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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일을 돌본다는 마음으로 매사에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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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가족의 일을 돌본다는 마음으로 매사에 나서”

42년간 한 우물만 판 한의계 레전드, 강동·송파분회 오재근 국장
회원들 민원 해결사…오토바이타고 밤낮 주말 없이 언제든 달려가

오재근님3.jpg오재근 국장(강동·송파구한의사회)

 

 

여기 한 우물만 판 사내가 있다. 요즘에는 한 우물만 파다가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도 있다’, ‘한 우물만 파다 물이 안 나오면 대실패’란 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급변하는 세상에서 묵묵히 모진 풍파(風波) 다 견뎌내며 자신의 위치에 우뚝 서 있는 사람을 우리는 레전드(legend·전설)라 칭한다.

 

최근 본지에서 전국 시도지부 사무국 국·처장들의 일상을 취재하면서, 강동구·송파구분회의 오재근 국장(72)을 만난 것은 그의 삶이 곧 한의 역사의 한 단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지난 온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한국전쟁 발발 2년 전인 1948년 충남 보령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기치아래 잘살고자 몸부림치던 시절, 그도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느 날 밤,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첫 일터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약령시장. 시장에서 이 곳 저 곳의 한의원에 한약재를 배달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한 한의사를 알게 됐다. 서울시한의사회 제19대 회장을 역임한 유승원 원장이다.

 

유 원장은 마침 강동구한의사회 사무국에 직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오재근 국장을 추천했다. 서른 살 되던 해인 1978년 1월 19일, 강동구한의사회에 입사했다. 그때부터 한의사회와 인연을 맺은 게 벌써 42년의 세월로 이어져 오고 있다.

1988년 1월에는 강동구에서 송파구가 분구됐다. 그해 4월부터는 강동구에 이어 송파구분회의 일까지 맡아 지금에 이르렀다.

 

“지난 온 세월을 되돌아보면 많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그래도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지금의 나란 존재가 있을 수 있게 된 것은 누가 뭐래도 한의사분들과 함께 해 가능했다. 정말 깊이 감사드린다.”  

강동구·송파구분회에서 42년 동안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은 소속 회원들의 격려와 성원의 힘이 컸다. 하지만 현재의 ‘오재근’을 만든 것은 ‘오재근’ 그 자신이다. 그의 성실성과 진정성이 살과 피가 되고, 뼈대가 됐다.

 

큰 애착을 갖고 있는 그의 분신은 낡은 오토바이 두 대다. 늘 그의 든든한 발이 돼 주었다. 오토바이는 왜, 그의 분신이 되었는가. 그의 일 때문이다. 분회 특성상 회원들의 민원은 밤낮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때 가장 빨리 달려갈 수 있는 게 바로 오토바이다. 군대의 5분 대기조처럼 그는 늘 비상 대기하며 살아 왔다. 

 

그의 첫 생활신조는 신속한 대처다. 두 번째가 정확한 일처리이고, 세 번째가 진정성이다. 회원이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질질 끌어서는 결코 안 된다. 급박하고, 중차대하다고 해서 엉터리로 일처리를 해서도 안 된다. 매사에 진심을 담아야 한다. 회원이 만족할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


군대의 5분 대기조처럼 늘 비상 대기하며 살아와

 

그런 모습을 보이는 오 국장에게 회원들은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 때론 작은 아버지도 됐고, 때론 큰 형님도 됐다. 그렇게 회원들은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42년 동안 어디 한번 멀리 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다. 회원들이 언제라도 부르면 즉시 달려갈 준비가 돼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불만도 있었겠지만 내 일에서만큼은 조금도 허투루 하고 싶진 않았다.”    

 

그의 오래된 서류 더미를 넘기다가 노란 밴드로 묶인 한 뭉치의 종이 묶음을 확인했다. ‘합의서’ 또는 ‘각서’였다. 현재처럼 한의사배상책임보험이 없던 시절, 회원들의 의료분쟁이나 의료사고 해결은 대부분 그의 몫이었다. 

 

의료사고로 입원한 환자를 찾아 며칠이고 병실로 출퇴근하며 간호를 했고, 사망 사고의 경우는 장례식이 마치는 날 까지 상가에서 머물며 유가족의 아픔을 같이했다. 피해자나 유가족들은 그런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결국에는 합의에 나서주었다. 

“오랫동안 회원들과 동고동락하다 보니 몇몇 회원들께서는 ‘맏형님 같다’, ‘작은 아버지 같다’고 말씀 해주신다. 그런 때 정말 즐겁고, 보람을 느낀다.”


“작은 것에 결코 소홀하지 않는 마음이 장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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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회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 “가정의 화목이다. 가정사가 안정되지 못하면 반드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다행히 아내와 아이들이 나의 일을 늘 이해해줬고, 힘을 북돋아 줬다. 가족들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부인 이정임 여사와 큰 아들 병섭, 작은 아들 준섭, 그리고 둘째 며느리와 손자손녀(세준, 세현, 세아)의 존재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이유다.

 

그가 관심은 가족과 일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불우한 이웃들과의 일상 역시 매우 소중했다. 강동구에서 그는 독거노인의 대부다. 경제적 후원은 물론 전기장판과 이불 지원, 도배, 밑반찬 제공 등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이 같은 이웃사랑 실천은 서울시장으로부터 두 번씩이나 ‘자랑스런 시민상’을 수여받았다. “아버님, 어머님을 일찍 여의였기 때문에 주변의 어르신들이 모두 다 부모님 같다. 나 또한 늙어가고 있기에 그분들의 애환을 좀 더 잘 안다. 외롭지 않고, 건강할 수 있도록 한번이라도 더 찾아뵈려 한다.”

 

그가 분회 일을 하면서 크게 자부하는 것이 있다. 바로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강동구 천호한의원 윤석용 원장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일이다. 윤석용 원장의 개인적 능력과 더불어 분회 차원의 아낌없는 지원이 한 몫을 했다. 그 당시 오 국장은 회원들과 함께 윤 원장의 당선을 위해 밤낮없이 뛰고, 뛰었다.  

 

“지금도 변함없이 주장하는 게 있다. 한의약이 발전하고 싶다면 소속 사회의 행정기관은 물론 정계에 대거 진출해야 한다. 보건소 과장, 소장을 비롯해 시군구 의회, 국회 등에 한의사들이 다양하게 포진될 때 한의사들의 업권을 위해 말해줄 수 있는 대변인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분들이 너무 안 보여 안타깝다.” 

 

시군구 분회 및 중앙회 직원들에게 당부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작은 것에 소홀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인양 취급하는 게 회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일 수 있다. 한의사회의 일엔 크고 작은 게 없다. 모두 다 중요하다. 진정성을 담아 열심히 해야 한다. 회원들이 무심한 듯해도 다 지켜본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 때 ‘한의’라는 한 가족이 된다. 가족의 일을 돌본다는 마음으로 매사에 나서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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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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