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5 (월)

신미숙 여의도책방-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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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여의도책방-11

HIP 한의학과 B급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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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2010년 시작된 온스테이지는 네이버 문화재단의 인디 뮤지션 창작 지원 사업으로 라이브 실력이 뛰어난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을 꾸준히 대중들에게 알리고 있다. 이날치라는 국악그룹의 『약성가(藥性歌)』를 처음 들었던 것도 2019년 가을 “온스테이지 2.0”이라는 유투브 채널에서였다. 

용왕이 병이 들자 약에 쓸 토끼의 간을 구하기 위해 자라는 세상에 나와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리고 가고, 토끼는 꾀를 내어 용왕을 속여 살아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이 『수궁가』이고 그 중 도사가 용왕을 진맥하여 발병 원인을 밝히고 각종 약을 처방하는 대목이 바로 『약성가』이다. 전통적인 북반주 위의 판소리가 아닌 드럼과 베이스 위에 얹혀진 판소리 보컬들이 솔로와 합창 파트로 지속적인 교차음을 내는 이날치의 『약성가』는 꽤 중독성 있는 음악이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멋지게 편곡을 할 수 있을까?!’ 뭔가 미학적인 평가를 하기에 능력이 일천한 나로서는 ‘사운드가 풍성하고 독특하며 놀랍도록 신선하다’는 몇 단어 외에는 더 이상 보탤 게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게 1년 전 내 기억 속의 이날치는 2020년 한국관광공사의 홍보영상 배경음악 『범 내려온다』로 힙오브힙(hip of hip)한 트렌드의 중심에 서게 된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의 콜라보 영상은 가장 성공한 공공기관 마케팅으로 칭송받으며 유투브 영상조회 3억뷰 이상의 기록을 갱신중이다. 

작년 『약성가』 발표 당시의 인터뷰에서 마음에 와닿았던 대목은 그들의 음악이 판소리의 대중화, 국악의 현대화, 한국음악의 월드뮤직화와 같은 국악을 통하여 국뽕을 자극하는 듯한 가치 지향의 의무감 같은 걸 추구하는 그룹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저 ‘재미난 옛 이야기’가 조금은 특별한 ‘현대의 댄스 뮤직’이 되길 바란다고 했고 2020년 『범 내려온다』를 통해서 이날치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이날치의 ‘약성가’, 한의학의 현재 모습 되돌아보게 해

공정현의 『약성가』보다 이날치의 『약성가』가 더 유명해진 2020년 11월의 어느 날, 이날치의 베이시스트 정중엽님의 『범 내려온다』의 빅히트 비결에 대한 “기본 4분의 4박자 스트레이트 리듬을 썼는데, 이 기본 박자에 판소리를 얹으면 마치 8분의 12박자 같은 느낌으로 들리거든요. 그게 스윙처럼 들릴 수 있는 효과가 있어요. 판소리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작지만 깊은 미학들이죠”라는 자평의 글을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판소리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작지만 깊은 미학들”이 “한의학에서만 구사할 수 있는 작지만 깊은 치료의 미학들”로 읽히면서 한의학도 이날치처럼 ‘한의학의 과학화, 현대화, 세계화’ 같은 거창한 목표를 미션으로 삼지 않아도 섬세하고 다양한 치료법들이 오밀조밀하게 조화를 이뤄 결국은 효과를 내고야 마는 힙(hip)한 요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의학을 경험하고 진정한 효과를 본 사람들만이 그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반만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의학으로서의 대중성을 가지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점들이 많다는 생각에 자조 섞인 한숨도 자연스럽게 따라나왔다. 한의학 자체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와 임상의로서 날마다 부딪혀야 하는 제도적인 높은 장벽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는 한의학이 가진 이러한 한계와 장벽을 ‘B급 이미지’라 부르고 싶다. 

아주 가끔 마케팅의 영역에서 ‘B급 이미지’가 기가 막히게 잘 들어먹힐 때가 있다. 복고풍이나 촌스러움을 극대화하여 최신의 제품을 단기간이 확 띄워야 할 때가 그렇다. 물론 B급의 레벨 조절의 실패로 묻혀버린 광고로 전락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백신 공포감 극에 달할 때 안아키 활개쳤다』는 11월 4일자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 J, 90회차의 제목이다. ‘활개치다’는 것은 긍정적으로는 ‘의기양양하게 행동하다’는 뜻으로 쓰일 수 있으나 부정적으로는 ‘부정적인 것이 크게 성행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안아키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으나 시청률 높은 공중파 시사프로에서 안아키 혹은 한의학을 소비하는 방식을 언급하고 싶을 뿐이다. 독감 백신, 코로나 백신, K-방역 등 지난 수개월 뉴스에서 가장 많이 접해왔던 코로나 관련 키워드들은 우리 모두에게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주었으나 동시에 기대되는, 신뢰하는, 엄중한 그리고 긍정적인 이미지들이다. 이에 반하여 백신 공포감이 극에 달할 때 ‘활개쳤다는 안아키’는 일반 대중들에게 한의학에 관련된 어떤 이미지를 증강시켰을까? 백신을 과학의 정점에 비유한다면 안아키는 어느 분야의 정점에 비견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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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과 의료, 그 사이’, 한의학에 대한 냉정한 평가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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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7일 의사를 포함한 다수의 직원들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전남대병원은 1동 본관 전체를 코호트 격리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병원이 감염 확산의 위험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고 의료진을 포함한 자가격리자가 급증해 정상적인 진료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라 본관 1동 전체 병실을 폐쇄하기로 방역당국과 협의했다는 것이 당일 병원측의 설명이었다. 일시적으로 병원이 봉쇄에 이르자 수술 직후 퇴원한 환자들과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온 외래 환자들이 처방을 제때 받지 못할까봐 병원으로 몰려들어 입구를 둘러싸고 장사진을 치는 모습을 뉴스에서 보게 되었다. 

