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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읽어낸 여성의 건강척추신경추나의학회 서포터즈 김소정(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본과 3학년) [한의신문] 지난달 21일, SETEC 컨벤션센터에서 ‘2026 유관학회 연합세미나’가 열렸다. ‘한의학이여, 여성의 부름에 답하라’라는 슬로건 아래 척추신경추나의학회·임상약침학회·대한스포츠한의학회·대한침구의학회가 여성 질환을 함께 다룬 자리로, 서로 다른 전문성을 지닌 네 학회가 한 주제 아래 강단을 나눈 것만으로도 한의계가 여성 건강을 얼마나 폭넓게 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척추신경추나의학회 서포터즈로 학기 중에도 기성훈 원장님의 한의원에서 추나 스터디를 이어온 나에게, 이날은 평소의 배움이 큰 무대에서 하나의 그림으로 모이는 시간이었다. 네 학회의 강의는 다루는 도구도, 출발점도 저마다 달랐지만, 가만히 듣다 보니 결국 하나의 물음으로 모이고 있었다. 여성의 몸을 남성의 축소판이 아니라 그 자체의 언어로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오전 첫 강의에서 대한스포츠한의학회 함유정 이사님은 여성 스포츠인의 상대적 에너지결핍(RED-S)을 다루며, 스포츠의학의 임상 기준 상당수가 남성 데이터 위에 세워져 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셨다. 이상섭식·무월경·골다공증을 직선적으로 잇던 1997년의 여성 3증후가 2014년 IOC의 RED-S를 거쳐 최근의 개인화된 관리 모델로 발전해 온 흐름은, 여성 건강을 바라보는 의학의 시선이 어떻게 정교해져 왔는지를 보여줬다. 월경을 하나의 활력징후로 보아 생리·배란·황체기를 길게 추적한다는 관점은, 여성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흘려보내지 않고 읽어내는 출발점처럼 다가왔다. 무엇보다 ‘여성은 작은 남성이 아니다’라는 한 문장은, 생리·임신·골반저에 이르는 여성의 건강을 남성의 축소판이 아니라 독립적인 관리 대상으로 세워야 한다는 메시지로 오래 남았다. 이어 대한침구의학회 박연철 학술이사님은 침 치료와 안면 매선을 원리에서 풀어내셨다. 술기를 익히기에 앞서 수승화강(水升火降)이라는 치료의 목표와 경락의 대응 원리를 먼저 세우고, 정경침법·동씨침법·사암침법을 하나의 틀로 꿰는 강의였다. 특히 고전이 말한 천응혈(天應穴)이 오늘날의 근막통증유발점과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신 대목은, 옛 직관이 현대 해부학의 언어로도 설명될 수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이어진 여성질환 침구 치료에서는 포문(胞門)·부인문(婦人門)의 관점에서 월경부조를 조혈(調血)로 풀고, 월경의 색과 형태로 몸의 상태를 읽어내는 변증 체계가 소개되어 평소 부인과에서 배우던 내용을 침의 언어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근거를 이해하면 술기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말이 강의 전체를 관통했다. 오후 첫 강의에서 임상약침학회 성혜령 원장님은 미용약침을 활용한 피부·탈모·다이어트 치료를 소개하셨다. 연어와 송어의 정소에서 얻은 성분이 손상된 조직의 재생을 돕는다는 출발점부터, 피부 재상을 위한 미주안약침과 지방 분해를 겨냥한 리포컷약침까지, 본초의 성분을 현대 약리의 언어로 풀어내며 약침이 재생과 대사라는 임상의 수요에 정교하게 응답하는 모습을 보았다. 피부와 모발, 체형처럼 여성의 삶의 질과 직접 맞닿은 영역까지 한의학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사실은 여성 건강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층 넓혀 주었다. 이날의 마지막은 척추신경추나의학회 기성훈 원장님의 부인과 추나요법이었다. 손으로 내부 장기를 직접 다루는 내장기 추나는 장기의 가동성과 고유운동성을 회복시켜 순환과 자연 치유력을 끌어올리는 치료로, 진단은 익숙한 복모혈·배수혈에서 출발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해부학과 발생학을 손끝으로 옮겨 오는 관점이었다. 자궁천골인대·원인대·광인대가 자궁과 난소의 위치를 지배한다는 점, 발생 초기 흉강과 골반강이 접히며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슬러 골반강을 준비시킨다는 설명 앞에서, 책에서 외우던 인대와 발생 과정이 손끝에서 살아 움직이는 도구가 되는 순간을 보았다. 시연은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조직이 스스로 풀리기를 기다리는 방식이어서 내가 알던 추나와는 또 다른 결이었다. 손끝에 느껴지는 치료적 박동을 기준으로 시술을 마무리한다는 설명은, 추나가 결국 손으로 몸을 읽어 가는 과정임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제왕절개 흉터가 생식기 통증으로 이어진 환자, 골반과 내장기의 긴장을 정리하자 임신에 이른 난임 환자의 증례는 추나가 여성 건강에서 가질 수 있는 폭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무엇보다 측와위처럼 서로 민망하지 않은 자세를 택한 구성에서, 기법의 효과만큼이나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치료의 일부임을 배웠다. 네 강의를 모두 듣고 나니, 서로 다른 네 분야가 결국 한 사람의 여성을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하나의 그림으로 이어졌다. 스포츠한의학은 에너지와 회복으로, 침은 원리와 변증으로, 약침은 재생과 대사로, 추나는 구조와 손끝의 감각으로 같은 몸을 저마다의 언어로 읽어내고 있었다. 여성의 부름에 답하는 길은 한 가지 치료법이 아니라, 여성의 몸을 고유한 텍스트로 읽어내려는 네 갈래의 접근이 만나는 자리에 있었다. 이처럼 각 학회가 임상에서 쌓아 온 지견을 한 주제로 모아 학생과 회원에게 여는 학술 교류는, 한의계가 함께 키워 가는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나학회가 서포터즈 제도를 통해 학생에게 임상 현장의 추나를 직접 잇는 통로를 열어 준 것도 그런 배움의 한 갈래였고, 학기 중 단편적으로 익히던 기법들이 발생학과 인대 생체역학이라는 하나의 틀로 꿰어지는 경험은 추나를 동작의 모음이 아니라 몸을 읽는 언어로 이해하게 해 주었다. 그 배움을 가까이에서 마주한 사람으로서, 이를 동료 학생들과 나누고 임상 현장으로 이어가는 일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본과3학년으로서 이번 세미나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을 넘어 앞으로 어떤 한의사가 되고 싶은지를 다시 그려보게 한 시간이었다. 좋은 강의를 준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330)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의신문] 염태환 교수(1933〜2024)는 경희대 한의대 교수로서 시내한방병원장을 역임한 한의학자이다. 저술로는 『현대한방강좌』, 『동의처방대전』, 『동의사상처방집』 등이 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L.A 사우스베일러 한의대 학장, 뉴욕한의사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1979년 염태환 교수는 『현대한방총론』이라는 책을 저술한다. 이 책은 Ⅰ. 총론편 Ⅱ. 通則篇 Ⅲ. 약물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Ⅰ의 총론편은, 1. 서론 2. 한방의학의 변천 3. 한방의학의 병리사상 4. 한방진찰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2. 한방의학의 변천’은 한·중·일 삼국의 전통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정리하고 있다. 중국의 전통의학에서 중요 의서로 『황제내경』, 『상한론』, 『신농본초경』, 『제병원후론』, 『천금요방』, 『천금익방』, 『외대비요』, 『화제국방』과 주요 의가로 금원사대가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명대, 청대, 근대 이후 중의학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일본의 한방의학에 대해선 초창기 한국 한의학의 일본 전래부터 후세파와 후세별파의 대두, 고방파와 절충파, 고증학파의 형성과 발전, 근현대 이후 한의학의 쇠망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한국 한의학에 대해서는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 사상의학의 대두, 일제강점기 한의학의 쇠퇴, 해방 이후 한의학, 체질침의 출현 등의 순서로 서술하고 있다. 그는 특별히 조선시대의 三大醫書로 『醫方類聚』, 『鄕藥集成方』, 『東醫寶鑑』을 꼽고 있다. 