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과 광운대학교 정보융합학부 공동 연구팀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한의사의 맥진 결과를 군집화하고, 전통 맥 패턴과 실제 맥파 신호의 대응 관계를 정량적으로 분석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번 논문은 국제학술지 ‘Journal of Multidisciplinary Healthcare’에 ‘Artificial Intelligence Based Clustering Algorithm for Pulse Diagnosis’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김준석 광운대 교수, 이인선 경희대 교수, 문희영 세명대 교수, 강희정 대요메디㈜ 대표, 고원준 고결한의원장 등이 참여한 이번 연구에서는 의사의 손끝 감각에 의존해온 맥진이 실제 생체신호와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의사 진단 결과와 3차원 맥영상 검사 기기로 측정한 ‘맥파 요소(waveform parameter)’를 AI 알고리즘으로 분석했다.
건강한 성인 대상, 맥파-한의사 진단 동시 수집
연구팀은 20∼30대 건강한 성인 40명을 모집해 불안·우울, 삶의 질 설문과 기초 건강 상태를 평가한 뒤, 이 중 20명에 대해 왼손·오른손 손목에서 각 5채널, 총 10개의 맥파 신호를 맥진 기기(DMP-Life)로 측정했다.
또한 임상 경험을 가진 한의사는 같은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허-실 △한-열 △강-약 △부-침 △지-삭 △활-삽 등 여섯 가지 맥 패턴을 세 단계(정상 포함)로 진단했으며, 한의사의 진단 결과는 이후 AI 모델의 비교 기준으로 사용됐다.
DTW·MDS·군집화로 그려낸 ‘맥 패턴 지도’
연구팀은 먼저 각 참가자의 맥파에서 100개의 맥 박동 피크를 추출하고, 개인 간 진폭 차이를 줄이기 위해 z-score 정규화를 적용했다. 이후 ‘DTW(Dynamic Time Warping)’를 통해 참가자 간 맥파의 시간차이를 고려한 유사도를 계산하고, 이를 ‘MDS(다차원척도법)’로 2차원 평면에 배치해 비슷한 맥을 가진 사람끼리 가까이 모이도록 시각화했다.
이어 그 위에 ‘K-평균 군집화(k=3)’를 적용해 데이터 기반 군집을 만들고, 이 군집 결과와 한의사의 진단이 얼마나 비슷한 지 ‘코사인 유사도(Cosine similarity)’로 평가했다. 이는 값이 1에 가까울수록 AI 군집과 한의사 진단이 잘 맞는다는 의미다.

왼손이 더 잘 맞고, ‘부-침맥’은 최고 0.83까지 일치
연구 결과 기존 맥진 기기와 한의사 진단은 맥의 강도·깊이·속도 측면에서 30∼50%대 일치율에 그쳐, 두 진단 사이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 반면 AI 군집화 결과는 특정 조건에서 의미 있는 일치도를 보였다.
실제 왼손 맥파 기반 모델의 평균 코사인 유사도는 0.56±0.13, 오른손은 0.54±0.15로 나타나, 왼쪽 손목 신호가 전반적으로 한의사 진단과 조금 더 잘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부-침맥(Floating–Sinking) 패턴은 왼손·오른손 10개 채널 모두에서 코사인 유사도 0.5를 넘기는 등 가장 안정적으로 구분되는 패턴으로 나타났다. 일부 채널에서는 부–침맥과의 일치도가 0.8대(최대 0.84)까지 올라간 가운데 연구팀은 “깊이·강도처럼 파형에 비교적 뚜렷하게 반영되는 특성은 AI가 잘 포착하는 반면, 속도나 한열감 등은 구분이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분석했다.

전통 맥진의 ‘디지털 표준화’ 가능성 제시
연구팀은 AI 기술 접목을 위한 필수 단계인 디지털 전환의 관점에서 이번 결과는 전통 맥진이 실제 생체신호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확인한 초기 검증 데이터로 평가했다. 또한 분석 대상이 건강한 20∼30대 소규모 집단이었고 비교 기준이 단일 한의사 진단에 기반한 만큼, 향후 대규모·다기관 연구로 확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DTW·MDS·군집화를 결합한 이번 접근이 향후 △특정 맥 패턴(예: 부-침맥)을 정량 지표로 모니터링하는 도구 △전통 맥진을 기반으로 한 건강검진 프로그램 △치료 전후 맥 변화 시각화 도구 등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기반과 방안을 마련했다고 전망했다.
이인선 교수는 “맥진이라는 전통 한의학 진단법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이번 연구를 수행하게 됐다”면서 “AI와 센서, 수치해석을 접목한 디지털 융합 연구를 통해 맥진의 강점을 살리고 임상뿐 아니라 학생 교육에 이용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드는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 교수는 “최근 중국에서는 맥파를 설진, 문진 등의 데이터와 결합해 분석하는 방법이 제시되고 있고, 맥파 시뮬레이션과 시뮬레이터 등의 개발을 통해 맥진에 대한 연구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맥진을 체계적으로 교육해 임상에서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하여 맥진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준비 중이며, 이를 위해서는 연구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맥파 신호 분석을 통한 맥상 예측 기술 개발뿐 아니라 여러 한의사들이 실제 임상에서 맥진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 지를 조사하고 그 다양한 맥진 방법과 인식의 차이를 어떻게 좁힐 것인지, 그리고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맥진 교육은 무엇인지 고민해 실제로 교육과 임상에서 쓸 수 있는 맥진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S-2023-00279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