흥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한의약진흥원은 정부와 산업계를 연결하는 정책 수행기관이자 한의약 산업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전문기관으로서 산업 현장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하고, 연구개발과 산업화를 연계하는 허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앞으로는 연구개발 지원을 넘어 산업화, 데이터 기반 구축, 해외 진출 지원까지 아우르는 전문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세계 대체의학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그 중요성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들은 현재 약 300조 원 규모인 세계 대체의학 시장이 향후 10년 동안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방의학에 대한 관심 확대,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대체의학의 과학적 근거 축적, 통합의료에 대한 수요 확대 등이 이러한 성장을 이끄는 주요 요인이다. 대한민국이 이러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의약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특히 공동이용탕전실은 한약 조제의 표준화와 품질 향상은 물론, 산업 생태계를 연결하는 거점으로서 미래 성장의 핵심 기반이 될 수 있다. 또한 공동이용탕전실에는 처방, 조제, 약재, 품질관리 등 다양한 한약 관련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축적된다. 이러한 데이터는 향후 한의 진료 AI 에이전트 개발과 맞춤형 의료서비스 고도화의 핵심 자원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조제공정에는 피지컬 AI와 자동화 기술을 접목해 품질관리 수준을 높이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AI가 한의약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축적된 임상 및 조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한의약의 과학적 검증 수준을 높이고, 새로운 산업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결국 공동이용탕전실은 단순한 조제시설이 아니라 한의약 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AI 기반 산업혁신을 이끄는 핵심 플랫폼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공동이용탕전실을 중심으로 한 데이터 표준화와 산업 기반 구축은 앞으로 한의약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중요한 국가 과제가 될 것이다. 공동이용탕전실 강화 위한 정책적 뒷받침 필요 공동이용탕전실의 성장 기반을 강화하고 인공지능(AI) 산업과의 연계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첫째, 공동이용탕전실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법적·제도적 근거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제도의 안정성이 확보돼야 산업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둘째, 정부는 공동이용탕전실 운영 과정에서 불합리한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한약 조제 산업이 자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셋째, 원료한약재 재배부터 규격한약재 제조, 유통, 한약 조제에 이르는 산업 파이프라인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각 단계에 스마트농업과 피지컬 AI 등 첨단기술을 접목할 수 있도록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넷째, 이러한 정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한의약 산업 진흥의 전문 지원기관인 한국한의약진흥원의 기능과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특히 최근 논의되고 있는 한국한의약진흥원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통합 문제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의약 산업은 일반 보건산업과는 다른 제도와 시장 구조, 산업 생태계를 갖고 있다. 한약재 생산과 유통, 공동이용탕전실, 한약 조제, 한의 의료서비스는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며, 이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지원할 수 있는 전문성과 지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한의약진흥원은 그동안 한의약 정책과 산업을 연결하는 전문기관으로서 연구개발, 기업 지원, 산업 기반 조성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앞으로도 산업 현장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하고, 한의약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실행기관으로서 기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만약 통합이 추진된다면 행정 효율성뿐 아니라 한의약 산업의 전문성과 정책 연속성, 산업 지원 체계 유지 여부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단순한 조직 통합이 국가 한의약 산업의 성장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미래 산업을 키우는 일이다. 