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7 (일)

우리의 한의학 ⑪ 오적산 근거 창출, 2만7000명 한의학 개미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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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한의학 ⑪ 오적산 근거 창출, 2만7000명 한의학 개미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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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에 관심 있는 중국, 일본, 대만 학자들 중에 “한의사들이 여러 한약처방 중에 유독 오적산을 많이 투여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주로 어떤 질병에 투여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 근골격계 환자들이 한의학 치료를 선호하고, 이들 질환을 치료하는 오적산이 효과가 있어 많이 투여하고 있다”고 답변하면서, 근골격계 질환 몇 가지를 열거한다. 

오적산은 당나라 정형외과 전문의였던 린도인(藺道人)의 비방집에 있는 처방으로 發表溫裏, 理氣活血, 化痰消積하여 오적 즉 寒·濕·氣·血·痰이 쌓여서 발생된 어떤 질병도 치료한다. 이 세 한문 표현으로 오적산 효능을 모두 설명한 것이다. 누가 이를 비과학적이니, 형이상학적이니 하여도 한의사들은 느낌이 오고, 이 처방으로 어느 질병에 투여할지 척보면 안다. 

그런데 만약 궁금증이 많고 한의학적(?) 사고가 없는 외국 학자가 “당신이 방금 오적산이 근골격계 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하였는데 근거 자료가 있느냐?”고 질문하면 무엇으로 어떻게 증거를 제시할 것인가? 


오적산, 어떤 과정을 통하여 효과가 인정됐는가?


여러 근골격계 질환 중 대표적인 요통에 대한 오적산 근거를 추적하여 보자. 먼저 우리가 늘 잘하는 방식인, 오적산 기원을 살펴보고, 수십 종의 한의서에서 ‘요통에 오적산을 투여한다’ 라는 문헌을 찾는 것이다. 특히 『東醫寶鑑』 중심으로 조사하고, 腰痛有十, 有腎虛, 有痰飮, 有食積, 有挫閃, 有瘀血, 有風, 有寒, 有濕, 有濕熱, 有氣라 하였다. 오적산 효능과 비교하면, 腎虛와 挫閃 원인을 제외한 모든 요통에 범용할 수 있으니, 완벽한 근거를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그 학자가 재차 질문하며, 1000여 년 전 중국 문헌에 오적산이 요통을 치료한다고 하여 현재 한국에서 투여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 린도인이 평범한 보통 사람인지 깨달은 선지자인지 궁금하고, 어떤 과정을 통하여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기록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한다. ‘어떤 과정?’ 그런 질문도 있을 수 있나? 

그럼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첫 가능성은 어느 날 린도인이 꿈 속에서 장중경(張仲景) 선생님을 만나 본인 요통을 호소하다가 처방을 얻고는 얼른 깨어나서 적은 것이다. 다음 가능성은 음양오행론과 기미론으로 요통 처방을 고민 고민하다가 한순간의 깨달음으로 일필휘지한 것이다. 혹은 ‘腎主骨하고 腰痛’ 하니 月이 무려 다섯 개로 月은 陰이고 五는 土라, 요통은 아주 심한 寒(陰)濕(土)이 원인으로, 기미론에서 강한 한습을 제거하는 한약들 중에 음양오행이 균형을 이루도록 9일 밤낮으로 정밀 계산하여 도출하였다. 

또 이게 아니라면 長安에 개원한 린도인, 오직 평생 요통만을 치료하겠다는 일념으로 창방 계획을 세우고, 처음에는 계지탕으로 몇 십 명 치료하다가 효과가 없어, 당귀, 천궁, 창출, 후박, 진피 등을 가감하여 몇 백 명 투약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반하, 복령을 추가하고도 실패, 다시 마황, 백지, 길경, 지각을 같이 투여하였더니, 드디어 요통 환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정말 운 좋게 7년 만에 린도인의 끈기와 열정, 실력있는 算士의 도움, 몇 천 여명 환자의 동의를 통하여 오적산을 창방한 것이다. 이러한 여러 추론 방법 이외에도 한 두 가지 더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겠지만, '경험에 의한 축적'이라는 명제 밖에는 증거가 없다. 하지만 이 명제는 불완전한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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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적산, 요통 논문 세 편으로는 근거 판단 어려워 


오적산이 어떤 과정을 통해 발명되었는지 몰라서, 대안으로 한의대 교과서와 경험 처방집, 선생님 강의록, 한의학 잡지나 신문의 실린 치험례, 醫案 등에서 요통을 치료한 오적산 내용을 정리하여 보여준다. 