현대의학이 가진 그 절대적인 위치가 얼마나 확고하며 질병관리와 건강유지를 위한 환자들의 의지 또한 얼마나 절박한 지 가늠할 수도 있었다. ‘한방병원 입구를 둘러싸고 본인들 치료를 제 때 못 받을까봐, 약을 못 탈까봐 불안해서 줄을 서는 모습을 볼 날이 과연 올까?!’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그 대답은 이 글을 읽을 동료 한의사들에게 슬며시 미뤄보기로 한다. B급 이미지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 한의학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20년차 치과의사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이성오 선생의 한의학에 대한 담론서 『한방과 의료, 그 사이』 라는 책에 신랄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한방의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던 것 같다. 전에 보지 못했던 비만, 아토피, 성장이란 진료가 한의원의 간판 혹은 창문에 추가되어 있었다. 치과 고유의 진료 영역을 일부 한의사가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접했다. 한의원의 바뀐 간판을 보고 난 후의 첫 느낌은 다이어트 클럽, 헬스 클럽, 건강원과 한의원이 닮아 간다는 것이었다. 유기농, 신토불이 등의 담론과 가장 유사해 보이는 한방 의료가 위축되면서 동시에 한방 화장품 등의 이미지가 대량 소비되는 현상이다. 이 책의 목적은 한방 샴푸처럼 한방 이미지의 소비는 증가하는 데 반해 한방 의료에 대한 이용이 감소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한방이 처한 현실의 근본 원인은 의료 이용자들이 예전만큼 한의원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한방을 통해 질병을 해결하려는 의료 이용자들의 태도는 감소했다. 한방을 이용하더라도 특정 질병 혹은 특정 증상에만 국한된다. 한방이 최근 들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긴 하지만 원리, 치료 방식 등에서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용자들의 판단이다. 현재 한방의 상황은 문화(드라마, 이벤트적 사건, 대중매체)와 결합하여 형성된 한방의 긍정적 담론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나타낸다. 한의사의 입장에서 볼 때 침의 효능은 무궁무진하다. 반면 한방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침술을 근골격계 질환에 적용하는 데 익숙하다. 침의 효능에 관계된 사실과는 별개로 일반 대중의 의료 인식에는 침 치료는 근골격계 질환을 다루는 행위로 이해되고 있다. 침이 차지하던 부분이 근골격계 질환에 집중되면서 양방과 차별점을 보이지 못하게 된 탓이 크다. 여기에는 양방을 통한 정확한 진단 후 치료라는 인식이 드러난다. 원래부터 한방을 불신하는 양방 의사인만큼 한방에서의 침은 인정하더라도 한방 고유의 치료 원리로만 이해하지 않고 있다. 한방이 진단 기기를 이용하려 하는 행동의 내면에는 기술 과학을 통한 의료 발전이라는 생의료화적 흐름에 동참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가시성을 뒷받침하는 기술 과학적 정체성은 한방으로 하여금 정체성에서 벗어난 선택을 강요하면서도 비전문적 의학으로 인식되게 만든 모순적 상황의 원인이 되었다.


『내일부터 한약 건보 적용 시범사업 실시…38만원→7만원으로 뚝』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에 관련된 대부분의 기사 제목들은 한결같았다. 특정 질환에 제한하여 시범적으로 실시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읽어보기 전에 제목만 훑어보는 뉴스 소비자들에게는 한약의 일반적인 가격은 38만원이며 이제는 그 가격을 7만원으로 지속적으로 할인한다는 것으로 오역되기 충분한 제목들이 11월 20일 하루 종일 포털뉴스의 상위권을 차지하였다. 11월 21일자 경향신문의 토요판 칼럼 여적(餘滴)의 제목 또한 『한방첩약』이었다. 조운찬 논설위원은 국민건강에 필요하다면 한방이라고 꺼릴 이유가 없으며 첩약 건보 적용은 한의학이 치료의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라고 힘주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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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의 정체성 모호?…정확한 병리적 상황 이해 위한 노력의 일환

『한방과 의료, 그 사이』에서 언급된 1)한의학의 긍정적 담론은 한계에 도달했는가? 2)한의학을 통해 질병을 해결하려는 의료 이용자들의 태도는 감소했는가? 3)영상진단기기를 통해 진료의 효율화를 꾀하는 한의사들은 정체성을 벗어난 모순적인 상황인건가? 이 세 가지는 한의사 모두가 각자의 임상경험과 상황을 근거로 꽤 많은 주장과 반론이 폭발할 수 있는 주제들이다.

면허 취득 20년차를 맞이한 내가 감히 위 문제의 답을 요구받는다면 날마다 만나는 수많은 환자들을 통해 한의학이 얼마나 그들의 몸과 마음에 놀라운 치유를 주었는지를 끊임없이 피드백 받고 있으며 심실 질환으로 오진된 박동성 이명을 포함하여 10년째 낫지 않는 만성 변비까지 한의학을 통해 질병을 해결하려는 의료 이용자들의 다양한 문의는 날이 갈수록 증가 추세이다(정체 중인 나의 실력이 문제라면 문제다).

또한 영상진단 CD를 지참한 채 한의사에게 추가적 설명을 듣고자 하는 환자분들을 만나는 것은 수련의 시절부터 일상이 된 지 오래이기도 하고 환자의 정확한 병리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이 상황이 한의사로서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하지는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한의사로서의 실력만으로도 충분할텐데 환자들의 심리까지 공부하고자 학위 취득에 자격증 공부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는 선배언니 한 분께 안부인사를 올려야겠다. 코로나는 여전하고 그저 다행인 우리의 11월도 이렇게 흘러간다.

신미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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