그가 꼽는 삼대의서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 〇 『의방유취』: 세종 27년(1445년)에 완성, 당시 집현전학사 등 수인의 손에 의하여 3년간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인용서목 153부, 분류항목 95문, 266권, 264책(현재 일본 궁내성 도서료에 250권 252책이 소장되고 있음)으로 당시 의학의 총집성이라고 볼 수 있다. 본서는 당송원과 명초에 걸쳐 150부의 의서를 舊文대로 개정치 않고 각병문에다 유취한 것이다. 〇 『향약집성방』: 세종 때에 완성한 것으로 권채, 유효통, 노중례 등의 공저로서 85권 30책으로 되어 있고, 특히 본서의 권77로부터 권85까지의 鄕藥本草에는 本草物名에 한글로 우리나라 鄕名을 각각 倂記하였다. 〇 『동의보감』: 광해군 3년(1610년) 허준의 成書로 25권 25책으로 되어 있다. 동의보감은 주로 의학입문, 단계심법, 의학정전, 만병회춘, 고금의감, 득효방, 성제총록, 동인경, 의방유취, 직지방, 동원십서, 본초, 내경 등 의약학 제서에 걸쳐 널리 인용하여 『의방유취』의 호번함을 간요하게 정비하므로서 한국은 물론 현대의 중국에서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 조선의 삼대의서 이외의 기타 의서로 그는 『제중신편』, 『방약합편』 등을 중요 의서로 꼽았다. 또한 사상의학의 發祥을 중요한 역사적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이어진 한의학의 쇠퇴의 원인은 조선총독부의 치우친 정책이 원인이며 이 시기 조헌영의 『통속한의학원론』, 의학박사 강필모의 한의학 연구 등이 한의학 부흥에 이바지했다고 주장한다. 해방 이후의 한의학은 한의사제도의 부활과 한의과대학의 설립 등으로 부흥되는 기간으로 보았다. 그가 『의방유취』, 『향약집성방』, 『동의보감』을 삼대의서로 명명한 것은 한국 한의학의 역사적 도약에 기여한 세 의서의 결정적 역할 때문이다. 앞선 『의방유취』와 『향약집성방』이 지식의 축적을 통해 『동의보감』을 가능하게 한 자양분이었다면, 이를 이어받은 『동의보감』은 이후 한국 한의학의 독자적 정체성을 구축하고 발전시킨 핵심 학문 동력이었다. -
국경을 넘어 마주한 통합돌봄과 한의학의 미래장진용 원장(시흥시 재택의료센터 대표·사랑한의원) 지난 2025년 2월, 시흥시한의사회 학술이사라는 직책을 맡으며 다짐한 것이 있었다. 단순히 관례적인 학술행사나 보수교육을 주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분회라는 작은 단위에서도 주도적이고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었다. 당시 필자에게는 두 가지 가슴 벅찬 꿈이 있었다. 첫째는 2029년 개원 예정인 배곧서울대병원의 공공기능 컨트롤 타워기능 구성, 둘째는 임기 내에 국제학술교류를 성사시켜 지역 분회 차원에서도 글로벌 학술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2026년 3월, 대한민국이 본격적인 ‘통합돌봄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시흥시 역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고있다. 이 시점에서 배곧서울대병원이 단순 진료 중심의국립병원을 넘어, 통합돌봄의 컨트롤타워로서 공공의료기능을 강화한다면 ‘시흥형 통합돌봄 모델’ 구축에 거대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국제학술교류 또한 시흥시와 우호협력을 맺은 해외 도시들을 중심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마침 일본 도쿄도 하치오지시(八王子市)가 2026년 11월부로 시흥시와 우호협력 20주년을 맞이하는 상징적인 해였기에, 관내 ‘후쿠다 의원’과의 교류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했다. 비록 여러 현실적인 제약으로 임기 내에 전사적인 사업으로 꽃 피우지는 못했고 짧은 임기를 마무리해야 했지만, 필자의 열정마저 접을 수는 없었다. 2025년 3월,개인적인 노력으로 후쿠다 의원의 후쿠다 원장과 1시간동안 화상통화를 하며 양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깊이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의사가 양약과 한약을 단독 혹은병행 처방할 수 있는 일본의 일원화된 시스템은, 환자의편익 측면에서 매우 합리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후 시흥시의 돌봄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재택의료와 방문진료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고, 한의재택의료학회에도 가입했다. 마침내 2026년 3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시흥시 재택의료센터’로 지정받는 결실을 봤다. 비록시작 단계지만 재택의료센터로서의 온전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차근차근 발판을 다져가던 중, 후쿠다 원장과의 지속적인 교류가 계기가 돼 마침내 올해 6월, 하치오지시의 선진 통합돌봄 시스템을 직접 확인하기 위한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하치오지시청 방문: 기우를 확신으로 바꾼 연대의 시간 6월3일, 하치오지시청으로 향하는 길은 설렘과 긴장 이 교차했다. 일개 지역 한의원 원장이 외국의 관공서를 공식 방문한다는 사실 자체가 생소했거니와, 일본어 소통이 가능하다 해도 심도 있는 의료정책 담론을 완벽히 이해할 수있을지, 또 그들이 이방인의 방문에 얼마나 진정성 있게 응해줄지 만감이 교차했다. 렌터카를 운전해 시청으로 향하는 1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으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시청 정문 현관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수십 분 전부터 필자를 기다리고 있던 시청 관계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경직된 공무원 사회를 예단했던 필자의 기우가 무색해질 만큼, 그들의 환대는 따뜻하고 정중했다. 정문을 지나 개호보험과를 거쳐 미팅룸에 들어서자 정성스레 준비된 자료들이 필자를 맞이했다. 당초 1시간으로 예정됐던 간담회는 뜨거운 열기 속에 1시간 반을 훌쩍넘겼다. 개호보험과와 건강의료정책과 공무원들은 하치오지시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재택의료 상담창구 운영’과 ‘재택의료 체제 정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시흥시와 하치오지시의 평행이론 두 도시는 인구와 면적이 유사할 뿐만 아니라, 방문진료를 하기엔 가옥들이 다소 분산돼 있는 지리적 구조까지 닮아 있어 깊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초고령사회를 한발 앞서 경험하고 있는 하치오지시의 선례는 향후 시흥시 통합돌봄의 미래에 훌륭한 나침반이 될 것이 분명했다. 특히 통합돌봄 체계 안에서 지자체가 최일선에 서서 의료기관, 방문간호 스테이션 등 다양한 자원을 총괄 지휘하는 행정적 리더십이 인상적이었다. 하치오지시 측 역시 시흥시의 현황에 대해 이미 철저한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그들의 질문은 송곳처럼 예리했다. 선정된 대상자들의 개인정보 관리 방식부터 시스템 열람 권한, 시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의 규모와 정산 방식 등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거주지중심의 노후 보장(AIP)과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실현하는 과정에서의 고충을 나눌 때는 국경을 초월한 유대감이 형성되기도 했다. 재택의료 현장에서의 한방치료 사례와 더불어, 한국에는 없는 케어매니저(Care Manager)와 사회복지사의 유기적인 역할 분담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대화가 이어졌다. 활기차고 즐겁게 일하며 하치오지시 통합돌봄의 희망찬 미래를 보여준 공무원들의 미소를 보며, ‘이 지역 시민들은 참 복이 많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