세계 각국은 전통의학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과 산업화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한의약을 국민 건강을 지키는 의료자산이자 세계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산업자산으로 육성해야 한다. 공동이용탕전실은 이러한 미래를 실현하는 핵심 인프라이며, 한의약 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이 기반이 더욱 튼튼해질 때 한약 관련 산업은 물론 AI, 디지털 헬스케어, 스마트 제조, 해외 진출까지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결국 한의약 산업의 경쟁력은 현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전문기관과 산업계, 정부가 긴밀하게 협력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공동이용탕전실은 단순한 조제시설이 아니다. 한의약 산업 생태계를 지탱하는 필수 공공재이며, 대한민국 한의약 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만들어 갈 핵심 기반이다. 정부는 공동이용탕전실을 중심으로 한 산업 생태계를 더욱 견고히 하고, 한국한의약진흥원을 중심으로 한 전문 지원체계를 강화해 한의약 산업이 미래 성장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
‘전통의학 국제표준 외교전’ 한국의 리더십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이유정 한국한의학연구원 국제표준기획팀장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에서 국제표준은 단순한 기술 가이드라인을 넘어, 국가 간 무역 장벽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무기이자 패권의 척도다. 세계 전통의약 시장이 연평균 8.2%씩 고속 성장해 2027년 7682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지난 2026년 6월 첫째 주에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국제표준화기구 전통의학 기술위원회(ISO/TC 249/SC 1) 총회는 전 세계 전통의학의 치열한 글로벌 패권 경쟁의 현실을 다시 한 번 고스란히 드러냈다. 숫자로 드러난 한·중 표준 경쟁 ‘80 vs 10’. 이 숫자는 중국 단독개발 국제표준 숫자 대 한국 단독개발 국제표준 숫자다(공동참여표준 제외). ‘75 vs 12’. 이 숫자는 ‘26년도 ISO/TC 249/SC 1/WG 1(국제표준화기구 전통의학기술위원회 한약작업반)’ 회의에 참여한 중국전문가 대 한국전문가 숫자다. 숫자로 확인돼 듯이 중국과 한국의 전통의학분야 국제표준을 지원하는 재원과 인력에서 큰 차이를 알 수 있다. 중국은 ‘중국표준 2035’와 ‘중의약 표준화 행동계획(2024-2026)’을 앞세워 국가 주도로 세계 표준 시장을 맹렬히 장악해 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까지 자국 표준 체계에 전면 도입하며 고도화를 꾀하고 있다. 이번 도쿄 총회는 한국, 중국, 일본 등 19개국에서 160여 명의 전문가가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해 전통의학 분야 국제표준화 현안을 두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한국, 국제표준 5건 진전…표준 경쟁 존재감 입증 한국은 국제표준 경쟁에서 결코 무력한 조연에 머물지 않고, 이번 2026 도쿄 총회에서 중국의 독주를 저지하는 강력한 견제 장치이자 글로벌 표준의 핵심 주축으로서의 저력을 유감없이 입증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국제표준기획팀을 필두로 한 우리 대표단은 한국이 참여해 개발 중인 국제표준 5건의 차기 단계 진입을 확정 짓는 쾌거를 거뒀다. 구체적으로 과학적 한약재 품질관리를 위한 △‘DNA 바코드를 이용한 한약의 유전자 분석 일반요건’이 작업초안(WD, 2단계)에 진입했다. 전통 임상 기술의 현대화를 대변하는 △‘일회용 도침’ △‘설진기 시험방법’은 위원회 단계(CD, 3단계)로 올라섰다. 한의약 첨단 디지털 헬스케어의 핵심 개념을 담고 있는 △‘경혈 전자약’은 기술보고서 질의(DTR, 4단계), △‘진단정보를 위한 임상지식구조-맥’은 국제표준안 질의(DIS, 4단계) 단계에 진입하며 국내 한의약 기술과 연구 성과가 세계 시장의 표준으로 안착할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을 다졌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 제안한 행인, 고삼, 노회 등 3건의 신규 한약재 품질 규격 표준안에 대해서도 한국이 공동 프로젝트 리더(co-Project Leader)를 수임하는 실리를 챙겼다. 이를 통해 국내 유통과 활용 비중이 높은 핵심 한약재의 품질·안전성 기준 제정 과정에 직접 참여해 국내 산업계의 의견을 반영하고 한약재의 국제적 신뢰도를 우리가 주도해 끌어올릴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특히 이번 총회의 최대의 쟁점은 국제표준 문서 내 ‘한자(간체 및 병음 포함) 표기 안건’이었다. 중국은 캐나다, 네덜란드 등 친중 국가들과 함께 한의학 고유 개념의 영어 표현 한계를 명분으로 한자 표기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하며 국제표준 문서 내 한자 사용을 제도적으로 못 박으려 시도했다. 이에 한국 전문가들은 일본, 호주와 함께 ISO의 공식 언어(영어·프랑스어·러시아어) 작성 원칙 준수를 강조하고, 특정 언어의 문자사용이 국제표준의 보편적 이해와 회원국 간 일관된 적용을 심각하게 저해한다는 논리로 전면 저지해 최종 안건 보류를 끌어냈다. 