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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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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16)

1969년 香港 陳存仁 先生의 來韓講演
“韓·中 醫學 交流의 歷史를 오늘날 되새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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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1969년 香港의 陳存仁 先生이 韓國을 방문하였다. 陳存仁 先生은 中國 上海에서 敎授를 하다가 1950년 香港으로 피난한 후에 香港中醫師會長, 동화병원장, 中國精神衛生學協會長 등을 역임한 中醫學者이다. 

1969년 10월12일 당시 裵元植 대한한의사협회장은 개인적으로 陳存仁 先生을 초청하여 환영연을 개최하였다. 또한 경희대 한의학과 동문회(회장 李明憲)에서 초청하여 워커힐에서 오찬을 하였다. 이 자리에는 李明憲 회장 부부와 한요욱 부회장 부부 등이 참석하여 학술교류 문제를 논의하였다. 

한편 경희대에서는 11일 陳存仁 先生에게 名譽 文學博士를 수여하는 행사도 진행하였다. 13일에는 한의협에서 주최하여 한국의 집에서 성대한 환영연을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중앙회의 결의에 따라 陳存仁 先生에게 대한한의사협회 名譽顧問證書를 수여하였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 마지막으로 14일 저녁 6시에 반도호텔에서 30여명의 한의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환송연을 진행하였다. 다음날 15일 일본으로 떠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초청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전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부흥을 모색하였던 裵元植 協會長의 부흥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1969년 10월10일 저녁 8시 시내 金門都(중국 요리집)에서 환영연회를 개최하면서 ‘韓中醫學交流史’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게 되는데, 그 내용이 1971년 7월15일 간행된 『대한한의학회보』 제31호에 실려 있다. 陳存仁 先生이 강연하고 金東明이 통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모두 두 쪽에 걸쳐 정리되어 있다. 

그 내용을 아래에 주제별로 나누어 요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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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대한한의학회보’ 제31호에 실려있는 
진존인 선생의 강연 녹취록.

 

○ 대한민국은 檀君王儉이 건국한 이후로 草根木皮로 된 약물이 있게 되었다.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어 세계 의학사상 최고로 매우 찬란한 일면을 장식하였다. 陶弘景의 本草經에 人蔘의 효능이 알려지게 되어 韓國에서 人蔘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韓中醫藥交流의 시작이 되었다.

○ 佛敎와 道敎가 中國으로부터 들어와 單方과 丸劑 등의 製法이 韓國에서 성행하게 되었다. 高句麗와 百濟産의 人蔘은 중국의 상당의 潞黨蔘보다 오히려 우수하다고 인식되었고, 濟州道의 半夏, 西京의 何首烏, 慶州의 木香 등이 모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 日本醫學에 미친 韓國醫學의 영향은 지대하다. 승려 毛治, 法藏, 法明 등이 日本에 醫學을 전하였다. 특히 漢나라 때에 성행하였으므로 日本人들은 ‘漢醫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唐나라 때에는 韓國人들이 日本에 醫藥에 대한 지식과 학문을 전하여 더욱 충실한 공헌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 韓國人들은 창의력이 있어서 醫書가 계속 나오게 되었다. 조선시대 太醫 許浚이 中國의 醫書들을 참조하여 『東醫寶鑑』을 저술하게 되었다. 

이 책은 중국에서 20여 차례나 출판했을 정도로 유명하다. 

○ 韓國이 中國의 醫藥文化를 받아들여서 완전히 흡수하였다. 中國에서 얻은 씨앗 한알을 韓國 학자들의 손으로 심고 가꾸어 찬란한 꽃이 피게 되었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 생각건대 中國의 國花는 梅花요 韓國의 國花는 無窮花인데 梅花 꽃잎은 5개 뿐이지만 無窮花의 꽃잎은 梅花의 것보다 많다. 醫學도 이와 같다고 본다. 한국 민족의 부단한 노력과 과학의 진보는 드디어 동양의학을 발전시키는 초석이 되었다.

○ 韓國과 中國의 문화는 마치 한집안 같고 목표도 또한 같으므로 우리 두 민족은 步調를 맞추어 一路邁進하여 동양 고유의 문화를 빛내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한의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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