신미숙 여의도 책방-77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정치 입문의 계기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정치인들의 상당수는 “그것은 운명이었다!”라고 대답한다. 첫눈에 반했다는 연인들 또한 “운명이라는 것 이외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어요!”라며 그들의 첫 만남을 아름답게 회상하기도 한다. 사주, 명리, 역학, 신점, 손금, 주역, 점괘, 법사, 도사, 무당, 굿, 주술, 신당 등등 험한 것에서부터 묘한 것까지 정통이든 사술이든 용하다고 소문난 자들의 소문은 도통 끝이 없어 보인다. 강남 점집은 강남이라 신뢰가 가고, 사람이 기거하는 곳인가 싶을 정도의 낙후된 곳의 점집은 그 장소의 희소성 때문에 또 다른 차원에서의 믿음을 부여받는다. 과한 화장의 성형 미인 도사님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으면 저렇게 돈으로 얼굴을 새로 빚으셨나 싶고, 방금 전 눈꼽을 뗀 듯한 수수한 행색의 보살님은 얼마나 자신 있으면 이렇게 갓 세수만 한 얼굴로 내담자들을 만나시는 겐가 싶다. 나의 전생을 읽어준다는, 그리고 나의 미래를 점쳐준다는 이쪽 업계의 특징은 이토록 오묘하고 복잡하다. 인턴시절 병동에 입원한 중풍환자 한 분이 떠오른다. 오래 전 일이라 이젠 그 분이 할머니였는지 할아버지였는지도 살짝 헷갈린다. 점쟁이 골목에서 나름 이름 좀 날리던 용한 분이라는 것과 입원 기간 내내 가끔 문병 오던 분들이 가족이 아닌 이 분께 신점을 보던 손님들이라는 것이 이 분에 관련된 인계사항이었다. 뇌경색 후유로 인하여 오른쪽 팔다리는 움직임이 둔하였지만 다행히 언어능력은 풀 가동 중이라 사주명리가 아닌 신점이 시그니쳐였던 그 어르신은 심신이 살짝 허약해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기(氣)가 동(動)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시곤 가던 이를 갑자기 불러세워 몇 마디씩 해 주신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분 옆자리 환자분이 내 환자여서 그 병실을 자주 들락날락 했었다. 어느 새벽 내 환자분 상태를 체크하고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니 거기 서봐라, 저 종종 걸음, 저 급한 걸음. 내 누군지 안다. 니는 평생 그리 여그저그 뛰 댕김서 일할끼다. 멈출 일 없데이. 누구 덕 보고 못 산다. 니가 움직여서 벌어야 한데이. 늙어서도 일 하니까네 놀 생각 말레이.” 잠도 못 자고 날마다 선배들에게 깨지던 인턴 시절이었기에 쉬지 않고 계속 일한다는 점괘에 하마터면 울 뻔했다. 그 어르신은 돌아서는 내 등 뒤로 “월매나 좋아! 늙도록 일한다는데! 건강할끼고 계속 돈도 벌끼고 얼마나 좋아!” 이번에는 잠꼬대처럼 웅얼대셨다.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용한(?) 어르신 환자분의 신점 풀이! 수련의 시절부터 국회 공무원까지 봉직의만 27년을 하고 있는 나의 운명을 그 점괘에 맞추어보니 ‘잘 나가는 개원의들 10년이면 벌 돈을 30∼40년에 나눠서 벌라는 말이었나?’ 싶다. 내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데에서 행복이 시작됨을 알기에 6월 어느 날, 나의 52번째 생일을 보내며 하나의 질문을 건네본다. “내게 주어진 운명을 잘 사용하고 있는 거 맞지?”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 (고미숙, 북드라망, 2022년 9월) - 의역학은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는 도교에 해당한다. 동양사상의 또 다른 원천인 유교와 불교 역시 우주론은 동일하다. - 음양오행이라는 인식의 프레임으로 생리와 병리에 접근하면 의학이 된다. 사주구성에 따라 어떤 병을 어떻게 앓게 될지 그 경로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 팔자는 내 안의 우주다. 고로 팔자의 운동 역시 우주의 원리를 고스란히 따른다. 리듬과 강밀도를 중심으로 재배열 되는 것이다. - 팔자에는 주객이 없다. 누가 나에게 부과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지만 그것 역시 어떤 노력과 훈련의 결과일 것이다. 『오십에 읽는 주역』(강기진, 유노북스, 2023년 10월) - 운은 예정된 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의미를 글자에 담고 있다. 운이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예정대로 달성하는 힘을 말한다. - 나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천명을 부여받고 태어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의 팔자는 대체 불가능한 신성한 것이다. - 자신에게 부여된 ‘괘’와 인생길에서 마주치는 ‘연’, 이 둘을 합친 것이 사람의 팔자를 이룬다. 『팔자를 고치다』(조용헌, 삼인, 2025년 9월) - 명당과 길지는 인간의 힘을 통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스스로 탄생해 존재해 왔다. 다만 그 기운을 얻거나 빌려 쓰고자 한다면 적합한 적선을 베풀어야 한다. - 시간과 공간과 인간. 사람의 인생은 이 3가지 사이를 헤매고 다니다가 마치게 된다. 풍수의 관점에서는 공간이 가장 중요하다. - 누구나 운이 찾아올 때가 있다. 운이 안 오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운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운을 흘려보내는 사람은 또 어떤 사람인가? 『내 인생의 운명을 바꾸는 자신감 철학』 (샤를 페팽, 아이템하우스, 2025년 10월) -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판단의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 중요한 것은 누구도 나를 대신해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마침내 자유로워질 수 있다. - 오늘날 우리는 타인과 스스로를 비교할 기회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감을 가지는 데 가장 치명적인 독이나 다름 없다. 『말은 운명을 데려온다』 (이하영, 토네이도, 2026년 6월) - 말은 현실을 설계하는 힘이다. 그 시작점에는 언제나 자신만의 문장이 있다. - 우리는 지금 현실이라는 꿈을 꾸고 있다. 눈은 떠 있고 감각은 깨어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꿈꾸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 삶은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선택된 자리로 자연스럽게 바닥을 기울여 우리를 이끄는 것이다. -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와 지금의 나라는 모습은 오래 전 내가 나 자신에게 건네던 말들의 파동 위에 세워진 것이다. 동아리든 스터디든 그 어떤 통로로도 그다지 친분이 없었던 학부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6월에 국회에서 한 번 보기로 했다. 시간을 헤아려 보니 거의 27년만에 만나는 셈이다. 약속한 그 날,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나누며 긴 시간의 간격을 빠르게 채워 나갔다. 어색함은 1도 없었다. 동문의 힘이자 50대 아줌마들의 초능력이기도 하다. 10년간의 경력단절이 있었고 단독 개원 후 아직 1년이 안 된 상태라고 했다. 오랜만에 개원가로 복귀해보니 그간 한의계가 많이 변해있어서 놀라고 있지만 소속되어 있는 학회의 공부와 그간의 임상 경험으로 잘 버텨나가고 있다고 했다. 학회 차원에서 학부생들이나 현역 한의사들과의 학술적 교류도 체계적으로 늘려가고 싶다는 멋진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의 눈빛에서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한의학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무척 반가웠고 직접 찾아와준 그 성의가 고마웠다. 학력고사 전기 낙방 후 재수가 싫어 후기로 한의대에 입학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한의사라는 직업을 꿈꾼 적은 없었다. 『오십에 읽는 주역』에서 “오십이라면 응당 자신의 팔자를 넘어서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문장을 읽었다. “내가 젤 잘 나가”류의 그룹에 속해있는 자들을 집중적으로 만나는 공간에서 근무하다보니 자칫 넋을 놓고 나를 잃고 바깥을 자주 응시하게 된다. 그 응시는 사유가 아닌 구경일 때가 많았다. 바쁜 와중에도 문득문득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어서 와, 환갑은 처음이지?”라며 몇 년 후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말을 건네는 그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걷고 있는 모든 길을 다시 한 번 ‘운명적 사건’으로 규정하고 이 운명의 본질을 직면하며 마주친 문제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체가 제언한 삶에 대한 태도, 아모르 파티(Amor Fati)의 정신으로! -