이는 사전 회의 등을 통해 철저하게 준비된 한국대표단의 표준 외교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자, 향후 ISO 기술관리이사회(TPM)의 절차 검토 과정에서도 우리가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야 할 핵심 분수령이 됐다. 한의약 국제표준 리더십 강화…국가 지원·디지털 표준·외교가 열쇠 이처럼 정교해지는 주변국들의 표준 다극화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 한의학이 지속 가능한 글로벌 리더십을 공고히 하기 위한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현장의 사명감에 의존하는 구조를 깨고 국가 차원의 전폭적이고 상설화된 재원·인력 지원 체계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일본이 젊은 표준 전문가 확보를 위해 총회 현장에서 홍보영상을 촬영하고 일본동양의학회의(JLOM)를 가동하고 중국이 특유의 도제시스템을 표준 전문가 육성에 도입해 후임까지 회의에 참석시키는 것과 같이, 우리도 장기적인 인력 격차를 극복할 조직적 육성이 필요하다. 정부는 한의약 표준화를 국가 전략 과제로 격상하고 ‘글로벌 표준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신설해 법률, 어학, 첨단 기술 역량을 갖춘 신진 한의학 표준 전문가를 키워내야 한다. 둘째, 우리가 이미 확보한 의료기기(WG4)와 용어(WG5) 분야의 의장국 지위를 적극 활용해 고부가가치 ‘융합형 기술 표준’을 선점해야 한다. 한약재 원료 중심의 표준은 중국의 규모를 이기기 어려우나 이번에 차기 단계 진입에 성공한 경혈 전자약, 설진기, 진단정보 임상지식구조(맥)처럼 한국이 강점을 가진 디지털 헬스케어와 첨단 의료기기 표준 분야는 중국의 거센 표준선점 전략을 넘을 수 있는 한국형 표준의 독창적 무기가 될 것이다. 셋째, 국제표준 무대에서 한국의 의견을 지지해주고 투표에 찬성 의견을 던져줄 우호국 확보에 표준 외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국제표준은 36개월에 걸쳐 6단계의 투표를 통과해야 제정되는 매우 까다롭고 긴 여정이다. 따라서 한국이 제안한 국제표준을 지지해 줄 우호국 확보를 위한 전략과 자원이 필요하다. 한국형 표준외교 강화해 전통의학 글로벌 리더십 확립해야 전 국민 건강보험 임상 데이터와 현대화된 3차 의료 인프라를 갖춘 한국의 한의학은 과학적 검증과 안전성 면에서 글로벌 표준의 조율자(Coordinator)로 나설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독일, 호주 등 표준의 중립성을 원하는 국가들과의 연대하고, 새롭게 전통의학 국제표준 무대에 등장한 인도와 몽골 등과도 우호관계를 맺어간다면, 다자간 무대에서 우리의 표준안을 관철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국제표준은 한 번 제정되면 미래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산업의 손발을 묶어버리는 장벽이 된다. 2026 도쿄 총회에서 증명된 우리 전문가들의 헌신적인 리더십 위에 보다 체계적인 인적·물적 지원이라는 날개를 달아준다면, 대한민국의 한의학은 중국의 독주를 막아내고 세계 전통의학 표준 무대에서 강력한 핵심 리더이자 글로벌 스탠다드의 명실상부한 중심 기둥으로 확고히 자리 잡을 것이다. -
“한의학 효과, 현대 과학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연구 목표”김미혜 우석대 한의과대학 교수 저출산 시대, 난임 치료의 새로운 해법을 찾기 위한 연구가 한의학과 첨단 생명과학의 융합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2026년도 기초연구실(BRL) 지원사업’에 선정된 김미혜 우석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는 ‘자궁 노화’를 핵심 표적으로 한 난임 치료 연구에 착수했다. 본지는 김 교수로부터 연구의 차별성과 향후 임상적 의미, 그리고 한의학의 전통적 치료 원리를 현대 과학으로 규명하려는 연구 철학과 비전을 들어봤다.<편집자주> Q. 본인 소개를 부탁드린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우석대학교 한의과대학 김미혜입니다. 그동안 여성 생식내분비 질환, 특히 다낭성난소증후군(PCOS)과 착상 장애 등 난임에 대한 한의학적 치료의 기전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연구를 주로 수행해 왔다. 현재는 전통 한의학의 지혜를 현대 생명과학 기술로 해석해 난임 부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근거 중심의 한의 치료 기술을 연구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Q. 이번에 과기부 지원사업 연구로 선정된 ‘자궁 노화 표적지도(U-Age Map) 규명 난임 치료 연구’는 기존 난임 연구와 어떻게 차별화되는지? 특히 ‘자궁 노화’를 연구의 핵심 키워드로 삼은 이유와 이를 통해 새롭게 규명하고자 하는 부분은? 이번 사업은 난임 극복을 위한 한의학의 기초 학술 기전을 더 깊이 있게 연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많은 난임 연구들은 배아 자체의 건강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 온 측면이 있다. 하지만 성공적인 임신을 위해서는 배아가 착상되는 자궁 환경 역시 매우 중요하다. 우리 연구팀은 만혼 등으로 인해 증가하는 자궁 노화가 착상 실패의 주요 원인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자궁 노화 표적지도(U-Age Map)’는 자궁 내막이 나이 들어감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세포와 분자 단위에서 상세히 그려낸 일종의 네비게이션이다. 이를 통해 자궁 노화의 핵심 원인을 규명하고, 한의 치료가 어떻게 자궁 환경을 개선해 착상에 유리한 조건을 만드는지 그 과학적 기전을 밝히는 것이 본 연구의 핵심이다. Q. 