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3 (화)

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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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 30

온갖 병이 모두 상한의 무리이다

 

 

 

안상우 박사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새해가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번지기 시작했던 돌림병이 지루하게 이어져 어느덧 한 돌을 지나는 마당에 서있다. 오래 전에 뒤적이다 박쳐둔 고서 하나를 다시 펼쳐본다. 표지의 제첨부에는 멋들어진 행서체로 쓴 『경험고방요초(經驗古方要抄)』라는 서명이 적혀있다. 구불구불한 획들에서 조선을 대표하는 글씨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의 필의를 떠올리게 된다.  

저자는 서병효(徐丙孝, 1857~1939)라는 근대한의학자로 광무 연간에 의관이 되어 시종원의 전의장(典醫長)을 지냈으며, 대한의사총합소(大韓醫士總合所)의 평의장을 지냈다. 또한 한일합병 이후에는 동서의학연구회나 한성의학강습소에서 활동하면서 일제치하 단절된 한의학교육과 한의학부흥운동에 기여한 인물이다. 

저자의 서문은 미처 한쪽이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이고 내용도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을 한눈에 살펴보기에는 지침서가 많지 않은 터인지라 자세히 뜯어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해서 오래 전에 쓴 글을 찾아보니 다행히 개략을 살펴놓은 내용이 남아 있었다(醫界와 畵壇의 어울림, 『經驗古方要抄』, 고의서산책, 민족의학신문, 2009.7.6.일자). 또 김남일이 지은 『근현대한의학인물실록』에 저자(전통의학의 부흥을 위해 노력한 한의학자, 서병효)에 대해 소개가 들어있어 다소 보탬이 되었지만 둘 다 오래 전에 쓴 글이고 더러 미진한 점이 눈에 띄어 예전에 썼던 글을 보완할 겸 미처 못다한 얘기를 풀어보기로 하였다. 


“증상을 논함에는 內傷과 外感을 나누어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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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듣건대, ‘병은 모두 상한(傷寒)에서 일어나고 치료는 장중경(張仲景)보다 정밀한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상한론)113방은 물에 수원(水源)이 있는 것과 같이, 한토하삼, 화해온보(汗吐下滲, 和解溫補)를 총결하여 변화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선언하였다.  저자인 서병효가 직접 작성한 '경험고방요초서(經驗古方要抄序)'에서 그의 의학사상과 주안점을 읽어 내보도록 하자. 아래는 원문을 다시 새겨본 내용으로 이전에 알려진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두에서부터 직설화법으로 일관되게 전개된 ‘백병상한설(百病傷寒說)’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첫 문장에서부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문장이 너무 압축된 형태로 기술하다보니 다소 해석의 표현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아래 마치 법조문의 부칙처럼 대비된 문장의 의미를 살펴보면 저자가 상한의 제반치법을 음양표리허실의 강령으로 개괄하고 이런 의미에서 모든 잡병증을 상한치법의 범주에서 논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곧 “○(상한론치법) 397법은 옷에 깃이 있는 것과 같으니, 음양표리허실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 그러므로 모든 병은 상한(傷寒)의 무리이다. 병에 대하여 증상을 논함에는 반드시 먼저 내상(內傷)과 외감(外感)을 나누어야 하니 의학의 큰 대강을 분명하게 함이다. 외상(外傷)으로 인한 한열(寒熱)은 쉬거나 그치는 적이 없고 내상(內傷)으로 인한 한열은 때로 일어났다 때로 그쳤다 한다. 외상에는 손등(手背)에서 열이 나고 손바닥(手心)은 뜨겁지 않으며, 내상에는 손바닥에서 열이 나고 손등에서는 열이 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질병, 음식으로 먼저 다스린 후 약에 의지


위의 글에서 첫 단락은 ‘故百病皆類傷寒’이란 글을 푼 것인데, “모든 병은 유상한(類傷寒)이다”라고 옮길 수도 있겠지만 정상한증과 감별해야 하는 유상한증과 개념상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유상한증이란 병증명을 피하기 위해 좀 더 풀어서 해석하는 방편을 택하였다.  