실전 한의 피부미용 치료 임상례김재돈 대한통합레이저의학회 교육부위원장 [편집자주] 최근 한의 임상가에 레이저 등을 활용한 피부미용 치료가 확산되면서 한의사 회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본란에서는 다양한 의료기기와 술기들을 활용한 우수한 임상사례 공유를 통해 한의 피부미용 치료의 효과에 대해 알리고자 한다. 문신 제거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기기들은 피코웨이, 피코슈어프로, 프락셔널 CO2 레이저이며, 간혹 Er:YAG 레이저도 사용한다. Er:YAG 레이저는 문신을 지우다가 깊게 들어갔을 때 깎고 들어가는 용도로 활용된다. 문신 제거 기법은 R5, 프랙타트를 많이 사용하는데, R0를 사용해도 2번까지만 한다. ‘Rn’이란 n분 뒤에 시술을 한다는 의미로, 프랙타트는 5분 뒤에 하지 않지만 피코 프락셔널로 미리 시술하고 본 샷이 들어가는 것이다. R0는 기포를 없애는 용액을 바르고 바로 다시 들어가는 시술을 말한다. 문신 제거 시에 중요한 것은 흑백 문신에서 잉크량을 계산하여 출력을 정하는 것이며, 컬러 문신에선 알러지 반응 테스트를 해야 한다. 특히 붉은색에 있어서 중요하며, 문신 제거 후에 전신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문신 제거 시 전처리는 크림 마취를 하고 있고, 고통을 많이 느끼면 질소 마취도 시행하고 있다. 아이라인 문신을 지울 때는 아이쉴더를 끼우고 있다. 기본적인 후처리는 쿨링으로, 쿨링 후에 연고(히드로코르티손 혹은 자연재생고)를 사용하고 있다. 문신 제거 횟수는 잉크량과 잉크 깊이에 따라 결정한다. Kirby-Desai Scale 척도가 있는데 오래되기도 했고, 실제로 해보면 잉크량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실제 임상에서 잉크량은 색의 두께감을 보고 판단하는 편이며, 깊이의 경우에는 문신의 모양이 번지거나 흉이 심하면 판단하는데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치료 계획은 일단 기간을 넉넉하게 잡고 있다. 한번 지워보고 정확한 시술 횟수를 안내해 주겠다고 고지하는 편이다. 이 정도 속도로 지워지면 이렇게 될 것 같다고 미리 말해주고, PIH도 미리 말해주고 있다. 치료 과정 시 너무 욕심내서 에너지를 세게 하면 화상 및 흉터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때문에 환자에게 상세하게 말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 간지럽고 알러지처럼 올라온다고 고지하고, 표피가 떨어지기도 하고 간지러움증도 심해지는데, 그때 보습을 잘하라고 꼭 티칭해야 한다. 환자 진단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초진 시의 문진으로, △흉터가 있는가? △커버업을 했는가? △흉터가 원래 있었는가? △컬러가 있었는가? △만져봤을 때 흉터가 있는가? △새기고 나서 간지러웠는가? 등과 같은 6가지 사항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이중 ‘새기고 나서 간지러웠는가?’의 경우에는 문신 제거를 하고 알러지 반응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알러지약을 처방하거나 (한방병원의 경우)지르텍을 사서 복용하라고 티칭해야 한다. 이와 함께 실제로 화상 물집이 잡힌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병원으로 내원하세요” 또는 “니들로 뚫은 후 멸균 거즈로 막으세요”라고 티칭해야 한다. 순간적으로 열이 수축하면서 삼투 현상으로 물이 생기고 물집이 잡히는 것이라, 이후에는 잘 지워진다. PIH가 발생했을 때는 문신 제거로 인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문신 시에 생긴 흉터들이기 때문에, 지울 때에는 “6개월에서 1년 정도 흉터 사라지는데 시간이 걸립니다”라고 환자에게 잘 알려줘야 한다. 환자 내원 간격은 최소 8주로 잡는 편이다. 이유는, 문신 제거로 몸의 찌꺼기를 부수고 몸의 세포들이 치워야 하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기간보다 짧아지면 문신 제거의 효과를 그리 크게 보지 못한다. 사례 1. 9회시술 잉크량이 매우 많은 사례다. 잉크량이 많으면 5회차 시술까지는 지워지는 것이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잉크량이 줄어도 빽빽해서 아직 안 지워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환자에게도 이렇게 두꺼우면 초반에는 티가 안 날 수 있다고 사전에 알려줘야 한다. 대부분 잉크량이 많으면 처음에 세게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잉크량이 많으면 오히려 출력을 낮춰야 한다. 잉크량이 많은 곳에 세게 때리면 더 큰 충격이 발생하기 때문에 정말 위험할 수 있으며, 흉터도 생길 수 있다. 이 사례는 초반에 출력이 적게 들어간 경우다. 문신의 옅어짐이 6회차부터 육안으로 보이고, 9회차부터 차도가 확실하게 보였다. 이런 환자들은 통증이 심한 편이다. 사례 2. 1회 시술 755nm로 시술한 사례다. 먹물로 문신을 새기신 환자로, 여관방 문신이라고도 하는데, 바늘에 명주실을 꽂고 먹물로 문신을 살에 새기는 방식이기 때문에 흉터가 생길 수밖에 없다. 먹물이 검은색이지만 마르면 푸른색으로 변하는데, 755nm를 사용하면 좋다. 자연색이라 잉크의 질감이 약하며, 합성 잉크가 아니라서 레이저로 충격을 주면 잘 부서지는 편이다. 환자에게 빠르게 잘 지워지지만, 흉터는 남을 수 있다고 반드시 공지해야 한다. 사례 3. 나비는 5회 이후 PIH제거 6개월 이 경우는 PIH가 자연스럽게 지워지는 것이 찍힌 환자의 사례다. 두 번째 사진이 시술 종결 시점이며, 마지막 사진이 6개월 뒤에 찍은 사진이다. 지워진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시술을 한 번 더 해보는 것이다. 환자가 레이저 시술을 받을 때 통증이 없거나 소리가 잘 안 난다면 잉크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사례 4. 6회. PIH 4개월 이 사례는 잘 지워질 것이라고 예상된 환자분이었다. 파인아트는 문신을 수채화처럼 그리는 기법인데, 얕고 잉크량이 적은 편이다. 이런 문신은 잘 지워진다고 말해줄 수 있다. 주의할 점은 흰색 잉크가 있을 때 잘 안 지워진다고 말해야 한다. 피부가 어지간히 검은 사람이 아니면 티는 잘 나지 않지만, 그래도 환자에게 한번은 고지해야 한다. -
AI시대, 한의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한상윤 원광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의학교육학회 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원광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른 전공의 교수님들과 담소를 나누던 시간, 우연히 AI가 대화의 주제가 됐다. 사회의 많은 분야를 인공지능이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뤘다. 한의학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게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수님이 계셨다. “교수님, AI가 이렇게 발전하면 나중에 한의사는 무엇을 하게 될까요?” 잠시 웃으며 대답을 미뤘지만, 그 질문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사실 그것은 한 사람의 궁금증이 아니라, 지금 한의학 교육이 마주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AI가 무엇을 대체할 것인가”를 묻곤 한다. 그러나 교육자의 자리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AI가 보편화될수록, 사람인 한의사에게 오히려 더 중요해지는 능력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일 것이다. AI가 정교해질수록, 임상추론 능력 중요 암기한 지식의 양이나 정보를 빠르게 찾는 능력은 점차 그 가치가 줄어들 것이다. 대신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 AI가 제시한 결과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능력, 그리고 그 결과를 환자에게 책임 있게 적용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정보 탐색이 기계의 몫으로 넘어갈수록, 기계가 끝내 대신할 수 없는 역량의 가치는 오히려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임상추론, 관계, 그리고 해석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생각해보았다. 첫째는 임상추론(clinical reasoning)이다. 최근 의학교육에서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보다 임상추론 능력을 핵심 역량으로 강조하고 있다. 진단은 정답을 맞히는 과정이 아니라 제한된 정보 속에서 가능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며 가장 타당한 판단에 도달하는 과정인데, AI는 답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 답에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미래의 한의사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는 것’이며,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때로는 인공지능이 제시한 그럴듯한 답을 의심하고 수정하거나 뒤집을 줄도 알아야 한다. AI를 활용할 때 경계해야 할 것은 학생이 사고의 과정을 통째로 AI에 위임한 채 결론만 받아 적는 습관에 길들여지는 일이다. 