이에 질문했던 학자는 “이런 자료는 중국 고전 한의서 내용과 동일하여 관심이 없고, 치험례 의안은 흥미롭지만 대부분 1명을 치료한 것으로 근거로는 약하다. 그리고 이러한 치험례를 발표할 시에 전문가끼리 서로 비평하고 토론 과정을 거쳐 게재하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그래서 다수의 동료 평가를 거쳐 발표되는 한국·중국·일본의 오적산 임상 논문을 찾기로 한다. 다행히 오적산은 세 나라의 의약품 관리기관에서 허가받은 처방이어서 제약회사들이 모두 제조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의사나 중국 중의사들은 오적산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근골격계 질환에도 다른 처방을 투여한다. 

논문을 검색하면 한국은 요통 한 편에 고지혈증, 비만 총 3편이 보고되었다. 일본은 요통 한 편, 다른 근골격계 질환과 손목터널증후군, 뇌척수액감소증, 두드러기, 유방통 등 19편이 발표하였다. 중국 역시 요통 한 편, 그 외에 근골격계 질환과 각종 신경통, 감기, 복통 및 대장 용종, 여드름, 수장농포증, 두드러기, 폐경, 다낭성난소증후군과 불임에 대한 45편이 검색되었다.   이 지구상에 오적산 임상 논문은 총 67 편이 있고, 요통 논문 세 편으로는 근거를 판단할 수 없다. 이들 대부분은 증례 보고 형태이고, 그래도 조금 수준 있는 연구가 오적산의 다낭성난소증후군에 대한 효과이다. 다시 고민하다가, 27,000명 한의사들이 신청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오적산 급여 자료를 보여주었다. 

지난 30년 동안 56개 급여 한약처방 중에서, 투약 순위 부동의 1위로 누적 투약 일수가 무려 8,000만 일이다. 급여 적응증을 일부 살펴보면, 대부분이 요통, 슬통, 염좌, 근육통, 타박상, 오십견 등 근골격계 질환이다. 오적산은 지난 2000년 한의학 역사상 최초로 하나의 처방이 가감 없이 한 종류의 질병 군에 중점적으로 8000만 일 투여하여 빅데이터를 창조한 의약품이다. 

이 의료 현장의 빅데이터에서 오적산이 아래허리 통증 치료에 다빈도로 사용하였으니, 오적산이 요통을 치료한다는 간접적인 근거로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한국은 IT 강국이다. 놀랍다. 하지만 이 자료가 임상 근거 신뢰성과 정확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한국의 살아있는 의료보험 빅데이터를 부러워한다.


근거 구축 위해 대단위 예산으로 임상연구 진행


지난 2000년을 아무 문제없이 질병치료에 자리매김하여온 한의계에게 생경한 세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근거 구축을 위해 한의학연구원, 한의약진흥원, 보건산업진흥원에서 대단위 예산으로 임상 연구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이들 임상 연구사업과 빅데이터에 의한 임상 근거 평가는 성격과 방향이 다르다. 

빅데이터에도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27,000명 한의사 개개인이 스스로 임상 관찰 개념을 가지고, 환자들에게 하나하나의 치료행위를 정확히 급여한다면, 개인 진료 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이 과정들이 한의학 근거 창출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우리는 오적산 8000만 일을 투여하고 얻은 것은 무엇일까?


(본 글은 저자의 소속기관이나 한의신문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신현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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