이어지는 구절에서도 기존의 해석과는 조금 달리 보았는데, “상한육경형증(傷寒六經形症)에 이르러서는 고서(古書)에 의거하여 기록하였으니,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헤아려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음양(陰陽) 병증이 전경(傳經)하며 변이(變移)하고 거꾸로 뒤집히는 즈음에는 비록 의학에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손을 쓰기 어려우니, 하물며 의학을 (제대로)공부하지 않은 사람이야!”라고 말하였다. 이상이 저자 서병효가 주장한 ‘백병상한설’의 요지이다. 

아울러 이 책에는 별도의 목차가 구성되어 있진 않다. 하지만 본문 상단의 여백에는 각 병증각문이 시작되는 첫 구절 위에 해당 부분의 제목을 눈에 잘 띄도록 적시해 놓았다. 따라서 독자는 손으로 장을 넘겨가면서 빠른 시간에 원하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이 책만의 특장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 책의 전반적인 체제는 강명길이 지은 『제중신편』의 구성과 흡사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처방은 상당 부분 선별하여 발췌했기에 전체적인 분량은 매우 축소되어 있는 양상을 띠고 있다. 다만 앞서 제시된 백병상한설에 이어 두 가지 측면에서 기성 방서와는 차별점이 있다. 

그중 하나는 ‘식치 우선’이다. 역시 서문에 말하기를, “의서에 이르기를, ‘임금과 부모에게 질병이 있으면 먼저 음식으로 다스려 본 다음에 바야흐로 가히 약에 의지할 수 있다’ 하였고, 전(傳)에서 “부모가 질병이 있을 때, 용렬한 의원(庸醫)에게 (치료를)맡기는 것은 불효”라고 하였으니, 방약을 쓸 때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음양표리(陰陽表裏)를 논하지 않고서도 이로움만 있고 해가 없이 효과를 드러낼 수 있는 약들을 옛 의방서(古方)에 의거하여 기록하였다”고 하였다. 


 『經驗古方要抄』, 민중에게 최소한의 자활책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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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향약단방을 채록한 것이다. 자서에서 “『의학입문』에서 단행(單行)해야 한다는 약과 한 숟가락만 써야 한다는 말을 살폈다. 또한 구급(救急), 해독(解毒)에 쓰이는 단방(單方)을 베껴두고 쉽게 알 수 있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약들을 널리 채집하고 간략하게 모아서 한데 합해 하나로 엮어 우리 가족들과 여러 친우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라고 밝혔으니 그가 이른바 일초일약(一草一藥)하는 향약정신에 입각하여 단방을 많이 채록해 두고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기를 바란 점이다. 

이 점은 전에도 여러 차례 말한 바 있거니와, 조선 초기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에서 내세운 ‘쉽게 얻을 수 있는 약물, 이미 경험한 의술(易得之物, 已驗之術)’로 대표할 수 있는 점이 향약의학의 가장 큰 특징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보이는 ‘易知易得之藥을 博採集略’했다는 기본정신은 조선시대 의학사를 관통하는 향약의학의 기조와 분명하게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권미에 실려 있는 단방편은 전반부 각 병증 치료편에서 한문투 원문을 표점조차 없이 그대로 실은데 비하여, 한글로 된 구결을 사이사이에 넣어 좀 더 읽기 쉽게 배려한 점을 볼 수 있어 이 책의 독자층을 미루어 상정해 볼 수 있다. 즉, 이 책은 저자가 전업의원의 전문가 진단을 전제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누구나 사용해 볼 수 있도록 일반 독자를 의식해 저술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구황실에서 3품관인 전의장까지 오른 고위직 의관 출신이 왜 이런 대중용 의약서적을 펴내게 되었을까? 저자 서문이나 본문 속에서는 저간의 사정을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식민지 수탈과 무리한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던 조선 민중들에게 애시당초 보호막을 기대하기 어려웠으며, 그들에게 최소한의 자활책이란 아쉽게도 이런 방식의 의약지식에서 구할 도리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안상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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