스스로 추론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AI의 오류조차 발견하기 어렵다. AI가 정교해질수록, 그 출력을 검증하고 환자에게 책임 있게 적용하는 임상추론 능력은 더욱 결정적인 역량이 될 것이다. 둘째는 관계다. 진료실에서 일어나는 치유는 처방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했다고 느끼고, “이 사람이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신뢰를 가질 때 더 높은 수준의 치료가 이루어질 것이다. 치료적 관계 자체가 하나의 처방인 셈이다. 인간적 역량과 AI 리터러시는 상호 보완 개념 한의학은 오래전부터 환자를 질병의 집합이 아니라 삶의 맥락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아 왔다. 환자의 몸과 마음, 생활환경과 정서적 상태를 함께 살피려는 시도는 한의학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이런 점에서 치료적 관계는 단순한 친절이나 서비스의 문제가 아니다. 환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은 진단과 치료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얻는 과정이기도 하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불안에 떠는 환자의 표정을 읽거나, 말 사이에 숨어 있는 두려움을 알아채거나, 침묵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공감과 의사소통, 전문직업성과 윤리는 AI 시대에 부차적인 덕목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중요해지는 핵심 역량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신뢰야말로, 환자가 다시 한 사람의 한의사를 찾게 만드는 이유가 될 것이다. 셋째는 해석이다. 환자가 “요즘 기운이 없다”고 말할 때, 그것이 단순한 피로인지, 우울의 신호인지, 기허(氣虛)의 표현인지를 가려내는 일은 단순한 데이터 분석이 아니다. 그것은 의미를 읽어 내는 작업이다. AI는 데이터를 정보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보를 ‘바로 이 환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이해로 끌어올리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한의학이 오랫동안 축적해 온 통합적 사고와 맥락적 이해는 바로 이러한 해석 능력과 맞닿아 있다. 데이터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의미를 읽어 내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 역량이 중요하다는 말이, 한의사가 AI에 무지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생성형 AI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적절한 질문을 설계하며, 그 결과의 신뢰성을 검증하고, 의료 AI를 둘러싼 윤리적 문제를 판단할 수 있는 AI 리터러시는 이제 필수 역량이 되었다. 인간적 역량과 AI 리터러시는 서로 경쟁하는 개념이 아니라 미래형 한의사를 움직이는 두 개의 바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AI가 한의사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는 것이 아니라, AI를 잘 활용하는 한의사가 그렇지 못한 한의사를 대체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량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을까. 미래의 한의사를 양성해야 하는 교육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 AI 튜터는 학생 개인의 수준에 맞춘 맞춤형 학습을 가능하게 하고, AI 환자는 표준화 환자 운영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AI 기반 피드백과 AI를 활용한 임상술기평가는 부족한 실습 기회를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한의학 지식의 구조화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변증 체계의 표준화, 임상 데이터의 구조화, 교육 콘텐츠의 체계적 정리는 AI 시대 한의학교육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학습성과를 명확히 하고, 교육 자료와 평가 결과를 축적·분석하며, 핵심 역량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우리는 AI를 한의학에 적용할 것인가? ‘우리는 AI를 한의학에 적용할 것인가, 아니면 한의학적 사고를 AI에 반영할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물음도 남는다. 전자는 새로운 도구를 활용하는 문제라 할 수 있는데, 현재까지의 논의는 전자에 치우쳐 진행돼 온 듯하다. 이제는 한의학의 정체성과 관련된 후자의 질문을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 생각한다. 변증과 통합적 사고라는 한의학 고유의 추론 방식을 AI 속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결국 AI 시대에 한의학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 AI 시대 한의학 교육의 목표는 AI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있지 않다. AI와 협력하여 더 나은 진료를 수행하고, AI를 올바르게 활용하면서도 한의학의 전문성과 인간적 가치를 함께 지킬 수 있는 미래형 한의사를 양성하는 데 있다. 바로 AI와 경쟁하여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끝내 해내지 못하는 일을 더 깊고, 사람답게 해내는 사람일 것이다. -
도파민 중독배용원 대표변호사 •법률사무소 동촌(東村) •前 청주지검장 •대한한의사협회 자문변호사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부터 집어 듭니다. 뉴스와 SNS를 훑어본 뒤에야 침대에서 일어납니다. 출근길에도, 식사 중에도,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스마트폰이 손에 들려 있습니다. 수시로 쇼츠나 릴스 영상을 찾고, 30초마다 뉴스를 검색하며, 습관처럼 주식 시세창을 열어봅니다. 진득하게 책 읽기가 힘들고, 일기도 서너 줄 이상 쓰기 어렵습니다. 눈은 뻑뻑하고, 기억력은 예전 같지 않고, 집중력도 떨어집니다. 머릿속은 늘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합니다. 누구의 이야기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들 대부분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흔히 ‘도파민 중독’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과학적으로 엄밀히 말하면 도파민이라는 물질 자체에 중독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도파민은 의욕과 동기, 학습과 보상 경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도파민 분비를 유발하는 특정 행동과 환경에 점점 더 예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보다 당장의 즐거움을 선택 SNS, 숏폼, 모바일 게임, 끊임없이 울리는 각종 알림은 모두 짧은 시간 안에 즉각적인 보상을 제공합니다. 우리의 뇌는 이런 반응에 반복적으로 노출될수록 더 강하고 빠른 자극을 원하게 됩니다. 예전에 충분한 만족감을 주던 자극이 어느 순간 시시해지고,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아 헤매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현대인 특유의 불안감도 작용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단절되거나 정보에서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스마트폰을 켜고 또 켭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을 것 같은 두려움에 끊임없이 정보를 검색합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불안을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자극을 찾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현상을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팝콘이 쉴 새 없이 터지듯 뇌가 강렬한 자극에만 반응하고, 독서나 대화, 사색처럼 느리고 깊은 활동에는 흥미를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문제는 도파민 중독이나 팝콘 브레인이 단순히 생활습관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지속적인 과잉 자극은 집중력과 기억력을 떨어뜨립니다. 