한의학의 변증이 현대의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와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는데, 이번 연구에서 오믹스 분석과 AI 기술이 한의학의 변증 개념과 어떻게 융합되며, 실제 환자 맞춤형 난임 치료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는지? 한의학의 ‘변증(辨證)’은 환자의 겉으로 드러난 증상뿐만 아니라 체질,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맞춤 치료를 제공하는 훌륭한 시스템이다. 여기에 현대의 오믹스(Omics) 데이터와 AI 기술을 결합하면, 변증이라는 거시적이고 임상적인 개념을 유전자, 단백질 수준의 미시적인 생물학적 지표로 객관화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번 연구를 통해 AI가 방대한 생물학적 데이터를 분석해 특정 변증에 해당하는 난임 환자의 자궁 노화 패턴을 찾아내고자 한다. 이것이 실제 임상에 적용되면, 난임 환자는 단순히 획일화된 처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물학적 특성과 한의학적 체질이 정밀하게 결합된 ‘최적화된 맞춤형 난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Q. 그동안 다낭성난소증후군(PCOS)과 난임을 비롯해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셨는데, 이번 BRL(Basic Research Lab) 연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임상 현장의 한의 난임 치료는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하는지? 기존 한의 임상 현장에서는 이미 난임 치료에 있어 의미 있는 성과들이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이번 연구가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이러한 훌륭한 임상적 성과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명확한 생물학적 근거와 타겟이 확보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자궁 노화를 제어하는 한의 치료의 기전이 객관적 데이터로 확인되면, 한의 난임 치료 과정을 보다 체계화하고 치료 결과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는 난임 환자들이 데이터에 기반한 높은 수준의 한의 진료를 신뢰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Q. 한의학의 전통적인 치료 원리를 현대 생명과학과 데이터 기반으로 규명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구 철학은? 내 연구 철학은 소통과 번역이다. 전통 한의학은 이미 수천 년간 임상 현장에서 그 효과를 입증해 온 훌륭한 의학이다. 그 원리를 현대인과 타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인 현대 과학으로 번역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의학을 현대 과학에 끼워 맞추기 보다는 전통의학의 통찰과 현대 과학의 분석력을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해 가장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진실을 찾아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Q 이번 BRL 과제 선정를 계기로 앞으로 5~10년 후에는 여성 생식의학과 한의학 연구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 있기를 기대하는지? 5~10년 후에는 한의 생식의학이 고도의 객관적 데이터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난임 부부들에게 더욱 신뢰받는 든든한 선택지로 확고히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자궁 미세환경과 같은 세부적인 타겟에 대해 맞춤형 한의 치료 기술이 거듭 고도화돼, 저출산 시대에 임상 현장에서 실질적인 희망을 드릴 수 있는 튼튼한 학문적 토대가 완성되는 모습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보완돼야 할 부분은 ‘연구의 연속성’이다. 단발적인 기초 연구에 그치지 않고, 그 성과가 후속 임상 연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체계적인 연구 생태계 조성과 지속적인 지원이 뒷받침되기를 희망한다. Q. 지방자치단체 한방 난임지원사업과 같은 정책에도 활용되기 위해선 실제 현장에서 활동하는 대한한의사협회, 전국의 각 시도지부 등 일선 한의사들에게도 연구성과가 전달돼야 할 것 같은데, 지자체의 이 같은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현재 여러 지자체에서 한의 난임 지원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고 긍정적인 임상 결과들이 축적되고 있다. 여기에 이번 기초 연구를 통해 자궁 환경 개선에 대한 한의 치료의 과학적 기전까지 명확히 더해진다면, 이는 해당 사업들을 뒷받침하는 매우 든든한 학술적 근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 성과가 일선 원장님들께 잘 전달된다면, 임상 현장에서 더욱 확신을 갖고 진료하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국가적인 저출산 극복 노력에 한의학이 과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욱 실질적인 보탬이 되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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