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0 (수)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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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07)

1955년 『醫林』 제12호가 전하는 東方醫學會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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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간행된 『醫林』 제12호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발견했다(이하 漢醫學 혹은 漢醫師를 ‘漢’이라는 글자로 표기한 것은 명칭이 개정된 1986년 이전 상황의 글이기 때문임을 양해를 부탁드림).



“純粹한 學術團體로 新進漢醫者醫學徒로 糾合, 漢醫師도 民主主義 得勢로 倭政鐵鎖에서 解放이 된지도 十年이란 星霜이 된 오늘에 와서도 四千年의 傳統을 가진 民族固有의 醫學이라고 漢醫界에서는 自家自稱하면서 漢醫學의 學術面에 있어서는 進步보다 退嬰一路를 걷고 있지 않는가 疑心스러우나, 어느 面 어느 角度에서 볼지라도 漢醫學術面을 硏究發展시키자는 그림자조차 發見할 수 없고 自家自稱으로 漢醫學을 復興發展시킨다는 豪言壯談은 마침 井中之蛙가 天井을 쳐다보고 개골개골하는 格이 아닌가 疑心스럽다. 무엇보다는 社會一般에서 漢方醫學은 非科學的이라 論難이 되고 있는 때에 있어 漢方醫學을 科學的 基盤위에 새로운 方向으로 指向發展시키자는 理念下에 全國的으로 新進精銳漢醫學者 及 漢醫學徒들의 總意로서 發起發足한 東方醫學會가 去十二月四日 市內 東和百貨店 五層 禮式部에서 創立總會가 開催되었다. 醫林社長 裵元植先生의 意味深長하고도 根氣있는 實感的인 開會辭로부터 始作하였다. 斯學界의 大元老 方周赫先生의 끊임없는 斯學界의 發展을 위하여 鬪爭해달라는 激勵의 祝辭와 그 外 數人先生의 祝辭도 聽衆들에 感銘을 새롭게 하였다. 當日 同學會의 任員選擧結果는 다음과 같다. (會長) 裵元植, (副會長) 金在誠, 金庚烈, (理事長) 金庚烈, (理事) 李泰山, 李龜夏, 金淳鎬, 許埈, 金性圭, 黃鎭瑞, 趙玄成, 徐廷大, 申鉉秀, 柳昆龍, 劉秉秀, 朴正黙, 朴季祚, (監事) 沈相龍, 尹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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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기사는 裵元植 先生이 중심이 되어 東方醫學會를 결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가 1952년 구성된 이후에 學術院, 東洋醫學學術會, 韓國漢醫學會 등이 만들어졌으나 제대로 運營되지 못하고 사라지곤 하였다.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것은 財政的 基盤이 튼튼하지 못하여 學會 運營을 뒷바라지할 財政的 支援을 提供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裵元植 先生이 중심이 되어 韓醫學界의 新舊 醫學徒들이 모여 東方醫學會라는 학술단체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위의 기사는 바로 東方醫學會를 발족하는 과정을 담은 역사적 사료이다. 韓醫學界에 實質的인 學術硏究機構가 없음을 痛嘆한 裵元植 先生이 뜻있는 韓醫界 人士를 糾合하여 學會設立運動을 펼친 것이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1955년 12월4일 서울 市內 同和百貨店(현 新世界百貨店) 5층 禮式部에서 東方醫學會 創立總會를 가짐으로써 열매를 맺게 된다.

창립총회에서 會則 21조를 심의 통과시킨 東方醫學會는 會長에 裵元植, 副會長에 金在誠·金庚烈을 선출했다. 이밖에 理事로는 李泰山, 李龜夏, 許埈, 金性圭, 黃鎭瑞, 趙玄成, 徐廷大, 申玄秀, 柳昆龍, 柳秉秀, 朴正黙, 朴季祥 등이 선임됐고, 監事에는 沈相龍·尹睦이 선출됐다. 이 東方醫學會는 그 후 발전을 거듭하다가 韓國東洋醫學會로 改稱됐다(1989년 간행된 『大韓韓醫師協會四十年史』의 내용을 요약 정리함).

『醫林』 제12호의 3쪽에는 ‘靑史에 빛내는 漢醫學硏究機體 東方醫學會發足’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어느 學術部面치고 學會가 없는 곳은 잘 記憶나지를 않는다. 紙面을 通하여 每日같이 某學會의 主催로 學術講演會의 開催를 알리고 있다. 이와 正反對로 學問의 歷史로 말하면 어느 部面보다 앞선 悠久한 歷史를 가졌고 우리 民族保健에 燦爛한 業績을 남기고 現在도 갖고 앞으로도 無限히 가질 수 있는 漢醫學界에서는 學術硏究機體의 學會하나 없다는 것은 無爲無能한 것이며 기구한 運命에 處한 事實이 되지 아니할까 우려된다. 無爲無能을 有能有爲로 回正하며 기구한 運命을 離脫冒免코저 勇躍 東方醫學會의 發足에 總進軍하는 바이다.”
한의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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