한 가지 일에 오래 몰입하기 어려워지고, 긴 글을 읽거나 쓰는 일도 점점 힘들어집니다.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은 약해지고, 해야 할 일보다 당장의 즐거움을 선택하게 됩니다. 원하는 자극이 끊임없이 공급되지 않으면 불안과 초조, 무기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만성적인 미루기 습관은 더욱 심해집니다. 당연히 학업 성취도는 떨어지고 일의 생산성은 감소합니다. 가족간의 대화는 줄고 친구와의 관계도 느슨해집니다. 현실의 인간관계는 얕아지고, 사회적 고립감은 깊어집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뇌에도 휴식이 필요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직장에서는 ‘사이버 로핑(Cyberloafing)’이 만연해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고, 학생들의 도파민 중독은 미래 인적 자원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것입니다. 정신건강 문제는 의료비와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고, 심한 경우 사회적 갈등과 범죄라는 더 큰 비용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도파민 중독은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호주를 시작으로 세계 각국은 청소년 SNS 금지를 법제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영국의 스타머 총리는 “아동의 안전과 행복에 대해서는 타협할 수 없다”며 16세 미만의 SNS 이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연내에 의회에 제출하고 내년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규제 대상에는 엑스(X·옛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스냅챗, 유튜브 등이 포함된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도파민 디톡스(Dopamine Detox)’에 관심이 높습니다. 과도한 자극을 의도적으로 줄여 뇌의 보상체계를 다시 균형 있게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우선 기상 직후 1시간과 취침 전 1시간만이라도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할 것을 권장합니다. 침실에 스마트폰을 두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뇌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뇌에 쌓인 피로물질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깊은 수면이라고 합니다. 음악도 영상도 없이 걷기, 멍때리고 창밖 바라보기, 조용히 명상하기에 보내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고 과잉 자극에 지친 뇌를 회복시키는 치유의 과정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유튜브의 ‘시청 기록 사용 중지’ 기능을 설정해 두고 있습니다. 도파민 중독은 새로운 형태의 정신적 예속 도파민 중독은 어쩌면 현대인이 겪는 새로운 형태의 정신적 예속일지 모릅니다.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의 속박은 손 안의 작은 화면을 통해 스스로를 묶어두는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금연을 위해 금연침(針)이 등장한 것처럼, 머지않아 ‘도파민 디톡스 침(針)’이 등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여름에는 유명한 휴가지 대신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날 생각입니다. 종종 잊고 지내는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자신과 연결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
“몸을 잘 아는 선수가 오래 뛴다”…한의사, 학생선수 건강 지킨다[편집자주] 서울특별시한의사회가 서울특별시교육청과 함께 ‘2026학년도 찾아가는 전문 의료인’ 학생선수 부상 예방 및 도핑 방지 교육을 통해 학생선수들의 건강한 성장과 안전한 운동 환경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본란에서는 이번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이진아 아이누리한의원장으로부터 사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 및 사업을 통해 느낀 부분, 한의사 교의사업 발전을 위한 견해 등에 대해 들어봤다. Q. 이번 사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현재 잠실에서 소아청소년 진료를 하고 있고, 3년 전부터 서울시 학교 주치의로 활동하고 있다. 평소 진료실에서도 운동을 하는 학생들을 자주 만나는데, 성장기 학생선수들은 일반 학생들과는 다른 건강 관리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느껴왔다. 특히 최근 스포츠 현장에서 부상 예방뿐 아니라 도핑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매우 중요해지고 있지만, 학생선수들이 이에 대한 교육받을 기회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이번 사업은 학생선수들에게 꼭 필요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 Q. 학생선수라는 특성이 반영된 사업인 만큼 일반 학생에 대한 교육과는 차별화된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기존 일반 학생 대상 교육은 주로 성교육, 성장, 생활습관, 정신건강 등 폭넓은 주제를 다뤄왔다. 반면 학생선수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는 스포츠 현장과 연결된, 훨씬 구체적이고 실전적인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학생선수들은 경기력 향상에 대한 관심이 높고 신체 활동량도 많기 때문에 부상 예방이나 운동 후 회복, 도핑 예방과 같은 주제가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단순히 건강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실제 운동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사례 중심의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기존 교육과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Q. 실제 교육 현장에서 어떠한 부분에 중점을 뒀는지? “역삼초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초등학생 선수들이기 때문에 어렵고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실제 운동 과정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교육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먼저 부상 예방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다. △운동 전후 스트레칭의 중요성 △야구선수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어깨·팔꿈치 부상 △성장기 운동선수에게 필요한 회복 관리 등에 대해 설명하는 한편 테이핑 요법도 직접 실습해볼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이와 함께 도핑 예방 교육을 실시했다. 도핑을 프로선수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감기약이나 무심코 복용하는 보충제, 일반의약품도 도핑 검사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을 동영상을 활용해 쉽게 설명했다. 특히 기록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과 공정성이며, 다치지 않고 오래 운동하는 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Q. 교육 전후의 학생들이 변화된 부분이 있었는지? “교육 전에는 아이들이 아파도 감기약도 복용하면 안된다고 할 정도로 도핑에 대해 막연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교육이 진행되면서 “약을 먹기 전에 확인해야 한다”, “치료 목적으로 미리 허가를 받는 경우에는 금지약물 복용도 가능하다”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알아가며, 학생들의 인식 변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야구부 학생선수들의 경우 어깨나 팔꿈치의 부상을 경험한 선수들이 많았는데, 부상 역시 운동을 하다보면 당연히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아프다고 참고 운동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주며, “몸 상태를 잘 아는 선수가 좋은 선수이며, 오래 운동할 수 있는 선수”라는 생각의 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Q. 학생선수 대상 한의사 교의사업의 장점은? “한의사는 성장기 아동 청소년의 신체 발달과 건강 관리에 대한 이해가 깊고, 예방의학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가지고 있다. 특히 학생선수들은 경기력뿐 아니라 성장과 건강이 함께 고려돼야 할 시기다. 한의사는 단순히 부상이 발생한 이후의 치료뿐 아니라 생활습관, 수면, 영양, 회복 관리 등 전반적인 건강관리를 함께 지도할 수 있다. 더불어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과 직접 만나 교육함으로써 건강 문제를 조기에 예방하고 올바른 건강관리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 역시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Q. 앞으로 교의사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부분은? “학생선수 대상 교육은 일회성 교육을 넘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발전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학생뿐 아니라 지도자와 학부모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교육으로 확대된다면, 보다 효과적인 예방 교육이 가능해질 것이다. 아울러 교의 선생님들이 각 학교 종목 특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서울시한의사회에서 표준 교육 자료와 매뉴얼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업데이트해 나간다면 보다 내실 있는 사업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Q. 그 외 하고 싶은 말은? “야구부 학생 선수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아이들이 정말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열정이 부상이나 잘못된 정보로 꺾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이번 교육이 아이들에게 건강과 공정성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서울시한의사회 교의사업이 학생들의 건강한 성장을 지원하는 든든한 역할을 해나가기를 기대한다.” -
박순환 역사편찬위원장 “한의신문은 역사의 우물”[한의신문]대한한의사협회 가양동 시대의 막을 연 ‘한의사회관’. 회관의 개관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발자취를 꼼꼼하게 기록한 <대한한의사협회 회관건립사(2006년 刊)>와 113년이라는 협회의 어제와 오늘을 집대성한 <1898~2011 대한한의사협회사(2012년 刊)>. 이 두 권의 위대한 기록물 뒤에는 늘 박순환 위원장이 있었다. 박순환 원장(성남시 여래한의원/사진)은 대한한의사협회 회관건립사 발간 위원장과 역사편찬위원장을 각각 맡아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가 방대한 자료의 홍수 속에서 올바른 역사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사료(史料)의 탐색이 주효했고, 가치 있는 사료의 상당 부분은 <한의신문>에서 길러 냈다고 했다. 그에게 한의신문은 곧 역사의 우물이었다. 그로부터 한의신문과 함께했던 기록의 여정을 들어봤다. <회관건립사>와 <대한한의사협회사(이하 협회사)>가 발간된 지도 벌써 각각 20년과 14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렀다. 현재의 관점으로 그 두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던 소회를 물었다. “지나고 보니 참 감개무량하다. 신축 한의사회관 건립은 전 회원의 염원이 깃든 역사적 대사(大事)였고, 협회사(協會史)를 새롭게 정리하는 과업은 한의학의 뿌리를 제대로 찾기 위한 험난한 탐험 같았다. 방대한 역사의 기록을 묶어 책으로 펴내는 일은 후대를 위한 사명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다시 생각해도 두 권의 책을 발간할 당시의 벅찬 감동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대한한의사협회사 역사편찬위원회 회의> 그는 또 <회관건립사> 발간위원들과 <협회사> 편찬위원들의 아낌없는 협력에 대해서도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회관건립사 발간 소위원회의 이수완·이종안·위성현·정기영·하재규 위원과 협회사 역사편찬위원회 김남일·박왕용 부위원장을 비롯한 안상우·김선제·이종안·위성현·김은기·강연석·정기영·하재규 위원 등 많은 분들의 열정 덕분에 내게 부여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기록의 부재와 기록의 파편화 두 권의 책을 발간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어떤 자료는 너무 방대했고, 또 어떤 자료는 매우 부재했다. 이에 더해 각각의 자료들 대부분이 파편화돼 있어 어디서, 무엇부터 정리할지가 무척 막막했다. “책을 펴낸 분들은 알 것이다. 에세이를 펴내고자 하면 대주제와 소주제를 분리해 살을 붙여 나가면 되지만, 역사책은 그럴 수 없다. 분명한 사실에 근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가장 큰 어려움은 ‘기록의 부재’와 ‘기록의 파편화’였다.” 기록물이 아닌 말로 풀어낸 증언들은 편향과 왜곡되기 쉬웠고, 개인들이 소장한 자료는 마치 숨바꼭질하듯 쉽게 찾아 낼 수가 없었다. <회관건립사>는 치열했던 건립 회의 과정, 기금 모금 현황, 시공사의 역할 등 세세한 타임라인의 정확한 고증이 필요했고, <협회사>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고증할 수 있는 확실한 자료가 뒷받침돼야만 했다. “그때 매우 큰 도움을 준 게 ‘한의신문’이었다. 한의신문의 기록은 그 자체가 한의계 역사의 타임머신이자 깊은 우물과도 같았다. 그곳서 물을 길러오듯 필요한 자료를 건져 올리면 됐다. 기억의 한계에 부딪히거나 자료의 공백으로 골머리를 앓을 때마다 한의신문의 옛 기록들은 명쾌한 내비게이션이 돼 주었다.” <대한한의사협회사와 회관건립사> 그는 <회관건립사>를 집필하면서 한의신문 기사 중 회관 건립 기금 모금에 동참한 회원들의 명단과 그에 얽힌 미담 인터뷰들을 십분 활용했고, <협회사>를 만들 때는 <대한한의사협회 사십년사(1989년 刊·편찬위원장 한대희)>의 기록과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지루하게 이어졌던 한약분쟁사를 비롯해 한의계 질곡의 세월을 낱낱이 기록한 한의신문의 옛 기록들을 활용해 새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객관적 사료는 사명을 완수하게 한 고마운 대상" “한의신문의 기록은 가장 신뢰할 만한 1차 사료였다. 1994년 4월27일 회관이전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한 때부터 시작해 성금모금, 부지매입, 시공과 완공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이 꼼꼼하게 기록돼 있었고, 정부 정책의 변화에 따른 한의사들의 투쟁 역사가 실시간으로 기록돼 있었던 덕분에 두 권의 책이 객관성과 신뢰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회관건립사 발간위원과 협회사 역사편찬위원들의 헌신, 그리고 한의신문을 비롯한 각종 객관적 사료는 그의 사명을 완수케 한 고마운 대상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못내 아쉬워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협회사>를 힘들게 발간해 놓고도 공개적인 출판기념회조차 갖지 못했던 점이다. “<협회사>가 완성됐던 2012년 당시 회원들의 관심사는 온통 천연물신약 백지화에 쏠려 있었다. 투쟁은 투쟁대로 하되 이 건은 별개로 봐주길 기대했다. 한의학이 외세(外勢)에 밀려 온갖 역경을 겪으면서도 발전을 거듭한 113년의 협회 역사를 널리 알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고 싶었다. 하지만 출판기념회는 당시 중앙비대위와 시각이 달라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일지만 그 역시 우리 한의계 역사의 일부이다.” <대한의사총합소 제2대 이학호 회장 묘소> 그는 <협회사>를 저술할 때 특히 기억나는 점으로 1898년 10월 결성된 대한의사총합소(大韓醫士總合所)가 대한한의사협회(大韓韓醫師協會)의 모체란 사실을 확인하고, 초대회장 최규헌(崔奎憲/의생면허 97번)과 제2대 회장 이학호(李鶴浩/의생면허 113번)의 공로가 대단했다는 것과 그분들의 흔적을 찾아 나선 것을 꼽았다. “두 분의 업적은 찬연(燦然)한데 사후(死後) 행적이 묘연(杳然)했다. 최 회장은 각종 기록을 검토하고 문중에게도 문의했지마 유감스럽게도 마지막 연고지를 찾을 수 없었다. 이 회장은 수소문 끝에 증조부가 한국천주교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李承薰/베드로;1756~1801)이란 사실을 <평창이씨 익평공파> 문중에서 알아냈고 어렵사리 증손자인 이대균(李大均/경기산본 거주)씨를 만났다. 그를 통해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산 177번지 <평창이씨 익평공파> 선산(先山)과 이학호 회장의 산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역사는 기록을 남기고, 기록은 역사를 증명" 그는 요즘 들어 <회관건립사>와 <협회사>를 가끔씩 펼쳐 보곤 한단다. “그럴 때마다 한의사협회와 한의학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 선후배 동료들이 참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느낀다. 두 권의 기록물에서 한의계 투쟁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이 기록물은 한의사협회와 한의사들이 걸어온 길을 반추하고 고증하는 역사의 보고(寶庫)다. 역사는 기록을 남기고, 기록은 그 역사를 증명한다.” <대한한의사협회 역사편찬위원회 주관 학술발표회> <한의신문>, <회관건립사>, <협회사> 등 기록물이 갖는 특징은 특정한 시대상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는데 있다. <회관건립사>와 <협회사>는 그에게 자식과도 같은 애정의 대상이다. 그 자식들의 산파이자, 삼신할미인 한의신문. 한의신문을 대하는 독자들에게 건넬 좋은 말을 부탁했다. “한의신문은 한의사들의 일기장이자 역사서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물론 앞으로 걸어갈 10년 뒤, 30년 뒤의 발자취를 기록할 사서(史書)인 셈이다. 독자들께서 더욱더 관심 가져 주시고, 아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의신문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야 하는가. 젊은 독자나, 연륜이 오래된 독자나 그 바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 왔겠지만 어찌됐든 한의사협회를 대변하는 대변지의 역할은 변할 수가 없다. 거기에 더해 한의계의 올바른 여론을 모으고, 전달하는 정론지(正論紙)로 중심을 잘 잡아가야 한다. 시대의 흐름상 인터넷신문의 중요성이 부각되더라도 ‘정확한 기록’이라는 본질은 변할 수 없다. 좋은 날이든, 그렇지 않은 날이든 늘 한의계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길 바란다.” -
‘제75회 전일본침구학회 학술대회’를 다녀와서[한의신문]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일본 오카야마 컨벤션센터에서 제75회 전일본침구학회 학술대회(The 75th Annual Congress of The Japan Society of Acupuncture and Moxibustion)가 개최됐다. 올해 학술대회는 ‘환자에게 다가가는 의료(Patient-centered care)–의사와 침구사의 협력’을 주제로 열렸으며, 일본 전역의 침구사와 의사, 연구자들이 참석해 침구의학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가 됐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침구치료 자체의 효과를 논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의료체계 안에서 침구의료가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이다. 학회 측은 의사와 침구사의 협력을 통해 환자 중심 의료를 구현하는 것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으며, 이를 주제로 다양한 강연과 심포지엄을 구성했다. 학회에서는 코로나19 후유증 진료와 침구치료의 역할, 한약을 활용한 통합진료, 총합진료(General Medicine)와 침구의 협력 모델 등 다양한 기조 강연이 진행됐다. 또한 파킨슨병 최신 치료, 두통 진단과 치료, 침구치료 근거(Evidence) 구축 등 임상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주제들이 폭넓게 다뤄졌다. 특히 심포지엄에서는 지역사회 의료기관과 침구원의 협력, 진료 가이드라인 기반 침구치료, 암 환자 지지·완화의료에서의 침구치료 역할 등이 주요하게 논의됐다. 암성 통증, 호흡기 질환 완화치료, 만성통증 관리 등 현대 의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에 대해 침구의학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외에도 AI를 활용한 침구교육, 스포츠 현장에서의 다직종 협력, 미용침, 소아침, 위험관리 교육, 증례보고 작성법 워크숍 등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임상가와 연구자, 학생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학술 교류의 장이 조성됐다. 이러한 국제 학술 교류의 장에서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과 부산대학교한방병원 연구진도 다양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한국 한의학의 임상 경험과 연구 역량을 소개했다. 침구의학과 김건형 교수는 ‘Complementary and Integrative Medicine for Amputees’와 ‘Acupuncture and 5-Year Mortality in Traumatic Amputees’를 주제로 구두 발표를 진행했으며, 이 연구는 절단 환자의 장기 예후와 통합의료적 접근 가능성을 제시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침구의학과 오유나 교수는 ‘퇴행성 요추 및 경추 척추관협착증에 대한 초음파 유도 침도요법의 타당성: 무작위 대조 예비 임상연구’를 발표하였으며, 침도요법의 안전성과 임상 적용 가능성에 대한 근거를 제시했다. 이어 ‘Feasibility of Thread-Embedding Acupuncture for Degenerative Lumbar Spinal Stenosis’ 연구를 통해 퇴행성 요추관협착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매선치료의 활용 가능성 또한 소개했다. 필자는 ‘Role of Acupuncture in Humanitarian Crisis Settings’를 주제로 재난·인도주의 위기 상황에서 침구치료가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고찰했으며, ‘Rapid Improvement in Bell's Palsy: Two Case Reports Treated with Integrated Traditional Korean Medicine’ 주제로 포스터 발표를 통해 통합 한의치료를 받은 안면신경마비 환자의 증례를 소개했다. 이번 학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침구의학이 단순히 통증 조절을 위한 보조적 치료를 넘어, 만성질환 관리, 암 환자 지지요법, 신경재활, 재난의료 등 다양한 영역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임상 경험을 과학적 근거로 연결하려는 연구자들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침구의학이 현대 의료체계 안에서 더욱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오카야마 학술대회는 의사와 침구사의 협력을 통해 환자 중심 의료를 실현하고자 하는 일본 침구계의 방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향후 한국과 일본 연구자들의 지속적인 학술 교류를 통해 침구의학의 근거 창출과 국제적 확산이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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